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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文 정부서 탄력받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

낙후된 전자상가에서 IoT 제조 중심지로 부상… 종로~남산 보행로 구축

文 정부서 탄력받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

文 정부서 탄력받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

서울시는 종로구 세운전자상가를 4차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부활시킨다는 계획이다(위). 옛 현대상가 대지에 들어서고 있는 ‘다시세운광장’(아래 왼쪽)과 세운전자상가 3층 모습. 여기서 시작되는 ‘세운보행교’는 세운상가군 7개 빌딩을 연결한다.[지호영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도시재생을 통한 지역 정비 활성화를 예고한 가운데, 서울시가 추진 중인 도시재생 사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도시재생 사업은 완전 철거 후 정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모습을 유지하면서 낙후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새 정부는 매년 공적재원 10조 원을 투입해 100곳씩 총 500개의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의 재생사업을 지원할 계획이다.

앞서 서울시는 2015년 도시재생 사업 전담조직인 도시재생본부를 출범하고 같은 해 12월 ‘2025 서울시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수립했다. 서울 종로구 세운전자상가(세운상가)를 비롯해 성동구 성수동, 강동구 암사동 일대, 노들섬 특화공간, 남산 예장자락, 성곽마을 재생 등이 서울시의 대표적인 재생사업이다.

5월 11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세운상가를 비롯해 서울시내 주요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안이 대거 통과됐다.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정책이 서울시 사업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철거’ 아닌 ‘재생’으로 상권 보호  

이 가운데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계획’은 오랜 세월 좌초 위기에 처해 있던 세운상가와 그 일대 상권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으리란 기대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는 1970~80년대 ‘전자·전기 산업의 메카’로 불리던 세운상가를 ‘4차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부활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세운상가군은 종로4가 종묘광장공원과 청계천 세운교 사이에 위치해 지리적 이점도 높다.
 
세운상가군(44만㎡)은 종로구 세운상가(가동)에서부터 퇴계로 신성·진양상가까지 약 1km에 걸쳐 일직선으로 늘어선 총 7개 상가를 말한다. 그 사이에 세운상가 나동(아세아전자상가), 청계·대림상가, 충무로 삼풍상가·피제이 호텔 명동 등이 들어서 있다. 서울시는 이 건물들을 지상 3층 높이의 보행데크로 모두 연결해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길을 만들 예정이다. 노후한 데크를 새로 정비하고,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끊겼던 구역에도 새 데크를 만든다. 이처럼 도심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보행로가 완성되면 시민은 물론, 많은 관광객이 찾을 테고 그럼 상권이 다시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이 감돈다.    

사업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데 1단계는 종로~대림상가 구간 정비, 2단계는 삼풍상가~진양상가~남산 구간 정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운상가는 세운상가 가동을 말한다. 그 앞에 있던 현대상가는 지난해 철거돼 현재는 공원(광장)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세운상가 개발 사업은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세운상가와 주변 건물을 다 허물고 새로 짓는 재개발·재건축 방안이 거론됐는데, 결국 철거비용과 보상비 문제로 추진하지 못했다. 또한 서울시가 투입 예산을 어느 정도 회수하려면 새로 짓는 건물을 고층으로 올려야 하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때문에 고도 제한에 걸려 그 역시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이미 ‘철거 바람’이 불기 시작한 세운상가에는 ‘언제 헐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연했다. 입주해 있는 상인들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새롭게 주도하는 재생 사업으로 세운상가와 그 일대 상인들은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건물에  안전상 문제는 없는지 궁금한데, 이에 대해 서울시는 “해마다 건축주들이 자체적으로 안전진단 전문기관에 의뢰해 안전점검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크게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위험 수준에 달한 곳이 나오면 수시로 보수하고 있다. 보행데크 설치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을 시에서 보수했다”고 설명했다.

5월 16일 직접 찾아가본 세운상가는 여기저기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세운상가 가동 앞에 조성 중인 ‘다시세운광장’은 세운상가 3층 보행데크와 연결되는 시작점으로, 경사진 형태의 광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애초 지난해 10월 광장을 개방할 계획이었지만 공사 도중 조선시대 중부관아터 유적이 발견돼 완공이 늦춰지고 있다. 이 유물들은 광장 지하에 조성되는 문화재전시관에서 한양도성 내 최초 현지 보존 방식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文 정부서 탄력받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

8월 완공 예정인 ‘세운보행교’ 조감도.[ 사진제공 · 서울시]

청년 스타트업이 몰고 올 4차 산업혁명 바람

세운상가 건물 양옆으로 설치되는 보행데크에는 전시실과 휴게실, 화장실 같은 거점 공간 30여 개가 컨테이너박스 형태로 들어선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성 있는 팝업 스토어나 디자인 등 사람을 유인할 만한 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광장 대지를 돌아 세운상가 안으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자부품 상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9.9㎡(3평)도 채 안 되는 점포 안에서 컴퓨터 부속품을 납땜하는 나이 지긋한 주인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세운상가는 두툼한 브라운관 TV나 턴테이블, 워크맨, 라디오, 무전기 같은 아날로그 제품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빽판’(불법복제 LP반)과 ‘빨간 비디오’ 등 은밀한 기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1968년 완공된 세운상가는 1층부터 4층은 상가, 5층부터 8층은 주거공간으로 사용된 국내 최초 주상복합타운이다. 건물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덕에 당시 상가에는 슈퍼마켓은 물론 교회, 실내골프장, 피트니스클럽 등이 입점해 있었다. 내부 보일러 시스템과 수세식 화장실,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돼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최신식 건물이었다. 영화배우와 정치인 등 유명 인사가 앞다퉈 입주할 정도로 서울의 명소로 꼽혔다.

1990년대 초반까지 종합전자상가이자 제조공장으로서 호황을 누렸지만 강남 개발 지역, 용산전자상가 등으로 주민과 상인들이 이전하면서 90년대 중반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커피와 쌍화차 등을 판매해왔다는 휴게소 여주인은 “예전에야 호황을 누렸지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상인이 많았다. 지금도 나이 드신 어르신이 점포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상인의 40%가량이 60, 70대”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어르신이 모든 점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다. 2년 전 서울시 재생 계획이 발표된 이후 점차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개방회로’ ‘빠빠빠탐구소’ ‘서울오픈미디어’ 등 젊은 예술가의 작업실이 들어섰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변모한 것이다. 보행데크 정비가 하드웨어적 재생이라면 세운상가에 입주한 상가들의 체질 개선은 소프트웨어적 재생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장기간 비어 있던 상가 곳곳을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공간, 제작과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내주고 있다. 3월 초에는 서울시립대 시티캠퍼스와 씨즈(Seeds), 팹랩서울 등이 들어섰다. 시티캠퍼스는 입주 업체와 주변 상인, 시민을 대상으로 기술, 창업, 인문학 등을 교육할 예정이다. 사단법인 씨즈는 최근 5년간 300여 개의 청년 스타트업을 키워낸 창업지원 전문기관으로 장비 교육, 시제품 제작, 혁신 모델 발굴 등을 담당한다. 기술창업지원 기관인 팹랩서울은 디지털 제조 교육과 제작 공방을 운영한다. 이들은 현재 아세아전자상가 3층 ‘세운SEcloud’와 지하보일러실을 개조해 만든 ‘세운 메이커스라운지’에 입주해 있다.

이한솔 씨즈 청년지원팀장은 “앞으로 이곳은 다양한 청년 스타트업이 들어오고, 사물인터넷(IoT) 등 첨단기술이 적용된 디지털 제조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 상인과도 협업해 상품 개발에서부터 제작, 유통까지 제조업 전 과정을 아우르는 ‘메이커 시티(Maker City)’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세운상가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프로젝트 ‘세운리빙랩 베타버전’이 진행됐다. 세운상가 곳곳에 입주한 청년들이 사무실에서 사용할 공기청정기를 직접 만들고, 팀을 이뤄 다양한 IoT 조명과 오락기기를 제작하기도 했다. 모두 세운상가에서 구한 부품들과 세운상가의 기술 장인들을 멘토 삼아 만든 것들이다. 또한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점자 스마트시계를 만든 한 스타트업은 해외로부터 선주문 400억 원을 수주해 주목받았다. 

이상원 세운상가시장협의회 사무국장은 “청년이 많이 들어오면 상가 전체가 활기를 되찾으리란 기대감이 있다. 여기 상인 중에는 전자, 전기 쪽에 상당한 기술력을 보유한 분도 많다. 이들을 잘 교육시켜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고, 온라인 쇼핑몰 등 요즘 시대에 맞는 유통 판로를 개척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文 정부서 탄력받는 ‘세운상가 재생 사업’

세운전자상가 곳곳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왼쪽). 아세아전자상가 3층에 위치한 스타트업 육성 전문업체 ‘씨즈’는 세운상가 입주를 돕고 있다. [지호영기자]

개발 바람에 부동산가격도 들썩

이러한 기대감 때문에 벌써부터 세운상가 및 주변 부동산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세운상가 점포당 매매가격이 최근 1년 새 30~40%가량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임대료는 점포 규모와 위치에 따라 월 20만~100만 원 선인데, 개발 후 당분간 급등 현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주와 임차인들이 개발 후 일어날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고자 5년간 임대료 상승률을 9%로 제한하는 상생협약을 맺은 덕분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재 세운상가에는 상가 430여 개가 있는데, 상가 주인과 상인들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내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스스로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도 별도 계약서를 만들어 상인과 건물주의 상생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 만약 관련 분쟁이 생기면 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협의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운상가 1층에서 소형생활가전을 판매하는 상인 김모 씨는 “쇠락하던 세운상가의 운명이 단시일 내 바뀌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상인 대부분이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임채성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는 맞춤형 제품 공급이 고객 근거리에 있는 소규모 공장에서 이뤄지는 게 효율적이다. 그런 면에서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세운상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좋은 조건을 갖췄다. 신구세대의 조합은 물론이고, 기존 전기·전자 산업과 첨단기술의 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7.05.24 1089호 (p46~48)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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