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2

2011.04.11

반나절 발품 “사제폭탄 그까이꺼”

인터넷엔 ‘폭탄 제조법’ 널려 있고 화공약품상은 ‘질산암모늄’ 그냥 판매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journalog.net/kooo

    입력2011-04-11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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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굉음과 함께 철로 된 아파트 현관문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뜯어졌다. 바닥은 파이고 베란다 통유리는 산산조각났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에는 송모(51) 씨의 갈기갈기 찢긴 신체 잔해가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복도는 폭발 여파로 새카맣게 변했다. 아파트 주민은 ‘지진’이 난 줄 알고 겁에 질린 얼굴로 뛰쳐나왔다. 4월 3일 오전 4시 40분경 부산 서구 토성동의 한 아파트에서 송씨가 헤어진 내연녀를 찾아가 폭발물을 터뜨리고 자폭한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일반인이 직접 만든 사제폭탄이 연일 화제다. 이번에 부산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와 관련해 부산 서부경찰서는 “건설용 다이너마이트나 사제폭탄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항에서는 3월 2일 인터넷에서 배운 방법으로 폭탄을 만들어 옛 직장동료를 살해하려 한 최모(51) 씨가 붙잡혔다. 2월 24일에는 사제폭탄을 만들어 자해 소동을 벌이던 오모(26) 씨가 폭발물이 터져 숨진 사건도 있었다.

    다양한 폭탄 제조법 손쉽게 입수

    이들은 모두 폭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폭탄 제조법’대로 재료를 구해 폭탄을 만들었다. 현행법(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 제3장 제10조)에 따르면 일반인은 폭탄을 소지하기만 해도 ‘불법’이다. 폭탄을 만드는 순간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폭탄을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폭탄 제조법 입수에서부터 재료 구매까지 일반인이 얼마나 쉽게 폭탄에 ‘근접’할 수 있을까. 기자가 직접 사제폭탄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봤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폭탄 만드는 법’이라 입력했더니 구체적인 제조법이 나온 사이트나 글은 관리자에 의해 걸러져 검색 결과에서 제외됐거나 삭제된 상태였다. ‘구글링’이 필요한 순간. 구글에서 같은 검색어를 쳤다. 폭발물이 아니라 ‘폭탄주’ 만드는 법이 떴다. ‘폭탄 제조법’이라고 키워드를 바꿔 검색했다. 결과는 마찬가지. 이번에는 검색어 뒤에 텍스트파일 확장자 ‘txt’를 붙였다. 검색한 지 10여 분도 되지 않아 ‘폭탄 제조법(종합편).txt’라는 제목의 파일을 내려받을 수 있었다.



    파일 내용은 다소 황당해 보였다. 네이팜탄, 방수 폭탄, 볼펜 폭탄, 원격제어 폭탄, 터치식 폭탄, 부탄가스 폭탄 등 다양한 폭탄 제조법이 필요한 재료와 함께 상세히 적혀 있었다. 소설처럼 지어낸 ‘낚시 글’은 아닐까. 이 제조법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이희윤 교수에게 폭탄 제조법 파일을 건넸다. 이 메커니즘대로 하면 폭탄을 만들 수 있는지, 위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볼 목적이었다. 놀랍게도 이 제조법은 ‘진짜’였다. 이 교수는 “제조법대로 폭탄을 만드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필요한 재료가 일반인이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위력은 폭발물을 어떻게 패킹하고 어떤 장소에서 터뜨리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질산칼륨, 염소산칼륨, 질산암모늄, 황산 등 폭탄 제조에 필요한 재료는 대부분 ‘사고대비물질’로 분류돼 개인은 구매하기 어렵다. 환경부는 2010년 10월 24일 사제폭탄 제조에 쓰일 수 있는 질산암모늄, 염소산칼륨, 헥사민, 과산화수소 등 13종을 ‘사고대비물질’로 추가 지정했다. 사고대비물질은 독성이나 폭발성이 강해 별도의 대비·대응 계획이 필요한 화학물질을 뜻한다. 환경부는 그동안 폼알데하이드, 메탄올, 페놀, 황산 등 56종을 사고대비물질로 지정해 관리했다. 이런 물질을 팔거나 제조·보관·저장·운반 시설을 둔 업체는 자체 방제계획 등을 세워 각 지방 환경청에 제출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3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사고대비물질 중 일부를 직접 구매하기로 했다. 각 화공약품 판매상은 사고대비물질 관리를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을까.

    질산암모늄은 폭탄을 만드는 데 중요하게 쓰이는 위험물질이다. 공기 중에서는 안정적이지만 고온에 있거나 가연성 물질과 닿으면 쉽게 폭발한다. 디젤유와 혼합하면 강력한 폭탄을 만들 수 있어 테러리스트가 가장 선호하는 폭탄 원료 중 하나다. 실제로 질산암모늄의 영어 명칭인 ‘ammonium nitrate’와 ‘how to’ ‘make’ ‘bomb’ 등의 단어를 조합해 검색하면 폭탄을 만드는 순서가 담긴 동영상이 뜬다.

    신분증 검사도 소속 확인도 안 해

    반나절 발품 “사제폭탄 그까이꺼”
    질산암모늄을 사러 가는 길. 먼저 판매상이 “이걸 어디에 쓸 것인가”를 물을 때에 대비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들릴 이유를 고민하다 학교 실험에서 아이스 팩을 만들 때 질산암모늄이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곧장 서울 종로구 을지로4가 지하철역 인근의 화공약품 상가 거리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A화공약품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질산암모늄을 판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의심을 사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아주머니는 태평스러웠다. 물건을 꺼내려 사다리에 올라서던 아주머니가 “그런데 뭐 때문에 필요해?”라고 물었고,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아이스 팩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가게 뒤편에서 걸어나온 주인아저씨가 시큰둥하게 “지금 물건이 떨어졌다. 길 건너 B약품에 가면 한 통 남아 있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신분증 검사도, 소속 확인도 하지 않았다.

    맞은 편 B화공약품 상점으로 향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리도 물건이 없으니 C약품으로 가보라”고 말했다. ‘일부러 안 파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작년엔 샀는데 올해는 안 들여놓느냐”고 돌려 묻자 “오늘 물건이 떨어져 곧 들여올 예정”이라고 답했다. C약품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 가면 질산암모늄이 있다던데, 살 수 있을까요?” 주인아주머니가 TV에 놓여 있던 공책을 펼쳤다. 위험물질을 사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적으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얼마나 필요한지 묻더니 “한 통에 500g, 1만 원”이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다시 옆쪽 선반에 놓인 낡은 공책을 펼쳐들더니 재고 수량을 살폈다. “10여 통 정도 살 수 있느냐” “여러 박스를 구매하고 싶다”는 말에는 반색했다. “강원도 쪽으로 배달시킬 수 있느냐”고 물으니 명함을 건네며 “배송비 포함한 금액을 입금하고 전화하라”고 말했다.

    질산암모늄을 손에 넣는 과정은 까다롭지 않았다. 그리고 성냥이나 표백제 재료로 쓰는 염소산칼륨은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대형 쇼핑 사이트에서는 이들을 과학 실험용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어 용량을 묻자 “염소산칼륨은 500g에 1만8700원이고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고 했다. 질산암모늄은 500g에 1만7600원이었다. “두 통 이상 살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수화기 너머의 관계자는 잠시 침묵하다 “그런데 어디시냐”고 되물었다. 학교라고 답하자 “가능하다”고 했다.

    과산화수소수는 발품을 팔지 않아도 단돈 1000원에 1리터들이 통을 구할 수 있었다. 아무도 왜 사는지 묻지 않았다. 돈과 시간만 있으면 폭탄, 아무나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폭탄 제조법부터 재료를 모으기까지는 반나절도 안 걸렸다. 아무런 지식 없이도 이 정도인데, 폭탄 만들기를 작정한 이는 어떨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찔함에 현기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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