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8

2010.05.24

58년 개띠는 무지개다

우리의 히어로,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10-05-24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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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년 개띠는 무지개다
    “노후대책? 국민연금이랑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그리고 고향에 아버지 명의의 땅이 조금 있어. 자식에게 줄 생각은 물론 없지.”

    “나는 딸에게 ‘자유롭게 살라’고 해. 아기도 하나를 낳든, 둘을 낳든 딸애 마음이지. 사실 자식 바글바글한 거, 지긋지긋하잖아.”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하루 앞둔 2010년 5월 17일 오전, 서울 인사동 한 전통찻집에 ‘58년 개띠’ 친구들이 모였다. 매일 저녁 인터넷상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다음 카페 ‘58우리들의 은하수’(cafe.daum.net/1958newdogfriends) 회원이다. 오랜만에 봤는데, 바로 어제 만났던 사람들처럼 정겹다. 이들은 “처음 만나도 친구가 되고, ‘개떼’처럼 몰려다니면서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며, 강하고 독하고 센 게 바로 58년 개띠”라고 말한다.

    환한 미소가 유난히 따뜻한 서용욱(52) 대표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20여 년간 근무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무사히’ 넘겼으나, 2004년 ‘자의의 탈을 쓴 타의’로 명예퇴직을 했다. “진짜 어려울 때 믿었던 국가와 사회, 회사가 나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퇴직금으로 주유소를 차렸지만 결국 비싼 수업료만 치른 채 정리했다. 다행히 지금 운영하는 ㈜한국신용카드결제는 작은 규모지만 제법 내실이 있다. 한 회사에 꽤 오래 다닌 덕분에 앞으로 탈 수 있는 국민연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서울에 본인 명의 아파트 한 채, 고향에 아버지 명의 땅이 조금 있어 노후 걱정은 다른 친구들보다 덜한 편. 서씨는 “자식에게 신세질 생각은 전혀 안 한다. 58년 개띠 친구들이 다 그렇다. 그러니 집과 땅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웃었다.

    “집과 땅은 자식 주면 안 되지”



    전통의상실에서 일하는 이숙화(52) 씨는 세 살 때부터 바느질을 했다. 2남5녀 중 다섯째인 그는 ‘국민학교’만 졸업한 뒤 ‘양장점’에 들어갔다. 자식이 많던 시절, 딸들은 늘 교육에서 뒷전이었다. 예쁜 교복 입고 학교 다니던 친구들을 부러워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는 “멋쟁이 장발 대학생을 두근두근 훔쳐봤다. 그때는 대학생과 사귄다고 하면 정말 대단해 보였다”고 말했다. 20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결혼했다. 당시엔 여자 나이 25세만 넘어가면 노처녀 취급을 받았다. 두 딸을 낳아 키우던 그는 삶에 여유가 생기자 검정고시로 중·고교를 졸업했다. 지난해 직업 전문학교 의상학 과정을 이수했으며, 올해는 큰딸(28)과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청년 사업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이씨는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게 한”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두 딸은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 그 덕분일까. 두 딸 모두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갔다. “네 인생은 네 것이니 네 마음으로 자유롭게 살아라.” 그가 늘 딸들에게 하는 말이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의 상징적 아이콘인 ‘58년 개띠’라는 말에선 고단한 삶이 물씬 묻어난다. 58년 개띠는 태어날 때부터 경쟁의 연속이었다. 1958년 단군 이래 처음으로 신생아 수 80만 명, 일각에서는 13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고 한다(하지만 당시 출생아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남아 있지 않다). 8~9남매의 중간인 이들은 잠시 한눈을 팔면 저녁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다.

    한 반에 70명, 3부제로 돌아가는 ‘콩나물’ 교실에서 공부하며 수많은 급우와 경쟁했다. 1974년 고교평준화 제도가 시행되면서 이른바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58년생인 대통령 아들 박지만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가장 찬란해야 할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이들은 유신독재 밑에서 신음했다.

    58년 개띠는 무지개다

    (왼쪽 사진)58년 개띠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당시 급증한 학생 수를 수용하기엔 학교 수가 턱없이 모자랐다. 한 반에 70명, 3부제는 기본이었다. (가운데 사진)58년 개띠는 뺑뺑이로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 세대다. (오른쪽 사진)장발 단속을 당하는 젊은이. 하지만 당시 대학생들은 학생증을 보여주면 단속을 패스하는 ‘특권’을 누렸다고 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은 이들의 뼛속까지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당시 22세였던 58년 개띠 중 일부는 ‘투사’가 됐지만, 일부는 입대 후 ‘진압군’이 돼야 했다. 민중을 무력(武力)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무력(無力)하게 지켜봤다. 30세가 되던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넥타이부대’ 중심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이 재집권하면서 더 큰 좌절을 맛봤다.

    민주화 투장에선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지만, 경제 성장에선 어느 세대보다 큰 성공을 맛본 게 바로 58년 개띠다. 이들은 20년 넘게 한 회사에서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다. 10여 년 고생한 끝에 서울에 아파트 한 채도 마련했다. 365일 중 360일 넘게 일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 가장 먼저 잘려나간 것도 이들이다. 믿었던 국가와 사회, 회사에 뒤통수를 맞은 이후 아무도 믿지 않게 됐다. 보험도 들고, 작든 크든 금융과 부동산에 투자하며 스스로 노후를 준비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2010년 52세가 된 이들은 본격적인 은퇴를 앞두고 있다.

    광범위한 삶의 궤적

    이젠 머리에 서리가 내린 58년 개띠들은 2010년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을지 글로벌 김기석(52) 이사는 “숫자가 많고 삶의 스펙트럼도 워낙 넓다 보니, 어디에 가든 한두 명씩 만나게 되는 게 바로 58년 개띠”라고 자랑했다.

    “‘국졸’과 ‘대졸’이 모두 친구가 되는 유일한 세대가 아닐까요. 고향을 지키며 농사짓는 친구, 장사하는 친구, 부동산으로 재미 본 친구, 대학 나온 후 대기업 다니는 친구, 유학 다녀와 교수 된 친구, 공무원 된 친구, 정치하는 친구, 명퇴 앞두고 귀농 준비 중인 친구, 불황으로 사업 접고 재기를 모색하는 친구 등 아주 다양하죠. 초등학생 늦둥이 아들을 둔 친구도 있지만, 이미 아들을 장가보내 손자까지 본 친구도 있어요. 삶의 궤적이 광범위했던 만큼 지금의 삶도 각양각색이죠.”

    보통 58년 개띠를 유신독재 타파에 앞장선 77학번 열혈 대학생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당시 대학생 비중은 남자가 30%도 채 안 됐고, 여자는 20%에 그쳤다. 대학생은 소수였으며, 그만큼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었다(대학 정원은 1980년 신군부의 ‘7·30교육개혁’ 이후인 1981학년도부터 점차 늘어났다). 즉 ‘국졸’ ‘중졸’ ‘고졸’ ‘대졸’이 모두 친구였고, 유신에 저항했던 사람과 새마을운동에 열심히 참가했던 사람이 공존하며, 저소득층부터 고소득층까지 넓게 퍼진 세대가 바로 58년 개띠인 것.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인구학자)은 “인구가 많고 학력 스펙트럼도 무척 넓은 데다, 여러 차례 나타난 개발 호재를 제대로 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확연히 나뉘는 등 다양한 이유로 현재의 소득 기반이나 삶의 질이 개인마다 무척 다르다. 은퇴 후 노후 준비 역시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다양성은 개개인 속에도 존재한다. 서울대 정근식 교수(사회학)는 “58년 개띠는 민주에 대한 열망과 보수 성향을 동시에 지녔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유신체제와 80년 5·18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장년이 된 지금도 어느 세대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강하지만, 가난했던 유년 시절의 경험과 근면, 성실한 삶을 통해 이뤄낸 경제적 성취가 이들로 하여금 보수 성향을 띠게 한다는 것.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는 “이런 보수 성향이 바로 아랫세대인 이른바 ‘386’과 자식뻘인 ‘Y세대(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2세를 일컫는 말로, 1979~94년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58년 개띠는 무지개다

    ‘58우리들의 은하수’ 회원인 58년 개띠 친구들. 김기석, 서용욱, 이숙화, 정순득 씨(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실제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52) 소장은 “지금도 386세대가 자신이 데모했던 시절의 무용담을 털어놓으면 솔직히 코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최루탄 앞에서 시위했지만, 우리는 정말 총칼 앞에서 싸웠기 때문”이라며 “아이러니하게도 권위에 처절하게 패배했으면서도, 권위를 내세웠다”고 털어놓았다. 서 대표도 “내가 무척이나 싫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어느 순간 닮아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술 깰 때까지 저를 앉혀놓고 이런저런 훈계를 하셨어요.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힘들었죠. 그때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아버지의 자리에 있더군요. 아이들을 앉혀놓고 꾸짖기 시작했고, 정리정돈을 안 하거나 낭비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버럭 화를 냈죠. 어렸을 적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했으면서 ‘나 때는 이랬다’는 식의 훈계만 늘어놓았으니…. 이젠 아이들이 다 커버렸는데, 지금도 살갑게 대화를 나누지 못해요. 가슴이 무척 아프죠.”

    하지만 자녀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어느 세대보다 크고 깊었던 것도 바로 이들이다. 본인 스스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데 대한 한이 큰 만큼, 자녀의 대학 진학까지 책임지는 게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여기엔 아들과 딸의 차이가 없었다. 58년 개띠가 본격적으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한 1980년대는 아들 선호사상과 산아제한 정책이 기승을 부렸던 시기다. 당시 가족계획의 표어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였다. 시인인 정순득(52) 씨는 “아이가 한둘밖에 없는 데다 엄마 스스로도 배우지 못한 한이 있었기 때문에 아들 딸 구별 없이 교육을 시켰다”고 말했다.

    특히 일에만 몰두하고 가정에선 부재(不在)하던 아버지 대신 어머니는 자녀교육을 책임져야 했다. 이화여대 출신인 드라마 칼럼니스트 정석희(51) 씨는 “우리가 ‘극성엄마’의 원조였다”고 털어놓았다.

    “대학 때 예쁘고 똑똑한 선배나 친구가 참 많았어요. 그런데 대학 졸업과 동시에 다들 결혼했죠.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교사나 은행원 정도였고, 일반 회사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 세대들이 자녀 교육에 좀 더 ‘올인’했던 것 같아요. ‘극성엄마’의 시작이랄까. 잘 자라준 아이들을 보면 뿌듯하고 기쁘지만, 조금은 아쉽고 안타깝죠.”

    이렇게 자식에게 헌신했지만, 58년 개띠들은 “노후에 자식에게 기댈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앞서 언급했듯, 개인마다 노후 준비 상황은 다르지만 이 생각만큼은 같았다. 이씨는 “우리는 집도 있고 보험도 들어놓는 등 앞 세대에 비해 영악해졌다. 우리가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인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돌성과 노련함까지 갖춘 개

    유머강사로 활동하는 전승훈(52) 씨는 “노후를 말하기엔 아직 건강하고, 충분히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농사를 지을 줄 알면서 컴퓨터도 사용할 줄 아는, 즉 농경과 산업, 정보시대를 모두 겪은 58년 개띠야말로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 또 이들 상당수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평생 한이던 학위를 딸 정도로 열정적이기도 하다.

    체력도 젊은이 못지않다는 게 58년 개띠들의 변. 다음 카페 ‘58개띠 마라톤 클럽’ 회원이기도 한 김기석 이사는 “어릴 적 자치기, 구슬치기를 하며 놀았고 지금도 등산이나 달리기 등을 꾸준히 하는 우리의 체력이 체격만 큰 요즘 젊은이들보다 좋다”고 말했다.

    “자꾸 언론에서는 ‘58년 개띠’ 운운하며 ‘은퇴’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이미 빠르면 외환위기 때, 늦어도 2000년대 초반에 한 번씩 업(業)을 바꿨어요. 이후 혹독한 10년을 겪으며 단련했죠. 은퇴하지 않고 평생 ‘현업’으로 살 겁니다. 또 우리는 개띠잖아요. 어떤 상황도 뚫고 나가고, 한번 문 건 절대 놓지 않으며,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이젠 노련함까지 갖춘 개!”

    역술로 바라본 58년 개띠는?

    춥고, 그늘지고, 어두운 곳을 품는 황야의 지킴이


    58년 개띠는 무지개다

    ‘개’를 표현한 십이지신.

    1958년은 육십 간지로 무술(戊戌)년이다. 지지에 개술(戌)을 달고 있어 12지지의 동물을 배속하면 58년생은 개띠에 해당한다. 개는 반려동물 중 사람에게 가장 친근한 동물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 주인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기에 감정 교류가 긴밀하다. 개는 인류가 수렵생활을 끝내고 농경생활로 정착하면서부터 기르기 시작한 가축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충직했기 때문. 개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호랑이와 싸우거나, 둔갑술을 발휘해 귀신과 싸우거나, 주인이 죽자 따라 죽는 등의 설화들이 많이 전해진다.

    개띠생의 심성에는 이런 기질이 공통적으로 숨어 있다. 자기를 믿어주는 부모, 선생님, 친구에게 헌신적이며 소신을 충직하게 잘 지킨다. 내성적이면서도 한번 이거다 싶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저돌성이 있다. 그런데 58년생 개띠는 무술(戊戌)의 간지가 ‘양(陽)의 토’ 2개가 중첩된 구조이기 때문에, 이런 기질이 더욱 강하게 내재한다. 그래서 개띠 중에서도 유난히 집단 유대감이 강하다.

    토는 조화와 포용의 속성을 가진다. 특히 양(陽)의 토는 높고 큰 산, 넓은 들판으로 스케일이 크다. 개띠는 ‘양의 토’로 겹쳐 있으니, 기질이 드러나면 마치 개떼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처럼 유난스럽게 보인다. 물론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좋은 점도 지나치거나 부정적으로 흐르게 되면 단점이 된다. 그래서 58년 무술생의 경우 단점도 유난히 눈에 잘 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 정도로 고집이 세고 고지식하다거나, 자기 이익이 개입되지 않으면 냉소적이기도 하다. 경계심이 많은 데다 방어적인 면이 강해 타협도 쉽지 않다. ‘욱’ 하는 성질이 폭발하면 싸움과 폭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무술 토’는 방위로 보면 서북 방향에 자리한다. 지구상 북극 자장의 위치다. 극상권(極上圈)은 태양의 정상적인 혜택을 받지 못해 춥고 어두우며 그늘져 있다. 인간 사회에서 이런 곳이라면 범법자를 취급하는 검찰, 경찰, 교도관, 정보원, 죄수 및 환자, 요양원 등이 배속될 수 있다. 무술생은 인생이 잘 풀리면 국가 사회의 질서, 규범, 질병, 문화, 유적을 지키고 보급하는 ‘지킴이’ 구실을 한다. 반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하수인이나 죄수, 환자가 돼 유배지에 갇히는 인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무술이 극상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1958년 8월 29일에 태어나 2009년 6월 25일에 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로 불리며 인종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잭슨 파이브’로 음악 생활을 시작한 그는 솔로 데뷔 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새롭고 충격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무술생답게 문화 창조 선도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 하지만 사생활을 보면 12세 때부터 계약에 묶여 있었고, 새벽 3시까지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즉, 노예처럼 고달프고 고독한 생활을 지속한 것. 그러고는 아동 성추문과 성형 중독, 사인(死因)에 대한 논란 등 무수한 루머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화려한 무대 뒤에 도사리고 있던 심신의 감옥이 얼마나 짙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반면 58년생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박현주 회장은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탄생시키며 대한민국 펀드의 역사를 창조한 투자 승부사다. 국내 최대 자산운용사, 대형 증권사 등 금융그룹을 일궈낸 그는 냄새를 맡는 후각이 발달했고 천성적으로도 부지런하다. 거기에 재물운까지 좋으며 성취도 빠른 ‘개’의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장옥경 명리학 연구가·해피올메이트 소장 blog.daum.net/writer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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