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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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7가지 고비 어떻게 넘을까

지지율 1위지만 대통령선거는 결코 쉽지 않은 승부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입력2012-07-02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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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7가지 고비 어떻게 넘을까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앞줄 가운데)이 3월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9대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출격 채비는 마쳤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2012년 12월 19일만을 기다리며 절치부심해온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곧 캠프를 차리고 출마선언을 한다. 지지율은 1위지만 누구도 쉬운 승부로 보지 않는다. 박 전 위원장이 2013년 2월 청와대 새 주인으로 입성하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아직 많기 때문이다.

    # 인의 장막에 대한 우려

    박 전 위원장은 ‘직할통치 리더십’이다. 본인의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는 좌장을 두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직접 업무를 지시해왔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사안을 박 전 위원장이 직접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은 일정까지 모두 직접 결정한다. 본인의 메시지가 잘못 전달될 개연성이 낮다는 점, 철통 보안을 지키기에 유리하다는 점도 직할통치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런 리더십 스타일이 측근들의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이 직접 해당 의원에게 업무를 지시하기 때문에 의원들은 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다 보니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 상대가 박 전 위원장으로부터 더 중요한 업무를 부여받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상대를 깎아내리곤 한다.

    충성 경쟁의 폐해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말부터 새로운 실세 최경환 의원과 과거 실세 유승민 의원의 갈등설이 끊임없이 내부에서 불거지고 있다. 총선 이후 박 전 위원장을 진노케 했던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의 당 지도부 내정설도 결국 친박 내부 갈등관계 속에서 터져 나왔다는 게 중론이다. 또 박 전 위원장의 조직을 관리해온 이성헌 전 의원이 지난해 전국 16개 시도에 ‘희망포럼’을 세우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친박 의원과 마찰을 빚은 것도 비슷한 사례라 할 만하다. 해당 지역 의원들이 스스로 관리해온 조직과 이 전 의원의 희망포럼이 겹치면서 서로 회원 경쟁을 벌이며 갈등을 빚은 것. 희망포럼을 주도했던 이 전 의원과 강창희 의원의 갈등설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서로를 견제하는 의원들이 새 인물이 ‘이너 서클’에 진입하는 것을 반길 리 없다. 이 때문에 박 전 위원장 측근들은 빨리 경선 캠프 시스템에서 당 공식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박 전 위원장이 당 대표나 비대위원장 등 공식직함을 가졌을 때는 광폭 인사가 이뤄지지만 그 외에는 본인이 신뢰할 수 있는 친박 의원들을 계속해서 쓰는 이중적인 인사 시스템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한 친박 핵심인사는 “캠프 때는 박 전 위원장이 직접 측근들과 그룹 토론을 통해 서로 견제하기보다 협력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안으로 유도하고, 본선 때는 친박 인사들이 2선으로 물러난 뒤 참신하면서도 능력을 갖춘 새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 300만 표가 더 필요하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6월 26일 기자들과 만나 “박 전 위원장은 표 확장성이 없다. 박 전 위원장이 대통령선거(대선)에서 승리하려면 1100만 표 정도는 넘어야 하는데 총선에서 드러난 그의 표 확장성을 고려하면 1000만 표 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총선 투표율이 54% 정도 나왔는데 대선은 못해도 65% 정도이고, 투표율이 65~70%까지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총선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대선에는 참여하는 이들의 주축은 30, 40대인데 박 전 위원장은 그 세대에서 불리하다”고 분석했다.

    경쟁하는 정당 대표의 분석이지만 새누리당 내에서도 상당히 일리 있는 분석이라는 의견이 많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때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이명박 후보는 각각 1144만 표, 1149만 표로 비슷하게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상대 후보인 노무현, 정동영 후보는 각각 1201만 표, 617만 표로 큰 차이를 보여 한 번은 졌고, 한 번은 이겼다. 박 전 위원장이 새누리당 후보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 본선에서 승리를 자신하려면 1200만 표는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총선 때 새누리당은 정당 득표수가 912만 표였으며 민주통합당은 777만 표였다.

    이번 총선 때 보수표의 결집, 김용민 막말 파문,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파문 등 상대 진영의 악재까지 겹쳐 얻은 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선에서 300만 표를 더 끌어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수도권과 20~40대 표를 어떻게 끌어오느냐가 관건이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를 정강 정책에 포함시키고 이준석 전 비대위원, 손수조 후보를 곁에 두면서 변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총선 후 한 언론 여론조사에서 박 전 위원장은 여전히 여야 후보 가운데 가장 보수적이라고 인식됐다.

    이 때문에 박 전 위원장의 약점을 정책과 인물로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민주화 창시자인 김종인 전 의원을 비대위원으로 임명했듯이 젊고 진보적인 성향의 인물을 선거대책위원회의 주요 포스트에 임명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정책도 복지, 경제민주화와 같이 박 전 위원장이 선제적으로 던졌던 진보 진영의 이슈를 더 선점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분열하면 필패

    역대 선거에서 표 파괴력에는 일부 차이가 있지만 1997년 이인제, 2002년 권영길, 2007년 이회창 등 제3지대 후보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보수진영 대 진보진영의 정면승부가 되리라는 전망이 많다. 총선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제3정당의 파괴력이 약했다. 야권은 대선을 염두에 두고 총선 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에도 성공했다. 어느 진영이든 분열한다면 필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의 비박(비박근혜) 주자들이 “지금 무시하는 지지율 5% 때문에 피눈물 흘릴 날이 올 것”이라며 박 전 위원장에게 독설을 퍼붓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박 전 위원장은 이번 경선룰 국면에서 ‘포용’보다 ‘원칙’을 선택했다. 그러나 친박 내부에서도 “그들이 경선에 참여하든 안 하든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하는 인사가 많다. 박 전 위원장이 본선은 물론 경선 때부터 정두언, 남경필 의원, 권영진 전 의원 등 소장·쇄신파 그룹과 함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지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러나 경선룰 논란을 거치면서 비박 진영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 과거형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만 보이던 박 전 위원장은 1998년 정치에 입문해 2004년 당 대표, 2007년 대선 경선을 거치면서 정치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국민은 박근혜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중·장년층에게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 젊은 층에게는 ‘과거형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약점이 공존한다.

    친박 내부에서는 4·11 총선 필승 결의대회 때 박 전 위원장 오른쪽에 서청원, 왼쪽에 김용환 고문이 서 있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자 상당히 아쉬워했다. 그리고 총선 이후 ‘7인회’가 부각됐다. 김용환 전 의원,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원 당선자 등 5공, 6공 인물로 구성한 7인회가 부각된 이후 야당으로부터 과거 회귀적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박 전 위원장은 당장 “7인회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고 논란을 차단했지만 많은 유권자가 박 전 위원장 주변에서 과거의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경직된 것처럼 보이는 국가관

    이명박 후보와의 대선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7월 19일 당 국민검증토론회에 앞서 박 전 위원장은 5·16 군사정변과 유신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참모들은 당시 두루뭉술하게 양비론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토론회 당일 준비한 모범답변으로 리허설도 치렀다. 그러나 정작 토론회에서 박 전 위원장은 “5·16은 구국혁명”이라고 답해 참모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박 전 위원장이 6월 1일 종북 논란을 받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해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말하자,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바로 역공을 가했다. 국가관을 문제 삼으려면 5·16에 대한 견해부터 밝히라는 것.

    박 전 위원장은 올해 내내 국가관에 대해 공격받을 공산이 크다. 야권에서는 국가관을 공격할 경우 박 전 위원장의 ‘보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본다. 게다가 국가관은 박 전 위원장이 표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보이는 부분이기 때문에 진전된 답변을 내놓기도 힘들다. 표 확장성 부분만 보면 난감한 대목이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이 경제 분야에서 ‘좌클릭’하는 것에 비해 국가관에 대해서는 확고한 소신을 밝히는 것이 ‘집토끼’인 보수 진영의 표를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 MB와의 차별화 이뤄낼까

    박근혜 7가지 고비 어떻게 넘을까

    2007년 7월 19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검증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는 3월 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역대 정부 말기 때마다 대통령이 탈당하는 일이 반복됐는데 그래서 국민 삶의 어려움이 해결됐는가, 그것은 아니지 않으냐”며 탈당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그러나 대선에서 이 대통령은 박 전 위원장에게는 우군이라기보다 짐에 가깝다. 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바닥을 치면서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졌다. 임기 말에 들어서면서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 내곡동 사저 논란, 최시중-박영준-김두우-신재민으로 이어지는 측근 비리도 터졌다.

    친박 진영에서는 이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한 친박 핵심인사는 “4·11 총선의 최대 수확은 박 전 위원장이 이끄는 새누리당을 이 대통령이 이끌었던 한나라당과 다른 정당이라는 것을 유권자가 확인해줬다는 점”이라며 “이번 대선의 화두가 정권교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우리의 최대 과제”라고 말했다. 새로운 당 지도부는 이 때문에 청와대의 부정적인 기류에도 민간인 불법사찰과 내곡동 사저 문제에 대해 특검으로 먼저 치고 나왔다. 정책 면에서도 차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성장, 대기업 위주 정책을 펴온 이명박 정부와는 확실히 차별화해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본선에서도 이를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 정수장학회, 최태민 목사 등 검증 소재

    2007년 7월 19일 당 국민검증토론회에서 박 전 위원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의 6억 원 수수 의혹 △성북동 주택 취득 경위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에 대해 검증을 받았다.

    이 의혹은 고스란히 이번에도 야당의 공격 소재가 될 공산이 크다. 박 전 위원장 측은 일단 5년 전 한 번 다 걸러냈기 때문에 큰 파괴력이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휴화산으로 남아 있다.

    당장 지난해 말부터 정수장학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산일보에서 경영진과 노조의 다툼이 계속되고 정수장학회가 30% 지분을 보유한 MBC도 올해 들어 파업을 계속하면서 정수장학회가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과거 이사장을 지낸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야권의 공격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위원장 처지에서는 이를 깔끔하게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2005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그가 정수장학회 문제에 손을 대기도 어려울뿐더러, 박 전 위원장 측에서 갈등을 빨리 해결해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최필립 이사장이 부산일보 매각과 본인의 이사장직 하차 등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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