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3

2012.09.03

“가자, 한국으로”…로펌 밀물

올해 안에 영·미 로펌 25개사 한국 진출…한국인 유력 집안 출신 변호사들 앞장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김민지 인턴기자 이화여대 경영학과 4학년 kimminzi4@naver.com

    입력2012-09-03 09:2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자, 한국으로”…로펌 밀물
    8월 28일 현재 한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준비하는 외국 법률사무소(이하 로펌)는 총 19곳이다. 그중 3곳은 법무부 심사와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 등록을 마친 뒤 사무소를 열고 업무를 시작했다. 16곳은 현재 법무부에서 외국법자문사 자격승인 예비심사 과정에 있다. 법조계에서는 올해 말까지 외국 로펌 25곳 정도가 국내에 상륙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밀려오는 외국 로펌은 대체 어떤 곳이며, 어떤 계획과 전략 하에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일까.

    이미 업무를 시작한 외국 로펌은 미국계 롭스 앤드 그레이와 셰퍼드 멀린, 영국계 클리퍼드 챈스다. 이들은 2011년 기준으로 각각 세계 로펌 순위 31위, 95위, 5위(‘The 2011 Global 100’, The American Lawyer)를 기록했다.

    롭스 앤드 그레이 한국사무소 대표 김용균(56) 미국변호사는 법률시장 개방 이후 외국 로펌 소속 변호사로는 처음으로 변협에 등록을 마쳤다. 김 변호사는 미국에서 한국 기업과 관련한 법률 업무를 오랫동안 맡아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포스코센터에 사무실을 연 롭스 앤드 그레이에는 김 변호사 외에도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 분야 권위자로 알려진 재미교포 출신 천상락 미국변호사가 있다. 천 변호사 역시 변협에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롭스 앤드 그레이는 전 세계에 1100명이 넘는 변호사를 보유한 세계적인 로펌이다. 2011년 매출액은 8억2250만 달러였다. 수년간 미국의 지식재산권 분야 소송에서 업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법률시장 진출과 관련해 롭스 앤드 그레이 측은 “우리 회사에는 오랫동안 한국 기업과 일해온 변호사가 많다. 지식재산권 등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한국 기업에 질 높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롭스 앤드 그레이는 올 3월 법무부 예비심사 과정에서 1호 접수를 둘러싸고 미국 로펌인 폴헤이스팅스(27위)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에 사무실을 낸 셰퍼드 멀린은 전 세계에 변호사 500명가량을 보유한 로펌이다. 매출액은 3억6800만 달러(2011년 기준). 미국 등에서 삼성전자 등 삼성의 여러 계열사, 현대자동차, KDB산업은행, KB국민은행 등과 오랫동안 업무제휴를 맺어왔다. 홍콩에 아시아 본사가 있으며 한국사무소에는 향후 변호사 5~10명이 상주할 계획이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와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한 김병수(46) 미국변호사가 한국사무소 대표를 맡았다. 10여 년간 국내 유수 은행과 기업에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온 김 변호사는 한국 진출 전략과 계획을 이렇게 설명했다.



    법률시장 개방했던 독일과 프랑스 사례는

    문 열자마자 토종 로펌들 맥 못 추고 망가져


    “가자, 한국으로”…로펌 밀물
    우리나라는 법률시장을 다른 나라보다 늦게 개방하는 편이다. 비슷한 법률시장 구조를 가진 일본도 이미 2005년 법률시장을 완전 개방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법률시장을 개방한 나라들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법률시장 개방 이후를 보여주는 사례로는 주로 독일, 프랑스, 일본을 꼽는다. 이들 나라의 토종 로펌은 영미계 로펌이 진출한 이후 사실상 주요 시장을 뺏기고 도태됐다. 그나마 살아남은 토종 로펌도 외국 로펌과 합병한 경우가 많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법률시장을 가진 독일은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했다. 그러나 개방한 지 2~3년 만에 독일 10대 로펌 가운데 8곳을 영미계 로펌이 차지하는 망신을 당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지멘스 같은 기업도 토종 로펌을 외면하고 외국 로펌과 손을 잡았을 정도다. “초대형 영미계 로펌이 독일 시장에서 금융, 투자, M&A 등 기업자문과 국제 송무시장을 집중 공략해 수익이 많이 나는 분야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중앙일보’ 2011년 6월 24일자)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 최근 들어 토종 로펌이 다수 부활하고는 있지만, 영미계 로펌의 공세는 여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70년대 법률시장을 개방한 프랑스는 이미 오래전 영미 로펌이 장악했다. 상위 25개 로펌 가운데 프랑스 로펌은 4~5개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7년경에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인사가 퇴임 후 미국 로펌으로 자리를 옮겨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5년 법률시장을 완전 개방한 일본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영미계 로펌의 공세를 잘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일본 기업의 해외 업무, 일본에 진출한 외국 기업과 관련한 시장은 대부분 영미계 로펌에게 넘어갔다. 미국 로펌에서 활동하는 한 변호사는 일본 사례와 관련해 “일본 경제구조는 2000년대 중반부터 수출 중심에서 내수 중심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글로벌 법률시장에 관심을 갖던 많은 외국 로펌이 일본 시장에 더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이것이 일본 토종 로펌이 살아남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대부분 특허와 지식재산권 분야 집중

    “기업 인수합병(M·A), 공정거래법, 지식재산권 관련 분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진출하려고 준비 중이다. 많은 한국 기업이 이미 국제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고품질의 법률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그것이 더 필요하다. 셰퍼드 멀린은 특히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강하다. 영화, 음악, 스포츠, 광고, 예술 등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강점을 지녔다. 영화의 경우 제작과정에서의 법률자문, 배급, 금융문제, 광고 등이 주된 영역이다. 셰퍼드 멀린은 이미 미국과 유럽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오랫동안 법률자문을 해왔다. 오랜 고객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한국 진출을 결정한 측면도 있다.”

    세계 3대 로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클리퍼드 챈스도 최근 서울 종로에 사무소를 내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영국계인 클리퍼드 챈스는 전 세계에 2600명이 넘는 변호사를 거느리고 있다. 매출액은 18억8350만 달러(2011년 기준)가 넘는다. 현재 홍콩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김현석 변호사가 한국사무소 대표를 맡았다. 김 변호사는 최근 ‘주간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기업과 일해왔다. 한국 기업이 외국에서 진행한 기업금융, M·A, 국제 소송,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담당했다. 한국에 사무소를 낸 것은 고객이 있는 곳에 와서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취지가 크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 내 법률자문 서비스 부분은 한국변호사의 독보적인 시장이다. 그 시장에 들어가 경쟁할 생각은 별로 없다”고 덧붙였다.

    아직 사무소를 열지 못했지만, 올 3월 법무부에 처음으로 예비심사를 신청했던 미국 로펌 폴헤이스팅스도 조만간 국내 진출을 선언할 예정이다. 국제법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김종한 미국변호사가 현재 한국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김세진 변호사 등 한국계 변호사 8명으로 구성한 한국팀이 국내 진출을 준비 중이다. 폴헤이스팅스는 2~3년 내 변호사 수를 30명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대 규모 로펌 가운데 하나인 디엘에이파이퍼(DLA Piper, 세계 3위)도 조만간 한국에 진출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의 남편 이원조 미국변호사가 한국 진출과 관련한 실무를 총괄한다. 이 변호사는 김앤장에서 활동했다. 디엘에이파이퍼 측은 2011년 6월 13일 ‘한국일보’를 통해 “한국은 홍콩, 일본, 미국 등과의 관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향후 한국 시장에서 영향력을 강화할 생각이다. 한국의 모든 법률시장에 관심이 있다. 특히 기업 M·A 자문시장에 관심이 많다. 한국 재벌은 자동차 제조에서부터 서비스업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영국 로펌도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활동해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2000명이 넘는 변호사를 확보한 영국 로펌 프레시필즈와 앨런 앤드 오버리도 홍콩사무소를 중심으로 국내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표 참조).

    “가자, 한국으로”…로펌 밀물
    유력 집안 자제들 총출동

    “가자, 한국으로”…로펌 밀물

    미국 로펌 롭스 앤드 그레이 소속 김용균 대표변호사와 천상락 변호사(왼쪽부터). 미국 로펌 셰퍼드 멀린의 김병수 대표변호사.

    외국 로펌이 노리는 시장은 대략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특허 지식재산권 관련 법률시장이나 기업 M·A, 경영자문 시장이 그것이다. 대형 로펌일수록 한국 법을 다루는 민형사 소송이나 상사 소송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외국 로펌의 국내 진출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대목은 한국에 진출하는 외국 로펌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재미교포 출신 변호사 가운데 유독 고위공직자 등 유력 집안 출신 인사가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한국 법률시장에서 외국 로펌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빠른 시간 내에 한국 사회에 자리 잡는 데 큰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롭스 앤드 그레이 한국 대표인 김용균 미국변호사는 5·16 군사정변 당시 6군단장을 지낸 김웅수(89·전 미국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전 예비역 소장의 아들이다. 김 전 소장은 5·16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쿠데타 세력에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62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풀브라이트재단의 도움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28년간 변호사 활동을 해온 김용균 미국변호사는 “한국은 나에게 특별한 곳이다. 1993년부터 4년간 대우그룹 국제법무실에서 법률고문 및 상무이사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세계 로펌 순위 6위인 링클레이터스 한국 대표를 맡을 것으로 알려진 강효영 미국변호사는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아들이면서 법무법인 세종 소속 강성용 변호사의 동생이다.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고 법무법인 율촌과 김앤장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5년 후부터 한국변호사 영입 예상

    미국 로펌인 클리어리 고틀립(21위) 한국사무소를 맡을 이용국 변호사는 이시영 전 주유엔대사의 아들이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으며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스콰이어 샌더스(64위) 한국사무소 대표를 맡을 김준영 미국변호사는 성김 주한 미국대사의 동생이다. 김 변호사는 합작투자, M·A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졌다. 미국 로펌인 심프슨 대처(25위) 한국사무소 대표를 맡을 예정인 박진혁 미국변호사는 박수길 전 주유엔대사의 아들이다. 하버드대와 시카고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클리퍼드 챈스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맡을 이석준 미국변호사는 이수정 전 문화부 장관의 아들이다. 이석우 ㈜카카오 사장과는 형제 사이다. 이 변호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밴더빌트대 로스쿨을 졸업했고 한국은행, 미 증권거래위원회 등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내년쯤 한국에 파견될 것으로 알려졌다. 폴헤이스팅스의 강원석 변호사는 저명한 언론학자인 강현두 서울대 명예교수의 아들이다.

    이와 관련해 김앤장의 한 변호사는 “외국 로펌이 국내에서 활동하려면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할 것이다. 유력 집안 출신의 변호사들을 한국사무소 대표 등으로 보내는 이유도 그래서라고 본다. 5년 뒤 미국 로펌이 아무런 제약 없이 한국변호사를 영입해 본격적으로 한국 법을 다루면 아마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다. 고위공직자 출신을 영입하려는 노력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법률시장 개방과 공직자윤리법 적용 논란

    외국 로펌, 고위공직자들 피난처 되나


    “가자, 한국으로”…로펌 밀물
    국내 로펌의 경우, 퇴직공직자(전관)를 영입하면 변호사법에 따라 해마다 전관의 활동 내용, 보수 명세 등을 정부에 신고해야 한다. 또 퇴직 전 5년 이내 소속 부처 업무와 관련한 내용 및 보수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반면 외국 로펌은 이와 같은 변호사법이 아닌, 그보다 느슨한 공직자윤리법을 적용받는다.

    지난해 10월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고위공직을 지낸 인사들은 퇴직 후 2년간 ‘외형거래액 150억 원을 넘는 국내 로펌, 회계법인, 외국계 로펌’에서 일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진출 초기 외국 로펌들의 외형거래액은 연간 150억 원을 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는 규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국 로펌이 고위공직자들에게 ‘해방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법조계 인사는 “외국계 로펌의 외형거래액 기준을 외국 본사가 아닌 한국사무소 기준으로 한다면 어떤 곳도 취업 금지 대상이 되기 힘들다. 외국 로펌이 국내 사무소 매출액을 150억 원 이하로만 조절하면 공직자윤리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 전직 고위공무원을 얼마든지 영입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행정안전부 측은 “외국 로펌에 취업한 사람은 국내 변호사와 똑같은 자격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국법자문사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변호사법이 적용되지 않고, 외국법자문사법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측은 “변호사법을 보면, 수임 명세서 제출 대상에 외국계 로펌이 포함되지 않았다. 외국계 로펌이 현재는 국내 사건을 수임할 수 없기 때문에 수임 명세서 제출 자체에 의미가 없다. 법률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변호사법 조항에 대상을 일부 포함하거나 조항을 개정할 수는 있겠지만, 현 법체계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