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4

2011.04.25

‘오직 가족과 함께’… 이제야 행복이 보이더라

신동익 前 삼성카드 상무의 ‘인생 2막’…집안일 돕고, 작은 일 챙기며 가족愛 확인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11-04-25 10:4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오직 가족과 함께’… 이제야 행복이 보이더라

    신동익 씨 부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가족이 보입니다.”

    올해 환갑인 신동익 씨(전 삼성카드 상무)는 가벼운 마음으로 제2의 인생을 보내고 있다. 거창한 사업 계획이나 돈을 많이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 ‘오직 가족과 함께’가 새 인생의 키워드다.

    밤낮 없이 뛴 직장생활 가족은 2순위

    그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쉴 틈 없이 26년간 삼성에서 근무했다. 평일에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했다. 주말의 여유도 업무 때문에 반납해야 했다. 그가 하루 중 집에 있는 시간은 5~6시간. 가족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토막잠을 잔 뒤 다시 회사에 나가기 일쑤였다. 당연히 가족은 그의 삶에서 2순위였다.

    신혼 초 그의 유일한 관심은 돈을 모으는 것이었다. 살림살이는 절박하다고 할 만큼 어려웠다. 월급을 받아도 전세대출금을 갚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아이가 먹을 우유조차 살 돈이 없더라고요. 도저히 살아갈 방법이 없었죠. 결국 회사에 사표까지 냈어요. 당시 월급을 많이 주던 건설회사의 해외 지사로 나가려고 생각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남은 그는 일본 도쿄 주재 지사 근무를 자원해 한국을 떠났다. 그는 월급 외로 나오는 주재 수당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일본 주재 12년간 돈도 조금씩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 외적으로 여유는 따라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본인 직원들과 말이 안 통하니까 4시간이면 끝날 일이 8시간 이상 걸리더군요. 게다가 재무 분야를 맡아 일에 끝이 없었어요. 해외 지사다 보니 한국에서 오는 손님까지 맞이해야 했죠. 그 미팅이 1년에 300건 정도 됐어요. 하루에 1건이라고 보면 300일인 거예요. 자연히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죠.”

    그를 무작정 따라간 아내와 어린 아들은 낯선 타지에서 적잖이 맘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씨는 “아내가 불만 없이 잘 견뎌줬지만, 미안한 일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아내가 큰 수술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비즈니스차 방문한 손님들을 만나느라 수술 끝나고 한참 지나서야 병원에 간 적도 있어요.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일본에서 아내가 이만저만 고생한 게 아니에요.”

    아들도 마찬가지다. 신씨는 4년씩 일본에서 근무하고 잠깐 한국에 들어오길 세 차례 반복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은 낯선 일본 땅과 한국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냈다. 그런 아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이 지금도 무척 아쉽다.

    “일본에서 한국에 잠시 들어온 때였어요.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한국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첫 시험을 봤는데, ‘~생각해보세요’라는 문제를 보고 정말 생각만 한 채 답을 안 쓰고 나온 거예요. 일본에서는 정말 생각만 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그게 아니었던 거죠. 학교에서는 문제 학생이라고 난리가 났어요. 아들과 아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그땐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눴어요.”

    신씨는 40대 중반에 접어든 1995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은퇴 이후를 준비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더는 외면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50대 중반이 되면 당연히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으로 보고, 10년간 아내와 아들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신씨는 모아놓은 돈으로 1998년 경기 용인시 양지면에 400여㎡의 땅을 매입했다. 이후 작은 전원주택을 지었고 그곳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주말을 보내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서서히 변화를 줬다. 2003년 말에는 과감하게 사표도 던졌다.

    “회사 일에 권태가 느껴졌어요. 40대 중반부터 ‘회사 일, 승진에 ‘올인’하지 말고 욕심을 버리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때문인지 미련 없이 사표를 낼 수 있었어요.”

    삼성에서 퇴직한 이후 의료장비 업체에서 5년간 근무한 신씨는 지난해 작은 욕조타일 회사를 인수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다시 직업전선에 나섰지만 아무리 바빠도 회사 일에 올인하지는 않는다. 26년간 전업주부로서 자신과 아들을 뒷바라지해온 아내를 배려하는 것이 일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주말에도 일절 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양지 전원주택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원래 아내는 지방으로 이사하는 것을 내켜 하지 않았다. 아내 처지에선 지인도 없고, 집안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씨는 집안일만큼은 분담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원을 가꾸고, 집 정리를 하는 것은 이제 그의 몫이다. 그는 “30년 넘게 집에서는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놀라운 반전이다.

    아내 배려가 최우선 주말 약속 안 잡아

    ‘오직 가족과 함께’… 이제야 행복이 보이더라
    신씨는 아예 아내를 회사 직원으로 채용했다. 일을 하고 싶다는 아내의 청을 그가 흔쾌히 들어준 것. 자연스럽게 부부가 평일 내내 함께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게 됐다. 신씨도, 그의 아내도 하루 종일 서로 같이 보낼 수 있어 만족스럽다. 그는 일적으로도 편해졌다.

    “저는 영업만 하고, 아내가 회사 재무를 담당해요. 틀려도 좋으니까 열심히 해보라며 다 맡겼는데, 웬만한 젊은 경리직원보다 훨씬 잘해요. 횡령 사고가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아내 얼굴을 하루 종일 봐서 마음도 편하니 일석이조죠.”

    전업주부로 30년간 살림만 한 아내에게 남편의 회사는 첫 직장이다. 그의 아내는 “제 별명이 집에만 있어서 ‘소파공주’였는데 이제는 아니죠?”라며 밝게 웃었다.

    부부가 함께 서울로 출근하면서 쏠쏠한 재미도 생겼다. 직장을 다니느라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유일한 핏줄, 아들을 만나는 재미다. 부부는 가끔씩 일이 바쁠 때면 아들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작은 원룸이지만, 세 식구가 함께 살을 맞대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 자체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다. 신씨는 “아들 졸업식에 가본 것도 대학 졸업식이 유일하다”며 “변변히 챙겨주지 못해 많이 외로웠을 거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자기 집에 가는 걸 무척 반긴다”고 말했다.

    은퇴 전 어떻게 보낼지 미리 준비해야

    신씨는 앞으로 가족에게 더 많은 시간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운영 중인 회사가 안정되면 자기 지분을 줄여 주요 업무 말고는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여유가 생기면 아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함께 떠날 참이다. 테마여행을 하기로 의견일치도 봤다. 테마는 로마역사다. 돈을 조금씩 모아 로마역사가 깃든 유럽 지역을 하나 둘씩 섭렵해가기로 했다. 또한 아내가 다른 지인들과 여행을 간다고 해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제 신씨의 새로운 삶에서 아내와 아들은 당당히 주연이다. 좌우명도 새롭게 마음에 새겼다.

    “앞으로 제 삶의 비즈니스 포인트는 가족입니다.”

    젊은 날 남성들은 직장에 몸과 마음을 바쳐 아무래도 가족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 회사 일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 때문에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신씨도 “회사에서 녹초가 된 채 집에 오면 말할 기분이 아예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가족은 그런 남편과 아버지를 이해하고 묵묵히 참는다. 하지만 은퇴 후는 다르다. 남편과 아버지의 독보적 사고방식 및 행동을 정당화하던 ‘직업윤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은퇴 후 삶에서는 회사가 아닌 가족이 중요한 존재로 부각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은퇴자 스스로, 또한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서로의 상실감, 외로움, 고민을 공유하고, 그것을 털어내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막막함을 날려버리는 은퇴 후 희망설계 3·3·3’의 저자이자 노후생활 전문가인 김동선 씨는 “가족의 상실감을 헤아리고,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인생 후반전을 풍요롭게 하는 생산적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은퇴 부부나 가족이 화목하게 지내려면 공유할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은퇴한 남편이 집안일을 도우며, 가족 각자의 생각과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대 아동가족학 한경혜 교수는 “가족과 어떻게 보낼지를 은퇴 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남편이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 역시 자신만의 독특한 생활패턴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은퇴한 남편이 갑자기 그 패턴에 끼어들기는 무척 어렵다”며 조기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덧붙여 한 교수는 은퇴 단계에서는 부부 또는 가족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남성은 나이 들수록 여성성이 강해지는데, 그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가족에게 봉사하거나, 스스로를 ‘셀프케어(self care)’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여성도 ‘측은지심’을 갖고 남편과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