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7

2011.05.16

“장기 기증 말 꺼내기 전 가족 붙잡고 펑펑 웁니다”

한국장기기증원 ‘장기구득 코디네이터’ … 숭고한 희생 알려 장기 기증 활성화에 앞장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5-16 0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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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 기증 말 꺼내기 전 가족 붙잡고 펑펑 웁니다”

    김선희 사무총장, 박현진, 김선희 코디네이터(좌부터)는 한 목소리로 “한국장기기증원 번호 1577-1458을 널리 알려달라”고 말했다.

    2010년 8월 개봉한 영화 ‘아저씨’는 620여만 명의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였다. 잘생긴 배우 원빈의 완벽에 가까운 액션도 흥행 요소였지만 잔인한 장기 밀매 조직의 등장도 한몫했다. 장기 밀매 조직이 아이를 납치한 뒤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 나이까지 감금해 키우고 외과의사가 불법으로 아이의 장기를 적출하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일까. 한국장기기증원(KODA, 이하 장기기증원) 이송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는 “기증은 기증자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신생아의 장기도 이식이 가능하다. 장기 이식과 관련한 잘못된 묘사가 기증자와 가족의 오해를 키울까 걱정돼 동아일보에 이와 관련해 투고도 했다”고 말했다. 코디네이터 중에는 “장기 이식을 왜곡한 영화를 보는 게 불편하다”며 아예 영화 관람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영화에서 장기 매매는 단골 소재다. 영화 ‘심장이 뛴다’에서 주인공은 심장을 두고 다투고, 4월 14일 개봉한 ‘나는 아빠다’에서는 가족의 장기 이식을 권유하는 코디네이터가 등장한다.

    기증 동의부터 가족 위로 격려까지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만성질환 환자가 늘어나면서 장기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요 증가에 발맞춰 국내 장기 이식술도 세계 수준급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장기 기증자 수는 걸음마 수준. 매년 장기 이식 대기자 중 1000여 명이 순서를 기다리다 죽는 실정이다. 독립 장기구득기관인 장기기증원은 2009년 2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출범했다. 뇌사 장기 기증 활성화와 기증자에 대한 예우가 설립 목적이다.

    장기기증원에 소속된 30여 명의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 병원에서 뇌사자 가족의 장기 기증 결정을 이끌어내는 구실을 한다. 자격 기준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간호사다. 외국의 코디네이터처럼 장기 기증 동의를 받아낸다고 그들의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잠재 뇌사자를 파악하고 기증 동의를 받아내는 업무에 더해 수술과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가족을 위로, 격려하고 돕는 일도 한다. 서울 중·남동부를 담당하는 박현진 코디네이터는 병원에서 장기 이식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로 일하다 코디네이터 생활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장기 이식 환자를 돌보면서 장기 이식의 중요성을 알게 됐어요. 코디네이터가 되면 장기 기증 업무를 능동적으로 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습니다. 장기 기증과 관련한 전문 지식과 인간에 대한 이해는 물론, 환자 가족과의 소통, 상담, 설득 기술 등 다양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코디네이터는 환자 상태를 가족에게 정확히 설명하는 냉철함과 가족의 아픔을 감싸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장기 기증은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이타적인 선택이지만 그만큼 결심하기가 어렵다. 코디네이터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 뇌사자 가족에게 장기 기증을 권해야 한다. 호흡과 소화, 혈압 조절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식물인간 상태와 달리 뇌사자는 자발 호흡이 불가능해 빠르면 당일, 약물을 투여하면 최대 2주 내 심장이 멈추기 때문이다.

    뇌사 판정은 복지부가 지정한 의료기관의 뇌사판정위원회에서 전문의 3명 이상을 포함한 판정위원 7~10명 중 3분의 2 출석과 출석위원 전원 찬성으로 결정된다. 판정은 치료가능성이 없고 자발적인 호흡 없이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는지를 비롯해 뇌간반사 소실, 평탄뇌파 지속 등 9가지 항목에 따른다.

    박 코디네이터는 “직계가족이 기증에 동의했는데 친척들이 반대하고 나서면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병으로 뇌사 상태에 빠진 60대 남자의 부인과 딸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좋은 일을 하겠다”며 선뜻 기증 의사를 밝혔으나 남편 쪽 친척들이 “왜 죽이려 하느냐. 돈이라도 받았느냐”며 반대하고 나선 일도 있다. 기증자 가족 중에는 ‘자신이 직접 고인을 죽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품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 코디네이터는 뇌사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를 대할 때마다 자신의 아이가 생각난다.

    “부모에게 기증을 권하기 쉽지 않아요. 같은 부모 처지에서 이해하려 합니다.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을 거라며 어렵게 기증해달라고 한마디 꺼내기도 하지만, 주로 같이 울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위로해요.”

    최근 2~3년 동안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장기구득 코디네이터가 말을 걸면 다짜고짜 무시하거나 멱살을 잡는 사람도 있지만 귀담아들어 주는 사람이 늘었다. 목매 자살하려다 실패해 뇌사에 빠진 젊은 남자의 가족은 먼저 장기기증원에 장기 기증 의사를 알려왔다. 고인이 자살이란 안타까운 결정을 내렸지만 마지막 가는 길, 다른 이에게 새 생명을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수혜자의 감사 인사 한마디가 큰 보람

    “장기 기증 말 꺼내기 전 가족 붙잡고 펑펑 웁니다”

    매년 장기 이식 대기자 중 1000여 명이 순서를 기다리다 죽는다. 인간은 누구나 위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설득보다 위로에 더 많은 애를 쏟는다. 뇌사자가 장기 기증을 한 뒤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가족은 많은 눈물을 쏟는다. 따뜻했던 체온은 식어 차가워지고 낯설도록 창백한 시신만이 남기 때문이다. 한 가족은 병원 침대가 움직여 창백하게 변한 뇌사자의 발이 시트 밖으로 삐져나온 것을 보고 주저앉기도 했다. 박 코디네이터는 “수술실에서 나온 뒤 보게 될 고인의 변화된 모습을 미리 충분히 설명해도 가족은 충격을 감출 수 없다. 뇌사자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갖춰 깔끔한 모습으로 수술실에서 나오도록 한다”고 말했다.

    장기구득 코디네이터는 극한 직업이다. 외국 코디네이터도 평균 근무기간이 14개월밖에 되지 않을 정도다. 보람은 단 하나 새 삶을 찾은 장기 수혜자의 감사 인사다. 기증자와 수혜자의 신상정보를 서로 알려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수혜자에게 기증자의 연령대, 성별, 혈액형 정도는 알려준다. 수혜자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꼭 전해달라며 기증자 가족에게 감사 편지를 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장기기증원은 올 6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발효하면 비영리법인으로 출범한다. 아직은 장기기증원과 각 병원 차원에서 기증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김선희 사무총장은 “장기적으로 장기기증원으로 일원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병원이 뇌사자에게 기증받아 이식까지 한다면 병원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여지가 생긴다. 이식의 공정성, 투명함, 윤리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안의 변화도 시급하기는 마찬가지. 코디네이터가 장기 이식의 왜곡된 묘사를 지적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기증자 가족이 여러 매체를 통해 기증 관련 인터뷰를 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장기 기증 캠페인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기증자 가족이 죄인이라도 되는 양 숨는다. 박 코디네이터는 “기증자가 격려와 박수를 받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다.

    “기증이 이루어진 뒤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보면 많은 사람이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다른 가족에게도 기증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분이 대부분이에요. 장기 기증의 긍정적인 면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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