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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친북 민족주의가 종북보다 더 위험하다”

북한 민주화 운동가 최홍재

“반미친북 민족주의가 종북보다 더 위험하다”

“반미친북 민족주의가 종북보다 더 위험하다”
북한을 들여다보는 관점이 극(極)에서 극으로 움직였다. 대한민국을 부정했다. 전복을 꿈꾸었다. 현재는 북한 민중의 봉기 움직임을 응시한다. 아니, 기다린다. 야만스러운 정권을 끝장내는 일에 일조하려 한다. 이 기사의 주인공은 북한 민주화 운동가 최홍재(44).

# 수령님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이 대단했다

▼ 얼마나 대단했나.

“굉장히 존경했다. 김일성 사진을 늘 갖고 다녔다.”

▼ 주체사상은 어떻게 공부했나.



“스스로 공부하고, 소조에서도 학습했다.”

소조라는 단어가 생경하다.

“지금은 어색한 표현이지만 수령의 전사로 살고자 했다. 알카에다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고려대 87학번. 총학생회장 시절 주사파 지하조직 자주민주통일운동그룹(자민통)의 ‘지도’를 받았다. 대학생 기획방북의 주역이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를 이끌면서 1991년 박성희, 성용승 씨를 북한에 보냈다. 1994년 방북한 최정남 씨는 선발에서부터 파견, 복귀까지 직접 챙겼다.

“방북하고자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는 정남이에게 김일성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을 건네주면서 우리 부끄럽지 않게 살자, 수령님의 전사로 살자고 다짐했다.”

북한 식량난을 목격한 후 김일성을 버렸다.

“1998년 8월 노선을 전환했다. 전향이라는 음습한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노선 전환은 진화라고 불러야 한다.”

# 임수경 선배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

그는 취중진담 혹은 취중실언으로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을 두둔했다. 대북관이 강경하기로 소문난 그였기에 “임수경 선배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는 말이 의외로 들렸다.

“그 나름대로 근거를 가진 친북론까지 종북으로 몰아 해로운 정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종북과 친북은 구분해야 한다. 이석기(통합진보당 의원) 같은 사람과 임수경 선배는 크게 다르다. 통합진보당의 종북세력은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표현한 대로 광신도 비슷하다. 그 사람들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이 없다. 486 정치인들은 구(舊) 민주노동계와 다르다. 새누리당이 오버하고 있다.”

▼ 부연해달라.

“임수경 선배는 이념적인 사람이 아니다. 성격이 매우 즉흥적이다. 4년을 함께 일해 잘 안다. 선배와는 단순히 아는 관계가 아니다. 마음속 어려움을 나눈 사이다. 아내와 선배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졌는데, 두 사람이 서울 혜화동에서 임산부체조교실을 함께 운영한 일도 있다. 선배는 대한민국이 미제의 식민지라고 여기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건국이 매우 필요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갖는 게 마땅하지만 ‘건국이 불가피했다’고 여기는 것도 긍정 아닌가. 선배가 대한민국을 긍정한다기보다 ‘부정하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게 좋겠다. 종북세력과 선배는 다르다.”

# 북한을 달래자고? 처칠을 봐라

“반미친북 민족주의가 종북보다 더 위험하다”

2011년 11월 17일 열린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을 위한 1700리 국토대장정 서울출정식’에서 최홍재 국토대장정 단장이 연설하고 있다.

“영국 총리 아서 체임벌린은 제2차 세계대전의 2차 책임자다. 그는 히틀러를 달래자고 했다. 처칠은 독일을 용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시간을 줘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건가.

“나치주의자가 독일을 도와줌으로써 히틀러를 달래자고 했다면 유럽인들이 혹하지 않았을 것이다. 체임벌린 같은 멀쩡한 사람이 그러니 사람들이 동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체임벌린이 히틀러 추종자냐? 아니다. 민주통합당의 486은 체임벌린을 닮았다. 그래서 위험하다. 운동권 출신은 기본적으로 반미와 친북(민족주의) 성향을 가졌다. 북한 추종자는 현실적으로는 위험하지 않다. 그들의 행태를 보고 사람들이 어이없어하고 있지 않은가. 486 정치인은 북한 핵의 위협과 북한 인권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북한 정권을 달래야 한다고 여긴다. 체임벌린과 논리가 똑같다. 처칠의 지향에 답이 있다.”

# 경기동부는 묵가(墨家)를 닮았다

묵가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초기의 사상가 묵자(墨子)를 계승하는 학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묵가 집단은 거자(巨子)를 지도자로 삼아 강력한 단결을 자랑했다. 거자는 묵학도의 법을 범한 자에 대해 생살권을 가졌다. 맹자는 “묵가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며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경기동부는 운동 기풍(氣風)이 굉장히 강했다. 묵가 집단 같았다. 일종의 공동체였다. 경기동부의 기풍에선 개인적 요소가 등장할 수 없었다. 합숙하면서 새벽에 함께 기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또한 개인 소유가 없었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오면 공동체에 내놓았다. 경기동부가 통합진보당 당권까지 장악한 것에는 이러한 기풍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자주통일부장을 지냈다. 경기동부는 전국연합 지역조직 경기동부연합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래는 경기북부연합, 경기남부연합만 있었다. 김미희(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정형주(전 민주노동당 자주통일위원회 부위원장)가 경기동부연합을 조직하겠다고 나섰다. 조직부에서 ‘옳지 않다’ ‘승인 안 해주겠다’고 했고, ‘왜 안 해주느냐’는 실랑이가 일었다. 이석기의 민혁당 세력이 경기동부를 만든 것이다.”

▼ 이른바 종북파는 지금도 한국을 미제의 식민지로 여기면서 민족해방 그러니까….

그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럼요”라고 답했다. 타인 머릿속에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인진대 그렇게 단언했다. 주체사상을 신봉해본 사람은 척 보면 탁 안다는 투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해방정국에서 남로당 세력은 실제로 체제를 전복할 힘을 가졌다. 당시엔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다. 종북주의는 북한을 대안으로 여기는 것인데, 대한민국에 북한식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다만 주사파가 대한민국을 매우 힘들게 할 수는 있다고 본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 종북세력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면서 집요하게 움직이지 않았나. 2008년 광우병 시위 때도 조직력을 가동했다. 김정은 집단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남쪽에 꽤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어쨌거나 종북파는 국민이 인정하지 않는다. 현실적 위협은 거의 없다.”

“반미친북 민족주의가 종북보다 더 위험하다”
# 황장엽주의는 의미가 상당하다

그는 주사파 활동을 한 탓에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 선거 공보의 범죄경력란에 어떻게 소명했나(그는 4·11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을 하다가….”

▼ 지금까지 말한 대로라면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체제 전복 활동을 한 거다.

“나를 포함한 주사파 학생의 공통된 바람은 고려연방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었으나 운동권의 공통분모는 민주주의운동이었다. 박정희의 치열함으로 산업화가 이뤄졌다면 1980년대 학생운동의 치열함으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시위에 나선 대다수 학생은 고려연방공화국 건설 따위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덧붙여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NL(민족해방)의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

▼ 당신이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 양반들에게 묻고 싶다. 좌와 우의 기준이 도대체 뭐냐고. 나는 한국 민주화에서 북한 민주화로 응시하는 곳을 바꿨을 뿐이다.”

▼ 월간 ‘신동아’ 7월호가 “전향한 김영환 씨도 주체사상은 버리지 않았다”(‘대한민국 주사파를 말하다’ 제하 기사 참조)고 보도했다.

“영환 형은 황장엽주의를 체계화하려 하고 있다.”

▼ 당신을 두고도 주체사상의 정서를 가진 상태에서 응시하는 곳이 정반대로 이동했다는 평가가 있다.

“나 역시 폭넓은 자유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황장엽주의가 굉장히 의미 있는 사상이라고 본다.”



주간동아 2012.07.02 844호 (p40~42)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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