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4

2012.02.13

인터넷 악성 댓글 더 극성 부릴라

말 많고 탈 많은 ‘실명제’ 사실상 폐지 수순…‘자유만큼 책임’ 느껴야

  • 문보경 전자신문 부품산업부 기자 okmun@etnews.co.kr

    입력2012-02-13 11: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게임회사가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포기했다.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사고 때문이다. 글 쓴 사람의 실명을 확인하려고 쌓아뒀던 개인정보가 엉뚱하게 해커의 먹잇감이 돼버린 것이다. 인터넷 공간을 정화하기보다 되레 피해가 발생한 탓에 결국 서비스 사업자가 줄줄이 주민등록번호 수집 및 저장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도 지난해 말 이명박 대통령에게 2012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 실명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포기가 아닌 재검토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상 폐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요 포털사이트에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 가능하도록 로그인을 한 후에야 글을 쓸 수 있게 한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이렇게 폐지 수순을 밟는 중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도입한 배경을 살펴보자.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을 무기로 함부로 공인을 비방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잦아졌다. 비방 글에 괴로워하던 연예인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인터넷의 익명성이 도마에 올랐다. 2007년 7월 급기야 정부는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글이 문제가 될 경우 글쓴이를 쉽게 추적할 수 있다. 정부는 실명이라는 장치 때문에 누리꾼이 자신의 글에 책임감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표현의 자유 억압에 주민번호 유출

    이 제도는 10만 명 이상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려면 먼저 로그인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려면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개인정보를 밝히고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2008년만 해도 적용 대상은 37개 사이트에 불과했으나 2009년에는 153개, 2011년에는 146개로 확대됐다.



    그런데 문제는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악성 댓글을 줄이는 데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방통위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한적 본인확인제 대상 사이트에서도 악성 댓글은 여전했다. 네이트판 이슈토론 게시판은 악성 댓글 비율이 9.8%에 달했으며, 다음 아고라 정치토론방에서도 악성 댓글이 8.5%를 차지했다. 게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런 규제를 받지 않아 형평성 논란도 불거졌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대상이 아니어서 오히려 국내 기업만 역차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우려도 낳았다. 강제적인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해 포털사이트 사업자들이 반발하는 사태도 일어났다. 구글은 2009년 한국 유튜브의 댓글 기능을 없애는 것으로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거부했다. 이 사건으로 한국의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지난 5년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인터넷환경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폐지 수순을 밟게 됐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이어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도 가입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모두 폐기키로 했다. 가장 먼저 주민등록번호 폐기 방침을 밝힌 SK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해 여름 3500만 명의 개인정보를 해킹당한 후 이 같은 조치를 내놓았다. 1320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당했던 넥슨 역시 앞으로 새로운 멤버십 제도를 통해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더욱이 SNS가 활성화하면서 소셜 댓글을 이용해 본인 인증을 거치지 않고도 댓글을 올릴 수 있어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주민등록번호에 기반을 둔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더는 운영할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또 다른 규제 등장할 가능성

    인터넷 악성 댓글 더 극성 부릴라
    방통위가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재검토하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차원이라기보다 규제 자체가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인터넷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제도 개선을 추진키로 했다”며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국내 포털사이트에만 적용하는 등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관계부처 간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장단점과 인터넷환경 변화, 기술 발전 등 제반 사항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 제도 개선 및 보완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지도 곧 판가름 날 전망이다. 몇몇 누리꾼은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로그인을 해야 하는 상황에 반발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위헌 여부에 대한 판결을 조만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쟁점은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인격권 보호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개인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마련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권리가 충돌하는 데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늦어도 올 상반기에는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제한적 본인확인제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수단도 존재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시간으로 아이피(IP)를 추적할 수 있어 실명제가 없어도 악성 글에 대한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편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찬성하는 측은 익명성을 전제로 한 인터넷 게시판 이용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할 위험이 높다는 데 주목한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는 어떤 형태로든 변화하겠지만, 인터넷 환경에서 악성 댓글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규제가 등장할 소지가 크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페이스북이나 구글도 익명성을 무기로 한 악성 댓글을 비판한다. 다만 이들은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강제적으로 입력하게 하는 규제를 말하지 않을 뿐이다. SNS 같은 곳에서 자신이 공개하는 정보가 거짓이 아니어야 하며, 댓글을 올린 이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구글은 지난해 자사 SNS 구글플러스 회원 중 실명을 쓰지 않은 사용자의 계정을 일시 정지해 논란을 낳았다. 에릭 슈미트 회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SNS에선 반드시 실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환경에서 획일화한 규제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여전히 본인확인을 주장하는 방통위가 제한적 본인확인제 재검토에 들어간 것도 이 같은 이치에서다. 결국 해법은 인터넷 공간에 대한 의식 향상이라는 것이 공통된 목소리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