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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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은 없다

6회 국민투표

  • 입력2012-04-16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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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었어?”

    민노총 선전부장 김춘식이 전교조 사무국장 이병진에게 물었다. 둘은 인사동의 순댓국집 ‘남원옥’에서 마주앉아 있다. 오전 12시 반이다.

    “뭘 말야?”

    이병진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묻자 김춘식은 목소리를 낮췄다.

    “국정원, 검찰, 경찰의 공안 요원이 대폭 증강되고 있다는 거야. 뭐, 지난 정권에서 퇴직했거나 잘린 놈들도 다 복귀하고 있다는데.”



    “….”

    “국정원에는 600명이 복귀했다는군. 그리고 앞으로 더 충원할 계획이래.”

    “들었어.”

    순댓국이 마침 놓여졌으므로 이병진이 수저를 들면서 말을 잇는다.

    “인기가 팍팍 솟는다더구먼. 지지율이 80퍼센트가 넘었다는겨.”

    “거짓말. 지난주에 76퍼센트였어.”

    “그거나 저거나.”

    순댓국을 퍼 넣은 둘은 잠깐 우물거렸다가 먼저 이병진이 말을 이었다.

    “6월 초순까지만 해도 비실대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던 명박이가 이렇게 업어치기 메치기를 하면서 펄펄 뛸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시발, 밥맛 떨어지는 소릴랑 말고.”

    하지만 순댓국을 맛있게 삼킨 김춘식이 길게 숨을 뱉는다. 6월 중순까지만 해도 둘은 광우병대책위 간부로 매일 밤을 광화문에서 보냈던 것이다.

    “그 시발놈이 이젠 우릴 겨누고 있다는 말도 있고.”

    김춘식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이병진은 들었다. 입맛을 다신 이병진이 머리를 저었다.

    “아녀, 우리 전교조를 노린다는 거야. 그래서 그런지 지난 일주일 동안에 1000명이 넘는 연놈들이 빠져나갔어.”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제는 입맛이 떨어진 것 같다.

    레임덕은 없다
    # 그 시간에 청와대의 소식당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이회창까지 셋이 원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다. 식단은 밥에 된장찌개, 열무김치에다 물국수가 놓여진 간단한 한식이다.

    “어, 맛있네.”

    이회창이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는 만족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제 대통령 말씀을 듣고 놀랠 준비는 되었구먼.”

    “아이구, 왜 이러십니까?”

    웃음 띤 얼굴로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부담 갖지 마십시오, 대표님.”

    “내가 긴장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정색한 이회창의 시선이 박근혜에게로 옮겨졌다.

    “안 그렇습니까, 박 위원장? 아마 세상 사람의 시선이 다 여기로 모여져 있을 겁니다.”

    박근혜는 웃기만 했고 이명박이 차를 마시자면서 일어섰다. 옆방으로 옮겨간 그들은 소파에 앉는다. 주인과 손님의 구분이 없는 안락의자에 셋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삼각으로 앉았다. 대통령실장도 참석시키지 않은 셋만의 자리다. 이윽고 인삼찻잔을 든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지난 광우병 사건 때 정의구현사제단이 앞장서 시민을 선동했습니다.”

    그 순간 긴장한 이회창이 들려던 찻잔을 내려놓는다. 박근혜도 마찬가지다. 두 손을 무릎에 단정하게 얹고 이명박을 보았다.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스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0만 불자를 대표한다면서 반정부 투쟁에 앞장서더군요. 그리고.”

    정색한 이명박이 두 손바닥을 펴 보였다.

    “지금은 성당과 절로 들어가 버려서 법의 손길이 미치지를 않습니다.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그것이.”

    하고 이회창이 입을 열었다가 닫아버렸다.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데없다. 이건 상식을 넘어선 딴 세상의 일이나 같은 것이다. 생각하고 상의할 일도 아니다. 감히 종교를 언급하다니. 그때 이명박이 다시 말을 잇는다.

    “월남이 망할 때가 생각나더만요. 스님들이 맨날 분신을 했지요. 그러다가 망하고는 공산국가로 통일되자 스님들은 싹 없어졌지요?”

    “글쎄, 그것이.”

    하고 이회창이 다시 나섰다. 이번에는 헛기침을 하고 난 이회창이 말했다.

    “어쩔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냥 놔두는 것이 상책이요, 이 대통령.”

    “그래서 제가 뵙자고 했는데요.”

    이명박의 말에 이회창과 박근혜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이회창은 얼척 없다는 표정이었고 박근혜는 지친 듯한 얼굴이다. 다시 둘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신부나 스님이 정치에 참여하는 상황이니 정부도 그들을 투표권자인 국민으로 대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은 눈만 꿈벅였고 이명박의 목소리가 조금 열기를 띠었다.

    “그래서 국민투표를 하려고 합니다. 이 대표님께 협조 부탁을 드리려고 뵙자고 했습니다.”

    “무슨 국민투표 말입니까?”

    이회창이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묻자 이명박이 열심히 대답했다.

    “신부나 스님도 이제는 세금을 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 성당과 교회, 사찰에서 세금을 걷어야겠다는 말씀이죠.”

    놀란 이회창은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고 박근혜는 석상처럼 굳어졌다. 이명박의 목소리가 방을 울린다.

    “그것에 대한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대표님께서 국민투표법 통과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

    “성당과 교회, 사찰에서 세금을 걷으면 연간 몇백 조가 될 것입니다. 그 돈을 기업과 국가에 투자하면 국민소득은 단숨에 1만 달러쯤 올라갑니다.”

    이명박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둘을 보았다.

    “2000만 불자, 1000만 교인 등 3000만이 신자라지만 아마 국민투표를 하면 압도적으로 찬성할 것입니다.”

    이회창과 박근혜는 아직도 말이 없다.

    # 이회창과 박근혜를 배웅하고 집무실로 돌아오던 이명박이 주춤 걸음을 멈췄다. 머리를 돌린 이명박이 뒤에 서 있는 류우익에게 말했다.

    “시작합시다.”

    한마디만 해도 류우익은 알아듣는다. 이른바 ‘종교세’에 대한 국민투표 준비 작업을 말하는 것이다. 언론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경제학자, 행정부의 가능한 인력을 총동원해 여론을 형성해야만 한다. 엄청난 작업인 것이다. 이것은 헌법을 바꾸는 것보다도 어려운 작업이다. 종교지도자, 더구나 모든 종교지도자들과의 전쟁이다. 종교 행사날만 되면 서로 눈도장이나마 찍으려고 부르지 않았는데도 달려간 것이 정치인 아니었는가. 그 정치인이 5000만 인구 중에서 3000만 신자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다니. 미쳤다고 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미친.”

    소망교회 담임목사 강수원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목사실 안에는 부목사 박기성과 장로 윤영수까지 셋이 앉아 있는데 방금 방송에서 이명박의 국민투표 추진 소식을 들은 것이다.

    “배신자.”

    다시 강수원이 이 사이로 말했을 때 윤영수가 눈을 감고 기도했다.

    “주여, 사탄에 이끌린 이명박을 구해주소서.”

    “지옥에 떨어질 놈.”

    분이 풀리지 않은 강수원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는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 있다.

    “감히 이명박이가 어디를 건드리겠다는 거야? 우리 기독교인만 1000만이야. 불자까지 합하면 3000만이 넘는다구. 단숨에 정권 퇴진 운동을 벌려 쫓아낼 수도 있어.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이 사람.”

    그러고는 머리를 돌려 박기성을 보았다.

    “이명박을 파문시켜. 교회에 오지 못하게 하라구. 아니, 이런 기가 막힐 일이.”

    강수원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인류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던가? 십일조에 세금을 부과하다니. 이런 반역, 이런 배은망덕, 이런 악마 같은 행위를 소망교회 신자가 저지르다니. 강수원은 말문이 막혀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 그날 저녁 KBS TV 토론에 긴급히 초청한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가 등장했다. 갑자기 어제저녁부터 종교세 국민투표가 뉴스로 터지면서 시중에서는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이명박의 쇼다” “불교를 죽이기 위한 공작이다” “세우리당과 선진당의 통합을 위한 내부 정비용이다” 따위의 추측만이 난무했다. 그래서 강만수의 얼굴이 KBS 화면에 떡하니 등장했을 때의 순간 시청률이 68%. 그것을 본 정연주 사장은 종교세고 지랄이고 좋아서 환장할 지경이 되었다. 68%라니. 대박이다. 그때 강만수가 정색하고 말했다.

    “이 세금으로 전 대학생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녀 MC 둘은 뻥했다. 다시 강만수의 말이 이어졌다.

    “이 세금으로 무주택자 전원에게 20평에서 50평까지의 주택을 20년 임대로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시청자들이 제각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이제 시청률 70%가 된 강만수가 시청자들을 보았다.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다.

    “이 세금으로 30만 명에게 일자리가 제공될 것입니다. 각 사찰과 성당, 교회를 담당할 세금 징수원만 5만 명이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강만수가 열렬한 표정으로 시청자를 보았다.

    “여러분, 올해부터 이 법을 시행한다면 내년 말에는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1인당 4만 달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모든 것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 “이명박은 사탄이다!”

    감람교회 담임목사 이수천은 다혈질이다. 가끔 TV에 비친 집회 장면을 보면 열정적이며 격한 목소리로 청중을 이끈다. 오늘 이수천은 악마가 된 이명박을 처음부터 규탄하고 있다.

    “배신자! 주의 은혜를 악마에게 팔았으니 곧 열화 지옥에 떨어진다!”

    교회 안에는 2000여 명의 신자가 가득 차 있다. 이수천이 말을 그칠 때마다 ‘주여’ ‘구하소서’ ‘아멘’ 등으로 소리쳐 답하고 있는 터라 분위기는 뜨겁다.

    # “반값이야.”

    대학생부 양민호가 눈을 치켜뜬 채 앞에 선 배경옥, 유신철에게 말했다.

    “가능해.”

    “정말?”

    시간당 3500원짜리 알바로 등록금을 모아온 배경옥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는다.

    “언제부터?”

    “세금 걷자마자 가능해.”

    “하긴.”

    어깨를 부풀렸다 내린 유신철이 먼저 주위부터 둘러보았다. 그들은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복도에 모여 있다. 유신철이 말을 잇는다.

    “괜히 중동이나 회교권에 몇천 만원씩 들여서 선교활동 가는 것보다 그 돈으로 등록금 보조해주는 게 낫지.”

    # 불자(佛子) 이인식이 뒤에서 들리는 엔진소리에 길가로 비켜섰다. 이곳은 전라도 진안에 위치한 유서 깊은 사찰 동광사 골짜기다. 그때 이인식 옆으로 최신형 벤츠 500이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주지 하담스님의 전용차다. 다시 발을 뗀 이인식이 잠자코 뒤를 따르는 김분자를 보았다. 9월 초였지만 골짜기는 덥다. 김분자의 이마 주름에 땀이 배어서 번들거렸다. 둘은 독실한 불자여서 오늘도 108배를 드리고 하산하는 길이다.

    “거시기, 이명박이 국민투표 야그 들었제?”

    불쑥 이인식이 운을 떼자 김분자가 시선을 들었다.

    “그기 증말이다요? 정식이 등록금 반절만 낸다는기.”

    “증말인개벼.”

    혼잣소리처럼 말한 이인식이 힐끗 앞쪽을 보았다. 벤츠는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지기미 시발, 우리가 부처님 믿지 벤츠 타고 댕기는 중 믿냐? 세금 걷어 뻔졌으면 조커따.”

    씹어뱉듯이 말하자 김분자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이맹배기가 미쳤다는디.”

    “아, 시끄러!”

    “투표헌다면 이명배기 찍으면 된다요?”

    “아니, 그게….”

    “정식이 등록금 반절만 낸다면 어떤 놈이건 찍어줄팅게.”

    김분자가 자르듯 말했지만 이인식도 토를 달지 않았다. 50대 중반의 둘에게 전주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 이정식이야말로 희망이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로 상추를 길러 등록금 대기에는 벅차다. 더구나 올해 상추는 농사가 잘되었지만 값이 폭락해 운임도 안 나온다. 둘은 터덜거리며 골짜기를 내려온다. 그러나 머릿속 생각은 똑같다.

    # “이건 비공식 코멘트입니다만.”

    수석비서관 회의가 끝날 무렵 대통령실장 류우익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 안은 조용해졌고 류우익의 말이 이어졌다.

    “바티칸에서 대주교 하나가 한국의 종교세 국민투표에 관해 종교탄압이라고 논평했습니다.”

    그러자 이명박이 쓴웃음을 지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묻는다.

    “그 사람,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던가요?”

    “없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과장해 국민을 선동하고 반정부투쟁에 앞장선 행위에 대해서도 아무 말 없죠?”

    “없습니다.”

    “그럼 우리도 누구 시켜서 논평을 해요. 신부가 정치에 참여하니까 당연히 국민으로 세금을 받는 것이라고요. 세계 어느 나라가 대한민국처럼 종교인이 앞장서 선동하고 반정부투쟁을 합니까? 정치인이 줄줄이 석가탄신일이네, 종교행사에 달려가 눈도장 찍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이명박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심호흡을 한 이명박이 말을 맺는다.

    “국민투표를 합시다. 국민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서 나도 거취를 결정할 테니까.”

    그 순간 방 안에는 숨소리도 나지 않는다.

    레임덕은 없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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