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7

2017.05.10

안보

트럼프의 ‘사드 청구서’는 문재인 당선 대비한 포석

文 정부 ‘배치 반대’할 경우 재협상에서 선제 카드 쥐기 위한 전략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7-05-04 17:50:3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청구서 한 장에 대한민국이 ‘울컥’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라도 한 것 같은 소동이 일어났다. ‘미국 사람 믿지 마라, 일본 사람 일어난다’는 해방 직후 민요를 다시 부른 사람도 있었다. “장사꾼이야, 동맹국 대통령이야”라는 비아냥거림도 들렸다.

    국가 안보가 불안해 국방비를 늘리면 경제와 복지에 들어갈 돈이 적어져 나라 살림이 팍팍해진다. 한쪽이 국방비를 늘리면 적(敵)도 따라 늘려 군비경쟁이 일어난다. 안보를 강화할수록 민생이 어려워지는 것을 ‘안보의 딜레마’라고 한다. 북한이 여기에 빠져 있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동맹이 필요하다. 유사시 동맹국의 전력을 빌려 쓸 수 있다면 안보에 과다한 투자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공짜 점심’은 없다. 어느 날 동맹국이 이상한 전쟁을 벌여놓고 함께 싸우자고 하면 원치 않는 전쟁을 해야 한다. 이런 부담을 ‘동맹의 딜레마’라고 한다. 한국이 여기에 빠져 있다.



    “3연임하려면 북한 제재하라”

    그렇다고 동맹의 딜레마를 벗어던지면 안보의 딜레마에 빠진다. ‘장사꾼’ 출신인 트럼프는 이러한 한국의 약점을 아는지 노골적으로 나왔다. 사드를 배치했어도 여전히 ‘4월 위기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을 향해 돈을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 정가의 풍향을 잡아내는 소식통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CNN을 비롯한 미국 TV를 보면 군인 출신인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허버트 레이먼드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주 나와 사드 청구서에 대해 설명한다. 소식통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일급 참모는 두 사람이다. 한반도가 아니라 동북아 지도를 펼쳐놓고 봐야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중국 경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지 않다고 전했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거나 무역전쟁을 펼친다면 중국이 휘청할 수도 있는 것. 특히 과거 중국 국가주석은 5년씩 2번 연임하고 퇴진했으나, 시진핑 주석은 11월 예정인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3연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 경제 상황이 좋아야 하기에 시 주석은 미국 측에 정상회담을 요청했다. 적당한 선물을 주고 무역전쟁 같은 중국 경제 흔들기를 하지 말아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한술 더 떠 시리아 공습을 통보하며 북한 핵문제도 해결하라고 압박했다. “중국이 하지 않으면 미국이 하겠다”고까지 하면서.

    중국 처지에서도 북한은 큰 리스크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을 발사하면 동북아 정세가 얼어붙고 그에 따라 중국 경제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가 분단돼 있는 것이 중국 처지에서는 유리하기에, 중요한 순간마다 중국은 북한 제재를 회피해왔다. 결정적 대립은 미국에게 넘겨주고, 미·북 갈등을 즐겼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 제재에 어려움을 느껴야 자신들에게 좀 더 우호적이 된다는 점을 이용해왔다.

    트럼프는 그 구도를 바꾸려 했다. 환율과 무역 카드로 중국을 압박해 결정적 순간의 미·북 갈등을 중·북 갈등으로 돌려놓으려 한 것이다. 시 주석은 저항했지만 일단은 떠맡는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본 트럼프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 무역전쟁은 없다”며 이전과 달리 중국을 칭찬하는 말을 했다.

    중국은 압록강 태평만(太平灣)댐에 설치된 송유관을 통해 북한이 사용하는 원유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북한은 비축 원유가 없기에 중국이 송유관 파이프라인을 잠그면 경제가 ‘올 스톱’된다. 중국은 이를 지렛대 삼아 북한의 태양절과 인민군 창건일 도발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압박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4월 21일 ‘남의 장단에 춤을 추기가 그리도 좋은가’라는 제목으로 ‘주변국이 우리의 의지를 오판하고 경제제재에 매달린다면 파국적 결과도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논평을 게재함으로써 그것을 간접 증명했다. 중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미·북 갈등을 중·북 갈등으로

    중국은 관영매체 ‘환구시보’ 4월 22일자 사설을 통해 응수했다. ‘미국이 고려하는 외과수술 식 타격에 대해 (중국의) 군사적 개입은 불필요하다’고 한 것. 북·중 갈등이 깊어가는 가운데 트럼프는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4월 26일 경북 성주골프장에 전격적으로 사드 포대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칼빈슨 항공모함(항모) 전단을 서서히 한반도 작전구역으로 북상시켰다.

    북한은 주춤했다. “칼빈슨 항모 전단이 오면 수장시키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북한은 4월 29일 평남 북청비행장에서 KN-17로 추정되는 대함(對艦)미사일을 쐈다 공중에서 폭발시켰다. 맞서는 시늉만 하고 타격을 결행하지 못한 것이다. 그날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한다면 대북 원유 공급 중단을 포함한 더 가혹한 대북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 쪽으로 기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트럼프는 정보기관으로부터 북한의 미사일 발사 내용을 보고받은 듯 “그날 북한이 쏜 것은 작은 미사일이었다”고 밝혔다. 중국이 북한을 잘 통제하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칭찬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게 당근을 던져줬다. 4월 27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사드 비용은 한국이 지불하는 것이 좋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끔찍하다. 재협상하거나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사드 배치 이틀 만에 청구서를 한국에 내밀었으니 19대 대선에 여념이 없던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보수는 “언론이 트럼프의 말을 잘못 해석했다”, 진보는 “트럼프가 마각을 드러냈다”며 정반대 주장을 했다. 이 논란은 매티스와 맥매스터가 미국 언론에 나와 “재협상 시 한국에 사드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사드 비용 청구가 사실인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로써 이번 대선에서 사드 배치를 주장한 보수 후보는 불리해지고, 진보 후보가 유리해졌다는 분석이다. 왜 트럼프는 보수 후보를 어렵게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앞의 소식통은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트럼프 정부는 대선 이후 한국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 대선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당선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에 경도돼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재협상을 통해 한국에게 사드 비용을 물린다고 한 것은 그러한 때에 대비한 포석이다.”

    트럼프 정부는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결정하기 직전 사드 발사대 2대를 수송기에 실어 긴급히 한국에 넣었다. 대통령 탄핵과 무관하게 사드를 배치한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이와 비슷한 쐐기 박기가 대선 전인 지금 재협상을 통해 사드 비용을 한국에게 물리겠다고 한 발언이다. 즉 문재인 정부의 사드 철수 주장에 대비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가 열리는 11월까지 중국이 북한을 계속 통제할 것이라 보고 있다. 지금 미국은 서울의 주한 미8군 사령부를 경기 평택기지로 옮기는 중인데, 평택기지를 방어하려면 사드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문 후보가 당선돼 사드 철수를 주장한다면 미국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드 문제를 놓고 한미 대립이 심해지고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가까워지면 중국은 남북한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꽃놀이패를 쥐게 돼 거꾸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



    트럼프, NATO에도 비용 청구

    그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면 미리 사드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해 사드를 철수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아야 한다. 미국은 다른 계산도 했다. 사드 철수를 놓고 한미 간 협상이 진행되면 한국은 다시 좌우 갈등에 빠진다. 지금 한국 국회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여당이 야당의 협조 없이는 쟁점 법안을 개정하기 어려운 상태다.

    소식통은 “이는 사드 철수 문제로 문재인 정부가 조기에 레임덕에 걸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는 그러한 상황이 됐을 때 한국이 다시 보수로 돌아설 것이라고 본다. 지금 한국 대선에 개입해 내정간섭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보다 한국이 저절로 미국에 접근하게 만들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이 하도 현학적이라 “전형적인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일 수 있다”는 지적을 해봤다. 그는 “서울에 앉아 한반도를 보지 말고 워싱턴에서 동북아와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게도 비용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미국은 세계 경찰 구실을 하겠다. 그리고 그 혜택을 보는 나라에게는 비용을 청구하겠다. 비용을 지불해야 그 나라와 동맹이 더 좋아진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드 배치를 위해 한미가 맺은 약정서에 재협상 부분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은 “사드 문제는 재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는데, 미국은 “재협상 전까지만 현 협상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야당이 주장한 대로 약정서를 공개해야 확인되는데, 약정서는 2급 비밀로 지정돼 공개할 수 없다. 

    이 소식통은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충실한 정치인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동맹국과 관계가 튼실해야 하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처럼 미국에 가까워지려는 정권이 들어서는 편이 좋다는 사실을 잘 알아 이를 실행하는 것뿐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이나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 한 미국은 직접 북한을 응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