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9

2012.08.06

70억 시선 잡은 3시간짜리 ‘뮤지컬’

런던올림픽 개막식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입력2012-08-06 13: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70억 시선 잡은 3시간짜리 ‘뮤지컬’
    런던올림픽이 개막식 퍼포먼스 공식을 바꿔버렸다. 7월 27일 오후 9시(한국시각 28일 오전 5시) 런던 리밸리 올림픽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런던올림픽 개막식(사진)은 영국만의 역사적 콘텐츠로 세계인의 공감을 엮어낸 한 편의 ‘대서사 편집드라마’였다. 영화 ‘트레인스포팅’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유명한 대니 보일 감독은 “3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생중계로 보게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하게 공언했는데 그가 총지휘한 ‘경이로운 영국(Isles of Wonder)’이라는 주제의 3부작 개막 공연은 70억 전 세계인의 시선을 3시간 내내 붙들었다.

    ◆ ‘뉴욕타임스’ “떠들썩하고 분주하며 재치 있는 공연”

    영국인뿐 아니라 지구촌 현존 세대가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영국 문화 아이콘을 전부 동원했다. 영국 대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The Tempest)’에 나오는 명문장 “두려워하지 말라. 영국이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라는 대사가 적힌 23t짜리 대형 ‘올림픽 벨’이 시작을 알렸다. 소설 ‘해리 포터’ 작가 조앤 롤링이 어린이문학의 고전 ‘피터 팬’ 도입부를 낭독하는 것으로 영국 문학의 역사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개막식은 파격과 반전의 볼거리로 가득했다.

    보일 감독은 미래로 가는 현대적 영국을 그리려고 농업사회를 지나 산업혁명 이후의 도시 풍경을 생생히 연출한다. 영국이 18세기 산업혁명 발상지인 만큼 ‘원조’로서의 자부심도 있겠지만, 자연이 파괴되고 노동자들이 비참한 삶에 빠진 상황까지 묘사했다.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대형 굴뚝이 연기를 뿜어내는 가운데 제1, 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런던 시민으로 등장하는 연기자들의 심각한 표정은 자본주의 병폐까지 솔직하게 고백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철강 노동자들이 땀 흘려 주조한 거대한 5개 링을 들어 올리자 스타디움 상공에서 합체된 그 링들은 올림픽 오륜으로 형상화된다.

    개막식 파격의 절정은 영국의 국민 코미디언인 ‘미스터 빈’ 로언 앳킨슨의 등장이었다. 세계인에게 친숙한 이 남자는 영화 ‘불의 전차’ 주제곡을 연주하는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의 단원으로 출연해 코믹 연기를 펼친다. 명장 방겔리스의 음악에 최고의 오케스트라, 거기에 앳킨슨의 코믹 연기를 한데 묶는 영국식 유머는 호들갑스럽지 않고 경쾌했다.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성화 봉송 주자가 아니라 경호원으로 등장했고, 20세기 팝문화 대명사인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등장해 개막식 대미를 장식했다.

    ◆ 서사와 스토리로 승부 건 대니 보일 감독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은 한 편의 화려한 베이징 오페라를 연상시켰다. 그와 동시에 국가체제 중화민족주의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관제 분위기의 일사불란함이 엿보였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각 예술에서 스토리텔링 예술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보일 감독은 판에 박힌 ‘국가 이미지 전달 거대 쇼’를 서사를 갖춘 입체적 스토리로 짠 ‘올림픽 뮤지컬’로 전환해버렸다. 모두가 보기에 무난한 기시감을 과감히 깨버리고 영국 역사, 문학, 철학, 해학을 파격과 유머로 잘 버무린 작가주의 개막식을 보여준 것이다.

    추상적이고 공허한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가 아니라, 만국 시민이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문적 대향연이 향후 올림픽 개막식의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한국. 어떤 독창적 콘셉트를 어떤 서사방식으로 풀어낼 것인가. 소녀시대류의 집단 군무 케이팝(K-pop)만으로는 부족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