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1

2010.06.14

정치 보복 광기 영조는 절반의 성공

‘조선 왕을 말하다’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0-06-14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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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보복 광기 영조는 절반의 성공

    이덕일 지음/ 역사의아침/ 344쪽/ 1만5000원

    박정희 정권이 국사 교육을 강화한 이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정치적 행위나 다름없었다. 피지배 세력이 저항의 한 방편으로 역사를 선택하면서 역사관을 놓고 벌이는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 간 다툼은 더욱 격렬해졌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분단 등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놓고 이를 해석하는 방식에 대한 싸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과 대립의 와중에서도 역사를 즐기려는 욕구는 한때 인문서 시장의 규모를 크게 키웠다.

    21세기 들어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하고 자본의 논리가 문화를 지배하면서 역사는 텔레비전 드라마라는 하나의 ‘오락’으로만 존재할 뿐, 인문서 시장은 처세술과 심리학 서적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역사서는 조선이란 공간으로 도피해 겨우 명맥을 이어갈 뿐이었다.

    변산공동체의 모내기 행사에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조선 왕을 말하다’를 읽기 시작했다. 30년 만의 과도한 노동으로 하체 근육들이 아우성이었지만 모처럼 읽는 역사책은 재미있었다. ‘이덕일 역사평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악역을 자처한 태종과 세종, 신하들에게 쫓겨난 연산군과 광해군, 전란을 겪은 선조와 인조, 절반만 성공한 성종과 영조 등 8명의 조선 왕에 대한 바로보기를 시도한 책이다.

    저자는 이들 왕에 대한 성리학적 관점과 당파적 관점을 걷어내야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다양한 사료와 실록을 읽으며, 각 왕의 핵심 쟁점(사건이나 사람)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고 나름의 평가를 내놓고 있다.

    영조와 노론이 선왕인 경종을 독살했다고 믿는 소론 강경파와 남인들, 그리고 백성의 의구심을 불식하려 했던 영조는 결국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절반만 성공한 왕이 됐다. 독살설에 발목이 잡혀 양반 사대부의 특권을 철폐하라는 시대 요구를 시행할 권력도, 의지도 없었던 영조는 어머니가 미천한 신분이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 숙빈 최씨의 추숭작업에 몰두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정통성의 한계를 탕평책으로 뛰어넘고자 했으나 “간신이 조정에 가득해 백성의 삶이 도탄에 빠졌다”는 내용의 벽서가 걸린 ‘나주벽서 사건’과 과거시험에서 영조의 통치를 비난하는 답안지가 제출된 ‘토역경과 사건’으로 평상심을 잃고 소론 강경파를 500여 명이나 처형해 노론 일당독재 체제를 만들고 말았다. 게다가 정치 보복의 광기에 사로잡힌 자신에게 맞선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여 비정한 아버지로 내몰리기까지 했다.

    66세 나이에 16세의 정순왕후와 재혼한 노욕(老慾)은 또 다른 화를 키웠다. 새롭게 등장한 외척세력이 세손(정조)마저 제거하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도자가 후세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좋은 후계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영조는 노론의 당론을 거부하고 세손을 즉위시켰다. 이로써 영조는 경종 독살설을 비롯해 각종 부정적 사건으로 얼룩졌던 재위 때의 오점을 상당 부분 씻을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공격해오자 선조는 서둘러 도성을 빠져나와 북으로 도망갔다. 이에 화가 난 백성은 경복궁에 불을 지르고 창고에 들어가 곡물을 약탈했다. 이런 백성의 마음을 달래 나라를 위해 싸우도록 만든 것이 재상 유성룡이 주도해 제정하고 시행한, 천인들도 군공(軍功)을 세우면 양인으로 속량해주고 벼슬까지 준다는 면천법과 조세의 부과기준을 호(戶)에서 농지 소유의 다과(多寡)로 바꾼 작미법(대동법)이었다.

    노비와 가난한 백성의 처지를 헤아린 이들 정책으로 망해가던 나라가 되살아났지만, 선조는 전후 수습보다 전쟁에 공이 많은 김덕령과 이순신 죽이기, 영창대군과 장성한 세자를 두고 후사를 저울질하기 등과 같은 소모적 정쟁에 더 몰입했다. 이로써 조선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형해(形骸)를 유지했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기도 한다”는 ‘순자(荀子)’ 왕제전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6월 2일 지방선거에서도 민심은 배를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역사는 이렇게 늘 반복되는 법이다. 그렇게 역사라는 거울로 현재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역사는 현재학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미래학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제발 이 시대 리더들이 이 사실을 명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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