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1

2010.11.08

천신일 ‘세중재단’ 특혜 의혹

MB 서울시장 시절 공익단체로 추천해 지정 … 직전 2년간 결산서 없이 “OK” 또 다른 논란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0-11-05 17: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천신일 ‘세중재단’ 특혜 의혹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한 채 일본에 체류 중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을 둘러싼 의혹이 청와대로 확산되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의 몸통으로 천 회장 대신 영부인 김윤옥 여사를 지목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 친구 게이트’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천 회장의 ‘세중문화재단’(이하 재단)을 기획재정부(당시 재정경제부)에 ‘공익성 기부금 대상단체’(이하 공익단체)로 추천해 지정받도록 한 것으로 드러나 새로운 논란이 일 전망이다.

    법인세법 관련 규정에 따르면 ‘예술 및 문화에 현저히 기여하는 사업 중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법인’은 관계 행정기관 장의 추천을 받아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공익단체로 지정받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재단이 공익단체로 지정받은 것은 2007년 1월 12일. 2006년 10월 13일 재단이 설립된 지 불과 3개월 만의 일이다.

    재단 설립 3개월 만에 전격 처리

    기획재정부 법인세제과 관계자에 따르면 공익단체로 지정받으려면 직전 2년간 결산서와 향후 사업계획서, 예산서 등을 기본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다만 불우이웃돕기 등 비영리사업이 명백한 경우, 주무관청이 추천을 하면 예외적으로 사업계획서와 예산서 등으로만 공익단체로 지정할 수 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사설박물관 건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재단법인이 직전 2년간 결산서 등 기본 서류를 제출하지 않고 예외적으로 공익단체로 인정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재단에 대한 서울시의 공익단체 추천에 특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서울시청에서 지금의 지식경제부에 추천해 정상적인 심사를 거쳐 (공익성) 기부금 대상단체로 인정받은 것”이라며 특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재단이 과연 ‘예술 및 문화에 현저히 기여하는 법인’인지도 의문이다. 재단 등기이사들을 보면 천 회장을 비롯해 딸 미전 씨, 천 회장과 태광실업 박연차 전 회장 간의 부적절한 자금거래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찬 세중나모여행 부회장, 세중나모여행 재무이사 김모 씨, 전무 송모 씨 등 천 회장의 최측근이 포진해 있다. 예술이나 문화 관련 전문가는 전무하다.

    천 회장이 이수우(54·구속기소) 임천공업 대표로부터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와 은행대출 등을 위한 로비 대가로 12억 원어치의 철근을 무상 제공받은 곳도 다름 아닌 재단이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330-1 일대 국가 지정 문화재인 북악산 능선을 파헤치고 ‘세중옛돌박물관’을 짓는 데 사용한 것. 또 이 대표가 임천공업과 계열사의 주식을 천 회장의 자녀 3명에게 매각하고 받은 26억 원도 재단에 기부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특히 재단이 건립 중인 옛돌박물관은 승인 과정에서부터 각종 특혜 의혹을 받아왔다. 옛돌박물관은 현재 대지 1만2000㎡에 지하 3층, 지상 1층 규모로 건설 중이다. 그런데 그 위치를 보면 무성한 삼림이 우거졌던 북악산 자락을 훼손하면서까지 어떻게 사업허가가 났는지 의아하다.

    천 회장이 이곳에 박물관 건립계획을 세우고 서울시에 심의를 요청한 것은 2001년부터다. 서울시가 그 계획을 받아들인 것은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된 지 6개월 후인 2002년 12월이다. 서울시는 3개월 후 이 지역을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정법사지구’로 지정하고 민자유치를 통해 박물관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천 회장의 옛돌박물관 건립을 위한 구색 맞추기 차원의 행정 절차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심의 과정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2006년 5월 “산림이 잘 보존된 자연경관 지역인 데다 경사가 30도에 가까워 박물관이 들어서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당초 공원 조성계획을 반대했던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가 20여 일 만에 이를 뒤집었다.

    2007년 3월 북악산 일대를 주요 문화재로 지정한 문화재청은 “산림훼손 우려가 많다”며 박물관 건립계획을 보류했다가 그해 7월 조건부로 허가했고, 성북구청은 그 후 1년 넘게 검토하다 2008년 11월 사업계획을 최종 인가했다.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건립계획을 승인한 박물관 사업계획이 그로부터 6년 뒤 이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관할관청에서 인가해준 것이다.

    옛돌박물관 설립목적도 불투명하다. 천 회장은 20여 년간 모은 문인석과 장승, 석등 등 전통 석조물을 전시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그가 2000년 6월 경기도 용인시 양지리에 세운 ‘세중박물관’(옛 세중돌박물관)의 설립목적과 똑같다. 같은 목적으로 전혀 다른 지역에 2개의 박물관을 건설할 만큼 천 회장이 수집한 석조물이 많은 것일까.

    옛돌박물관 입장 바꾼 서울시 왜?

    천신일 ‘세중재단’ 특혜 의혹

    1 세중문화재단이 서울 성북구 성북동 북악산 산자락에 건립 중인 ‘세중옛돌박물관’. 2 인공위성 사진에 삼림훼손 흔적(원 안)이 역력하다.

    세중박물관 한 관계자는 “세중문화재단은 물론 성북동에 짓고 있다는 세중옛돌박물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건 우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물관이라기보다 사택을 연상케 한다’는 일각의 지적도 터무니없다고만 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대목은 재단이 공익단체로 지정된 시기에도 옛돌박물관 건립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천 회장은 재단이 공익단체가 되면서 적지 않은 수혜를 입었다.

    천 회장은 2006년 10월 재단 설립 직후 자신이 보유한 세중나모여행 지분 중 당시 110억 원 상당의 110만5000주를 대학과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실제 기부한 것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7년 11월, 약속한 주식의 절반도 안 되는 50만 주의 매각대금 63억5000여만 원에 그쳤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액수인 25억여 원을 고스란히 자신이 소유한 재단에 기부했다.

    공익단체로 지정된 법인에 기부금을 낸 개인이나 법인은 연말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개인은 연간 소득금액의 10%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법인은 연간 순이익의 5%까지 손비처리가 가능하다. 결국 천 회장은 대학,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부한 38억 원을 포함해 재단에 기부한 25억 원까지 사실상 기부금 전액에 대한 손비처리가 가능했다.

    천 회장에게 로비 대가로 철근, 금품 등을 제공한 임천공업 이 대표도 재단이 공익단체인 까닭에 예상치 못한(?)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대표가 재단에 기부한 철근을 포함한 금품에 대해서는 기소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되는 것은 과연 검찰이 재단 기부금으로까지 수사대상을 확대할 것이냐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후보 후원회장을 맡았던 천 회장이 대선자금 모금에 깊숙이 관여했고, 그 상당액이 재단을 통해 세탁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다. 고가의 석물은 당사자만 정확한 거래가격을 알 수 있고, 국세청에 과세 근거도 남지 않아 탈세뿐 아니라 자금세탁에 악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5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천 회장의 돌 사업과 관련해 매매가격을 낮춰 신고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포탈한 정황을 확인하고 내사에 착수했다가 노무현 대통령 자살사건의 여파로 유야무야된 적도 있다. 당시 검찰이 어디까지 조사를 벌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검찰의 수사의지에 따라 2007년 이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대우조선해양 스크랩 철(고철, 잡철 등) 처리사업자가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재향군인회)에서 대한민국재향경우회(이하 경우회)로 바뀐 배경에도 천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 사실상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기업이다. 그렇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우조선해양의 스크랩 철 처리사업권이 친정부 보수단체인 재향군인회와 경우회를 오갔다. 스크랩 철 재처리 기술이나 사업체가 없는 이들 단체가 행사하는 권한은 사실상 하청업체 선정권한이고, 대신 이들은 5%(연간 6억~7억 원) 정도의 수수료를 챙긴다.

    2000년부터 재향군인회가 맡아오던 이 권한이 경우회로 넘어간 것은 2006년 3월이다. 시기적으로 남상태 부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다. 당시 경우회 회장이었던 구홍일 전 회장은 경북 경주 출신으로 경북 영양 출신인 남 사장과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 고철 사업자 교체배경도 의심

    재향군인회와 경우회가 대우조선해양의 스크랩 철 처리사업권을 놓고 다시 치열한 로비전을 펼친 것은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다. 정권이 교체됐으니 사업권을 되찾으려는 재향군인회와 이를 지키려는 경우회 간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했던 것. 그 시기는 2008년 전후로 남 사장이 최 회장을 통해 자신의 사장 연임 로비를 시도했던 때와 일치한다.

    당시 재향군인회 박세직 회장(2009년 7월 별세)은 경북 구미 출신으로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등 현 정부의 실세와 친분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고(故) 박 회장은 실제로 경우회로부터 사업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청와대와 산업은행 고위층을 통해 여러 차례 민원성 청탁을 시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재향군인회 한 관계자는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물론 산업은행 총재 등 요로를 통해 사업권 반환의 필요성을 건의했지만 남 사장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다. 남 사장에게 직접 면담을 수차례 요청한 끝에 지난해 1월 한 번 만났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남 사장이 이처럼 청와대와 정부 고위층의 의견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믿을 만한 구석’이 있고, 그 사람이 바로 천 회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향군인회 측의 추측이다. 남 사장이 천 회장에게 연임 로비청탁 대가의 하나로 스크랩 철 처리사업권을 경우회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재향군인회 측의 로비로 이 대통령이 스크랩 철 처리사업권을 다시 재향군인회에 넘겨주려다 천 회장과 가까운 청와대 고위인사가 이를 반대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이와 관련해 “대우조선해양은 정부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크랩 철 처리사업권도 사장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 모두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한 것으로 안다”고만 답했다.

    만약 천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스크랩 철 처리사업권과 관련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를 통해 또 어떤 거래를 하고,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도 검찰이 확인해봐야 할 사안이다. 천 회장은 현재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한 채 신병치료를 이유로 일본에 체류 중이다. 과연 검찰이 ‘대통령의 친구’인 천 회장에 대한 향후 수사에 어떤 절차를 밟을지 주목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