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2

2017.04.05

책 읽기 만보

스스로 결정? 0.1%뿐이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7-04-04 11: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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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영향력
    조나 버거 지음/ 김보미 옮김/ 문학동네/ 328쪽/ 1만6500원


    먼저 질문부터. 당신은 평소 뭘 입을지 혹은 뭘 먹을지 같은 소소한 결정부터 어떤 회사에 지원할지, 누구와 결혼할지 같은 인생의 큰 결정까지 스스로 내리면서 살아가는가. 또 누군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개인적 취향과 선호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의 99.9%는 타인에 의해 이뤄진다.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결정이나 행동은 찾기 힘들다.”

    사회적 영향력을 연구해온 저자는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며 산다’는 상식을 단번에 깬다. 이 책은 미처 의식할 겨를도 없이 우리 행동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영향력’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누군가가 투표를 하면 같이 투표하고, 다른 사람이 먹으면 덩달아 많이 먹는 것을 사례로 든다. 한마디로 자신도 모르는 새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것.

    음식점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여럿이 식사를 마친 뒤 혼자 디저트를 주문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혼자 디저트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디저트를 주문하면 이기적 혹은 튀는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다. 특히 ‘음식 주문 통일’을 지향(?)하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이 디저트를 주문하지 않으면 자신도 건너뛴다. 이유는 하나다.

    그저 그룹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다. 타인에게 호감을 얻고 싶은, 적어도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다. 소외된다는 것이 유쾌하지 않은 일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타인 모방 습성은 평범한 선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도 작용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대박을 낸 J.K. 롤링은 본의 아니게 이 실험의 주인공이 됐다. 롤링은 ‘해리 포터’가 성공한 이후 추리소설 ‘쿠쿠스 콜링’을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필명으로 출간한다. 이 책은 고작 몇천 권 팔렸다. 하지만 진짜 작가가 롤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순식간에 수십만 부가 팔려나갔다. 잠재적인 독자가 남들처럼 롤링의 명성을 보고 구매한 것이다.

    전 세계 정상급 운동선수는 대부분 형이나 누나가 있다. 이런 경우 아무래도 손윗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운동에 입문한다. 손윗사람은 때때로 연습 상대나 경쟁자가 되기도 해 이런 과정을 거친 동생은 빠르게 성장하고, 손윗사람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뛰어난 운동선수로 커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남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항상 다른 선택을 하지는 않더라도, 스스로 충분히 다르다고 느낄 만한 선택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그렇다고 남들과 완벽히 달라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결국 주변 사람이 무조건 우리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변의 영향력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매사에 좀 더 신중하고 현명한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아르테/ 352쪽/ 1만6000원

    아기는 처음 세상에 나오면서 주변 환경의 신호를 받아들여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경험이 쌓일수록 그 신호들을 정리하는 뇌 서랍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우리 뇌는 매순간 경험으로부터 새롭게 형성되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서랍장 이름을 바꾸거나 새 서랍장을 확장한다. 흥미로운 실험 사례와 함께 뇌가 가진 정보 처리 능력 및 유연성을 들여다본다





    예능, 유혹의 기술
    이승한 지음/ 페이퍼로드/ 288쪽/ 1만5800원

    예능프로그램은 치열하다. 조금이라도 재미없거나 감동을 주지 못하면 곧바로 퇴출된다. 이런 예능프로그램의 최고 방송인 자리에 유재석이 있다면, PD로는 나영석이 있다. 그의 성공 비결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다. 그는 사람에 대한 본질을 세밀하게 보여주고자 나머지를 과감히 덜어냈다. ‘조금 덜’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그의 행보에서 기획의 기술을 배운다.






    우리가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일초 지음/ 민족사/ 292쪽/ 1만4500원

    40여 년 동안 동학사 승가대에서 후학을 양성한 일초 스님과 비구니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모았다. 편지에는 서로 안부를 묻고, 진리의 길을 걷는 승려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부처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등이 생생하게 쓰여 있다. 수행자의 삶이 특별할 것 같아도 실은 우리처럼 고통을 겪으면서 구도의 길을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열린책들/ 544쪽/ 1만4800원

    답답한 요양소에서 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고 범죄를 저지른 메르타 할머니와 친구들. 결국 감옥에 가지만 그리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지명수배된 노인 강도단은 스웨덴을 떠나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향한다. 카지노에서 한 탕 하기 전, 다른 강도가 떨어뜨린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는 행운이 찾아온다. 또 이들은 카지노에서 칩을 훔쳐 거액의 돈으로 바꾸는데….





    김정은 체제 왜 붕괴되지 않는가
    리 소테츠 지음 / 이동주 옮김/ 레드우드/ 384쪽/ 1만6000원

    김정일의 ‘희한한 개성’과 ‘세습 왕조’의 실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한 책. 김정일은 북한을 경제파탄과 고립으로 몰아넣었고, 정치 경험이 없는 김정은을 최고지도자로 만들었다. 저자는 북한이 미국을 적대시하면서 체제를 유지, 연명하는 ‘희대의 극장형’ 국가가 된 것이 김정일 탓이라고 말한다. 핵·미사일 발사로 갈수록 고립돼가는 북한의 이면을 파헤친다.





    인구와 투자의 미래
    홍춘욱 지음/ 에프엔미디어/ 324쪽/ 1만6000원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한국 베이비붐 세대가 줄지어 은퇴기를 맞고 있다. 이들이 은퇴하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자산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경제와 자산시장이 하나의 ‘변수’로만 설명되는 만만한 곳은 아니다. 자산 몰락론 같은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차근차근 투자의 기본을 지키는 법과 노후 대비 종잣돈 만드는 방법 등을 담았다.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손관승 지음/ 새녘/ 304쪽/ 1만3000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많은 직장인의 갈망이자 로망이다. 하지만 일과 수입이 없는 독립이나 자유는 사막의 신기루 같다. 콘크리트 숲과 삭막한 직장생활에 갇힌 오늘날의 직장인은 틈만 나면 탈출하려 한다. 10년 뒤 내 모습에 답이 없기 때문이다. 급격하게 바뀌는 일과 직업의 개념, 독립적으로 사는 법을 이야기한다.





    세계 폭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바다출판사/ 488쪽/ 1만6500원

    젊은 시절 마루야마 겐지는 길 위를 벗어난 작가였다. 오프로드 바이크와 사륜구동차로 호주 사막을 질주하고 케냐로 사파리 랠리 여행을 떠났다. 노르웨이와 미국 서부를 달리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 위해 유조선을 타고 인도양을 건너기도 했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삶을 온전히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그의 말은 여행을 통해 행동으로 나타난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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