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5

2013.12.02

후원협약 후 유엔 NGO 사칭 봉사활동 실적도 가로채

UN스포츠닥터스, 구생회·IEMSC와 업무협약 체결 후 주객전도 활동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3-12-02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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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영 UN스포츠닥터스 이사장(한국마이팜제약 회장)이 유엔에 정식 등록된 국내 비정부기구(NGO)에 접근해 후원협약을 맺었지만, 정작 자신의 단체를 유엔 등록 NGO라고 사칭해 협약 파기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 단체의 의료봉사 자료를 UN스포츠닥터스가 한 것처럼 홈페이지에 게재해 최근 ‘허위 홍보활동 금지 및 사진 동영상 삭제 최고’ 내용증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생회’에 따르면, 허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구생회 후원회를 만들어 구생회의 순수 의료봉사 정신을 널리 알리겠다”며 구생회와 후원협약을 체결했다. 구생회는 유엔사무국의 경제사회국(DESA) 소속 NGO이면서 해외 활동을 하는 의료봉사 단체 중 모범 단체로 꼽힌다. 후원협약서에는 의약품 후원과 봉사활동 지원 같은 후원 방법을 명시했고, 이를 위해 스포츠닥터스를 설립해 구생회의 의료봉사 정신을 널리 전파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허 이사장은 후원협약서와 달리 협약 직후부터 자신이 만든 단체인 스포츠닥터스가 DESA 소속 NGO라고 소개하며 홍보 및 모금 활동을 했고, 지난해 12월 스포츠닥터스 후원의 밤 행사에서도 ‘UN 메디컬서비스 NGO, 허준영 스포츠닥터스 이사장’ 명의의 초청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또한 구생회가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서울 신당동 의료봉사활동을 스포츠닥터스가 한 것처럼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은 당시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마치 자신들이 한 것처럼 소개

    ‘유엔 메디컬서비스 NGO 스포츠닥터스(회장 허준영)는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한국마이팜제약은 구충제와 태반영양제 이라쎈 등 6000만 원 상당을 지원했다. (중략) 2012년 11월 16일 허준영(한국마이팜제약 회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된 스포츠닥터스는 UN DESA 소속이다.’



    이에 대해 구생회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후원협약을 하자마자 유엔에 정식 등록된 NGO라고 사칭했다. 송년의 밤 후원행사에서도 마치 유엔 등록 NGO인 것처럼 소개했고, 신당동 의료봉사활동 역시 스포츠닥터스가 주도하고 장상근 전 건국대병원장과 의료팀이 참여했다는 식으로 호도했다. 장 전 병원장은 1999년 구생회 설립을 주도한 분이고, 실질적으로 신당동 의료봉사활동의 주체다. 허 이사장은 그날 의료봉사활동 자리에 잠시 와서 사진만 찍었고. 그래서 내용증명을 보내 후원협약을 파기한 거다. 주객이 전도됐다.”

    후원협약 후 유엔 NGO 사칭 봉사활동 실적도 가로채

    구생회와 IEMSC가 허준영 스포츠닥터스 이사장에게 보낸 내용증명.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스포츠닥터스는 2012년 9월 공식 출범한 걸로 돼 있다. 그러나 허 이사장은 구생회와 후원협약을 맺자 “유엔사무국의 경제사회국 소속 메디컬서비스 NGO 회장으로 선임됐다”며 다음과 같이 인터뷰한다.

    “UN스포츠닥터스는 1999년 최초 설립돼 그동안 국내는 물론 몽골 울란바토르, 카자흐스탄, 이라크 바그다드, 인도 뉴델리, 티베트 등 의료 혜택 불모지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중략) UN스포츠닥터스는 유엔사무국의 경제사회국 소속 메디컬서비스 NGO입니다. 이는 공신력 있는 단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구생회의 활동을 스포츠닥터스 활동으로 둔갑시킨 것. 1999년 설립해 다양한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는 구생회다. 따라서 1월 3일 구생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내용증명을 보내 후원협약을 파기한다. 다음은 내용증명 일부다.

    ‘스포츠닥터스가 마치 유엔사무국의 경제사회국 소속 NGO인 것처럼, 또는 구생회가 스포츠닥터스 산하 단체인 것처럼 허위 표기해 후원의 밤을 개최하는 등 불특정 다수 후원자로부터 다액의 후원금을 수령하고 이를 편취하는 행위를 했다. 이는 후원협약 취지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범법행위다. 스포츠닥터스가 마치 유엔사무국의 경제사회국 소속 NGO인 것처럼 불특정 다수를 기망해 많은 후원금을 수령하고 이를 편취한 범법 사실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예정에 있다.’

    이에 대해 허 이사장은 11월 5일 ‘주간동아’와의 인터뷰에서 “DESA 소속이라고 말한 적 없다”고 발뺌했지만, 기자가 인터뷰 기사를 내보이자 “구생회와 후원협약을 해서 함께 일했지만 이 단체가 기독교를 추구해 맞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후원협약 후 유엔 NGO 사칭 봉사활동 실적도 가로채

    허준영 이사장이 구생회와 후원협약 후 보낸 송년의 밤 행사 후원 초청 문자메시지. 후원단체 스포츠닥터스가 유엔사무국 소속 NGO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인숙 구생회 대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후원단체는 후원단체일 뿐 유엔 등록 NGO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모금활동을 하고, 우리 단체의 봉사활동 실적을 자신이 한 것처럼 하는 게 말이 되나. 우리 단체는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인이 함께 활동한다. 지금도 스포츠닥터스 홈페이지에 있는 상당수 봉사활동 사진과 동영상이 우리의 것이다. 우리를 돕겠다기에 사진을 줬더니 자신의 활약상으로 바꿔놓았다. 사진을 삭제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흥미로운 것은 허 이사장은 올해 초 구생회와 후원협약이 파기되자 며칠 뒤 유엔사무국의 공보국(DPI) 소속 NGO인 IEMSC(국제환경의료봉사단)와 비슷한 후원협약을 맺었다는 점이다. 구생회 때 그랬듯이, 후원협약 직후인 1월 24일 곧바로 스포츠닥터스가 ‘UN DPI NGO’라는 정관을 만든다. 후원협약 해지 전까지 유엔 DESA 소속이라던 스포츠닥터스가 DPI 소속으로 바뀐 것. 단순 후원협약 단체가 다시 유엔 등록 NGO가 됐고, 여러 인터뷰에서도 스포츠닥터스를 ‘UN DPI NGO’라고 소개했다.

    홈페이지서 유엔 엠블러·로고 지워

    그러나 홍종욱 IEMSC 단장 역시 ‘협약 미이행’을 이유로 3월 19일 협약 파기 내용증명을 허 이사장에게 보냈다. 후원협약을 맺은 직후 유엔 등록 NGO라고 사칭한 점과 협약 파기 내용증명을 보낸 것은 구생회와 똑같다. 다음은 IEMSC가 허 이사장에게 보낸 내용증명 요약.

    ‘해외 활동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한다고 해놓고 단돈 1원도 후원한 바 없다. 후원금을 받아 기부한다고 하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렇다면 협약 당시 미리 말을 했어야 한다. ‘UN DPI NGO IEMSC 협찬 스포츠닥터스’라 쓰라고 미리 알려줬지만, 선량한 시민에게 유엔 조직으로 혼돈케 하는 ‘UN스포츠닥터스’라고 기술한 의도가 무엇인가. 우리 봉사단을 빙자해 유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무단 사용해 혹세무민하는 결과가 나오면 민형사상 책임을 귀하가 지게 될 것이다.’

    이 내용증명은 ‘스포츠닥터스는 2003년 IEMSC로 유엔에 등록된 NGO’라는 스포츠닥터스 주장과도 배치된다. 홍종욱 단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혈압이 180이고 치매가 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허 이사장은 “IEMSC 이사회를 열고 한 달 반 전 내가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그래서 UN스포츠닥터스와 통합작업을 하고 있고, 유엔에 이름 변경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고 해도 단순 후원협약을 한 뒤 유엔 등록 NGO라고 사칭하고, 단체 통합 이전부터 유엔 등록 NGO라고 소개한 셈이 된다.

    이와 관련해 유엔은 최근 UN스포츠닥터스에 대해 “유엔 로고와 이름을 삭제하고, 홈페이지 URL에서도 유엔을 빼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스포츠닥터스는 홈페이지 홍보사진 가운데 유엔 등록 단체인 것처럼 내걸었던 유엔 엠블럼과 로고를 모두 지웠다. 정식 명칭 역시 UN SPORTS DOCTORS에서 UN DPI NGO IEMSC를 명기하고 밑에 SPORTS DOCTORS를 써넣었다.

    한편 허 이사장은 ‘주간동아’ 912호 ‘UN스포츠닥터스 이럴 수가’라는 제목의 보도와 관련해 11월 15일 ‘주간동아’ 기자와 편집장, 출판편집인을 상대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다.

    ‘주간동아’ 912호 기사는 지난해부터 국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국내 봉사단체 스타’로 떠오른 UN스포츠닥터스가 지난해부터 유엔사무국의 DESA 소속 NGO, 유엔사무국의 DPI 소속 NGO라고 사칭하며 유엔 명칭과 로고를 무단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사무국의 DPI 관계자는 ‘주간동아’의 질문에 대해 “2003년 DPI에 IEMSC가 등록됐는데, 최근 이 단체가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UN스포츠닥터스로 이름을 바꾼 것을 발견해 단체명에 유엔이란 이름과 로고를 쓰면 안 된다고 두 차례 통지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경고를 따르지 않아 이 사건을 법무국에 넘겼다. 이 단체는 DESA와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고 알려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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