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2017.03.29

정치

요즘 청와대는? “갈 곳 몰라 하노라”

청와대 직원 410여 명…어공은 실직 걱정, 늘공은 한직 걱정

  • 우경임 동아일보 기자 woohaha@donga.com

    입력2017-03-27 11:24:4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청와대는 그야말로 외딴섬이 됐다.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로 모든 정보가 모이기는커녕 최근 각 부처의 보고도 잘 올라오지 않는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들린다.

    공식적으로 청와대 참모들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보좌하고 있지만 국정 컨트롤타워 기능은 국무총리실로 이미 넘어갔다. 정권이 바뀌면 책상을 비워야 하는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은 예비 실업자 처지다. 5월 9일 대통령선거일까지 5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직원은 410여 명이다. 정부 부처에서 파견 나온 직업공무원 ‘늘공’(늘 공무원)이 300명, 박근혜 정권 창출 공신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110명가량이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대선캠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당직자, 학계·언론계 등 전문가 그룹이 속한 어공은 차기 정권 창출 성패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어공,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요즘 대학 교수 출신 어공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교수 출신인 A비서관은 동료로부터 “돌아갈 고향이 있어 부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당장 일자리를 잃는 청와대 직원 대부분과 달리 안정적인 직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비서관의 마음이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다. 혹시 학생들이 청와대 근무 경력을 문제 삼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가시지 않아서다. 실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불구속 기소된 숙명여대 교수 출신인 김상률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과 김소영 전 교육문화수석실 문화체육비서관 등은 학교로 돌아갔으나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수석비서관이나 비서관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당장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하는 신세다. 어공은 별정직공무원 신분으로, 고용보험조차 가입돼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실직 시 해고가 아닌 의원 면직 처리가 되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타기도 어렵다. 다만 청와대 별정직공무원은 3개월간 대기발령이라는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정권 말기에 어공이 110여 명이나 남아 있는 것도 이례적인 현상이다.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면 국회의원 선거에 직접 출마하거나 기업 또는 공공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없을 것처럼 보이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 순간 청와대 직원들의 취업문도 닫히면서 의도하지 않게 ‘순장조’가 됐다. 한 직원은 “당장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어 종일 구직 이야기만 오고 간다”며 침울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나마 새누리당 당직자 출신인 어공 일부는 당의 호출을 받아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두 동강 나면서 많은 당직자가 돌아갈 곳을 잃었다. 당이 쪼그라들면서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참패하면서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대선캠프 출신도 갈 자리가 마땅치 않다. 정권 초기 여당 의원들은 청와대와 핫라인을 유지하려고 청와대 행정관 등으로 보좌관을 보냈다. 그러나 의원들은 줄줄이 낙선했고, 보좌관은 돌아갈 자리가 사라졌다.

    대선의 계절이지만 보수진영의 경우 ‘올망졸망’한 후보가 난립하다 보니 선뜻 대선캠프로 가기도 어렵다. 의원 보좌관 출신인 한 청와대 직원은 “선배 등을 통해 알음알음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확답을 듣지 못했다”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직전 벤처기업으로 옮긴 B행정관이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B행정관의 이직에 대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벤처기업인 것이 다소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만약 이직을 안 했다면 최순실 태풍 속에서 곤욕을 치를 수도 있었다.

    늘공도 난처하게 됐다. 청와대 근무는 승진을 보장하는 코스였다. 청와대 수석비서관(1급)을 지내면 행정부처 차관으로 승진해 복귀하는 것이 그동안 인사 공식이었다. 지난해 12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청와대 파견 인사는 거의 중단됐다. 친정으로 복귀하려는 이는 많지만 청와대로 전입할 공무원이 없어서다. 부처에 빈자리가 나지 않는 데다 지난해 말 청와대 정기 승진 인사마저 보류되자 늘공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해 지방 근무를 자처한 C비서관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청와대 근무기간을 채우면 영전이 가능했지만, 직급을 낮춰 부랴부랴 청와대를 떠났다. 반면 최근 갑작스레 청와대 발령을 통보받은 일부 늘공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 부역자’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차기 정부에서 요직을 맡기는커녕 퇴출될 가능성이 높다. D비서관은 “이미 마음을 비웠다”면서도 “차기 정부에서 정무직공무원 일괄 사표 같은 관행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내비쳤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화체육관광부 1급의 사직 강요 부분을 직권남용으로 봤기 때문에 과거 같은 일괄 물갈이가 어려울 것이란 설명이다.



    “내가 부역자라니…”

    청와대 직원들은 청와대 근무 사실만으로 ‘박근혜 부역자’로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최순실의 존재를 정말 몰랐느냐”고 묻자 청와대 직원 E씨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그런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최순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극소수였다. 나머지 직원은 오직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헌신했을 뿐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청와대에 합류한 한 수석은 “오랫동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을 찾아가 물어봤더니 핵심 참모조차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청와대 직원들도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허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모든 정책이 폐기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반감을 드러냈다.

    한 직원은 3월 12일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 녹지원에서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던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죄송하다’고 인사를 건네자 박 전 대통령이 ‘세상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 울컥했다.” 대통령 파면과 함께 박근혜 정부 4년이 모두 부정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청와대는 요즘 대통령기록물 정리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부처별로 박근혜 정부 4년간의 정책을 모아 정리하고 있고, 다음 달 말쯤 백서 형태로 발간할 예정이다. 보통 1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차기 대통령 당선 전에 끝낼 수 있게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백서가 발간되면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겠지만 어쨌든 역사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과연 역사는 오늘 청와대에 남은 사람들을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