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9

2011.03.21

“설마 무너지겠어…” 건축 설계부터 ‘지진 불감증’

저층 건물 허위 내진설계 다반사…학교 내진설계 강화도 올스톱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yurim86

    입력2011-03-21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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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무너지겠어…” 건축 설계부터 ‘지진 불감증’

    소방재청에 따르면 국내 건축물 83.7%는 내진설계가 안 됐다. 특히 5층 이하 저층 건물의 상태가 심각하다.

    동일본 대지진 이튿날인 3월 12일 오전, UAE(아랍에미리트)를 공식 방문하러 출국하기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게 “기존 건물에 대한 내진(耐震)설계 보완이 가능한지 검토해서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비행기는 떠났고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4일에는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 차관 주재 대책회의가 열렸고 16일에는 “모든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하겠다”는 약속이 나왔다. 이날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그동안 건축법 시행령에 따라 내진설계 적용 대상에서 배제했던 3층 미만 건축물도 신축 때 내진설계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국토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부산한 대책 마련 노력을 바라보는 전문가 집단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정부는 2008년 5월 중국 쓰촨(四川) 성, 2010년 1월 아이티, 3월 칠레 등 큰 지진이 터질 때마다 경쟁하듯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 조사 및 내진설계 강화 대책’을 쏟아냈지만 용두사미 꼴로 대책이 축소되는 등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소 잃기 직전에도 외양간 고치지 않아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이하 구조기술사회) 박정민 총무단장은 “조만간 3층 이상 건물은 건축구조기술사(이하 구조기술사)가 필수로 내진설계하고 1~2층 건물 중 학교, 병원에 대한 내진설계를 강화하는 법안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안이 실제 국회를 통과해 시행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이런 의구심은 현재의 관련 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는 건축사가 건축법에 규정된 내진설계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 건축 허가를 받은 사실을 알아내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실정이다. ‘나 몰라라’ 하기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소를 잃기 직전인데 외양간엔 신경도 쓰지 않는 정부’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2005년 개정된 현행 건축법은 6층 이상 건축물에 대해서는 반드시 건축 구조 및 내진설계 전문가인 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반면 3~5층 건물은 일반 건축사가 내진설계를 하고 이후 관할 구청 등에 ‘구조 안전 및 내진설계 확인서’(이하 내진설계 확인서)를 제출하면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내진설계 확인서는 건축물의 밑면전단력(지진이 나 건물이 압력을 받을 때 측면이 얼마나 흔들릴지를 진단), 최대 층간 변위(지진이 발생했을 때 변형 정도를 진단) 등을 구조공학적으로 계산해 작성하는데 내진설계를 했음을 수치로 써놓은 서류다. 각 허가 관청은 이를 통해 해당 건물이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물론 3~5층 건물도 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를 할 수 있지만 대부분 건축주는 구조기술사에게 별도의 설계 비용을 내면 공사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건축사에게 내진설계를 맡긴다.

    과연 우리나라 건축물은 이런 내진설계 관련 규정을 얼마나 준수하고 있을까. ‘주간동아’가 입수한 2010년 10월 구조기술사회의 내진설계 확인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 중구 등 6개 구와 충북 청주, 제천 지역에서 2007년 이후 건축 허가를 받은 3~5층 건축물 2585채 중 57.8%인 1496채의 내진설계 확인서가 허위로 작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허위로 작성된 1496건의 내진설계 확인서 중 1305건은 건축사가 실제 내진 정도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임의의 수치를 확인서에 기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138건은 내진 항목과 관련된 부분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확인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관할 구청은 이처럼 부실한 내진설계 확인서를 받고도 해당 건축물에 대해 무분별하게 건축 허가를 남발했다. 건축법에 따르면 건축사 등이 내진설계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할 경우 2년 이하 징역과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10년 10월 구조기술사회는 이런 조사 결과를 국회와 국토부, 해당 지자체에 알렸지만 모두 이를 무시했다. 어떠한 감사, 조치, 처벌도 없었다. 조사 결과를 통보받은 한 국회의원은 국토부 담당국장에게 구두 경고만 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한 구청 관계자는 “보통 감리자가 수치를 확인한 뒤 날인하면 구청이 허가하는 방식인데, 일부 행정상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실제 해당 건물이 내진설계가 안 됐는지는 재확인을 해야 한다”며 사태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담당자가 바뀐 지 얼마 안 돼 업무 파악이 안 됐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국토부 담당 과장은 “담당 구청 공무원이 더욱 철저히 내진설계 확인서를 점검하도록 교육하고 관련 매뉴얼을 만드는 중”이라고 밝혔다.

    ‘엉터리 내진설계’의 장본인인 건축사들은 오히려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서로 다른 아파트의 내진설계 확인서에 모두 같은 수치를 기입한 것으로 드러난 충북 청주시 한 건축사는 “청주는 지반이 모두 같고 건물 구조가 비슷해 (내진설계에서) 같은 데이터를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대한건축사협회 역시 ‘별일 아니다’라는 반응. 협회 측 관계자는 “일부 몰지각한 건축사의 행동”이라며 “이 때문에 모든 건축사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현재 건축사가 내진설계를 손쉽게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8월 내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번 조사를 진행한 박 총무단장은 “설계에 내진이 반영됐는지는 지반, 건물 구조 등 모든 것을 따져야 하는데 단순히 프로그램으로 수치를 얻어내고, 그를 통해 내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부실 뻔히 알면서도 입 다문 시·구청

    “설마 무너지겠어…” 건축 설계부터 ‘지진 불감증’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직후 서울 노원구는 구조기술사회를 통해 관할 5개 아파트 단지에 대한 내진 실태조사를 했다. 노원구에는 내진 관련 법조항이 만들어진 1988년 이전에 건축 허가를 받아 지은 노후 아파트가 많은 편. 당시 조사를 받은 5개 아파트 단지 중 2개 단지에 대해 “지진에 대한 구조적 안정성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해당 아파트는 각각 600여 가구가 거주하는 단지다.

    당시 노원구청 측은 “(해당 아파트에 대해) 정밀 안전진단을 한 후 대책을 수립하겠으며 다른 아파트까지 조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년간 노원구는 전수조사는커녕 문제가 발견된 아파트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원구청 건축과 담당자는 “(해당 아파트에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예산 문제가 가장 컸다. 비슷한 수준의 아파트도 많은데 샘플로 뽑은 두 아파트만 보강을 하면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변명했다. 또한 노원구 전체 아파트의 내진 실태조사에 대해선 “서울시 측에 건의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주간동아’가 부두완 전 서울시의원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92년 이후 준공된 서울시내 아파트 중 76개 단지는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988년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16층 이상 아파트는 반드시 내진설계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동작구 13개, 성북구 2개 아파트 단지는 16층 이상인데도 내진설계를 하지 않았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51개 단지는 15층 이하로 당시 법률상으로는 내진설계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많은 서민이 현재도 지진 무방비 건물에서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른 척할 순 없는 일이다.

    서울시는 2010년 3월 이런 내용을 인지하고도 문제의 76개 아파트에 대한 내진 보강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이런 자료를 부 전 의원에게 제출한 서울시는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손을 놓았다. 서울시 주택과는 “각 구청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취합해 서울시의회에 제출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며 발뺌했다.

    배움의 터전이자, 지진이 나면 대피소나 대책본부로 활용하는 각급 학교도 지진에 무방비이긴 마찬가지다. 쓰촨 성 지진 피해가 컸던 이유는 학교 건물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던 오후 2시경 지진이 발생했는데 지진에 취약한 학교 건물이 모두 무너져내리면서 피해가 커진 것. 우리나라 학교 건물의 내진설계 상태 역시 매우 심각하다.

    내진설계 안 된 건축물 비율 자료 | 소방방재청(2010년, 내진 6.5 기준)

    “설마 무너지겠어…” 건축 설계부터 ‘지진 불감증’
    기준도 없이 한마디 하면 호들갑

    서울시교육청이 200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전체 학교의 건축물 2544동 중 91%인 2315동이 내진설계가 되지 않았다. 학교 건물이 지진에 취약한 것은 대부분 5층 이하이기 때문이다. 현행 건축법에 따르면 1~2층 건물은 내진설계 의무가 없고, 3~5층 건물은 건축사가 내진설계 확인서만 제출해 건축 허가를 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문제가 대두되자 2010년 1월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학교시설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신축하거나 증·개축하는 전국 모든 학교에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겠다’는 것이 골자. 과연 교과부는 이 약속을 제대로 지켰을까.

    교과부는 2010년 초 101개 학교를 선정, 내진보강 사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4월 말 모든 사업이 중단됐다. 감사원이 “공공시설 안전 점검 및 내진 점검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며 대대적인 감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과부에 따르면 이 내진보강 사업에 학교당 5억 원 내외의 예산이 쓰였다.

    기존 건물의 내진을 보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각 지반, 건축물 구조 등 변수를 따져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교과부는 모든 학교의 내진강화 사업에 일괄적으로 ‘댐퍼(Damper)’라는 자재를 삽입하는 방식만 도입했다. 단 한 곳의 업체가 교과부 사업에 사용한 모든 댐퍼를 제공한 것도 문제였다. 업체와 교과부의 유착관계를 의심한 이유다.

    교과부 교육시설지원팀 조일환 과장은 “교과부는 내진 보강에 대해 전문적인 내용은 잘 모르다 보니 소수 전문가집단에 너무 의존한 면이 있다. ‘댐퍼 방식이 가장 좋다더라’는 업자의 말만 듣고 그대로 따른 게 문제로 지적됐다”며 “현재 교과부는 전남대 이강석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어떤 방식이 학교 내진 강화에 좋은지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용역을 마치면 효율적인 내진 강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민의 혈세만 낭비한 ‘해프닝’이 벌어진 데는 교과부의 무지도 한 이유가 됐지만, 기존 건물에 대한 내진 보강 기준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구조기술사회 이문곤 회장은 “무조건 내진 보강을 한다고 덤빌 게 아니라 특별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준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산 역시 문제다. 2010년 교과부는 학교 건물 내진설계와 관련한 예산을 책정하지 않아, 결국 각 시·도교육청의 특별교부금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시·도교육청 처지에서는 눈앞에 시급한 사업이 많은데 어떻게 내진 보강에 그 많은 돈을 쓸 수 있겠는가”라며 “예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실 있는 내진 보강 사업은 어렵다”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15일 교과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각 교육청에 책정된 1137억 원의 ‘재해대책 특별교부금’중 1112억 원이 시·도 교육청 성과급으로 쓰였다. 박 의원은 “1000억이면 200개 학교 내진 보강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부가 내진설계 관련 대책을 세워놓고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 모습을 봐온 구조기술사회 등은 이번 소방방재청의 대책에 회의적이다. 사실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직후 소방방재청이 “모든 건물에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겠다”고 밝혔을 때 내진설계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공사비가 비싸지고 △행정 인력이 제한돼 모든 건물의 내진설계 여부를 점검하기 어려우며 △국내 구조기술사 수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모든 건물의 내진설계 의무화는 확정된 바 없다”고 무시했다.

    이 회장은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까 국토부, 소방방재청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부산을 떨고 있다. 이번에도 잘될지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한번 믿어보겠다”면서 “대한민국에 큰 지진 한번 나야 내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그 전에는 누구도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내진설계 누구에게 맡기나

    ‘구조기술사vs건축사’ 해묵은 갈등과 대립 여전


    “설마 무너지겠어…” 건축 설계부터 ‘지진 불감증’

    내진설계 확인서

    국내 모든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 의무화가 번번이 좌초한 이면에는 구조기술사와 건축사 간의 해묵은 갈등과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구조기술사회 측은 내진 관련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내진설계 전문가인 구조기술사가 모든 건축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하도록 법에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현행 법에서는 6층 이상 건물은 반드시 구조기술사가 내진설계를 하도록 돼 있지만 3~5층 건물은 건축사가 내진설계를 하고 해당 건축물이 일정 강도의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내진설계 확인서를 담당 구청에 제출하면 건축 허가가 난다.

    고려대 건설사회환경공학과 김상대 교수는 “건축사의 내진설계 관련 지식은 학부 때 조금 배운 수준이 전부다. 그나마도 건축학 관련 학부에서 내진 및 구조 교육을 제대로 하는 대학은 국내에 5곳도 안 된다”며 “더욱 철저한 내진설계를 위해서는 구조기술사가 모든 건물의 내진설계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조기술사회 이문곤 회장도 “구조기술사는 가장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내진설계를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건축사들은 이에 “현실성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3~5층 건물은 건축사가 가진 지식으로도 충분히 내진설계가 가능하다는 것.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제도팀 양성희 과장은 “전국 구조기술사는 900명 내외고 그 역시 서울에만 집중돼 있다. 국내 모든 건축물의 내진설계를 맡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모든 건축물에 대한 내진설계 의무화가 번번이 무산된 배경과 관련, 소문이 무성한 것도 사실이다. ‘회원 수가 2만 명이 넘는 건축사가 자신의 이권을 구조기술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정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로비를 했다’는 얘기마저 나돈다. 한나라당 모 의원이 지난해 건축사가 내진설계 확인서를 조작한 자료를 파악해놓고도 국토부 담당국장에게 구두 경고만 하고 여론화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도 뒷말이 나왔다.

    이에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내진설계 확인서를 조작한 것에 대한 건축사협회 측의 해명도 일리가 있어 국정감사에서 발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구조기술사는 “워낙 건축사 수가 많으니, 표를 의식하는 국회의원으로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건축사협회는 “말 그대로 확인된 바 없는 루머”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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