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0

2010.06.07

권력 견제 밑바닥 民心 젊은 변화를 택했다

6·2지방선거 뜬 별 & 진 별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6-07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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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 별▶▶

    권력 견제 밑바닥 民心 젊은 변화를 택했다
    오세훈(49) 서울시장 당선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민선 서울시장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오 시장은 2006년 총선 때도 최연소, 최다득표를 기록한 바 있다.

    오 시장은 연임에 성공하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오 시장의 연임가도에 가장 큰 위기는 2008년 4월 총선을 전후해 찾아왔다. 서울시에 출마한 한나라당 일부 후보가 사활을 걸고 해당 지역구 뉴타운 지정을 “오 시장이 약속해줬다”며 유세를 하고 다녔지만, 정작 오 시장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밝혀 불만을 샀던 것. 결국 일부 후보는 당선된 이후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다. 이들 중에는 현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도 포함된다.

    이 일로 그렇지 않아도 당내 지지기반이 없던 오 시장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오 시장은 그로부터 올 5월 3일 치러진 한나라당 서울시장 경선 때까지 2년 가까이 당 소속 의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관계 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원희룡 의원과 단일화에 성공해 막판 대추격전을 펼쳤던 나경원 의원과의 경선에서 득표율 68.4% 대 24.9%의 큰 포인트 차이로 승리가 가능했다. 그리고 현역 프리미엄을 기반으로 선거 초반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달렸던 오 시장은 막판에 의외로 선전한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힘겹게 제치고 2만7000여 표차로 승리했다.



    오 시장의 남은 임기는 2014년 6월까지. 임기를 끝까지 마친다면 8년간 서울시를 이끌어 최장수 서울시장이라는 기록도 세우게 된다. 당 경선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던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 “대권 도전에는 관심도 없고 나가지도 않겠다. 서울시를 마지막으로 정치인생을 마감하겠다”고 불출마 의지를 밝힌 오 시장. 이번 연임에 성공하면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른 그가 과연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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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45) 충남도지사 당선자

    안희정 민주당 전 최고위원이 충남도지사에 당선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활을 알렸다. 안 당선자는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를 2만여 표차로 제쳤다.

    안 당선자의 당선 배경으로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와 국민중심연합 심대평 대표의 분열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충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두 정치인이 갈라서자 충청 표심이 새로운 대안으로 안 당선자를 선택한 것.

    안 당선자는 노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그러면서도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 채 변방에만 머물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이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되면서 사실상 정치적 유배생활을 시작했던 것. 2006년 8월 15일 ‘8·15 광복절 특사’로 사면복권 됐지만 안 당선자는 그 후로도 한동안 정치적 활동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 일로 대통령 사면복권 권한과 범위에 대한 논란이 일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직후인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안 당선자는 충남 논산·계룡·금산지역에 출마의사를 밝혔지만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당이 비리 부정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처벌받은 자에 대한 공천배제 원칙을 세워 탈락했다.

    그해 7월 안 당선자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뽑히면서 비로소 정치다운 정치를 시작했다. 안 당선자는 사실상 이때부터 자신의 고향인 충남지역에 터전을 잡기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안 당선자의 고향은 논산. 1993년 자치경영연구원(전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시절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꿈꿨던 풀뿌리 지방자치를 현실 속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에 그의 정치 인생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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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길(47) 인천시장 당선자

    송영길 인천시장 당선자는 민주당 386세력의 중심축이다. 우상호, 이인영, 임종석, 오영식 전 의원 등 한때 민주당의 주축을 이뤘던 386 중 2008년 18대 총선 때 유일하게 살아남아 3선 의원이 됐다.

    같은 386운동권 세대지만 친노직계인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일찍이 정치권에 입문한 반면 송 당선자는 오랜 기간 노동운동과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84년 연세대 초대 직선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85년 2월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후 인천 건설현장과 가구공장, 택시회사 등에서 노동운동을 펼쳤다. 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인천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전남 고흥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 송 당선자가 뿌리내린 삶의 터전은 인천이다. 송 당선자가 3선 도전에 나선 안상수 현역 시장을 물리칠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이 같은 경력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송 당선자는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차세대를 이끌 ‘386 리더’로 주목받았다. 이후 송 당선자는 자의반 타의반 당내 대권후보군에 오르내렸지만 다소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치권 선후배와의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는 게 걸림돌로 지적됐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되면서 송 당선자는 명실상부한 차세대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당장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베트남 모 기업 로비 및 성 접대 의혹부터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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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59) 경기도지사 당선자

    한나라당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연임이 확정되자 한나라당 안팎에선 “역시 김문수는 강했다”는 말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최고위원인 김진표 후보와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의 야권 단일화, 여기에 더해 진보신당 심상정 공동대표가 선거 막판 유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후보직을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지만 결국은 김 도지사가 꿋꿋이 막아냈다는 반응이다.

    낙승을 기대했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히려 끌려가는 상황이 전개되고, 인천에서는 힘 한번 못 써보고 자리를 내준 터라 김 후보의 선전은 더욱 빛났다. 당내 대권 레이스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서의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거 과정에서도 김 도지사는 보수층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정면승부를 펼쳤다. 천안함 침몰사건을 놓고 정부의 책임을 주장한 유 후보와 설전을 벌였고, 후보 등록 후 처음 찾은 곳도 ‘천안함 46용사’의 49재 자리였다. 이날 유 후보는 평택의 쌍용차 노조를 찾아 대조를 보였다.

    선거 초기 무상급식이 지방선거 최대 화두가 됐을 때는 “‘묻지 마 무상급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상급식을 하려면 세금을 늘리고 다른 예산을 줄여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4대강 사업’의 당위성도 유권자에게 적극 알리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24박25일 민박 유세’를 펼치면서 ‘서민 도지사’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12세 이하 필수 예방 접종 무상지원, 군 전역 간부 취업지원, 아토피 클러스터 조성 등 ‘생활 공감 정책’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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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재(45) 강원도지사 당선자

    민주당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13개월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민주당 불모지 강원도에서, 그것도 높은 인지도의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와의 대결에서 거둔 승리여서 당선 의미는 배가됐다.

    이 당선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참여정부 시절 국정상황실장에 기용되면서 실세로 급부상했다. 17대 총선에서 38세의 나이에 초선의원이 됐고, 18대 총선에서도 50%가 넘는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썬앤문 대선자금 수사 등 6번이나 검찰 수사를 받았고, 지난해 3월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억 원가량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일어났다. ‘오뚝이 정치인’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도 이 때문.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친노(친노무현) 색채를 드러내지 않고 일자리와 교육·복지 공약을 내놓으며 ‘일하는 도지사’ 이미지를 강조했다. TV토론에서도 차분한 논리로 방송인 출신 이계진 후보에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거 막판 부친(68)이 선거운동 중 행인에게 폭행을 입는 사고를 당하자 유세를 중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당선자는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4800만 원을 선고받고, 6월 11일 항소심 선거공판을 앞두고 있다. 2심에서도 유죄가 확정되면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내려져 도지사직을 상실할 경우 이 당선자는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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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원(47) 한나라당 의원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서울시장 경선을 펼치며 자신의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선 레이스에서는 오 시장의 4년 시정(市政)을 “전시행정과 낭비행정의 표본”이라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앞서 원희룡 의원과의 단일화 협상에서는 “성사되지 않으면 독자 완주하겠다”며 원 의원 측을 압박, 시종일관 협상의 주도권을 쥐었다. 단일화를 위한 설문 문안도 원 의원에게 유리한 ‘시장 적합도’ 대신 자신에게 유리한 ‘시장 선호도’로 확정하는 수완을 보였다.

    시장후보 낙선 뒤에는 오세훈 후보 유세는 물론이고 정몽준 대표와 인천 등 접전 지역 유세까지 참가하며 정치인으로서의 중량감을 더했다. 이 과정에서 ‘예쁜이 정치인’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탈피, ‘여성 서울시장 후보감’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선호도’를 고집하고, 빼어난 미모를 찾는 유세 요청이 많은 점 등을 보면 여전히 ‘미모 정치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상존한다.

    진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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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대평(69) 국민중심연합 대표

    지난해 8월 30일 당시 자유선진당 대표였던 심대평 대표는 전격 탈당을 선언했다. 이회창 총재의 독선적 당 운영을 이유로 내세웠다. 상당수 기초자치단체장과 광역 및 기초의원이 심 대표와 동반 탈당했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올해 3월 25일, 심 대표는 국민중심연합을 창당하고 다시 대표로 선출됐다. 그러나 심 대표와 함께 창당 작업에 동참한 기초단체장으로는 이준원 공주시장, 최홍묵 계룡시장 정도에 그쳤고, 광역 및 기초의원은 극소수였다. 오히려 일부 기초단체장과 광역 및 기초의원들은 자유선진당으로 복당했다.

    충청권을 지역기반으로 한 당이 2개로 늘어나는 것에 대해 지역분열이라며 지역 민심이 매우 비판적으로 돌아선 것과 무관치 않다. 실제 심 대표에 대한 지역 주민의 평가도 매우 악화된 상태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기초단체장 후보 7명 중 당선된 후보는 단 1명에 불과하다. 심 대표는 그의 정치일생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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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숙(66)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는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도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추대됐다. 그만큼 민주당이 ‘한명숙 효과’에 거는 기대가 컸다. 한 전 총리의 강점은 안정감과 도덕성. DJ정부 때 초대 여성부 장관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 총리직을 무난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기대에 한 전 총리는 국민언니 이미지를 내세워 ‘사람특별시’를 만들겠노라 온 힘을 다해 뛰었다.

    예상을 깨고 선전했지만 결과는 석패. 개표 중반까지 1위를 달리면서 희망에 부풀었으나, 막판까지 승기를 유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가장 큰 실책은 ‘벙벙한’ 공약으로 꼽힌다. ‘전쟁을 막겠다’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 식의 공약은 오세훈 현 시장 측의 다양한 생활밀착형 공약에 밀렸다. 지나치게 ‘노풍’에 의지하려는 듯한 선거 마케팅도 막판 역전극을 펼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선 실패로 그의 정치생명에도 위기가 왔다. 올해 66세로 ‘다음’을 기약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검찰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것도 악재다. 한 전 총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대가로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선고 직전 또 다른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가 추가됐다. 혐의는 경기도 H건설시행사로부터 9억 원에 달하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 검찰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수사를 잠시 중단했지만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확보 작업은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일각에서는 이미 한 전 총리가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검찰의 수사재개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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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상수(64) 인천시장

    3선은 무리였다.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에 대한 장밋빛 미래가 안 시장을 재임에 성공시켜줬지만, 이번엔 3선의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됐다. 안 시장은 지난 8년간 사실상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국제도시로 개발하는 데 ‘올인’하다시피 했다.

    안 시장이 임기 초반부터 가장 주력한 것은 외자유치였다. 초기에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실제 투자가 이뤄진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2004년부터 올해 초까지 6년 동안 유치에 성공한 외자는 7억600만 달러. 이는 당초 개발 총사업비의 1%에 불과한 수치다. 더욱이 송도신도시는 물론 청라신도시, 영종공항도시, 운북복합레저단지, 용유·무의 문화관광레저복합단지 등 대규모 지역개발사업도 난관에 부딪혔다.

    인천시의 부채는 2조5000여억 원으로 8년 전에 비해 4배 가까이 늘었고, 인천도시개발공사도 4조5000여억 원의 빚더미에 앉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을 유치하는 등 임기 중 나름 성과를 일궈냈지만, ‘인천을 바꾸자’는 40대 젊은 피 송영길 후보의 도전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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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호(65)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

    ‘컴백’을 노리던 이방호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6·2지방선거를 거치며 오히려 ‘정치무대 컴백이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이 전 사무총장은 김태호 현역 도지사의 3선 도전 불출마 선언으로 무주공산이 된 경남에서 여권후보로는 가장 먼저 출마선언을 했지만,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낙하산’을 타고 여권후보로 내려오면서 한 차례 체면을 구겼다. 여기에 한나라당 공천을 놓고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는 이 후보와 “MB 복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복심 논쟁’을 벌이며 집안싸움을 연출했고, 불출마 선언 이후에는 청와대와 ‘입각 빅딜’이라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선거일까지 이달곤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휘했지만 결국 한나라당 텃밭에서 처음 광역단체장 자리를 내줬고, 자신의 지역구(사천)에서도 김두관 후보에게 845표 뒤진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중앙선대본부장, 2008년 제18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으로 활약하며 중앙 정치무대에서 고공비행했지만, 18대 총선 낙선(경남 사천)과 지방선거를 지나며 정치무대에서의 입지는 한층 약화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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