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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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배에 쏜 범법자 vs 난 사법 테러 피해자”

영화 ‘부러진 화살’ 사건 진실 논란 가열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1-30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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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 배에 쏜 범법자 vs 난 사법 테러 피해자”
    1월 19일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이 설 연휴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는 2007년 재임용 탈락 사건 항소심에서 패소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조교수가 담당 재판장인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 박홍우 부장판사(현 의정부지방법원장)에게 ‘석궁 테러’를 가한 이야기를 담았다. 테러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4년간 복역하고 2011년 초 만기 출소한 김씨를 지난해 12월 말과 올 1월 초, 두 차례 만났다.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이던 김씨는 1995년 대입 본고사 수학 문제에서 오류를 발견했다. 김씨는 “문제의 가정이 틀렸으므로 수험생 전체에게 15점 만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학교는 “오류 논쟁으로 채점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이후 김씨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으며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고 이듬해 조교수 재임용에도 실패했다.

    1996년 말 뉴질랜드로 이민 간 후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생활한 김씨는 2005년 3월 귀국해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은 “입시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고, 서울고등법원 민사2부 역시 항소를 기각했다. 항소 판결 나흘 뒤 김씨는 박 부장판사의 집에 석궁을 들고 갔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씨는 박 부장판사의 아파트 1층 계단에서 퇴근하던 박 부장판사에게 70cm 길이의 검은색 철제 석궁을 겨눴고, 두 명이 1m 내외 거리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중 석궁에 장착했던 화살 한 발이 튕겨나갔다.

    확정 사건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는 ‘석궁 사건 재판’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지적한다. 먼저 박 부장판사가 화살을 맞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사건 발생 보름 후 박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순간 내 왼쪽 배에 화살이 꽂힌 것을 발견하고 화살을 뽑았던 기억이 난다”고 진술했다. 대법원 역시 화살이 박 부장판사 복부에 박혔다는 점을 인정했다.



    당시 화살을 최초 수거한 경비원은 경찰 조사에서 “화살이 부러져 있었고 끝이 뭉툭했다”고 진술했다. 날카로운 화살이 배에 박혔다 뽑혔는데 끝이 뭉툭했다는 점은 석연치 않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송파소방서의 구급활동 일지에 ‘활이 복부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고 함’이라고 적힌 것 역시 박 부장판사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다.

    박 부장판사는 왜 처음에 “화살이 배를 맞고 튕겼다”고 했다가 후에 “화살이 배에 박혀 손으로 뽑았다”고 말했을까. 이에 대해 박 부장판사는 답변을 거부했다. 의정부지방법원 측은 “이미 사실관계가 대법원에서 밝혀졌고 확정까지 된 사건인데 이제 와서 다시 ‘화살에 맞았느냐, 안 맞았느냐’고 묻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단순히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화살이 발사됐을 뿐입니다. 저는 화살을 쏠 생각도 없었고 쏘지도 않았습니다.”

    김씨에 따르면 그는 범행 현장에 10개 남짓한 석궁 화살을 갖고 갔다. 그중 3개는 허리춤에 차고 나머지는 아파트 앞 화단에 뒀다. 허리춤에 찬 3개 화살 중 1개를 석궁에 장착했다. 현장에서 그가 소지한 화살과 화단에 놓은 화살 전체를 경찰이 압수해갔다. 검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화살 3개와 화단에서 발견한 화살 6개를 증거물로 제출했는데, 이 화살 중에는 경비원이 진술한 것처럼 ‘끝이 뭉툭하고 뒷부분이 부러진 화살’은 없었다. 범행에 쓰인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갔을까.

    “처음 박 부장판사한테 부러진 화살을 받은 사람은 경비원이에요. 화살 등 증거물은 경찰이 받아서 검찰로 넘겼겠죠. 부러진 화살의 행방은 저도 모릅니다. 발사된 화살을 통해 제가 정말 살해할 의사가 있었는지, 박 부장판사가 얼마나 공격당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정말 부러진 화살이 사라진 거라면 현장에서 발견한 화살이 2개여야 하는데, 현장에서 발견한 화살은 멀쩡한 3개입니다.”

    석궁 테러 사건 1심 재판을 맡은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형사부는 “부러진 화살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부러진 화살이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증거가 조작됐다고 단정할 수 없고, 화살 9개는 범행 현장에서 압수된 것이므로 다른 증거와 종합해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화살 배에 쏜 범법자 vs 난 사법 테러 피해자”
    김씨에게 석궁 테러를 가한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나한테 ‘왜 석궁을 가져갔느냐’고 따지는 사람만 보면 화딱지가 난다”며 오히려 얼굴을 붉혔다. 그에게 “왜 하필 박홍우 부장판사였느냐”고 묻자 “그 사람 개인에 대한 증오라기보다 나랑 마주친 사람이니까 선택했다. 박홍우 부장판사가 운이 나빴던 것이고 개인적 원한은 없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억울한 상황이었더라도, 석궁을 들고 간 것 자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김씨는 이에 대해서도 당당하기만 했다.

    “제가 석궁을 들고 가기까지 안 한 게 없어요.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제 나름대로 분석해 인터넷에도 올리고 정부 기관에 진정서, 탄원서도 숱하게 보냈어요. 모든 합법적 구제수단을 다 이용했는데도 방법이 없을 때는 국민이 저항해야 합니다. 헌법 37조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습니다. 만약 국가가 부당하게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면 4·19혁명같이 국민이 저항할 수 있는 거예요.”

    그에게 “김 전 교수라는 개인이 박 부장판사 개인의 신체에 위해를 가한 것은 명백한 범법 아닌가”라고 물었다.

    김씨 “사법부 엉터리 알려졌다”

    “제가 언제 박 부장판사한테 해를 입혔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화살을 쏘지도 않았고 맞지도 않았습니다. 단순히 몸싸움하다가 찰과상 정도 생겼고, 그 정도면 사과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 4년이나 징역 살 일입니까. 사건 직후 법원에서 ‘사법부 테러’라 정의해두고 재판을 시작했어요. 저는 테러 가해자가 아니라 사법부 테러 피해자입니다.”

    그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영화는 논란을 낳고 있다. 논객 진중권 씨는 1월 22~24일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석궁 사건은 사법부 비판이라는 메시지에 어울리지 않는 사건”이라고 지적하며 김씨 변호인인 박훈 변호사와 트위터 설전을 벌였다. 김씨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진씨의 견해는 이렇다.

    “당한 판사는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다른 이가 주심을 맡은 사건 때문에 석궁 테러를 당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영화로 한 번 더 명예를 더럽히고…. 이게 자칭 ‘정의의 사도’들께서 싸지르고 다니시는 ‘정의’질입니다.”

    김씨에게 “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느냐”고 물었다.

    “네, 봤죠. 좋았어요. 제가 석궁을 들고 간 이유가 국민에게 ‘사법부도 법을 위반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거잖아요. 영화를 통해 드디어 우리나라 사법부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려졌어요.”

    그는 과연 외골수 말썽쟁이일까, 아니면 사법 피해자일까. 분명한 것은 영화는 가공된 사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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