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5

2011.05.02

꽃 피는 봄이잖아 일탈 좀 하면 어때?

  • 한상혁 hansanghyuk@hotmail.com

    입력2011-05-02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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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피는 봄이잖아 일탈 좀 하면 어때?

    행커치프 대신 작은 인형을 포켓에 꽂으면 나를 이전부터 알던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

    봄이 왔지만, 하늘은 흐리고 이소라 노래처럼 ‘바람이 분다’. 점심에 무엇을 누구랑 먹을까 생각하는 것도 오늘은 좀 귀찮게 느껴진다. 하늘이 맑았으면 좋겠다. 봄이니깐. 요즘같이 허무하고 쓸쓸한 봄날에는 아침에 옷을 입는 것이 좀 어려워진다. 노래를 튼다. 봄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노래를 골라서. 하나는 롤러코스터의 ‘봄이 와’, 또 하나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의 멜로디’다. 내일 점심은 상큼한 음식을 먹을 것이다. 이처럼 봄에 어울리는 음식과 노래는 참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봄옷에 대한 이야기는 비교적 찾기 어렵고, 공감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일은 날씨가 오늘처럼 검정 타이어 색이라 해도 난 벚꽃처럼 맑은 옷을 입을 것이다. 마음만은 화창한 봄을 위해 우린 어떤 옷을 선택하고, 어떤 아이템을 쇼핑하면 좋을까. 파릇파릇한 봄나물처럼 우리 몸과 마음에 활력을 줄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은 무엇일까.

    나는 평소에 하지 않았던 아이템을 구입하라고 말하고 싶다. 항상 포멀한 신사복을 입는 사람은 행커치프 대신 문방구에서 산 노란색 제도 연필이나 작은 인형을 포켓에 꽂아본다. 혹은 신발 매장에서 구두 대신 색상이 명쾌한 운동화를 사거나, 구두 안에 신을 핑크색과 파란색이 조합된 양말을 사는 것도 좋다. 이런 조금 다른 태도는 나를 이전부터 알던 사람들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

    본인 스스로가 어색하다면 주말을 이용해 연습해보는 것도 좋다. 주말에 청바지와 편한 티셔츠 대신 타이와 셔츠, 그리고 포멀한 재킷과 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핑크색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행커치프 대신 노란색 제도 연필을 포켓에 꽂은 채 거리를 활보해보는 것이다. 주변인들이 나를 쳐다보고 수근대는 것 같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 누구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는다. 이 정도 연습했으면 월요일에 검정 양말 대신 핑크색 양말을 신고 출근해보자.

    고등학생 때 독서실에 다녀온다고 거짓말하고 예쁜 화장을 한 대학생 누나들과 했던 첫 번째 미팅처럼, 혹은 친구들과 어두운 카페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을 때처럼 일탈의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봄에 어울리는 패션은 서로 어울리지 않은 일을 해보는 것이다. 또 남과는 거꾸로 된 행동을 하는 것, 그리고 용기를 내 평소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보는 것이다. 패션은 나를 위한 것이다. 내가 입은 옷으로 나의 입가에 웃음을 머물게 한다면, 타인의 입가에도 작은 웃음을 선사한다면 이것이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진정한 패션의 매력이다.

    매일 같은 점퍼에 면바지를 입는 ‘현식’에게도, 항상 무릎 기장의 A라인 스커트를 입는 ‘현주’에게도 모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나는 내일 날씨가 검정 타이어 색일지라도 그레이 슈트를 입고, 아메리카노 커피를 담은 컵 대신 생수를 담은 버드와이저 병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탈 것이다. 봄이니까.

    꽃 피는 봄이잖아 일탈 좀 하면 어때?
    단, 봄나물도 4월 5월 계속 먹으면 물리듯, 봄 패션도 그렇다.

    *한상혁·제일모직 남성복 부문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0년 ‘코리아 라이프 스타일 어워드’에서 ‘올해의 브랜드’와 ‘디자이너’ 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소년의 꿈’을 가진 ‘단정한 청년’이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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