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7

2012.03.05

“삼성은 책임 다하라”

기름유출 상처 태안 바닷가의 외침

  • 태안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2-03-02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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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은 책임 다하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부두에서 노부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부두에 댄 어선들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훅 풍겨왔다. 한 배에서 노부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몇 마디 말을 붙이다 배에 올라탔다.

    “바다는 살아났는데 고기가 안 잡힌다. 아예 종자가 말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찾아와 ‘대통령 되면 삼성과 싸워서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당선된 후 한 게 없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2리. 개미 목처럼 잘록하게 생겼다고 해서 개목마을, 개목항이라고도 부른다. 주민은 대부분 고기잡이나 굴양식 등 어업에 종사한다.

    120가구 340명이 사는 이 동네는 2007년 12월 기름유출 사고의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중국 선적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와 충돌해 빚어진 이 사고로 전국 5대 청정지역으로 꼽는 태안 앞바다는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고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전국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 덕에 6개월 만에 가까스로 기름은 제거했지만 주민은 4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훼손된 어업환경이 복구되지 않은 데다 배상과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태안을 비롯한 11개 시군 주민은 해상재해 보상기구인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이 제시한 배상 기준과 금액에 분노한다. 주민이 요구한 금액의 10%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 양측의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현재 서산지방법원이 사정(査定)재판에 나선 상태다. 삼성중공업은 사고 직후 발전기금 명목으로 1000억 원 출연을 약속했다. 하지만 주민은 책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액수라며 받기를 거부한다. 지난해 12월 사고 4주년을 맞아 피해지역 주민 6000여 명이 상경해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항의시위를 한 것도 그래서다.



    “사고 이후 암 환자가 늘었다”

    태안읍내에서 만리포 방면으로 달리다 우회전하면 가파른 산악도로가 펼쳐진다. 도로 주변에 쭉쭉 뻗은 소나무가 병풍을 치고 있다. 고개를 몇 개 넘자 왼쪽으로 넓은 바다와 더불어 자그마한 해변이 나타났다. 바로 의항리 십리포해수욕장이다. 햇빛을 먹은 바다가 희끄무레했다. 안쪽으로는 일리포(구름포)해수욕장이 자리하고, 바깥쪽으로는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백리포, 천리포, 만리포해수욕장이 잇닿아 있다.

    의항리는 SBS 드라마 ‘연개소문’을 촬영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기름유출 사고는 의항리 해변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서쪽)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 복구활동의 주축은 의항교회였다. 이 교회 이광희(59) 목사는 기독교계 자원봉사를 이끌었던 한국교회봉사단의 현장 상황실장 노릇을 했다.

    취재팀이 찾은 2월 하순, 의항리는 유령마을처럼 황량하고 적막이 감돌았다. 그나마 마을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의항교회 건물이었다. 외관이 품위 있어 보였다. 마을 주민의 3분의 1인 100여 명이 이 교회에 다닌다고 한다. 교회에서 만난 이 목사는 주민 건강 얘기부터 꺼냈다.

    “사고 당시 위장내시경 전문인 서울기쁨병원 직원이 달려와 기름제거 작업을 도왔다. 우리 교회에서 이들에게 방제복과 마스크, 장갑 등 장비를 제공했다. 기름냄새가 어찌나 심하던지 많은 주민이 메스꺼움을 호소했다. 원장이 서울 교회의 집사였는데 ‘마을사람들이 원인 모르게 아파한다’는 내 말에 주민 80여 명에게 무료로 내시경 검사를 해줬다. 대장 내시경 검사 결과 많은 주민에게서 용종이 발견됐다. 마을 이장은 위암 3기로 판명 나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폐암 초기로 판명돼 삼성병원에서 수술받은 주민도 있다. 사고 이후 암 환자가 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목사는 사고 당일인 2007년 12월 7일 오후, 시장 보려고 읍내에 나가다가 숨이 막힐 듯한 독한 냄새에 차를 잠시 세웠다. 차 기름통에는 이상이 없었다. 그날 밤 TV에서 9시 뉴스를 보고 사고가 난 걸 알았다. 다음 날 아침 바다에 나가 보니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기름은 제방 입구까지 밀려왔다. 해변에 있는 돌과 모래가 전부 시커멓게 변했다.

    이 목사는 인근 전북 익산의 군부대 부대장에게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장병 200명이 투입돼 한 달간 방제작업을 했다. 기름이 땅속 어디까지 스며들었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포클레인과 트랙터로 해변 모래바닥을 여러 차례 갈아엎었다. 주민은 주로 썰물 때만 작업했다. 기름에 찌든 돌을 세척기로 씻어내고 손으로 닦았다.

    사고가 난 지 닷새쯤 지나 한국교회희망연대 소속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한국대학생선교회도 합류했다. 이들은 의항교회에 임시숙소를 마련했다. 교회는 이들에게 라면과 커피를 제공했다. 군포제일교회에서는 밥차를 보내줬다. 20여 일 후에는 한국교회봉사단이 발족돼 희망연대를 흡수했다. 봉사단은 바닷가 쪽에 대형 천막을 쳤다. 사랑의 교회에서는 119팀 소속 10명을 파송했다. 일반인 자원봉사자도 꾸준히 늘었다. 매일같이 관광버스 수십 대가 마을에 들어찼다. 하루 평균 1500명이 다녀갔다.

    삼성의 ‘삼’자도 못 꺼내는 험악한 분위기

    “삼성은 책임 다하라”

    의항교회 이광희 목사.

    삼성그룹도 나섰다. 삼성그룹 직원을 태운 버스가 나타나자 주민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섰다. 삼성의 ‘삼’자도 못 꺼내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삼성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피해지역에 있는 마을들과 자매결연을 한 후에야 주민의 마음이 풀어졌다. 삼성그룹은 의항리에 마을회관을 지어주고 냉장고와 에어컨, 세탁기를 들여놓았다. 명절 때는 집집이 쌀 10kg씩을 돌렸다. 주민은 삼성그룹에 공장과 해상에버랜드 조성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목사의 말이다.

    “주민은 삼성에 대한 기대를 거의 포기한 상태다. 더는 뭔가를 받아낼 힘도 없다. 그저 해주면 감사할 뿐이다.”

    고기가 안 잡히고 굴 양식장이 철거되자 주민은 대부분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생계를 비관해 목숨을 끊는 사람도 나타났다. 2008년 1월 70대 노인이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일주일 뒤엔 다른 마을에서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다시 일주일 뒤에는 50대 남자가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했다. 태안읍내에서 횟집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지난해 12월 7일 한국교회봉사단은 의항교회에서 기름유출 사고 4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교회 입구에 기념비를 세우고 마당 한쪽에 ‘한국교회 서해안 살리기 사료전시관’을 마련했다. 이 목사의 안내로 전시관을 둘러봤다. 피해 현황 및 교회의 봉사활동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당시 사용했던 기름 묻은 방제복과 장화, 삽, 양동이 등 갖가지 작업 도구와 더불어 유출된 원유와 기름 묻은 흙, 자갈, 모래도 진열해놓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해변을 찾았다. 주변 펜션과 민박집은 폐가처럼 낡아 보였고 인기척이 없었다. 조개껍데기가 드문드문 널린 해변에서 기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모래와 자갈은 말끔했고 물도 맑았다.

    “밥사발에 기름 엎어놨으니 어떻게 먹나. 많이 복원됐지만 수산물 고갈이 문제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관수(61) 씨가 울분을 쏟아냈다. 그는 2007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이장을 지냈다. 복구 작업이 마무리돼 가던 2008년 5월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근해에선 아예 고기가 안 잡힌다. 그 많던 도다리, 광어가 사라졌다. 부화도 안 된다. 횟집들은 전라도 군산이나 목포에서 생선을 가져온다. 굴도 마찬가지다. 꽃게도 배 타고 한 시간 나가야 잡힌다. 주꾸미도 씨가 말랐다. 전어와 해삼은 3분의 1밖에 안 잡힌다.”

    증빙자료 없어 배상 못 받아

    “삼성은 책임 다하라”

    의항2리 전 이장 김관수 씨.

    지난해 가을 갑자기 꽃게가 많이 잡혔다. 삼성에서 꽃게를 방류한 덕분이다. 그의 얘기대로라면 태안은 겉으로는 멀쩡해졌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었다.

    “2008년 추석 때 꽃게를 잡아 이웃에게 돌렸다. 10여 명이 먹었는데 다들 설사를 해 병원에 입원했다. 국토해양부는 관광 홍보 차원에서 먼바다에서 잡아온 것만 갖고 아무 문제 없다고 발표하는데, 언제 어떤 질병이 발생할지 모른다. 주민의 3분의 2가 혈압약을 먹는다. 2009년부터 굴이 사라진 자리에 조개가 나온다. 그런데 유막이 발견된다.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사해야 하는데 안 한다. 먹지 말라고 하면 생계유지가 힘들고, 먹어도 된다고 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다. 토질검사, 수질검사를 해야 하는데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지장을 줄까 봐 안 한다.”

    그는 주민과 배상금액을 놓고 마찰을 빚는 IOPC의 처사에도 분개했다.

    “남 밥그릇에 기름 엎어놓은 놈들이 ‘배상을 받으려면 판매실적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영수증이 어디 있나. 그런 사고가 터질 줄 알았다면 영수증을 모아놓았겠지만…. 카드전표를 요구하는데 여기 펜션은 대부분 현금장사다. 굴 양식업자는 대부분 증빙자료가 없어 배상을 못 받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7일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과 경기 과천시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태안에서 올라간 버스만 40대였다. 집마다 한 사람씩 동원했다고 한다.

    “시위해도 삼성은 콧방귀도 안 뀐다. 정부도 주민 편이 아닌 것 같다. 강하게 개입하면 될 텐데 안 한다. 1000억 원을 피해자가 나눠가지면 몇 푼이나 되겠나. 회사 사정이 어려워 그것밖에 못 내놓는다는데 우리는 그보다 훨씬 어렵다. 정말 너무 힘들다고 호소하고 싶다.”

    오후 4시경, 시골 항구는 을씨년스러웠다. 바람이 불고 갈매기가 깍깍거렸다. 가게와 식당이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사람의 그림자를 찾기 힘들었다. 어선과 보트 수십 척이 부두에 묶여 있었다.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이남규(70) 씨에게 다가갔다. 이 지역에서 40년 이상 고기를 잡아왔다는 그는 인건비를 아끼려고 아내와 함께 일한다.

    “한 번 나가면 수십 kg씩 잡았는데 지금은 5kg도 못 잡는다. 요즘은 안 나간다. 기름값도 안 되기 때문이다. 사고 나기 전에는 하루에 1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겨울엔 굴로 벌었다. 한 철 수입이 500만 원은 됐다. 그런데 굴양식장이 철거되고 보상금은 한 푼도 못 받았다. 배 가진 사람은 한 척에 90만~100만 원의 보상을 받았다. 그걸 뭐에 쓰나.”

    지난해 12월 삼성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는 이씨는 삼성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했다.

    “하도 갑갑해 시위에 참가했다. 그런데 아무리 외쳐도 들은 척도 안 한다. 주민은 이제 지쳤다. 쌀 그까짓 것, 요즘 굶는 사람은 없지 않나. 괜히 주민 감정만 상하게 만든다. 삼성은 책임만큼 보상해야 한다.”

    “삼성은 책임 다하라”

    태안군유류피해대책위연합회가 있는 건물.

    항구에서 나오는 길에 수산물 창고에 들렀다. 도매업자인 김현(38) 씨의 가게였다. 각종 물고기를 대형 고무대야에 담아놓았는데 특히 간자미가 눈에 띄었다. 요즘이 제철이란다. 코고동이라고 부르는 바다달팽이도 인상적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엔 배 한 척이 나가 500~600kg을 싣고 돌아왔는데 요즘은 100~200kg으로 줄었다고 한다.

    “어획량이 감소하니 도소매업자 수입도 줄었다. 한 시간 이상 나가야 안심할 수 있으니 근해를 다니는 작은 어선의 피해가 크다. 멀리 나가는 큰 배는 인건비 부담이 만만찮다. 고기가 내해로 들어와 산란해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된다. 아직도 해안가 바닥을 파면 기름이 나온다.”

    해 질 무렵 태안읍내에 자리한 태안군유류피해대책위연합회(이하 연합회)에 들렀다. 건물 외벽에 ‘정부와 삼성은 태안피해주민의 아픔을 더 이상 외면 말라’ ‘환경을 복원하라’ ‘지역경제를 되살려라’ 따위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런 연합회가 피해지역 11개 시군마다 구성됐다. 태안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인 만큼 태안군연합회장이 서해안총연합회장을 겸한다. 연합회는 지난해 10월 24일부터 40일간 서울 한남동 이건희 회장 집과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였다. 문승일(47) 연합회 사무국장은 강한 어조로 삼성을 성토했다.

    “기름유출 사고로 지역경제가 죽었다. 관광객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누가 봐도 삼성 책임이 크다. 법원 판결로도 인정되지 않았나. 그런데 삼성은 사고 당사자이면서도 글로벌기업답지 않게 책임을 회피한다.”

    지난해 12월 7일 시위 이후 연합회와 삼성중공업은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12월 23일 첫 모임을 갖고 올해 2월 3일 두 번째로 만났다.

    “삼성중공업 전무가 4년 만에 사과했지만 대화에 진전이 없다. 기금 증액이 핵심인데, 우리는 5000억 원을 요구하고 삼성은 1000억 원 이상은 못 내놓겠다고 한다. 회사 형편상 1000억 원밖에 못 준다는데 중공업이 지난해 낸 흑자만 8000억 원이다. 최근 몇 년간 연평균 6137억 원의 흑자를 냈다.”

    문 국장은 사고가 나기 5개월 전인 2007년 7월부터 배 사업을 벌이고 횟집을 경영했다. 그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가 난 후 다 망했다. 사고 날 줄 알았다면 사업을 안 벌였을 거다. 한이 맺혔다.”

    연합회와 한 건물에 있는 태안군 유류피해대책지원과의 전강석 과장은 “군은 주민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연합회 측 주장을 거들었다.

    “주민은 돈도 돈이지만 기업 유치를 원한다. 지역경제를 회복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업을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원론적인 얘기만 한다. 그룹 차원에서 대화에 응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피해지역 주민 건강 적신호

    유전자 손상 가능성, 천식·고혈압 발병률 높아져


    “삼성은 책임 다하라”
    태안읍내에서 서산 방면으로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보건의료원이 있다. 환경부 관할인 태안환경보건센터(이하 센터)는 이 건물 3층에 있다. 현관에 들어서자 3차 주민건강검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기간은 2월 7일~3월 16일, 검진대상은 1000명이었다. 의항1, 2, 3리 주민도 포함됐다. 1차 건강검진은 2009년, 2차 검진은 2010년에 실시했다.

    2009년 12월 7일 센터는 기름유출 사고 2주년을 맞아 ‘중·장기 건강영향조사 1차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피해를 입은 태안 해안가 주민은 다환방향족 탄화수소(PAHs)에 많이 노출됐다. PAHs는 미국 환경보호청이 우선감시오염물질로 지정한 유해물질. 해안가 주민은 일반인보다 PAHs에 따른 유전물질 손상지표가 4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 손상 위험이 높다는 뜻이다. 또 천식 발병률도 내륙지역보다 2배 높았다. 이는 환경오염이 심한 대도시 공단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와 관련해 진태구 태안군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에 직접 관련이 있는 기업(삼성)은 피해 주민의 건강 문제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2010년 12월 16일 태안군 주민을 상대로 건강영향조사 1차 최종결과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피해지역 주민에게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가능성이 확인됐다. 또한 방제작업 참여 기간이 길었던 주민일수록 알레르기 증세가 심하고 고혈압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은 “사고 이전에 비해 암 환자가 늘고 각종 질병이 증가한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호소했다.

    2010년 실시한 2차 건강검진 조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3차 검진은 1, 2차 검진을 받았던 사람에 대한 추적조사라고 한다.



    원칙 고집하는 삼성

    “1000억 원 이상은 힘들다”


    삼성중공업은 2008년 2월 1000억 원을 기름유출 사고 피해지역에 발전기금으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주민에게 직접 보상하지 않고 정부에 낸다는 뜻이었다. 삼성중공업 측은 기금 출연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액수가 적다며 피해주민이 반발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이를 의식해 기금을 수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1000억 원은 2008년 회계처리를 마쳤기 때문에 언제든 집행 가능하다고 한다.

    직접 보상이 아닌 기금 출연 형식을 택한 데 대해 이 회사 홍보실 관계자는 “IOPC에 이중배상금지 조항이 있다. 우리가 주민에게 직접 보상하면 IOPC가 배상금에서 그 금액만큼을 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논란이 되는 발전기금 액수와 관련해 “1000억 원은 법적 책임과 별개로 도의적 책임을 다하려고 내놓은 것으로, 경영 여력을 감안한 금액이다. 주민 처지를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지만, 현실적으로 증액은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국제법상 피해배상은 과실 여부를 떠나 유조선이 부담하게 돼 있다”며 삼성중공업에 배상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삼성중공업은 1000억 원 출연 약속과 별개로 지역경제 활성화, 사회공헌활동 등에 지금까지 420억 원 상당을 지출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태안사랑상품권 구입 △지역 농산물 구입 △18개 마을과의 자매결연 △태안지역 고등학생 장학금 지원 △피해지역 순회 의료봉사 △치어, 종패(씨조개) 방류같은 어민 수익증대 사업 등이다.

    한편 삼성그룹 관계자는 “서해안 기름사고는 중공업 이슈지, 그룹 이슈가 아니다”라며 “그룹 차원에서 특별히 고려하는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그룹은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가 끝난 직후인 2008년 4월, 1조 원에 달하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을 실명 전환한 후 세금을 뺀 나머지 금액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돈의 구체적 용도는 정해지지 않았다. “기름유출 사고 피해지역 발전기금을 증액하는 게 ‘유익한 일’이 될 수는 없는가”라는 질문에 그룹 관계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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