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4

2013.04.22

‘북핵 골칫거리’ 해법 제각각

한미 엇박자, 미·중 신경전, 미·일 공동보조

  • 박형준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lovesong@donga.com

    입력2013-04-22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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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핵 골칫거리’ 해법 제각각

    박근혜 대통령이 4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으로부터 미국 측 관계자를 소개받고 있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2012년 12월 12일), 핵실험 예고 성명 발표(2012년 12월 23일), 3차 핵실험(2013년 2월 12일), 중거리 탄도미사일 동해안 이동 배치(2013년 4월 초)….

    북한의 폭주가 다시 시작됐다. 항상 반복되던 북한 위협이지만 이번엔 심상치 않다. 먼저 위협 기간. 지난해 말 시작된 도발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위협 강도도 높다.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언제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본과 미국에 대한 핵무기 공격까지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북한 위협에 대해 조용한 대응으로 일관해오던 미국도 발끈했다. 3월 중순 한미 연합군사연습을 실시하면서 최신예 무기인 B-52 전략폭격기와 B-2 스텔스 폭격기 투입 계획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의도적으로 북한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실제 연습에서도 최첨단 무기를 총동원했다.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한 F-22 전투기는 기지에서 발진한 지 20분 만에 평양에 도달할 수 있다.

    미국 ‘선 변화, 후 대화’ 일관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 ‘강(强) 대 강(强)’ 대결 속에서도 물밑에선 외교적 움직임이 있었다.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이 2월 취임한 이후 처음 아시아를 찾았다. 4월 12~15일 한국, 중국, 일본을 순서대로 방문하며 북한 해법을 모색했다. 북한발(發) 위기로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4월 11일 오후 4시 정부서울청사.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 정상화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날 국회 국방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의 만찬에서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남북 간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던 가운데 한국 정부가 먼저 대화 카드를 내민 것이다.

    하루 뒤 케리 장관은 한국에 도착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만났다. 그 후 기자회견에서 케리 장관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밝힌)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중국으로 가져가서 논의하겠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양국 궁합이 착 맞아떨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케리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비핵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우리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선택은 김정은에게 달렸다”고 말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 대화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한국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선(先) 변화, 후(後) 대화’는 미국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대북(對北) 기본자세다.

    케리 장관은 핵심 동맹국인 한국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비록 차이가 있지만 한국 정부의 대북 대화 제의를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주권이나 독립적 선택, 의견을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하는 대북 정책 구상은 2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큰 뼈대이기도 하다. 오바마 행정부는 “향후 한국의 대북 정책을 중심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짜겠다”는 뜻을 여러 외교 경로로 박근혜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또 “남한을 배제한 북·미 양자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4월 13일 중국으로 넘어간 케리 장관은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왕이 외교부장 등 중국 지도부를 두루 만났다.

    시진핑 한반도 문제 직접 언급 안 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을 만난 케리 장관은 “지금은 도전적인 문제에 직면한 절박한 때”라며 한반도와 이란, 시리아 등 중동 사태 등을 차례로 언급했다. 방중 목적의 최우선 순위가 한반도 문제임을 강조하면서 중국에 대북 압력 행사도 요청했다. 북한이 가장 의지하는 국가가 중국임을 감안할 경우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중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케리 장관은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양보안으로 “북한 도발 대응책으로 괌 등 아시아 지역에 배치했던 미사일방어체제(MD)를 축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매년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중국 처지에서 보면 미국의 MD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다.

    하지만 시 주석의 답은 두루뭉술했다. 시 주석은 한반도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 “평등하면서 상호 신뢰하고 포용적이면서 서로를 본보기로 삼아 합작 공영하는 새로운 대국 관계의 길을 가자”고 밝혔다. 중국 언론도 케리 장관과 시 주석의 회담을 보도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후순위로 보도했다. 양국의 기세 싸움이 느껴진다.

    중국은 지난해 말 새 지도자가 등장했고, 미국 역시 올해 1월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시작됐다. 양국은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 서로 조심하고 있다. 1월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보고서(‘동아시아의 해상 영토분쟁 : 의회를 위한 이슈’)를 내고 미국의 가장 큰 국가이익은 “중국과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그러면서도 양국은 사사건건 기세 싸움을 벌인다. 이 때문에 미·중 회담은 북한을 대화 장(場)으로 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내놓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이 대북 압력 수위를 높여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를 부탁했지만, 중국은 미국이 먼저 북한과 양자 대화에 나서서 한반도 긴장 수준을 낮춰달라는 기대를 표명했다. 미국과 중국의 태도에서 온도 차가 느껴진다.

    일본, 북한 문제 관해선 미국보다 강경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미국은 아시아 중시 외교 전략을 짜면서도 국방비 지출을 줄이길 원한다. 이 때문에 일본이 아시아 방어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한다. 세계 최대 자유무역 경제블록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일본이 참가해주길 바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과의 연대 강화를 강력히 주장한다. 민주당 정권 때 일본 외교가 실종된 이유도 미국과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 아베 총리는 동맹국이 공격받았을 때 자국이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때마다 “미국 선박이 공격받을 때 일본이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비유하곤 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4월 14일 미국과 일본의 외교장관 회담 때 서로 높은 친밀감을 과시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일본도 대화의 문을 닫을 일은 없다”고 말해 미국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엄밀하게 보면 일본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미국보다 더 강경하다. 북한에 대해 초강경 자세를 고수하는 아베 총리의 영향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4월 15일 케리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은 3대에 걸쳐 ‘벼랑 끝 외교’를 반복해왔다. 이른바 대화는 몇 번이나 배반을 당했다. 위기를 조성해 뭔가를 얻으려는 방식이다. 그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7분간 배석자들을 물리친 채 예정에 없던 양자 대화를 하면서 다시 한 번 “북한에 속지 마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4월 14일 “남조선 당국이 대화 의지가 있다면 말장난이 아니라 근본적인 대결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 앞으로 대화가 이뤄지는가, 마는가는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대북전문가들은 과거 남북대화 재개 사례를 볼 때 “기세 싸움을 하는 것으로, 아직 대화 성사 여지는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케리 장관의 방한일인 4월 12일, 또는 김일성의 101번째 생일인 15일에 미사일을 쏠 것으로 예상했지만 모두 빗나갔다. 북한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 김일성 생일은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하게 보냈다. 한국 정부 내에선 ‘미사일 국면의 장기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의외의 시기에 도발을 감행하는 북한의 특징을 감안한다면 예상치 못한 시기에 미사일을 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고자 하기 때문에 북한발 위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내 신(新)질서?

    ‘한미중일 vs 북’ 신질서 재현…북한 더 외톨이로


    과거 한반도에는 남북 간 대립뿐 아니라 미국과 소련(현 러시아)의 대립도 함께 있었다. 소련 붕괴 후에는 사실상 중국이 그 구실을 대신했다. 남과 북이 동맹 체제를 맺어 상호 대립했기 때문에 북한은 독자적으로 6·25전쟁 같은 전면전을 벌이지 못했다. 다만 간헐적으로 군사 도발을 해왔다.

    하지만 공산권이 무너지고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상호 동맹 틀이 무너졌다. 북한 처지에선 생존을 위해 독자적인 억지력(抑止力)을 기를 수밖에 없었다. 인민이 굶더라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집중한 이유다.

    북한의 든든한 우방이던 중국은 최근 북한을 예전처럼 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북한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핵실험 이후 북한 제재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도 찬성했다.

    북한의 최대 목적은 ‘미국과의 교섭’이다. 핵 동결을 위한 교섭이 아니라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교섭을 하고 싶어 한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반복해 미국과 일본이 핵전쟁 공포를 느끼면 더 큰 파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미국은 단호하다.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은 4월 2일 한미 외교장관회담 후 “미국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16일 NBC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은 아직 탄도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능력이 없으며 북한의 도발적 행동 중단이 전제되지 않는 한 대화나 협상도 없다”고 재차 밝혔다.

    이런 동북아시아의 역학구도 속에 동북아 질서는 새롭게 짜이고 있다. 과거 ‘한미 vs 북·중’이라는 동맹전선이 맺어졌다면 지금은 ‘한미중일 vs 북’ 전선이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더욱 고립돼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역시 양대 슈퍼 파워로 서로 신경전을 벌이지만 북한 위협에 대처하는 데 있어선 전략적으로 손을 잡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매사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케리 장관이 4월 14일 일본을 방문했을 때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가 거론됐지만, 그가 중립적인 기존 미국 주장을 되풀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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