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0

2011.01.10

곽노현 교육감, 이건 교실이 아닙니다!

체벌 전면금지에 ‘×판’ 일보직전 … 일선 교사 98% “학생지도 못할 판”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1-10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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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 교육감이 아닌 모두의 교육감이 되겠습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취임한 지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곽 교육감이 이끄는 서울시교육청은 체벌 전면금지를 시작으로 교장의 권한 축소, 초등학교 3, 4개 학년 무상급식 실시, ‘방과 후 학교’나 ‘강제 0교시 수업’ 실시 학교에 대한 예산 감축 등을 발표할 때마다 이슈의 중심에 섰다. 이외에도 학생인권조례에 두발·복장 자율화를 포함시킬 것을 시사하고 트위터를 통해 “특성화고교 중심으로 노동인권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히는 등 곽 교육감의 말은 뱉을 때마다 ‘뜨거운 감자’가 됐다.

    하지만 상당수 일선 교사는 “현장을 모르는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체벌 전면금지 정책은 일선 학교에서 그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학생이 교사 놀리고 협박 속출

    “아, 선생님한테 욕한 거 아니라고요. XX. 어차피 때리지도 못하면서 왜 XX이야.”



    부임 1년 차 서울 모 중학교 교사 A씨(25·여)가 수업시간에 친구와 떠드는 남학생을 제지하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며 선생님에게 이렇게 항변했다. A씨는 “학생을 혼내고 싶었는데 오히려 학생이 ‘체벌도 금지됐는데 때리기만 해봐라. 교육청에 신고할 것’이라고 협박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A씨는 수업을 중단한 채 교실에서 나왔고, 그 학생은 학기가 끝날 때까지 기고만장했다고 한다. A씨는 “내가 꼼짝없이 당하는 모습을 본 나머지 학생들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 반 수업은 아예 하기 싫었고,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었다”고 절망했다.

    초중고교 교사들에게 직접 들은 학교 현장의 붕괴는 상상 이상이었다. 한 중학교 교사는 “수업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하는 학생에게 매를 드니 ‘인터넷에 올리겠다’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했고, 심지어 내 차 바퀴를 송곳으로 뚫고 동전을 던져 유리를 깨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는 심한 스트레스성 위염에 시달려 일주일 동안 결근했지만 학생들이 걱정하기는커녕 “선생님, 병원에 안녕히 다녀오십시오”라며 놀렸다고 했다.

    교사들이 전하는 이런 기막힌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한 초등학교 5학년 음악 교사는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해라’고 했더니 도리어 리코더로 선생님을 때리려 했다”고 고백했고, 또 다른 중학교 교사는 교칙에 어긋난 겉옷을 입고 다니는 학생을 나무랐다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지도’를 받은 학생이 오히려 경찰에 “옷을 훔쳐갔다”며 해당 교사를 고발한 것.

    체벌 전면금지 후 교사들의 어려움은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2010년 12월 일선 교사 5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94%가 “체벌 금지 조치 이후 학생 지도가 어려워졌다”고 했고, 약 98%가 “2011학년도 수업 및 학생생활지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체벌 금지에 대한 ‘대안’이 없자 서울시교육청은 2010년 10월 ‘문제행동 유형별 학생생활지도 매뉴얼’을 발표했다. 매뉴얼의 주요 내용은 △교사에게 불손한 언행을 하면 우리말 바로 쓰기 과제 부여 △학습 태도가 불량하면 명심보감 ‘권학편’을 따라 쓰게 하기 △술 마신 학생에겐 음주 측정 실시 △담배 피운 학생에겐 주변 보건소나 한의원과 연계해 무료 금연침 시술하기다. 하지만 이런 매뉴얼은 일선 교육현장은 물론, 패러디가 돼 개그물까지 나왔다.

    KBS 개그콘서트 ‘동혁이 형’은 2010년 11월 22일 방송에서 “지각한 학생에게 노래를 시킨다는데, 이게 무슨 ‘슈퍼스타 K’냐”며 “현실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양천구의 한 중학교 교사 B씨는 “매뉴얼대로 하면 분명히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웃음거리만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또 “엎드려뻗쳐, 두 손 들기 등 ‘간접체벌’로 그때그때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데 이조차 모두 금지돼 그냥 방치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매뉴얼대로 하면 지도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돼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또 다른 주장이다.

    교사의 수업권은 왜 외면하나

    학생인권조례 개정으로 올해부터 시작할 예정인 두발, 교복 자율화에 대해서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한 중학교 여교사 C씨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유행하면서 아이들 치마 길이가 평균 한 뼘은 짧아졌다. 요즘은 BB크림 등 기초 피부화장이나 틴트(립스틱의 한 종류)를 안 하는 여자애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교복까지 자율화돼 아이들이 미니스커트나 핫팬츠, 레깅스 차림으로 학교에 오면 정말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요즘 아이들 대부분은 노스 페이스(North Face) 같이 몇몇 인기 브랜드 아니면 입지도 않는다. 무상급식처럼 서울시에서 공짜로 사복을 나눠주기라도 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곽 교육감의 정책 중 상당수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의 주장과 유사해 “곽 교육감이 교육 정책을 결정할 때 전교조와 거래한다”는 의혹이 일 정도다. 이에 대해 초등학교 교장 D씨는 “전체 교원 43만 명 중 전교조는 6만 명에 불과하다. 교사 집단은 본래 ‘체제 순응적’인 사람이 많아 불만이 있어도 잘 드러내 비판하지 않는다. 나머지 교사는 불만이 있어도 참고만 있으니 결국 전교조 의견이 전체 교원의 뜻인 것처럼 비칠 뿐”이라고 꼬집었다.

    중학교 여교사 C씨는 “곽 교육감은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당돌하고 영악한지 모른다. 몇십 년 전 아이들처럼 한없이 맑고 순수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교총 김동석 대변인 역시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폭력적인 게임을 많이 접하고 귀하게만 자랐다. 그러다 보니 본능을 제어하는 능력이 떨어져 조그만 자극에도 즉각적으로 공격 성향을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서울의 고등학교 생활지도부 교사인 E씨는 “동료 교사가 한 학생에게 치마가 짧다고 지적했는데, 학생이 ‘이게 어디가 짧느냐’며 대들었다. 그 태도가 어찌나 당당한지 마치 교사가 학생에게 혼나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 내 학생생활지도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20여 년간 교직에 있었던 교사 B씨의 말 속에는 체벌 전면금지 체제 속에서 무너져가는 교권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더 강한지 파악하고 그 사람을 따릅니다. 그런데 교사가 수업을 주도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교사를 무시하고 자기보다 힘이 센 친구들에게 의존하게 되죠. 아이들이 바로 자라길 바란다면, 곽 교육감은 교사가 수업을 제어하는 한 방법인 체벌을 ‘무조건 금지’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학생 인권만 중시하고 교사의 수업권을 무시하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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