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1

2013.06.10

중국에 견제구 팍팍 날리고 싶다마는…

G2 美·中 정상회담 개최…미국인들 경제강국 중국 껴안기 떨떠름

  •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특파원 kyle@donga.com

    입력2013-06-10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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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 후 처음으로 남북아메리카 순방에 나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6월 7, 8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5월 31일부터 트리니다드 토바고,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 중남미 3개국을 순방했다.

    시 주석은 6월 5일 멕시코 상원 연설을 통해 “개발과 성장을 거듭하는 중남미는 현재 새로운 황금시대에 들어섰다”면서 “이는 중국은 물론 세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전날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멕시코와 중국의 포괄적 전략협력 관계 구축에 합의했다.

    ‘국가자본주의’로 지배권 확대

    시 주석은 중남미 국가들에 세계경제의 ‘큰손’인 중국의 위상을 마음껏 뽐냈다. 중·멕시코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멕시코 국영석유회사에 차관 10억 달러를 제공하고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멕시코산 제품 수입을 10억 달러 이상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6월 2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에선 카리브해 지역 8개국 최고지도자를 각각 만나 에너지·통상 투자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에는 차관 3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중국의 코스타리카 원조는 2006~2012년 1억59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미국 6970만 달러, 스페인의 8400만 달러를 합친 것보다 많다고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전했다.



    주요 2개국(G2)인 중국의 국가 최고수반이 첫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뒷마당이라 할 수 있는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나선 것은 미국과 경쟁하는 모양새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NYT)’는 6월 2일자 ‘일요 리뷰’ 섹션 톱기사로 ‘중국의 경제 제국’이라는 대형 오피니언을 배치했다.

    ‘중국의 조용한 군단’의 공동 저자인 에리베르토 아라우소와 후안 파블로 카르데날이 쓴 공동기고문의 주장은 분명하다. ‘중국이 국가자본주의를 무기로 세계경제에 지배권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하고 떠오르는 중국, 유럽과 아메리카의 경제 정체가 결합하면서 서방 세계가 점점 더 불편해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지만 상업적으로는 점점 더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기업을 사들이고 천연자원을 싹쓸이하고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하고 전 세계에 돈을 빌려주면서 중국은 부드럽지만 멈출 수 없는 형태의 경제적 지배를 추구한다.”

    필자들이 말하는 ‘국가자본주의’는 한국도 군사독재 시절 이미 경험한, 그다지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공산당 독재, 정치적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개인과 조직의 자본을 통제하는 중국 정부는 저리로, 혹은 강제로 국내 자본을 흡수해 이를 정부와 국영기업 이름으로 세계경제에 큰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섹션의 6면과 7면으로 이어지는 기사의 나머지는 세계 곳곳에 ‘돈질’을 해대는 ‘큰손 중국’의 사례들이다. 중국이 그린란드와 북극 지역 개발에 합의한 사례는 인상적이다. 그린란드가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의 수입을 허용한다’는 입법을 하게 된 것은 오로지 유일한 투자자인 중국을 끌어들이려는 유인책이었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은 다른 어떤 국가와 기업도 감당할 수 없는 극지개발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책임지고, 국영은행은 돈을 대고, 석유공사는 탐사하고, 중국 철도는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을 까는 식이다. 필자들은 “오로지 중국만이 극지개발에 필요한 돈과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 경험과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다”고 선언한다.

    결론은 다분히 조심스럽고 부정적이다. 필자들은 “중국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감안할 때 경제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제사회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위험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국은 경제적 지렛대를 바탕으로 정치적 억압과 인권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피해가고, 때로는 서방 기준으로 보면 문제가 많은 국가에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필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을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한다. 하지만 ‘일요 리뷰’ 섹션 6, 7면의 바로 하단에 게재된 이언 브레머 미국 유라시아그룹 회장과 존 헌츠먼 전 주중대사가 쓴 또 다른 공동기고문 ‘중국과 어떻게 잘 지낼 것인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미국이 중국을 이해하고, 양보할 부분은 양보하면서 갈등보다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라앉는 미국의 슬픈 현실

    필자들은 “중국은 새로운 룰을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의 룰을 만들 준비가 된 나라”라며 “반면 미국은 중국이 하기 싫은 일을 강제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측은 서로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면서 중국이 당장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로 선진국 수준의 이산화탄소 감축이나 일본과의 해상 영토분쟁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은 특히 결론 부분에서 “좋든 싫든 미·중 양국은 상호확증경제파괴(Mutually Assured Economic Destruction·MAED)의 형태로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냉전 시절 핵무기 개발 경쟁을 한 미국과 소련은 어느 한쪽이든 핵무기 공격을 하면 함께 공멸하는 상호확증파괴(MAD)와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관계로 ‘더러운 평화’를 유지했다. 이에 빗댄 MAED 개념은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가 깊은 미·중 어느 한쪽도 일방적으로 상대와의 경제 관계를 단절할 수 없기 때문에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또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또 다른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WP)’도 같은 날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의 칼럼 ‘미국과 중국의 시험’을 통해 “2005년 하버드대 조셉 나이 교수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었고 현명한 정책과 협상으로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면서 미·중 양국의 대화와 협력을 당부했다. 칼럼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식 자본주의에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식 모델에 근거한 더 많은 시장경제를 원한다”고 중국 측을 두둔하기도 했다.

    중국이 경제적 슈퍼파워로 떠오르는 현실에서 출발해 ‘대중 견제론’과 ‘대중 협력론’이라는 서로 다른 듯한 결론에 이른 NYT의 두 공동기고문은 ‘떠오르는’ 중국을 목도하는 ‘가라앉는’ 미국의 고민을 반영한다. 하지만 두 기고문이 완전히 다른 방향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국가자본주의’라는 편법으로 세계경제를 싹쓸이하는 중국, 그런 중국을 어찌하지 못하고 껴안아야만 하는 미국의 슬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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