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8

2011.05.23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 앗,‘아토피’가 사라졌다

단독 입수 >> LH-분당서울대병원·서울대 실내환경분석센터 공동 연구결과

  • 엄상현 채널A 크로스미디어팀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1-05-23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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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 앗,‘아토피’가 사라졌다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가 아토피 피부염(이하 아토피) 질환 개선에 상당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내 공기 질을 떨어뜨리는 휘발성 유기화합물(TVOC)과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 발생량이 일반 벽지와 바닥재를 시공했을 때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나정임 교수팀과 서울대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 실내환경분석센터 이영규 박사팀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의 의뢰를 받아 2010년 7월부터 올 2월까지 같은 아토피 질환 환자(시험군)를 대상으로 한 공동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최근 밝혔다.

    그동안 실내 공기 질과 아토피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일부 있었지만, 벽지와 바닥재가 실내 공기 질은 물론, 아토피 질환 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임상시험으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연구 보고서는 나 교수팀이 작성한 것과 이 박사팀이 작성한 것 등 총 2건이다. 시험군은 같지만, 나 교수팀은 아토피 질환 환자의 상태 변화를, 이 박사팀은 해당 가구의 실내 공기 질 변화를 각각 조사, 분석했다.

    이 때문에 보고서 제목은 조금 다르다. 나 교수팀 보고서는 ‘친환경 벽지, 바닥재 시공이 아토피 피부염 증상에 미치는 영향’이고, 이 박사팀 보고서는 ‘친환경 마감재 시공에 따른 실내 공기 질 개선 효과 결과 보고서’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비슷하게 나왔다.



    이번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는 모두 30명. LH공사가 공개 모집을 통해 선정했다. LH공사는 친환경 벽지 및 바닥재 업체의 지원을 받아 환자의 집 벽지와 바닥재를 모두 친환경 제품으로 교체했다.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 앗,‘아토피’가 사라졌다
    24명 임상시험 경증보다 중증환자 개선 효과 뚜렷

    나 교수팀은 이들을 대상으로 시공 전과 시공 4주 후, 8주 후, 12주 후 등 총 4차례에 걸쳐 각각 임상 중증도 평가(EASI)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EASI는 아토피 질환 증상 정도를 피부 면적당 염증 분포 면적으로 수치를 매긴 점수다. 이 과정에서 경구 스테로이드제, 경구 사이클로스포린 등 전신 면역억제제를 사용 중인 환자는 제외했다. 결국 5명이 임상시험 참가를 거부하고, 1명이 주택 사정으로 시공이 불가능해 모두 24명이 임상시험에 참가했다. 이들은 임상시험 중에도 보습제, 도포제, 경구 항히스타민제 등의 방법으로 계속 치료를 받았다.

    나 교수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EASI 점수 3 이상인 경중증 환자군(9명)의 경우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로 바꾼 이후 EASI 점수가 현격히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EASI 점수가 시공 전 9.9점에서 시공 4주 후 6.46점, 8주 후 4.07점, 12주 후 3.48점으로 낮아진 것.

    피시험자 또는 보호자가 설문지를 통해 평가한 소양증 변화 결과도 비슷했다. 소양증 지수는 피시험자나 보호자가 가려움증 등을 느낀 대로 말한 것을 점수화한 것. 이를 시공 전후로 비교한 결과, EASI 점수 3 이상인 환자군의 경우 소양증 지수가 시공 전 2.9점에서 12주 후 0.9점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EASI 점수 3 이하 경증 환자군(15명)에서는 통계상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평균 EASI 점수는 시공 전 1.17점에서 시공 12주 후 2.36점으로 오히려 올랐고, 소양증 지수는 2.43점에서 1.8점으로 소폭 하락했다.

    나 교수팀은 최종 결론에서 LH공사의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은 시공 전 EASI 점수 3 이상인 환자군에서 아토피 질환과 소양증이 호전되는 효과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나 교수팀은 이어 “경미한 환자군에서도 가려움증 같은 증상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은 중등도 이상의 아토피 질환 환자는 물론, 비교적 경미한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결론지었다.

    나 교수는 “이번 임상시험에 참가한 인원이 적어 한계가 있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얻었다는 것은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 앗,‘아토피’가 사라졌다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큰 소득

    그렇다면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가 이처럼 아토피 질환 개선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은 이영규 박사팀이 찾아냈다. 임상시험 대상 집의 실내 공기 질 변화를 조사, 분석한 결과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 후 실내 공기 질이 시공 전보다 크게 나아진 것.

    이 박사팀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은 집은 모두 22채. 당초 36채였지만 가구 구입, 측정 시 난방 및 조리기구 사용 등 임상시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유가 발생한 집은 제외했다. 이 박사팀은 임상시험 대상 집의 실내 공기를 시공 전과 시공 2주 후, 6주 후, 10주 후 등 총 4차례 측정했다.

    측정 물질은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자일렌, 스타이렌 등 5개 주요 휘발성 유기화합물(5VOC)를 포함한 TVOC와 포름알데히드, 총부유세균, 이산화탄소 등이다. TVOC와 포름알데히드는 새집증후군 원인물질로 알려진 것으로, 특히 포름알데히드는 자극성이 있어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암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전해진다.

    이 박사팀은 측정 결과를 시공 전 TVOC 농도가 400ug/㎥ 이상인 고농도 집과 그 미만인 저농도 집으로 나눠서 분석했다. 400ug/㎥ 이하는 의료기관과 신축 학교의 실내 공기 질 기준이다. 그 결과 고농도 집의 실내 TVOC 평균 농도는 시공 전 656.9ug/㎥에서 2주 후 214.2ug/㎥, 6주 후 80.9ug/㎥로 급격히 줄다가 10주 후 373.4ug/㎥로 다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10주 차 측정 때 TVOC 농도가 급격히 올라간 이유는 측정 시점이 12월부터 2월까지라 난방을 하고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면서 “그럼에도 시공 전보다 절반 정도 준 수준”이라고 말했다.

    TVOC 가운데 인체에 특히 유해한 5VOC만 골라서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5VOC 농도의 합계가 80ug/㎥ 이상인 고농도 집의 경우, 시공 전 평균 농도는 94ug/㎥. 그런데 시공 2주 후 36.7ug/㎥, 6주 후 17.3 ug/㎥까지 떨어졌다가 10주 후 28.3ug/㎥로 소폭 상승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EASI 점수가 높은 아토피 질환 환자가 거주하는 집과 TVOC 및 5VOC 농도가 높은 집은 상당 부분 겹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EASI 점수가 높은 아토피 질환 환자의 증상이 개선된 이유는 실내 공기 질이 좋아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 박사는 이번 임상시험 결과에 대해 “거주할 때 리모델링을 하지 말라는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깬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박사의 설명이다.

    친환경 자재 시공으로 건축문화 개선해야

    “실내 환경을 개선하면 아토피 같은 환경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개선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실내 환경을 변화시키는 게 어려울 수 있지만 가장 쉬울 수도 있다. 하루 중 실내에서 머무는 시간은 98%에 달한다. 실내 공기를 80% 정도 마신다고 가정하면 어떤 외부적인 것보다 실내 공기 질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 총부유세균 변화도 TVOC와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시공 2주 후와 6주 후까지는 줄다가 난방을 시작한 시공 10주 후에는 다시 상승했다. 그러나 포름알데히드는 모든 가구에서 감소추세를 보였다.

    집에서 벽지와 바닥이 차지하는 표면적 비율은 61%에 달한다. 일반 벽지, 특히 ‘실크벽지’라 부르는 고가의 벽지는 프탈레이트 등 가소제를 다량 첨가해 5VOC 같은 유해물질을 상당 기간 방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닥재도 마찬가지다. 마루장판은 그나마 낫지만, 비닐장판은 겨울철 난방을 하면서 바닥 온도가 올라가면 더 많은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이것은 이 박사팀의 임상시험 결과에서도 확인한 사실이다.

    온돌은 우리나라 고유의 주거문화다. 벽지와 바닥재를 사용하는 국가는 일본, 중국 등 몇몇 아시아 국가 외에는 없다. 일부 전문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최근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중국에서 아토피 질환 환자가 급증하는 이유도 결국 이런 주거문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를 사용하는 건축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LH공사는 이번 임상시험 결과를 계기로 새로운 주택정책을 세웠다. 올 9월 분양 예정인 인천 서창지구(640가구)를 시범지구로 정하고, 입주 예정자에게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를 선택할 기회를 줄 계획이다. 분양 가격은 동일하다. 다만 일반 자재 대신 친환경 자재를 선택한 경우, 거실 아트 홀 등 실내 인테리어 일부가 빠진다. 일반 자재에 비해 친환경 자재의 가격이 조금 비싸기 때문이다.

    LH공사 주택디자인처 상품기획부 엄정달 부장은 “이번 분양 때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으면 앞으로 친환경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내환경 분석에 나선 이유는

    벽지·바닥재와 아토피 관계 연구 ‘주간동아’ 보도가 계기


    친환경 벽지와 바닥재 시공… 앗,‘아토피’가 사라졌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실내환경분석센터가 이번 연구를 시작한 데는 ‘주간동아’ 보도가 결정적 계기였다. ‘주간동아’는 2009년 11월 ‘아파트의 놀라운 쌩얼’이라는 제하의 커버스토리로 무려 12꼭지의 기사를 보도했다.

    아파트 벽지와 바닥재가 실내 공기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아토피 피부염 등 각종 환경성 질환과도 관계가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게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였다. 또 아무런 안전기준 없이 방치한 벽지와 바닥재의 프탈레이트 가소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도 실었다.

    당시 이 기사는 정부는 물론, 관련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가 지난해 초 분당서울대병원 및 서울대 실내환경분석센터와 함께 이번 연구를 기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과정에 일부 업체 관계자가 적극 참여해 연구에 힘을 보탰다.

    ‘주간동아’의 보도는 프탈레이트 가소제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도 이끌어냈다.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기술표준원은 2010년 12월 16일 벽지의 유해물질 안전기준 대상에 프탈레이트 가소제를 추가한 ‘자율안전 확인 대상 공산품의 안전기준 개정(안)’을 입안 예고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벽지 업체들은 앞으로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디부틸프탈레이트(DBP), 부틸벤질프탈레이트(BBP) 등 프탈레이트 가소제 3종을 0.1%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시행 시기는 이르면 2011년 10월부터다.

    이미 지난해 12월 1일 지경부 제품안전조사과는 폴리염화비닐(PVC) 바닥재에 사용하는 프탈레이트 가소제의 양을 제한하기 위해 PVC 바닥재를 안전관리 대상 품목으로 지정해 관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프탈레이트 가소제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서 유독물질로 분류됐지만, 지금까지는 완구 등 어린이 용품에 한정해 사용량을 0.1% 이하로 제한해왔다. 벽지와 바닥재 등에 대한 규제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실내환경분석센터의 이번 연구 결과는 앞으로 벽지와 바닥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도 힘을 실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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