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브레인 보면 정책 보인다

朴, 투톱김종인-김광두 | 文, 분배 중시한 이정우 | 安, 조련사 장하성

  • 입력2012-10-22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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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선거(이하 대선) 후보 선거캠프에 합류한 전문가들은 후보가 당선할 경우 청와대와 정부 등 관계기관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더욱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핫이슈로 등장한 이번 대선이 끝나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관련 정책이 차기 정부의 주요 정부시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새누리당), 문재인(민주통합당), 안철수(무소속) 세 후보를 도와 경제 관련 공약을 가다듬고 있는 경제브레인의 면면과 성향을 살펴보면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경제브레인 보면 정책 보인다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한국형 복지.’ 박근혜 후보의 경제 청사진인 ‘근혜노믹스(GH-nomics)’를 지탱하는 세 가지 키워드다.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원칙 세우자)’와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 박 후보의 이 같은 경제 철학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경제브레인에 의해 공약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근혜노믹스 설계도를 그린 양대 축은 박 후보의 정책을 총괄하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박 후보의 싱크탱크 수장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5월 박 후보가 미국 스탠퍼드대 초청 강연을 통해 던진 화두인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는 이 두 축의 영향이 컸다.



    김 위원장은 1987년 개헌 때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 2항 신설을 이끈 인물.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네 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재벌의 탐욕’이란 표현을 수시로 사용할 만큼 재벌개혁 의지가 강하다. 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강화, 강력한 비정규직 대책 등을 주요 과제로 정하고 본격적인 ‘손대기’에 들어갔다.

    김 원장은 ‘박정희 경제개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서강학파’ 은사 남덕우 전 국무총리 소개로 2006년 박 후보를 만났다. 2007년 경선 당시 줄푸세 공약을 진두지휘하고 이후 박 후보와 꾸준히 공부해온 ‘5인 스터디그룹’ 멤버로,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우파 경제학자다. 그에 따르면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치유가 시대정신이 되면서 나온 성장전략의 보완재다.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 추진단 가운데 핵심 분야인 경제민주화추진단은 김 위원장, 힘찬경제추진단은 김 원장이 맡았다. 박 후보는 이 ‘투톱’을 통해 성장 과실을 나누는 경제민주화와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성장전략을 동시에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안종범,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근혜노믹스의 벽돌을 쌓는 핵심 참모진이다. 19대 국회에 첫발을 들였지만 박 후보에게서 나오는 모든 경제, 민생정책 메시지가 두 의원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박 후보의 정책 구상을 가장 잘 안다. 두 의원은 최근 김 위원장이 이끄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 실무추진단에서 후보비서실로 재배치됐다.

    경제브레인 보면 정책 보인다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 출신인 안 의원은 ‘5인 스터디그룹’ 멤버로 가장 오랫동안 박 후보를 보좌해왔다. 조세 및 재정 전문가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고용복지’ 등 박근혜식 복지 모델을 만드는 데도 깊이 관여했다.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다 4·11 총선 직전 ‘부름’을 받은 강 의원은 박근혜식 경제민주화에 균형추 노릇을 톡톡히 하는 ‘일꾼’이다. 소비자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대기업의 부당행위를 막는 데 방점을 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출신으로 노동 및 일자리 전문가인 이종훈 의원을 포함해 이들을 ‘정책 초선 3인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의원은 상대적으로 개혁 성향이 강하며 남경필 의원 등 쇄신파가 주축을 이룬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도 활약한다.

    2007년 경선 당시 박 후보의 경제정책을 만든 경제자문회의 그룹도 캠프에 합류했다. 박근혜식 경제민주화의 슬로건인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만든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와 홍기택 중앙대 교수는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힘찬경제추진단 위원으로서 성장 전략을, 옥동석 인천대 교수는 정부개혁추진단장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밑그림을 짜고 있다.

    홍수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gaea@donga.com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경제브레인 보면 정책 보인다
    문재인 후보의 경제정책 사령탑은 노무현 정부 초기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경북대 교수)이다. 그가 이끄는 경제민주화위원회에는 재벌개혁, 노사개혁, 사회적 경제 등 세 가지 큰 틀에 걸쳐 정책 전문가 14명이 포진했다. 이들 가운데 4명은 참여정부에서 일했거나 정책 자문을 맡았다.

    이 위원장은 성장보다 분배를 중시하는 대표적인 진보경제학자다. 그는 ‘참여정부의 경제브레인’으로 통했지만 노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자 2006년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신분으로 협상중단 촉구 성명 발표를 주도할 만큼 사안에 따라 뚜렷한 소신을 드러냈다. 이 위원장은 5월 문 후보의 싱크탱크인 ‘담쟁이포럼’ 연구위원장을 맡은 뒤부터 문 후보의 경제공약 개발을 지원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꼽는다.

    문 후보가 10월 11일 발표한 고강도 재벌개혁안은 김진방 인하대 교수와 이의영 군산대 교수의 합작품이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장을 지낸 김 교수는 한국경제학회 청람상심사위원회 경제사, 학사 분야 위원을 역임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연구위원과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정책위원, 대통령 직속 중소기업특위 위원을 거친 이 교수는 △골목상권 보호 △대기업 횡포 제한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를 손보게 된다.

    공정거래 정책통인 오성환 명지대 겸임교수도 재벌개혁에 힘을 보탠다. 문 후보의 재벌개혁 내부과제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서로 지분을 소유하며 지배하는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10대 대기업 집단에 대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를 재도입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재직 시절 출총제를 경험한 오 교수는 문 후보의 구상을 현실화하는 구실을 한다.

    이 밖에도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을 지낸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책을 마련한다. 골목상권 보호운동을 벌이는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장은 유통상인들의 현장 목소리를 전한다.

    이 위원장이 ‘노동의 민주화’로 칭한 노사개혁 분야는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와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담당한다. 박태주 교수는 노무현 대선 후보의 노동특보, 대통령비서실 노사개혁TF(태스크포스)팀장을 거치며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을 책임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정책자문위원 등을 맡았던 박수근 교수는 국내 최고 노동법 전문가로 통한다. 두 박 교수는 노·사·민·정 대타협을 내세우며 비정규직 문제 등에 메스를 댄다.

    경제브레인 보면 정책 보인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처럼 경제 약자들의 자생적 풀뿌리 생산조직을 육성하는 사회적 경제 부문에는 학계와 현장 전문가가 참여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과 산림청 자문위원을 지낸 김재현 건국대 교수가 이론의 틀을 잡고,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는 실무 아이디어를 낸다. 문 후보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이기도 한 제 대표는 덕성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재무컨설팅, 재무설계에 능하다.

    금산분리 등 재벌개혁의 핵심인 금융 분야는 장세진 인하대 교수와 이건범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가 책임진다. 행정고시 출제위원과 한국경제발전학회 명예회장을 지낸 장 교수가 금융정책을, 이 교수가 서민금융을 담당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현미, 홍종학 의원도 캠프에 이름을 올렸다.

    이남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irun@donga.com

    안철수 무소속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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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안철수 후보의 핵심 경제브레인이다. 사실 장 교수는 경제정책뿐 아니라 외교, 안보를 제외한 모든 정책을 총괄하는 구실을 해 명실상부 정책 분야 실세라고 할 수 있다.

    9월 27일 장 교수는 안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 현상’이란 시대정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안 후보 캠프에 합류한 것은 단순한 ‘시대정신의 선택’이 아닌 필연으로 보인다. 장 교수는 안 후보 이름이 정치권에 오르내리기 훨씬 전 제목에 ‘안철수’라는 이름을 넣은 신문 칼럼을 두 번 쓴 적이 있다.

    먼저 2005년 3월 23일 한겨레 시평에 쓴 ‘안철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라는 칼럼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재벌정책을 비판하는 글로, 당시 있었던 ‘반부패 투명사회 협약식’의 한 장면을 묘사했다. 비슷한 시기 안철수연구소(현 안랩)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사회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며 대기업 횡포를 지적했던 안 후보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안철수의 부재를 통해 협약식이 끝나기 무섭게 ‘재벌지상주의가 되살아난 상황’을 비꼬았다.

    또 한 번은 지난해 7월 22일 조선일보 ‘장하성 칼럼’에 쓴 ‘안철수, 윤석금 그리고 박병엽’이라는 칼럼이다. 우리나라 100대 부자의 “80%가 재산을 상속받은 재벌 2, 3세”라며 부의 대물림 현상을 비판하면서 “안철수, 윤석금(웅진그룹 회장), 박병엽(팬택 부회장)은 재벌들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기적적인 성공신화를 쓴 창업자들”이라고 내세웠다. “안철수가 완성하지 못한 성공을 이어갈 창업자가 속출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고려대 경영대학장 시절 장 교수는 안 후보와 윤 회장, 박 부회장을 고려대 겸임교수로 모셔오기도 했다.

    장 교수는 최근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앞으로 내놓을 공약들에 대해 “안 후보가 대선 준비 과정에서 가졌던 생각들을 모아놓은 ‘안철수의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만난 사람 가운데 안 후보처럼 ‘굿 리스너’(다른 사람 말을 잘 듣는 사람)는 없었다”고도 말했다. 장 교수가 안 후보의 ‘브레인’을 넘어 ‘조련사’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재벌개혁위원회 설치, 계열사분리명령제 도입 등 잇따라 내놓은 강력한 재벌개혁 공약의 중심엔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있다. 안 후보 캠프 경제민주화포럼의 대표를 맡은 전 교수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함께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수제자 그룹에 속하며,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 경제 관련법 전문가 등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봉의 교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위원장을 지냈다.

    경제브레인 보면 정책 보인다
    선거캠프에서 혁신경제포럼을 맡은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안 후보 캠프의 정책 포럼 ‘내일’이 출범하는 과정에서부터 관여한 핵심 인물이다. 홍 교수는 KDI 연구위원과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쳤으며, 환경 및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홍 교수는 환경부와 산업자원부 자문위원을 맡는 등 ‘지속가능한 성장’을 강조해왔으며, 현 정부의 4대강 사업에 강하게 반대했다.

    “안 후보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 이력”이라는 비판 등 ‘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 올드보이’ 논란이 일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고 안 후보의 경제정책 고문 및 자문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최근 안 후보 캠프 인사들에게 “나는 뒷방에 있을 테니 장 교수와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최근 재벌개혁 공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총리와 장 교수는 한두 번 접촉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우열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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