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2010.12.13

박근혜의 ‘안보 방정식’

北 연평도 도발 강도 높은 비난, 여성 정치인 한계 극복하나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0-12-13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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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의 ‘안보 방정식’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졌다. 안쓰러움과 온정을 담은 눈빛은 싹 사라지고, 대신 적의와 분노 섞인 눈빛들로 가득해졌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달라진 민심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11월 27일 전국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안보 상황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한 응답자가 무려 81.5%에 달했다. 안보불안감 조사를 실시한 2009년 이후 가장 높다. ‘제한적 군사보복을 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68.6%나 됐다. 28.2%에 불과했던 천안함 사태 때보다 3배 가까이 높아졌다.

    안보가 불안한 마당에 4대강 사업 반대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등 야당이 그동안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이슈들에 대한 관심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 신(新)안보정국은 수세에 몰리던 정부 여당의 숨통을 열어줬다. 한나라당이 내년도 예산안을 과반수 의석수로 밀어붙여 통과시킨 것도 이런 정국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정국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이들은 대권후보들이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겐 여론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보 문제는 보수세력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도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둔 박 전 대표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과연 신안보정국은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까, 아니면 불리하게 작용할까.

    보수층 결집 유도 긍정적 효과 미약



    박 전 대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연일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연평도 도발 다음 날인 11월 24일, 박 전 대표는 이공계 의원들과의 오찬 회동에 앞서 기자들에게 강한 어조로 북한의 도발을 비난했다.

    “이번에 북한이 우리 국민과 영토에 직접적으로 포격을 한 것은 명백한 도발 행위이고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도발에는 반드시 큰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모든 수단과 방법’에 대해 “거기에는 외교적, 군사적 모든 수단이 다 있다”고 덧붙였다.

    25일 오전 북한의 포격으로 사망한 군인들의 유족을 찾은 박 전 대표는 ‘다시는 이런 일 안 생기게 더 좋은 대북정책을 만들어달라’는 한 유족의 당부에 “뜻을 잘 새겨서 정말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의 ‘안보 방정식’
    박 전 대표는 27일 순국한 장병들의 영결식장에 다녀와서는 자신의 홈페이지와 트위터에 또 한 번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을 남겼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대한민국은 모든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홈페이지)

    “평소 공기의 존재에 무관심하듯, 사실 우리의 모든 생활이 무의식중에도 안보에 대한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이번 도발이 안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트위터)

    전문가들은 안보정국이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한나라당이나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 개인만을 놓고 본다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로 엇갈린다.

    시사평론가 이종훈 박사는 신안보정국이 보수층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의 이번 도발에 강력한 응징을 원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정신에 대해 미심쩍어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특히 보수진영 중에서도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라면 이랬을까, 아마 강력히 응징했을 것이라면서 아쉬워하는 기류가 형성돼 있다. 그 후광효과가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정한울 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안보정국에는 보수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지만 박 전 대표가 군 경험이 없는 여성이라는 점은 분명 한나라당 내 다른 대권후보에 비해 불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북핵 위기가 터졌을 때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떨어진 반면, 당시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던 전례가 있다.

    정 부소장은 “보수진영의 대표주자인 박 전 대표가 야권 후보들에 비해 득을 보긴 했지만 여성이라는 약점이 작용해 결과적으로 지지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며 “이념적 보수성의 부각효과와 안보문제 대처능력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상쇄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박근혜의 ‘안보 방정식’
    원칙 지키며 평화 추구 이미지 필요

    실제 EAI 여론분석센터의 11월 여론조사 결과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30.8%로, 전달 34.3%보다 3.5%포인트 감소했지만 오차범위 내 차이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차기대선 후보 중 북한의 군사행동이나 핵무기 개발 등의 위기에 대응을 가장 잘할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24.7%만 박 전 대표를 뽑았다. 오히려 전체 지지율이 5.3%에 불과한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를 선택한 응답자는 11.3%로 두 배 이상 많았다.

    안보정국이 보수진영 전체에 유리하기는 하지만 박 전 대표에겐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일정 부분 불리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는 방증이다.

    김종욱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교수는 또 다른 측면에서 안보정국이 박 전 대표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신안보정국이 박 전 대표에게 미칠 영향은 이중적일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지금 당장은 안보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지속적으로 안보정국을 강화할 경우 완고한 보수의 이미지가 고착될 수 있다. 선거 때 수도권 중산층 30~50대에 형성돼 있는 유동층의 선택이 중요하다. 이들의 특징은 리버럴하다는 것이다. 이들이 바라는 리더는 완고한 보수가 아니다. 수도권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고착돼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교수는 “박 전 대표는 안보문제와 관련해서 여성이라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남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정치권 내부의 반감도 적지 않다. 이 같은 불리한 측면을 보완하려면 원칙을 지키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변수는 아직 많다. 당장 안보정국이 얼마나 갈 것인지도 중요한 변수다.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는 현 정부의 임기 중 남북관계가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안보정국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면 2012년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당사국 대부분 정권교체기라는 점을 주목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김 교수는 “권력교체기를 앞두고 권력자들은 외교적 문제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낼 필요가 있다. 내년에는 어떤 형태로든 긴장국면은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의 전망처럼 내년에 안보정국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 흔적은 남는다. 안보정국에서 박 전 대표의 행보는 대선정국에서 표심의 평가를 받는 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신안보정국에서 여성으로서의 불리한 측면을 어떤 형태로 보완해나갈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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