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1

2017.06.07

경제

임금 인상 전에 못 받은 돈부터 해결해주세요

최저시급 1만 원으로 올라도 수당 제대로 못 받으면 큰 실효 없어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6-02 17: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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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시급을 1만 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마찰을 빚고 있다. 노동계는 소득 주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당장 최저시급을 1만 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이 커져 채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맞서는 것.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저시급 인상을 논의하기 전 임금체불부터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법으로 정해진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먼저 해결해야 시급 인상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장 수입이 알바생보다 적어져

    5월 25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고용노동부는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 원 달성 추진 방안을 업무 보고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 원안과 같은 내용이다. 현재 최저시급은 6470원.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 원을 달성하려면 연평균 15.7%씩 올려야 한다.

    문제는 최저시급 1만 원이 자영업자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저시급이 1만 원으로 오른다고 가정하자. 야간, 추가근무 없이 주 40시간을 일한다면 최저월급은 209만 원(주휴수당 포함), 연봉은 2508만 원이 된다. 이는 현재 최저시급으로 계산한 연봉 1623만 원에 비해 885만 원이나 높다. 야간근무나 추가근무가 조금이라도 추가된다면 연봉은 3000만 원에 가까워진다. 한편 통계청과 중소기업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 자영업자의 51.8%는 연매출이 4600만 원에도 못 미친다. 이들의 월평균 영업이익은 187만 원이다.

    연매출 4600만 원에 아르바이트 1명을 고용한 편의점의 경우 최저시급이 1만 원으로 오른다면 소득 주도 경제성장 덕에 매출이 2년간 적어도 20% 이상 올라야 겨우 월 187만 원 영업이익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매출이 가파르게 올라도 편의점주가 가져가는 이익은 아르바이트생 월급보다도 적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일자리위원회(일자리위원회)에서는 최저시급 1만 원 공약의 기한을 2020년에서 임기가 끝나는 2022년으로 수정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5월 9일 수정된 최종 보고서에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이 2020년까지 최저시급 1만 원 달성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연평균 15% 이상 임금을 인상해야 하므로 임기 중 실현으로 목표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현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린다면 임금 인상분 때문에 백화점업계는 평균 3.2%, 대형마트는 10.3%, 편의점은 9%의 수입 감소가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최저시급 1만 원을 당장 시행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5월 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측은 “문재인 정부는 3년 내 최저시급 1만 원을 얘기하는데, 그 기간에 무슨 일이 벌어져 공약이 파기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평균 임금 대비 최저시급 비율은 법정 최저시급제를 실시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 회원국 가운데 17위다. 소득 주도 경제성장을 얘기하는 정부라면 지금 당장 최저시급 1만 원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받아야 할 돈도 못 받는다

    하지만 한국의 최저시급은 그렇게 낮은 수준이 아니다. 2015년 기준 최저시급제를 시행하는 OECD 회원국(34개국 중 25개국) 가운데 15위를 기록했다. 높다고 보기 어려운 수치지만 연간 증감률을 감안하면 달라진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5년간 한국의 최저시급은 연평균 8.6%씩 인상됐다. 이 인상률이 계속된다면 현 정부의 임기 말인 2022년에는 9770원, 임기 다음 해인 2023년에는 1만610원으로 현 인상률만 유지해도 5년 뒤에는 최저시급 1만 원이 가능하다.

    지난해 5월 발표된 ‘OECD 한국경제보고서’는 한국의 최저임금이 ‘OECD의 평균 수준’이라고 평했다. 이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최저임금 준수’를 더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이는 한국의 임금체불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 수원지방검찰청과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1조4286억 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비해 최저시급이 높은 일본(도쿄 기준 시간당 932엔·약 9442원)보다 10배가 많은 수준이다. 일본의 임금체불액은 2014년 기준 연간 130억 엔(약 1300억 원)이다. 

    정부 통계에도 임금체불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149만4000원. 하지만 이는 실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2015년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가구주인 근로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약 45시간.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휴수당, 추가수당을 제외하고 총 126만6502원이다. 하지만 주휴수당을 더하면 월급은 152만450원으로 훌쩍 뛴다. 주휴수당의 경우 근로기준법 제15조에 의거해 주 15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는 하루 유급휴일이 주어져 1일분의 수당을 추가로 받게 된다.

    게다가 법정 근로시간은 주 40시간. 주당 5시간 추가 근무는 동법 제56조에 따라 원 시급의 1.5배인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수당이 적용된다. 이 급여(8만4110원)까지 합하면 최저임금에 주당 45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받아야 할 법정 최저월급은 160만4560원이 된다.

    주휴수당, 연장·야간수당 같은 법정 수당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동법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수당 미지급으로 형사 처분까지 받을 수 있는 것. 허나 노동현장에서는 법정 수당을 제대로 받는 근로자가 드물다. 이는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이 아르바이트생 774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주휴수당을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전체의 37.9%(293명)에 불과했다. 임금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주휴수당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문제다. 같은 조사에서 자영업자 144명과 아르바이트생 774명 가운데 18%만이 주휴수당 지급 기준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만약 2020년 최저시급이 1만 원으로 인상되더라도 법정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다면 주당 노동시간 40시간을 기준으로 최저월급은 174만 원에 불과하다. 반면, 법정 수당 지급이 보장된 상태에서 연간 8.6%씩 최저시급이 오른다면 2020년 최저시급은 8290원이며, 법정 수당을 가산한 월급은 173만2600원으로 거의 차이가 없다. 기본급여 외에도 야간·연장수당이 보장될 것을 감안하면 근로자가 가져가는 급여는 더 많아질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자리위원회에서는 보고서를 통해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체불임금을 국가가 대신 변제한 뒤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서민 체불임금 국가대위변제제도’의 도입을 강조했으나 아직 정부에서는 관련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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