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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자연주의 캠핑

꽃보다 눈부신 ‘눈꽃세상’

백두대간 선자령 트레킹과 스노캠핑 환상…두고두고 남을 설경에 한겨울 느낌표

꽃보다 눈부신 ‘눈꽃세상’

꽃보다 눈부신 ‘눈꽃세상’

옛 대관령휴게소와 대관령 국사성황당 사이 왕복 2차선 아스팔트도로가 근사한 눈길로 탈바꿈했다.

2018년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강원 평창은 ‘겨울왕국’이다. 겨울 내내 눈부시게 아름다운 은세계를 이룬다. 평균 해발고도가 700m에 달하는 데다 백두대간에 가로막힌 눈구름이 무시로 큰 눈을 뿌려대는 덕택이다. 특히 대관령면은 눈 많은 평창군에서도 적설량이 으뜸이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눈길이고, 눈길 닿는 데마다 그림 같은 설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2월 초 큰 눈으로 영동 지역이 피해를 입어 안타깝긴 하지만 레저와 스포츠 차원에서 생각하면 축복받은 지역인 것이다.

눈을 보려고 모여든 사람들

올겨울 눈이 가장 많이 내린 날 눈꽃 트레킹을 겸한 스노캠핑을 하려고 선자령(1157m)을 찾았다. 대관령과 영동 지역 일대에는 이미 나흘째 대설경보가 발효 중이었다. 휴일 아침인데도 강릉 방면 영동고속도로는 의외로 한산했다. 버스는 동서울종합터미널을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대관령면 횡계리에 도착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대관령휴게소로 향했다. 하지만 옛 대관령휴게소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서 택시는 더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휴게소 근처 도로는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관광버스와 자가용으로 이미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며칠째 발효 중인 대설경보가 사람들 발길을 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다운 눈을 갈망하던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백두대간 산등성이에 위치한 선자령은 대관령 정상에서 직선거리로 4.2km, 능선길로는 5km쯤 떨어졌다. 두루뭉술한 산봉우리 몇 개와 구릉처럼 완만한 능선길이 대관령과 선자령을 이어준다. 두 곳 사이 표고 차는 325m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관령과 선자령을 오가는 일은 등산이 아니라 트레킹이다. 눈 많은 겨울철에도 악천후에 대비한 장비와 복장만 제대로 갖추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섭렵할 수 있는 트레킹코스다.

꽃보다 눈부신 ‘눈꽃세상’

잠시 구름이 걷히자 맞은편 산등성이 위에 있는 풍력발전기가 위용을 드러냈다(왼쪽). 1m 넘게 쌓인 눈을 헤치고 선자령 정상에 올라선 트레커들.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원래는 백두대간 능선길 하나뿐이었으나 네댓 해 전쯤 산림청에서 계곡코스를 개설했다. 능선길은 조망이 상쾌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지만, 전체적인 풍광은 단조로운 편이다. 반면 잣나무, 낙엽송, 물푸레나무, 참나무, 전나무, 속새, 조릿대 등이 번갈아 군락을 이루는 계곡코스는 다양한 풍경과 정취를 자랑한다. 그러나 능선길처럼 상쾌한 조망이나 웅장한 멋은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선자령 눈꽃 트레킹은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을 달리해 두 코스를 모두 섭렵하는 것이 최적의 조합이다. 대관령에서 선자령 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이 순환 트레킹코스의 총길이는 10.8km. 평소 4~5시간쯤 소요되지만, 적설기에는 그보다 2시간 정도 더 걸린다고 예상해야 한다.

선자령 트레킹 출발지인 옛 대관령휴게소에서부터 기나긴 행렬이 시작됐다. 사람들의 숱한 발길로 다져진 눈길은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며 간신히 비껴갈 정도로 비좁았다. 다져진 길바닥만 벗어나면 눈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25kg이 넘는 배낭보다 끊임없는 사람 행렬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며칠 동안 이어진 폭설이 만들어낸 설경은 이 길에 올라선 사람의 마음을 시종 달뜨게 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희색이 만면했다. 비좁은 길에서 비닐봉지로 눈썰매를 타거나 눈싸움하는 철부지 어른도 이따금씩 눈에 띄었다.

눈은 온종일 쉬지 않고 내렸다. 다행히 눈발과 바람이 순해 걷기는 수월했다. 하지만 시야는 내내 답답했다. 백두대간 산등성이가 온통 구름으로 뒤덮인 탓에 가시거리는 100~200m에 불과했다. 선자령 일대에 늘어선 거대한 풍력발전기 수십 기조차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꽃보다 눈부신 ‘눈꽃세상’

선자령 정상 근처 눈밭에 구축한 캠핑사이트. 다행히도 바람이 거세지 않아 편안한 밤을 보냈다.

눈 속에서 보낸 아늑한 하룻밤

옛 대관령휴게소를 출발한 지 3시간 20분 만에 선자령 정상에 도착했다. 짙은 안개 속으로 대형 표지석만 우뚝했다. 날이 어두워지기까지 3시간쯤 남았지만, 여유 있게 텐트를 설치하기로 동료들과 의견을 모았다. 정상 주변 산등성이에는 이미 전날 밤 캠핑사이트로 활용했던 자리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1m 이상 쌓인 눈을 깊게 파고 만든 자리라 아늑하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듯했다. 선자령에서의 겨울밤은 의외로 아늑했다. 밤새도록 내린 눈이 무겁지 않은 마른눈인 데다 바람까지 잔잔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다가 두어 번쯤 일어나 텐트 위와 주변에 수북이 쌓인 눈을 치워야 했다.

대설경보가 닷새째 발효 중이던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텐트가 반쯤 눈에 묻혀 있었다. 서둘러 눈을 치운 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쳤다. 눈발은 전날보다 더 커졌고, 어제 지나온 길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들이 선자령 정상에 올라올 때까지 하산하지 말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오쯤 되자 폭설 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는 어느 산악회 회원들이 하나 둘씩 선자령 정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산에서 만난 단체 등산객이 이처럼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그들이 눈길을 잘 닦아놓은 덕에 폭설 속 선자령 ‘스노캠핑’을 안전하고 유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선자령을 오가는 길에 대관령 국사성황당에도 일부러 들러볼 만하다. 한겨울 국사성황당 주변은 칼날처럼 섬뜩한 적막감이 느껴진다. 뚝 끊긴 무악(巫樂) 대신 산새들의 지저귐과 눈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너무 번듯해 별로 연륜이 느껴지지 않던 국사성황당과 산신당 건물조차 두텁게 쌓인 눈 덕에 예스러운 멋과 범치 못할 신령스러움이 묻어난다. 더구나 오랜 세월 국사성황당과 산신당을 호위해온 고목들의 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은 춘삼월 봄꽃보다 더 화사하고 눈부시다.

선자령 트레킹의 출발지인 옛 대관령휴게소(상행선) 뒤편에는 대관령양떼목장(033-335-1966)이 있다. 드넓은 초원에서 양 수십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초원이 설원으로 탈바꿈하는 겨울철에는 방목된 양떼를 구경할 수 없다. 그 대신 축사와 작은 마당에 모여 있는 양들에게 건초를 주는 체험은 가능하다. 목장 주변 낙엽송숲에 핀 눈꽃도 눈부시게 아름답다.

오대산 월정사 빼놓지 말 것

꽃보다 눈부신 ‘눈꽃세상’

겨울철 횡계리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황태덕장.

대관령이 있는 횡계리 일대에는 황태덕장이 즐비하다. 명태 수천, 수만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린 황태덕장 풍경은 겨울철 스산함과 매서운 추위를 잊게 만들 정도로 서정적이다. 혹한과 눈보라 속에서 얼고 녹기를 되풀이한 명태는 맛있고 때깔 좋은 황태로 거듭난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설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오대산(국립공원관리소 033-332-6417)도 들러봄직하다. 명산 오대산의 설경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담백하면서도 수려하다. 특히 눈 내린 날 월정사 전나무숲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한 전나무 가지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축 늘어지고, 바람이 가지를 흔들 때마다 안개 같은 눈보라가 흩날리면서 숲의 정적을 깨우곤 한다. 눈길로 바뀐 전나무숲을 지나 월정사 경내에 들어서면 눈에 묻혀 인적조차 드문 산사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말없이 걷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풍경이 연이어 눈앞에 나타난다.

여행정보

● 선자령 트레킹과 캠핑 즐기기


선자령 트레킹코스가 이미 ‘국민 트레킹코스’로 자리 잡았어도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설량이 많은 2월 1일~3월 2일을 제외한 봄철 산불조심기간(2월 1일~5월 15일)에는 원칙적으로 출입이 통제된다. 문의 평창국유림관리소(033-330-4010).

적설기 트레킹에는 아이젠, 스패츠, 등산 스틱, 방한모, 방한장갑, 윈드재킷, 다운재킷, 칼로리 높은 행동식(초콜릿, 양갱, 도넛 등), 뜨거운 물 등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 트레킹 소요시간도 평소보다 1.5배 이상 여유 있게 잡는 것이 안전하다.

산불조심기간이 아니면 선자령 일대에서 캠핑할 수 있다. 바람이 거센 날에는 절대로 산등성이에 텐트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 산등성이 서쪽 비탈과 임도에 바람을 피하기 좋은 평지가 많다. 눈이 계속 내릴 때는 텐트에 쌓인 눈을 수시로 털어야 한다. 특히 무거운 습설을 그대로 방치하면 폴대가 부러지거나 텐트가 찢어질 수 있다. 눈삽과 핫팩은 ‘스노캠핑’에서 필수 아이템이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휴대전화 배터리도 여유 있게 준비한다.

● 숙식

꽃보다 눈부신 ‘눈꽃세상’

황태회관의 황태찜과 황태구이.

대관령 아래 옛 영동고속도로(지방도 제456호선) 주변에는 대관령800마을(033-332-1010), 대관령옛길펜션(033-336-3622), 구름위의테라스(033-333-7733), 용평레포빌(033-332-1010) 같은 펜션이 즐비하다.

황태 본고장인 횡계리에는 황태회관(033-335-5795), 황태덕장(033-335-5942) 등 황태요리 전문점이 많다. 횡계리의 또 다른 별미인 오삼(오징어+삼겹살)불고기는 납작식당(033-335-5477)이 맛있고, 남경식당(033-335-5891)은 꿩만둣국을 잘한다. 평창한우마을 대관령점(033-335-5942)에서는 육즙이 풍부하고 육질이 부드러운 대관령한우를 비교적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 그 밖에 횡계리에서 월정사로 가는 도중에 지나는 대관령면 유천리의 유천막국수(033-332-6423)는 꿩만둣국, 돼지편육, 막국수를 잘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횡계IC→옛 영동고속도로(지방도 제456호선)→옛 대관령휴게소(상행·무료 주차 가능)

주간동아 2014.02.24 926호 (p62~64)

  • 양영훈 여행작가 travelmak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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