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2017.03.29

경제|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고졸자 취업, 현장은 ‘악’ 소리

정부는 취업률 계산만… 취업장려책에 질 낮은 일자리만 늘어, 매년 자살 등 사망사고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7-03-28 09: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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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LG유플러스 고객센터 ‘계약해지방지부서’에서 근무하던 현장실습생 홍수연(19) 양이 1월 23일 전북 전주시 아중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 유가족은 홍 양이 평소 과로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며 LG유플러스 측에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고교 졸업자의 취업률을 높이겠다고 도입한 취업대책으로 오히려 학생들이 고통받고 있다. 고졸자가 취업하는 직장 중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드물기 때문.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부와 고용노동부(고용부)는 일자리 수요를 맞춘다며 일반계 고교에까지 취업교육을 확대하는 등 양적 성장 위주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고졸 일자리정책, 취업률만 오른다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이 목숨을 잃은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1년부터 거의 매해 과로 또는 사고로 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11년에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일하던 김민재(당시 18) 군이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했고, 2012년에는 한라건설 해상크레인 작업선이 전복돼 현장실습생 홍성대(당시 19) 군이 목숨을 잃었다. 이 밖에도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에서 일하던 김동준(당시 18) 군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투신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2011년 현장학습제도가 시작된 이후 특성화고 학생들은 일부 기업의 부당한 대우와 갑질에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각 급 학교는 취업률 때문에 해당 기업에 항의하거나 시정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학생들이 종종 현장학습을 나간 기업의 문제점을 얘기하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다.

    학교에서 직접 나서 기업에 항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취업률에 따라 정부의 학교 평가와 예산 배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 교육부는 취업률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평가방식을 각 특성화고에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매년 각 시도교육청을 평가하는 전체 지표 100점에서 ‘특성화고 취업률’ 항목에 2.5점, ‘특성화고 취업률 향상도’에 1.5점 등 총 4점을 배정했다. 취업률에 집중한 고졸자 취업정책 덕분인지 2011년 이후 매해 취업률은 오르고 있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고졸자 취업률은 40.9%에서 47.3%로 6.4%p 상승했다. 
     
    취업률은 올랐으나 일자리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3월 11일 교육부로부터 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3~2015년 고졸 취업자 중 4대 보험에 가입된 비율은 30.4%에서 26.4%로 오히려 4%p 감소했다. 같은 기간 4대 보험 가입 여부를 따지지 않은 채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 자료만으로 취업 여부를 확인한 비율은 14.5%에서 20.9%로 증가했다.
     
    취업한 학생들의 직장 만족도도 높지 않다. 지난해 고교를 졸업한 양모(19) 씨는 현장실습 경험을 바탕으로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에 성공했지만 최근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 중이다. 양씨는 “취업할 때는 하루 8시간 일하고 연봉 2000만 원 이상이 보장된다고 했지만 정작 회사를 다녀보니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해 하루 12시간을  일하지만 받는 돈은 월 170만 원 정도다. 게다가 비정규직이라 군대에 다녀오면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럴 바에야 직장을 그만두고 빨리 입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취업률이라는 숫자만으로 각 고교를 평가하니 생기는 문제다. 학생이 어떤 회사에 취업했는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 등 사후관리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사회초년생은 고졸 취업자와 대졸 취업자의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2013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중소기업에 입사한 이모(22·여) 씨는 “입사 4년 차에 대리 진급 기회가 있었지만 회사에서 진급을 미뤘다. 하지만 얼마 전 입사한 대졸 신입사원에게는 바로 대리 직급을 달아줬다”고 밝혔다. 



    고졸 취업자 차별 등 넘어야 할 산 많아

    지난해 정영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한국사회보장학회에 발표한 ‘고졸 청년의 좋은 일자리 이행추이와 이행확률 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고졸 청년이 상용직에 중위 임금(전체 근로자 임금의 중간치)의 3분의 2 이상인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0개월이었다.



    반면 대졸 청년은 평균 9개월 만에 좋은 직장에 안착했다. 정 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졸업 후 불안정한 일자리를 연계하려는 노력보다 처음부터 좋은 일자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부도 고교 졸업생의 취업대책 마련에 나섰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8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청년고용대책 점검 및 보완방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유 부총리는 고교 졸업생의 취업과 관련해 “일반고 재학생에 대한 위탁직업교육 인원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인 1만4000명으로 확대하고, 신산업직종 수요 등을 반영해 서비스 분야의 직업교육을 분야 제한 없이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이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경기 안양시 한 일반계 고교 교사는 “고졸 취업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인문계 고교 학생의 직업교육 기회가 확대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교육보다 취업한 학생들에 대한 사후관리가 더 필요하다. 막상 취업에 성공한 학생도 기업의 부당한 대우나 학벌 차별에 못 이겨 퇴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상현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좋은 일자리로 인식되는 공공기관, 대기업 일자리 가운데 일부를 ‘고졸 취업자 쿼터’로 두는 등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2011년 은행에서 상징적 의미로 고졸자를 우대할 때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가시적 성과가 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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