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50

2010.08.16

쉽게 멈출 수 없는 ‘패싸움 딜레마’

천안함 이후 갈수록 긴장 고조 … 美-中 중재하며 제3의 대안 모색 시급

  • 엄상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scare96@sejong.org

    입력2010-08-16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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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멈출 수 없는 ‘패싸움 딜레마’

    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이란·대북 제재 조정관(오른쪽)이 8월 2일 용산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관에서 대북제재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 후폭풍이 거세다. 한미의 대북제재 강화와 북중의 맞대응으로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고민도 자못 깊어지는 듯하다. 작금의 동북아 정세 분석과 한국의 대응방향 모색이 긴요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안보리)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천안함 결의, 한미의 동해 연합군사훈련, 중국의 서해·남중국해 군사훈련, 한국의 서해 해상훈련과 북한의 서해 해안포 사격 등 일련의 사건이 말해주듯 천안함 사태 이후 동북아의 긴장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와 1874호에 입각한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저승사자’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 미 국무부 이란·북한 제재 조정관이 주도하는 대북 추가 금융제재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북한도 “강력한 물리적 타격으로 진압” “핵 억제력에 기초한 보복성전 개시” “진짜 전쟁 맛을 똑똑히 보여줄 것” 등의 과격한 수사를 동원하면서 강경대응 의사를 거듭 천명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55대승호’ 피랍 문제를 둘러싼 남북한 간의 신경전도 팽팽하게 펼쳐지고 있다.

    사실 동북아의 긴장 고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1세기에도 동북아는 여러 차례 긴장 고조를 경험했다. 대부분이 북한의 핵개발과 무력도발로 야기된 한반도 차원의 긴장 고조였다. 천안함 사태 자체도 한반도 차원의 사건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 이후의 긴장 고조는 한반도 차원을 넘어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남북한의 갈등과 미중의 패권경쟁이 어우러진 한미일과 북중러 간의 ‘패싸움’ 양상을 띠는 것이다. 탈냉전과 더불어 이완(弛緩)됐던 동북아의 지역적 양극체제가 다시 경화(硬化)될 조짐을 보인다. 그래서 문제의 심각성이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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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패싸움의 양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북한의 핵포기와 개혁·개방을 우선하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기조, 개혁·개방을 주저하고 핵개발에 ‘다걸기’를 하는 김정일 정권의 강성대국 기조는 평행선을 달려왔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남북한 간의 대립과 갈등이 증폭돼온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포괄적 한미동맹 강화와 김정일 정권의 북중동맹 강화는 동북아의 양극체제 강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경계론’이 말해주듯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미중 간의 패권경쟁을 예고했다.

    이러한 예고는 북한의 비핵화, 위안화 절상, 미중 무역 불균형, 구글(Google)의 중국 인터넷 검열 비판,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 그리고 오바마 미 대통령의 달라이 라마(Tenzin Gyatso) 면담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점차 현실화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중국의 패권도전 잠재력을 약화시키려는 미국과, 성장한 만큼의 대우를 받으려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면서 미중 간의 대립과 갈등이 증폭된 것이다. 이러한 갈등의 증폭 과정에는 일본과 러시아도 직간접적으로 개입돼 있다.

    결국 천안함 사태는 동북아의 제국들, 특히 남북한과 미중의 누적된 대립과 갈등이 노골화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한미일은 천안함 폭침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대규모 군사훈련과 추가 금융제재를 통한 강력한 대북제재를 추진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북한의 핵포기 종용과 김정일 정권의 교체도 암시돼 있다. 나아가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에 대한 불만을 강력히 피력하고, 중국의 패권도전 의지를 꺾으려는 미국의 경고 메시지도 담고 있다. 이러한 점은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동원한 대규모의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 클린턴(Hillary Clinton) 미 국무장관의 남중국해의 중국 영유권 부인, 대북 금융제재를 통한 우회적 중국 압박 등에서 엿볼 수 있다.

    한편 북중러는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적극 부인하면서 대북제재 및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미국의 적극적 개입과 군사훈련을 중국의 세력권 침해로 간주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중국의 황해 대규모 군사훈련과 남중국해 방위력 강화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천안함 사태 이후 양 진영 간의 누적된 이해갈등 폭발과 강경대응이 맞대응 무력시위를 빚어내면서 동북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아직까지 동북아의 긴장 고조는 양진영 간의 ‘기(氣) 싸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면적 무력충돌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양 진영 모두 전면적 무력충돌만은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남북한 간에도, 미중 간에도 전면적 무력충돌은 상호 공멸(共滅)을 초래할 수 있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가 예고된 상황에서 동북아의 긴장이 조만간 급격히 냉각될 것 같지도 않다.

    대북특사·남북정상회담 고려도

    양극체제의 경화는 상대 진영과는 적대와 대결을, 동일 진영 내에서는 협력과 결속을 강화하게 된다. 따라서 양극체제가 이완되지 않는 이상 한국의 선택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분간 한국 진영의 패권국인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 일변도의 정책 강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국은 미국과 갈등을 빚는 국가들과도 커다란 이해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이란 제재 동참 문제를 둘러싼 한국의 고민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뿌리 깊은 남남갈등의 재연도 우려된다.

    동북아의 긴장 고조와 양극체제 경화는 한국의 딜레마와 시름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 방향은 동북아의 긴장 완화와 양극체제 이완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의 협력은 유지하되, 친미 일변도 또는 친미·반중 정책만큼은 경계해야 한다. 일방적 미국 추종은 중국을 자극해 한중관계를 크게 악화시킬 뿐이다.

    역할의 한계는 있겠지만, 친미·친중의 입장에서 미중 갈등의 중재 구실을 강화해야 한다. 대북 압박과 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상,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 대북특사 파견이나 남북정상회담 추진도 고려해볼 만하다. 무엇보다 동북아 긴장 고조의 진원인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강구해야 한다. ‘햇볕정책’도 ‘비핵·개방·3000’도 아닌 제3의 대안 모색이 긴요하다.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발상의 전환에 입각한 천안함 사태의 출구전략 준비에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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