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4

2012.02.13

노무현재단이 끌어주고 ‘대망론’이 밀어주고

서서히 모습 보이는 ‘문재인의 사람들’… 이해찬·이호철과 부산파 인맥이 든든한 힘

  • 정연욱 동아일보 논설위원 jyw11@donga.com

    입력2012-02-13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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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중반 문재인(59) 민주통합당 상임고문과 모 여성복업체 대표라고 알려진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흘러 다녔다. 이 업체의 주식은 즉각 ‘문재인 테마주(株)’로 떴다. 업체 대표는 그 즉시 주식을 팔아 6억 원 가까운 현금을 챙겼지만, 사진 속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주가는 폭락했다. 단 한 번의 테마주로 일확천금을 노린 얄팍한 상술(商術)을 탓해야 할까. 어쨌든 ‘문재인’ 이름 석 자의 영향력을 확인해준 일화였다.

    서병수, 강삼재 그리고 박원순

    지난해 말 기성 정당을 뒤흔들며 정국을 강타한 ‘안철수 바람’이 해가 바뀌면서 주춤해지는 반면 ‘문재인 돌풍’은 거세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월 30일부터 2월 3일까지 375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고문은 비록 오차한계 범위이긴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앞질렀다. 지지율이야 수시로 출렁거리는 것이라 해도 문재인 바람이 단순한 거품에 그치지 않으리라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순간의 바람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는 대선 정국에서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레 ‘문재인의 사람들’에게 쏠린다.

    경남 거제에서 태어나 부산 영도에서 자란 문 고문은 부산 경남고(25회)와 경희대 법대를 다니며 청년기를 보냈다. 문 고문의 절친한 고교 동기는 서병수 새누리당 의원이다. 친노(친노무현) 좌장인 문 고문과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서 의원의 각별한 인연은 아이러니하다. 문 고문은 서 의원을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점잖았다”고 회상하며, 서 의원은 문 고문을 “의리 있고 밝은 성격이라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평가한다. 두 사람은 올해 대선 정국에서 숙명적으로 일합을 겨루게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통했던 박종웅 전 의원을 비롯해 최철국 전 의원, 박맹우 울산시장도 문 고문의 고교 동기다.

    노무현재단이 끌어주고 ‘대망론’이 밀어주고
    ‘강총’으로 불리던 강삼재 전 한나라당 의원은 문 고문과 경희대 동기다. 강 전 의원은 총학생회장, 문 고문은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함께 학생운동을 했다. 1975년 4월 11일 집회에서 총학생회장이던 강 전 의원 대신 문 고문이 집회를 주도하는 바람에 구속돼 제적당했다. 강 전 의원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고문과 학창시절에 찍었던 흑백사진을 공개하며 ‘우정은 영원불변’이라고 적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한 야권 일각에서 부산 경남권 공략을 위해 두 사람 간 정치적 제휴를 주선하는 물밑 움직임이 감지된 적이 있다. 우정은 변하지 않는다 해도 정치 행보를 같이 할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만만찮다.



    증권가에서는 경영자가 경희대 동문회장을 맡은 기업의 주식이 ‘문재인 테마주’로 각광받고 있으나 문 고문과의 직접적인 인연은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다.

    영원한 ‘노무현의 그림자’?

    문 고문은 사법시험 22회 출신으로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으나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참여연대의 산파역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 고문의 사시 및 연수원 동기다. 문 고문은 지난해 박 시장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의 시장후보 단일화에 성공하자 곧바로 박 시장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만남을 주선하며 야권후보 단일화 조율에 나섰다. 문 고문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 한 전 총리와 함께 박 시장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문 고문과 박 시장은 부끄럼을 많이 타고 남 앞에 잘 나서지 못한다는 점도 닮았다.

    문 고문은 얼마 전 SBS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했다. 자신에게 붙은 여러 별명이 거론되자 그는 “그중에 ‘노무현의 그림자’가 그래도 낫다”고 말했다. 자신이 늘 간직하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와 그의 첫 국회의원 시절 명함도 꺼내 보였다.

    그랬다. 문 고문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로서 노무현의 그림자를 자처했다. ‘노무현의 사람들’은 있어도 그동안 ‘문재인의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유다. ‘정치 혐오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던 문 고문이 정치 전면에 나선 것 역시 노 전 대통령의 강권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한 게 시발점이었다.

    ‘문재인 대망론’의 진원지는 친노 세력의 맏형을 자처하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노 전 대통령과 각별했던 이 전 총리는 문 고문과 함께 ‘혁신과통합’을 이끌며 민주통합당을 출범시킨 주역이다. 이 전 총리는 최근 안 원장의 지지율이 주춤하자 “안철수 (영입) 없이 해볼 만하다”며 문재인 카드에 다시 불을 지피고 나섰다.

    문 고문을 실질적으로 돕는 그룹 좌장은 ‘영원한 후배’인 이호철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다. 경남고 선후배 사이라는 특수성도 있어 청와대 근무 시절에도 함께 호흡을 맞췄다. 당시 격무에 시달린 두 사람은 나란히 치아치료를 받기도 했다. 문 고문은 사석에서 “그래도 선배인 내가 고칠 치아가 더 많았다”는 농담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2010년 한나라당의 아성인 부산시장 선거에서 김정길 민주당 후보가 44.57%라는 높은 득표율을 올린 배경에는 문재인-이호철 라인업이 큰 힘을 발휘했다는 관측이 많았다.

    노무현재단은 문 고문의 주가 상승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4개월 만인 2009년 9월 설립된 노무현재단은 친노 세력의 구심점 노릇을 하는데, 회원만 20만 명에 달한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정연주 전 KBS 사장,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임원을 맡고 있다. 노무현재단은 현재 전국 조직을 만들며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재단의 상징성을 업고 문재인 역할론에 탄력이 붙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친노 세력의 싱크탱크인 ‘한국미래발전연구원’에 속한 노무현 정부 인사들도 문 고문의 잠재적 우군이다.

    문 고문이 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정윤재 전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이 문 고문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적이 있다. 문 고문이 총선 지역구로 부산 사상구를 택하고 지역활동에 돌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7대 총선에서 사상구에 출마한 바 있는 정 처장의 조언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정 처장이 저축은행 비리로 구속되면서 문 고문도 적잖은 타격을 입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문 고문과 함께 노무현재단에 속해 있던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 안영배 전 국정홍보처 차장도 그의 지원세력이다.

    이른바 친노 ‘부산파’ 인맥은 정윤재 전 사무처장의 공백을 메워줄 문 고문의 든든한 우군이다. 그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맺은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최인호 민주통합당 부산시당위원장, 이정호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을 비롯한 과거 청와대 인맥이 주축이다. 이번 총선에서 경남 김해을 출마를 선언한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냈다.

    문재인 대망론이 확산되면서 그를 적극적으로 돕는 실무 스태프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먼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정무기획비서관을 지낸 윤건영 씨가 그를 밀착 수행하고 있다. 정무통인 만큼 정무적인 조언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고문의 카피라이터로 활약하는 정철 씨는 부산에 민주통합당 출사표를 던진 문 고문과 문성근, 김정길, 김영춘 후보를 함께 아우르는 ‘바람이 다르다’라는 공동 카피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패키지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홍보전략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의 초대 의원비서를 지냈던 황이수 전 대통령행사기획비서관도 최근 부산에 내려와 문 고문을 적극 돕는 것으로 전해진다.

    노무현재단이 끌어주고 ‘대망론’이 밀어주고
    실무 스태프 눈에 띄는 움직임

    문 고문이 속한 법무법인 부산은 문재인 대망론의 배후기지다.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는 문 고문과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일하면서 부산·경남지역 민주화운동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인연을 맺어온 사이다. 부산 서구 출마를 준비해온 정 변호사는 이번 총선 출마를 접고 문 고문을 지원하는 데 전력투구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팬클럽 ‘문재인 변호사님을 사랑하는 모임’(문사모)의 활발한 활동도 문 고문에게 힘이 되고 있다.

    이외에 부산지역 일부 법조인의 후원도 예상된다. 법무법인 부산 소속 김외숙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인들은 오랫동안 문 고문과 교분을 맺어왔다. 문 고문과 교분이 있는 한 변호사는 “문 고문이 움직이면 도와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였던 송기인 신부는 문 고문의 정신적 멘토이기도 하다. 송 신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문재인과는 가끔 점심을 같이 한다”며 돈독한 관계임을 내비쳤다. 송 신부 외에도 부산·경남지역의 민주화 원로세대는 대부분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쌓아온 문 고문에게 우호적인 편이다.

    문재인 바람이 거세지면 이 지역에서 각개 약진하던 야권 세력 내부에서도 지각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돕던 일부 인사도 부산 정서를 감안할 때 문 고문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앞으로 정국 추이를 지켜보며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노 세력은 현재 정치권에서 단일 대오로 뭉친 상태가 아니다. 정치적 입지가 다양하다. 문재인 바람이 불고 있지만 아직은 서로가 여러 갈래로 흩어져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탐색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문 고문 역시 지금 시점에서 노무현 인맥을 천하 통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손학규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왼팔이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손 전 대표의 정체성 혼란을 비판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독자적으로 국민참여당을 만든 다음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합쳤다.

    노무현재단이 끌어주고 ‘대망론’이 밀어주고
    친노 세력 완전 통합?

    노무현재단이 끌어주고 ‘대망론’이 밀어주고
    호남권의 친노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당청 갈등의 주 타깃을 문 고문에 맞췄던 악연을 떠올리기도 한다. ‘문 고문이 현실정치에 맞지 않으므로 정국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취지다. 문 고문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시절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영남권만 챙겨주느냐는 비판이 제기되자 민정수석실 근무자의 지역별 현황을 뽑아 인구 대비 비율에 맞춰 재조정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린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무소속으로 있던 김 지사는 이달 중으로 민주통합당 입당을 예고하며 본격적인 정치 행보에 나설 태세다. 김 지사 주변에서는 4·11 총선에서 부산 경남권의 선전을 지렛대 삼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까지 뛰어드는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누군가를 중심으로 친노 세력의 단일화를 도모하기보다 각개 약진을 해 당당하게 평가받는 게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정치 인생을 살아온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대선 레이스를 준비 중이다. 지금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아성을 뒤집는 부산판 드라마에 필요한 정치적 제휴 세력을 모으려고 문 고문과 공동 전선을 펴지만, 마냥 조력자에 머무를 것 같지는 않다. 김 전 장관은 평소 “야권의 모든 대선주자 경선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 정치적 신념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문 고문이 ‘큰 그림’을 완성하려면 먼저 친노 진영의 통합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야권 주류로 부상한 친노 진영이 문 고문을 중심으로 뭉친다면 문재인 대망론에 더욱 탄력이 붙을 공산이 크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각개 약진하던 친노 진영도 문 고문을 돕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그 첫 시험대는 4·11 총선에서 문 고문이 주도하는 민주통합당의 부산 경남권 선거 결과가 될 것이다. 총선 성적표에 따라 문재인 바람이 폭풍으로 커질지,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칠지 판가름 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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