주간동아 1094

2017.06.28

정치

이원종 • “국민 선택권 보장 위해 정당은자기 정체성 분명히 세워야” 유인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으로 정치혁명 이룰 천재일우 기회”

대담 前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에 한국 정치의 ‘길’을 묻다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7-06-27 17: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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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6월 19일 오후 3시
    장소   동아일보 서울 충정로사옥 6층 회의실
    패널   이원종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김영삼 정부) , 유인태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노무현 정부)
    진행  ·  정리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정치가 발전하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건전한 경쟁이 필수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한국 정치지형은 여고야저(與高野低)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여당은 정당 지지율 50%를 넘나들며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반면, 야당들은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며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졌다. 여야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대화를 통한 협치 대신 소모적 정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갈등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를 되돌리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을 지낸 이원종 전 수석과 노무현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수석 등 두 정치 원로로부터 한국 정치가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들어봤다.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뭐라고 보십니까.
    이원종 : 진보 정당이라면 진보 이념을 내세워 뭉치고 보수는 보수대로 보수 이념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정치 현실은 그렇지 못했죠. 가치와 이념보다 사람 중심의 정치를 해오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기득권화한 것이 문제죠. 정당과 정치인이 자기 정체성과 비전을 분명히 밝히고 국민의 선택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을 위해 이합집산을 일삼아 온 거예요. 정당 이름만 바뀌었지 그 정당의 차이를 느끼기 어려운 게 현실 아니었습니까.

    대통령 탄핵과 대선 패배 후 보수 정치권이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정당 지지율도 저조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요.
    유인태 : 우리나라에는 유럽이나 글로벌 기준에서 얘기하는 보수세력이 딱히 없어요. 해방 이후 우파 중에서도 극우가 주도권을 쥐고 보수 노릇을 해왔다고 볼 수 있죠.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뉠 때 ‘이제 보수가 바로 서나’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절반 이상 (새누리당을 탈당해)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했죠. 그게 국민 뜻에도 맞는 거였고요. 그런데 나왔던 사람들이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들어갔어요. 그게 지금 대한민국 보수의 현주소이자 한계를 보여주는 겁니다.





    정치의 생산자이자 소비자

    이원종 :국민은 정치권력을 만들어내는 주체인 동시에 그 권력이 행사하는 정치와 정책의 최종 소비자입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은 것은 정치뿐이에요.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각 정당과 정치인은 정체성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판단 기준을 각 정당이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면 과거처럼 고향을 보고 찍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탈당이냐, 잔류냐를 놓고 고민하던 후배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나가든 남든, 사람 중심으로 고민하지 말고 이념 중심으로 판단하라’고요.

    여전히 우리나라 정당은 가치와 이념보다 ‘사람 중심’으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죠. 친박(친박근혜)이니 친문(친문재인)이니 하는….
    이원종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에 당분간 사람이 모일 겁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이해관계 상충이 생겨 힘이 빠지기 시작하고,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이 막판에 불행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에요.

    탈당했다 다시 복당한 의원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유인태 :현실적 이유 때문이죠. 선거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좌파, 진보 쪽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는 양 극단의 원심력이 크게 작용하거든요. 예를 들어 과거 통합진보당 세력 가운데 친북 성향의 인사가 일부 있다는 것을 왜 몰랐겠어요. 그런데 총선이나 대선을 치르려면 그 사람들 비위를 뒤집어선 안 되니까 맞춘 겁니다. 보수 쪽도 마찬가지예요. 보수에서 뭘 해보겠다고 하는 김문수 같은 사람은 지금 극우 노선을 걷고 있잖아요. 홍준표 전 대선후보도 극우 노선을 걷고 있고…. 양 극단의 원심력이 크게 작용해 갈등을 부추기고 키우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선거제도에 있어요.

    소선거구제를 말씀하시는군요.
    유인태 :내년에 개헌한다고 하는데, 선거제도도 다당제가 가능하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4당 체제라고 하지만, 바른정당은 총선 후에 나왔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선거 민의가 반영됐다고 보기 어렵죠. 선거제도를 바꿔 극우와 극좌 같은 양 극단세력은 지지세력만큼 의석을 얻을 수 있게 하고, 중도를 중심으로 한 정당이 구심력을 키워 한국 정치를 끌고 갈 수 있도록 해야죠.

    유인태 전 수석은 “정체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정치를 하려면 선거제도부터 바꿔야 한다”며 과거 소선거구제 때문에 좌절해야 했던 자신의 출마 흑역사를 소개했다. 1988년 13대 총선 때 원혜영 의원, 제정구 전 의원,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과 함께 한겨레민주당 후보로 5번을 달고 출마했다 ‘꼴등’을 한 경험과 96년 15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창당한 새정치민주연합에 따라 나서지 않고 김원기, 노무현 등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멤버들과 함께 3번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경험 등이었다. 유 전 수석은 “득표율과 연동한 비례대표제를 택했다면 (15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가 됐을 것”이라며 “소선거구제에서는 1, 2번 아니면 당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원종 :유 수석이 소선거구제와 관련된 현실적 체험을 여러 번 하셨군요(웃음). 소선거구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중대선거구제가 해결책인지는 모르겠어요.



    민의 왜곡으로 국민 통합 역행

    유인태 :소선거구제는 1987년 선거법 협상 때 DJ가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 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은 실제 10%가량 더 득표하고도 제1야당 자리를 평화민주당에게 내줬죠. 1등은 적고 2등이 많았던 탓이에요. 그래서 그때 민의 왜곡 아니냐, 비례가 불비례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죠.

    이원종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굉장히 속상해했어요. 제2당에서 제3당이 됐으니까요.

    유인태 :정치의 본래 기능은 국민 통합인데, 소선거구제는 민의를 왜곡하고 국민 통합에 역행하고 있어요.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거기에 맞게 개헌해 권력구조를 바꾸는 게 시대의 과제입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정치권에서 합의한 대로 개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한국의 정치혁명을 이룰 천재일우의 기회예요.

    이원종 :개헌은 몰라도 선거구제 개편은 국회의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유인태 :선거구제를 개편하는 동시에 그에 맞게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이 곧 정치혁명이죠.

    소선거구제 대신 어떤 선거제도가 좋을까요.
    유인태 :방식은 여럿 있을 수 있죠. 투표율과 연동한 비례대표도 있고, 중대선거구제도 있고…. 저마다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선거제도를) 합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인구가 적은 지역은 선거구가 두세 곳으로 확 줄어 지역 대표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원종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 못지않게 한국 정치도 프랑스 수준의 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앞으로 성공 여부를 떠나,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고 마크롱을 중심으로 한 신생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것 자체가 선거혁명입니다. 우리 국민 역시 시대 변화를 선도할 마크롱 같은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바라고 있어요. 안타까운 점은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고, 그런 지도자를 뒷받침해줄 정치세력이 마땅히 없다는 거죠.

    5년 단임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한계도 분명한 것 같습니다.
    유인태 :선거제도와 권력구조는 한 세트인데, 여기에 모순이 있어요. 선거제도를 다당제로 바꾸자면서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는 건 맞지 않거든요. 다당제를 하면 여소야대가 되기 쉽죠. 그래서 다당제는 내각제와 세트로 봐야 해요. 그래서 다당제와 분권형 개헌은 함께 가야 합니다.

    이원종 :다당제가 되면 내각책임제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총리를 의회 다수당에서 선출하는 거죠. 이원집정부제를 하려면 정당이 탄탄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당끼리 연정할 수가 있어요.



    잡탕정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유인태 :
    지금이라도 선거제도를 바꾸면 보수라고 하는 쪽에서는 극우에 가까운 정당 하나와 유승민 의원 같은 중도우파 정당이 하나 나오고, 진보 쪽에서는 중도진보 정당과 좀 더 급진적인 정당이 나올 수 있죠. 지금 더불어민주당에는 급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정의당에서는 생존이 안 되니까 여기(더불어민주당) 남아 있는 거죠.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하는데, 그럼 선거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니까 잡탕정당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원종 :선거 때마다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얘기해왔지만 이뤄지지 못했는데, 문 대통령 재임 때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진다면 큰 업적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게 정치문화입니다. 사람 중심의 정치를 가치와 이념 같은 정체성 중심으로 옮겨갈 필요가 있어요.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문 대통령이 임명하자 야당들이 국회를 보이콧하고 나섰습니다.
    이원종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을 임명한다고 절차상 문제될 것은 없어요. 대통령책임제는 인사도 대통령 책임 아래서 하는 것입니다. 인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인사 자체를 못 하게 하는 건 안 되죠. 강 장관이 앞으로 외교부 장관으로서 제구실을 잘할 것인가를 지켜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야당은 여당 될 생각은 안 하고 만년 야당 할 것처럼 반대만 하는 것 같아요. 장관 국회 인사청문회만 해도 야당이 충분히 따지고 여론을 살피는 게 원칙입니다. 야당이 대통령에게 임명을 하라 마라 하는 것은 대통령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죠. 대통령은 역사와 국민 앞에 자기가 행한 인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겁니다.

    유인태 :장관이든 국무총리 후보자든, 낙마한 사람은 인사청문회도 하기 전 언론 검증 단계에서 여론이 악화돼 낙마합니다. 대통령 인사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정치권이 새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죠. 대통령도 처음 보여준 자세대로 더 겸손하게 야당과 협치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고요. 협치의 기운 속에서 정치권이 선거제도 개편과 개헌에 합의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원종 :아직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평가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참모들하고 와이셔츠 바람으로 회의하는 모습에 국민이 환호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덕이라고 할 수 있죠. 과거 대통령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제가 모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수석들과 자주 식사하고 자유롭게 토론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양김(兩金)이 가졌던 카리스마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유 전 수석은 참여정부 초기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과 함께 일한 인연이 있으시죠.
    유인태 :(문 대통령은) 소탈하고 성실하고 진솔해요. 같이 수석으로 일할 때 보면 어떤 점에서는 뭐랄까 조금 막혔다고 할까, 답답한 부분도 있어요.

    어떤 면이 그랬습니까.
    유인태 :너무 원리원칙주의자예요. 이를테면 살다 보면 억울한 사연이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동창이 좋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억울하다’고 하소연 같은 걸 할 수 있는데,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 때) 전화도 안 받았다고 해요.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고, 진짜 억울한지 알아봐주는 것 정도는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데,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경남고 동창 사이에서 ‘(문재인은) 동창도 아니다’는 얘기가 돌았다고 하죠. 2012년 대선 때 경남고 동문이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요. 그래도 이번 대선 때는 당선 가능성이 높아서인지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고 하더군요.

    이원종 :대통령이 성공해야 국가와 국민이 평안해집니다. 그러기 위해 문 대통령이 좀 더 폭넓은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무위원 인사청문회를 받아들인 까닭문재인 정부 첫 내각 출범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이 잇따라 제기돼 야당이 부적격자로 분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으로 하여금 첫 조각에 애를 먹게 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제도는 역설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 측 요구를 수용하면서 전격 실시됐다. 유인태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은 당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국회 인준이 필요한 헌법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제도는 김대중 대통령 재임 때인 2000년 처음 도입됐다.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것은 그로부터 5년 뒤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하자고 요구했다. 헌법에도 규정이 없는 그 같은 요구는 뜬금없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노 대통령에게 야당 측 요구를 전달했더니 대뜸 ‘받읍시다’고 하더라. ‘공무원은 다들 장관 하고 싶어 하는데 장관 인사청문회제도를 도입하면 공무원의 몸가짐이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해서 2005년부터 국무위원 인사청문회제도가 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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