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0

2011.01.10

개발 부풀려놓고 발 빼면 이 땅을 어쩌란 말이냐

경제자유구역 해제 깡통집 널린 영종도 르포 … 정부 신뢰 무너지고 난개발에 슬럼화 우려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송윤지 인턴기자 성균관대 법대 3학년

    입력2011-01-10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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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부풀려놓고 발 빼면 이 땅을 어쩌란 말이냐

    보상을 노린 깡통집들이 멀쩡한 산을 깎고 들어섰다. 한 지역주민은 “80% 정도가 외지인이 지은 집이다”고 말했다.

    인천 중구 운북동 일대. 흔히 영종도로 불리는 섬의 일부 지역이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 옆으로 장난감 블록처럼 똑같이 생긴 집이 줄지어 서 있다. 추운 겨울 날씨지만 굴뚝에서 새어나오는 연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인근 산 중턱에도 산을 깎아 집들이 들어섰다. 가까이 가보니 얇은 패널 외벽에 벽돌을 쌓아 올리고 창틀만 끼워놓았다. 외부에서 화장실 변기가 훤히 보이고 벽은 도배도 돼 있지 않았다. 터를 닦고 벽만 세운 뒤 방치된 집들도 눈에 띈다. 한 상가 건물은 큰 도로가 끊기는 경계선에 서 있다.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는 ‘깡통집’들이다.

    사람이 사는 집도 살 만한 공간은 아니다. 신축 건물이라 겉만 깔끔할 뿐,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지하수를 끌어다 쓴다. 도시가스 시설이 없어 대부분 LPG나 연탄으로 난방을 한다.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 없고 청소차도 일주일에 한 번 올 뿐이다.

    2003년 8월 인천시는 영종도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하며 운북동, 운남동, 중산동 일대를 영종 미개발지역으로 묶었다. 2009년 2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하 인천경제청)이 ‘계획 미수립지 개발계획’을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에 신청하자 이 일대에 건축 ‘붐’이 일었다. 논과 밭을 메우고 산을 파헤쳐 집이 들어선 것이다. 2009년 건축행위 신청건수만 1491건이었고 지난 6년간 주택 2417채가 들어섰다.

    하지만 2010년 12월 28일 지경부와 인천시가 협의를 통해 “보상비가 과도하고 사업성이 떨어져 경제자유구역 지구 지정을 해제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자 이들 주택은 한순간 ‘빈 깡통’이 됐다. 미개발지 총면적 17.7㎢ 중 11.8㎢가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됐다. 미개발지역에 들어서려던 신도시의 꿈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개발보상금을 노렸던 일부 부동산 투기꾼의 통쾌한 몰락으로만 보기에는 사정이 복잡하다. 이곳에 집을 짓고 사는 양모 씨는 IMF 당시 받은 퇴직금으로 1999년 2억 원을 들여 약 3305㎡(1000평)를 샀고, 2009년 9월 6억 원을 들여 주택과 상가를 세웠다. 양씨는 “퇴직금을 털어 노후 대비를 위해 산 땅이다. 인천경제청이 토지는 3.3㎡(1평)에 70만 원, 주택은 250만 원을 보상해준다고 하는데 누가 집을 짓지 않겠는가. 개발분담금에 건축비까지 마련하느라 대출받은 빚 때문에 한 달에 이자만 600만~700만 원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투기 목적으로 수십 채를 한꺼번에 지으면서 들어온 외지인들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일부 투기꾼의 문제라고?

    인천경제청이 난개발을 좌초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투자업체 관계자는 “막대한 보상금으로 인한 조성원가 폭등을 핑계 대지 말고 인천경제청이 책임을 져야 한다. 허가 내준 공무원 몇 명만 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인천경제청은 2009년 6월 미개발지역에 체계적인 개발을 한다며 건축행위를 제한하려다 지역 주민의 여론에 밀렸다. 주민들이 “헐값에 땅을 수용하려 한다, 강제 수용을 하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청은 2009년 10월로 건축행위 제한시점을 미룬 뒤 다시 2010년 1월로 연기했다. 양씨는 “투기를 잡으려면 그때 잡았어야 했다. 개발은 꼭 한다면서 건축행위 제한을 미루니 깡통집이 물밀듯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제청 김창홍 도시개발본부장은 “(건축행위) 통제를 잘못한 바는 있지만 결국 투기를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천경제청은 “장기간 주민의 사유재산권 제한에 따른 주민 불편 해소를 위해서도 지정 해제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십 년간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해온 김모 씨는 “만약 미개발지역에 대한 신도시 건설로 주민들이 떠났다면 장사를 하는 나도 밥줄이 끊겼을 것이다”라며 인천경제청 결정을 반겼다.

    하지만 원주민 중에는 인천경제청의 해제 결정을 반기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변모 씨는 “인천경제청이 개발 결정을 너무 오래 끌었다. 수용된다, 안 된다 빨리 결정했어야 했다. 수용되기를 원했던 주민들은 도리어 무분별하게 들어온 외지인에게 밀렸다며 불만이 많다. 장밋빛 신도시 계획은 어찌된 건지 궁금하다”고 불평했다. 인천경제청 도시개발계획과 관계자는 “신도시 조성 사업을 빨리 진행했으면 좋았겠지만 원래 미개발지역은 유보지 성격이 강해 제대로 된 계획이 없었다”고 밝혔다.

    운북동 등 미개발지역이 경제자유구역에서 제외됨에 따라 주변 지역에 투자를 한 사람들도 도미노처럼 피해를 입을까 우려한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1월 3일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경제자유구역 해제에 동의한 것은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구역 축소로 인천경제자유구역 전체 개발에 지장을 주진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논리다. 인천경제청도 “개발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투자를 유치하고 역량을 결집하면 개발이 더 가속화될 것이고, 해제된 지역에는 도시관리 계획을 수립하거나 도시개발사업구역으로 지정해 개발하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개발지역 인근 지역인 미단시티에 투자한 코암인터내셔날 김동옥 회장은 “당장 다른 지역도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변에서 나온다. 경제자유구역처럼 큰 사업은 정부와 시를 바라보며 일을 진행하는데 정부가 신뢰를 깼다”고 지적했다. 주변 투자자들은 미개발지역이 난개발 상태로 남았을 때 고층 빌딩이 화려하게 들어선 지역과 슬럼화된 미개발지역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인근 영종하늘도시 지구 주민들도 “영종도 미개발지역을 개발해서 나온 이익금을 투입해 송도 신도시와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 통행료를 5500원에서 1000원대로 낮추기로 한 방침이 결국은 무산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영종도 미개발지역에 대한 신도시 개발계획이 무산되자 인천시의 영종도 일대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사실 인천시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그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총 12곳 여의도 10배 면적 지정해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송도국제도시도 지지부진한데 영종도가 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자급자족 기능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아파트만 들어선다면 영종도 전체가 슬럼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1월 4일 영종도 운서역 인근에는 ‘32평 신축 아파트 급전세 2600만 원’ ‘53평형 아파트 전세 3500만 원’ 광고 전단이 나부꼈다.

    지난해 12월 28일 영종도 미개발지역과 함께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된 곳은 전국에 총 12개 단위지구로 정부는 새만금 군산배후단지, 광양만권 선월·신대덕례지구 등을 기능 중복과 사업성 결여 등의 이유로 구조조정했다. 전체 경제자유구역의 15.9%에 이르는 90.51㎢로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규모다. 이러니 영종도 미개발지역만이 아닌 경제자유구역 전체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인천대 하석용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근본적인 대수술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처음부터 너무 방만하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시작됐다. 6개 시에서 경제자유구역이 지정됐는데 재정 낭비를 감당하면서 언제까지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이상 지자체 위주로 진행하지 말고 국가적 관리체제로 전환해 관리해야 한다. 과감한 축소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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