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3

2013.11.18

“정부 힘 빼고 시장 주도로 개혁”

중국 3중전회 폐막서 자원 배분 역설…사회 모순 해결 지방 사법권 환수

  • 고기정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

    입력2013-11-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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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힘 빼고 시장 주도로 개혁”

    11월 12일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 참석한 중국 지도부가 폐막 직전 손을 들어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장가오리 상무부총리, 류윈산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장,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국무원 총리, 위정성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왼쪽부터).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11월 12일 폐막했다. 3중전회는 대외적으로 당을 대표하는 중앙위원(205명, 후보위원 171명은 별도)이 임기 5년간 개최하는 약 7차례의 회의 가운데 3번째를 뜻한다.

    1·2중전회가 당내 기구와 인사를 확정한다면 3중전회에서는 집권 플랜을 제시한다. 중국의 현재를 규정하는 개혁·개방 노선도 덩샤오핑(鄧小平) 집권기인 1978년 제11기 3중전회에서 결정됐다. 이번 3중전회도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향후 10년을 관통하는 국정 로드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세계 주목을 끌었다.

    59차례 언급된 ‘개혁’

    3중전회에서의 논의 내용은 회의에서 통과된 ‘전면적 개혁 심화에 관한 약간의 중대한 문제에 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정’(‘결정’)이라는 문건에 들어 있다. 관례상 폐막 후 일주일쯤 뒤 공개된다. 그에 앞서 11월 12일 오후 발표한 5000여 자 분량의 공보(公報)는 회의 진행 경과를 포함해 ‘결정’의 개략적 내용을 담고 있다.

    공보에 따르면 이번 회의 주제는 ‘시장화를 통한 개혁 심화’다. 개혁은 제11기 3중전회 때부터 제시된 구태의연한 명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개혁·개방 35년간 쌓인 환부를 도려내되 성장 기조를 유지해야 하며, 이를 통해 ‘선거로 뽑히지 않은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개혁이라는 단어가 제11기부터 제17기 3중전회까지 7번 발간된 공보에서 총 116차례 나온 반면, 이번 공보에서는 그 절반에 해당하는 59차례나 언급됐다. 이는 현 정권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왕위카이(汪玉凱) 국가행정학원 교수는 “사회모순 격화 등으로 쾌속 성장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인 발전 방식은 끝났다. 현재 개혁은 전환점에 섰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시진핑 정권이 추구하는 개혁의 실체는 뭘까. 공보는 이를 ‘정부와 시장의 관계 재정립 및 자원 배분에서 시장이 결정적 구실을 하게 한다’라고 요약했다. 정부 힘을 빼고 시장 역량을 키운다는 것이다. 정부 중에서도 특히 지방정부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 지방정부 주도의 투자가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모델을 폐기하고 민간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힘 빼고 시장 주도로 개혁”
    투자 위주형 성장모형은 주택 등 부동산 버블을 키우고, 정부가 투자 집행과 관리에 직접 관여함에 따라 효율성 저하는 물론, 부패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과도한 투자는 많은 부채와 함께 금융자원의 정부 독점 현상으로 이어져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지방채무 부실과 그림자금융 등의 문제를 촉발했다.

    이번 공보에 담긴 △독립적인 재판권 및 검찰권 확보 △사회주의 특징인 공유제와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소유제 경제를 발전 △정부 기능의 전환 가속 △재정·조세 체제 개혁도 사실상 이 같은 맥락에서 논의된 내용이다. 지방정부가 예산과 인사를 통해 장악한 사법권을 중앙으로 환수하고, 정부 독점 영역에 대한 민간의 진출을 확대하며, 정부 기능을 ‘만능형’에서 ‘서비스형’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간정방권’(簡政放勸·정부 조직을 간소화하고 권한을 아래로 이양)을 거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3중전회가 제시한 로드맵의 기한은 2020년이다. 2020년은 중국이 목표로 하는 전면적 소강(小康·여유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수준)사회 달성의 원년이다. 1인당 소득(국내총생산 기준)을 2010년(4433달러·약 475만 원)의 2배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국가 시스템과 각종 규범 및 제도를 현대화한다는 게 이번 회의의 ‘총 목표’이다.

    문제는 개혁 의제를 걸머지고 나아갈 실행 주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전면적 개혁 심화를 위한 영도소조(領導小組)’(개혁영도소조)라는 신설기구에서 답을 찾으려는 모습이다. 중국은 외교, 안보 등 주요 현안마다 당과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가 조원으로 참여하는 영도소조를 운영한다. 주요 정책을 커튼 뒤에서 조율하는 실질적인 최고위급 기구다. 이번에 신설하는 개혁영도소조는 개혁 플랜 작성은 물론, 감독 구실까지 맡는다. 개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뜻이다.

    이는 개혁·개방 1세대인 덩샤오핑의 한계에서 습득한 반면교사의 성격이 짙다. 덩샤오핑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 것으로 묘사되지만 집권 기간 내내 천윈(陳雲) 부총리 등 보수파의 반대에 부딪쳤다. 일각에서는 당시 권력 지형을 덩샤오핑과 천윈이 맞서는 ‘쌍봉정치(雙峰政治)’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대국굴기 앞세운 시진핑의 권력 집중

    “정부 힘 빼고 시장 주도로 개혁”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려고 전용기에서 내리며 손을 흔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 주석은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별도 기구를 두고 개혁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개혁영도소조를 실무적으로 이끌 부조장은 한정(韓正) 상하이(上海)시 서기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서기는 중국공산당 내 양대 계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파와 상하이방(상하이 관료 출신 그룹)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인물이다. 더욱이 중국이 9월 말 경제체제 전환을 위해 선보인 ‘상하이자유무역시험구’를 책임지고 있어 ‘개혁·개방 2.0’ 시대를 이끌 적임자로 꼽힌다.

    이번 회의에서 주목을 끈 대목 가운데 하나는 ‘국가안전위원회’(국가안전위) 신설이다. 국가안보체제와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하는 기구로, 미국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의 중국식 버전이다.

    국가안전위는 소수민족 문제를 포함해 소득 격차 등으로 갈수록 격화하는 사회 내부의 불안정 요인을 통제하려고 설치됐다. 비서장으로 푸정화(傅政華) 공안부 부부장 겸 베이징 공안국 국장이 거론되는 것은 체제 안정에 방점을 뒀음을 보여준다. 국가안전위는 또한 대외적으로 외교와 안보를 담당한다는 점에서 내치와 외치를 모두 포괄하는 거대 기구가 될 개연성이 높다.

    “정부 힘 빼고 시장 주도로 개혁”
    국가안전위는 당초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1997년 미국 방문 때 NSC를 본 뒤 제안한 개념이다. 공안과 무장경찰, 사법기관, 국가안전부, 외교부 등을 총괄하는 조직 창설이 거론됐다. 하지만 당시엔 장 주석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쏠린다는 반발이 나오면서 무산됐다.

    이번에 신설이 결정된 것은 명목상으로는 중국 사회 내부의 동요와 미국, 일본 등과의 주도권 경쟁이라는 나라 안팎 정세 변화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책임 있는 대국’이라는 중국의 외교 노선과도 일정 부분 부합한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11월 13일 “국가안전위 설치는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인도 등에 이미 설치된 대국의 표상”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안보 개념이 과거 외교, 국방, 군사 영역에서 현재는 경제, 금융, 에너지, 과학기술, 정보화, 문화, 사회 등 전 방위로 확산되기 때문에 제반 영역을 종합적으로 다룰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이 같은 명분 외에 국가 권력 장악 수위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실리도 챙겼다.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석이라 하더라도 공안 등 개별 영역에서의 발언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안전위를 시 주석이 직접 이끌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치 평론가 천쯔밍(陳子明)은 “시 주석이 개혁영도소조와 국가안전위의 수장(首長)을 모두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정치 개혁 없는 경제 개혁

    이번 3중전회의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정치 개혁 유무였다. 시 주석은 집권 이후 조직과 개인은 모두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헌법 위에 군림하는 중국공산당도 법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중국은 국가 위에 당이 군림하는 당·국가 체제다. 시 주석은 권력을 제도의 새장 속에 가둬야 한다고도 했다. 따라서 가시적인 권력구조 개편이 추진될 개연성이 일부 제기됐다.

    하지만 공보만 놓고 보면 정치 개혁을 향한 의지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권력의 쌈짓돈 구실을 하면서 정치는 물론, 경제 개혁의 발목을 쥔 국유기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유기업을 활용해 현대적 기업 제도를 완비하고 비(非)공유제 경제의 건강한 발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비공유제 경제는 사적 소유를 기초로 한 경제 시스템을 일컫는다. 개혁·개방을 심화하더라도 국유기업을 근간으로 한 경제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서방 시각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사실 이런 결과는 시 주석이 ‘정좌경우(政左經右·정치는 좌파, 경제는 우파)’적 성향을 보이는 데서도 감지됐다. 시 주석 집권 후 중국은 유언비어 단속을 빌미로 인터넷 여론을 억압하고, 마오쩌둥(毛澤東)식 대중노선 강화를 추진 중이다. 현 정치체제를 인정하고 공고히 하는 선에서 시장경제를 심화하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권력을 분산하지 않으면 기득권층이 정치와 경제 모두를 장악하거나 정치와 경제가 심각하게 유착돼 시장을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정치 개혁 없는 경제 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힘 빼고 시장 주도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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