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1

2009.06.23

MB는 먼저 귀를 열어라!

“이 정권 잘되기를” 국민 애정 못 읽는 대통령의 ‘감성지능’에 문제

  •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quick00@hanmail.net

    입력2009-06-17 09: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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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는 먼저 귀를 열어라!

    6월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5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낭독하는 이명박 대통령.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취임 1주년 즈음에 비해 확연히 낮아졌다. 언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지지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해석하는 데 무리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지도를 결정하는 요인들을 좀더 생각해본다면 이런 표면적 이유만으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클린턴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 역대 대통령 네 명을 자문한 리처드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권한은 설득과 타협 능력에 달렸다”고 단언한다. 이때 설득과 타협의 주된 대상은 정치인이지만, 최근에는 국민에 대한 직접 호소도 그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 ‘명령’이라는 형식을 띠게 되는 것은 대통령이 강해서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통령의 권한은 설득과 타협 능력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보면 대통령 지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경제상황, 예기치 못한 국가위기, 의회와의 관계,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을 한국에 적용해보면 현재 이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를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 경제상황이 1차적 위기를 넘겼다는 점은 대통령에게 유리한 구도처럼 보인다. 그런데 경제지표는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있지만 노사갈등이 표출되면서 국민은 경제의 질이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한다. 더욱이 현 정부의 노력으로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많지 않다.



    둘째, 예기치 못한 국가위기란 크게 볼 때 현재의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도 포함할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국민은 국가지도자를 중심으로 합심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가장 좋은 예가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가 90% 가까이 치솟은 점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월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맞아 실시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35%가량으로 나왔는데, 이는 지난해 연말과 비교해 정부의 정책변화가 별로 없었음에도 국민의 위기의식이 지지도를 상승시킨 결과였다.

    셋째, 국회와의 관계다. 이 부분에서 이 대통령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 국민은 현 정부가 한나라당이 국회의 다수당인 단점정부인 만큼 야당과의 관계뿐 아니라 국회의 공전 부분에서도 이 대통령에게 부분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야당이 여당이 아닌 대통령을 대화상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대통령으로선 부담일 수밖에 없는 정치구도다.

    MB는 먼저 귀를 열어라!

    동국대 교수와 총학생회 대표들이 6월9일 시국성명을 발표했다.

    넷째,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이 지지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소위 국정운영 스타일이나 리더십 스타일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프레드 그린슈타인이라는 정치학자는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의 지지도나 리더십은 조직 운영 능력과 정책에 대한 비전 제시 이외에도 대중과의 의사소통, 정치적 기술, 인지 스타일, 그리고 감성지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30% 이하로 떨어진 데는 인지 스타일과 감성지능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현재 국민은 자신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이 대통령이 얼마만큼 공감하는지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이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섭섭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라는 작금의 교수 시국선언은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국민이 대통령에게 던진 메시지와 다를 바 없다. 다수의 국민은 이 정권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해를 떠올려보자. 수입 쇠고기 문제가 제기되고 촛불이 본격화할 때까지 정부는 무(無)대응 전략을 구사했다. 국민은 수입 쇠고기에 대한 우려를 정부가 공감하고 함께 걱정해주기를 기대했다. 정부의 무대응 전략은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는 사태를 야기했다. 꼭 1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그때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다른 정책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여론이 반정부적이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이 모든 비판이 정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는 없을까.

    6월9일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관하면서 “우리가 하려는 일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장관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관들이 좀더 분발하기를 당부하는 타당한 지적일 수 있지만, 정치에서는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한쪽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다른 쪽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민주사회이고, 이처럼 다른 의견들을 합의로 이끄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한다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논리는 상대를 동등한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면 상대가 최선을 다하면 나도 설득당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대화의 기본이자 현대 리더십의 필수요소라는 점은 상식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와 질서는 필연적 딜레마를 내포한다. 정부가 질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유가 질서를 파괴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기화로 정치적 판세가 바뀌거나 반정부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걱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다. 야당이 주장하는 ‘광장의 정치’는 정부가 귀를 막고 있는 동안만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국민은 국회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을 원하지, 시민광장 앞에서 경찰과 몸싸움하는 국회의원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는 이들과 국민에게 시민광장을 열어주면 된다. 정부가 우려하는 무질서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국민은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읽고 함께 고민하기를 고대한다.

    현재 지지율로는 새 국가사업 추진 못해

    대운하 계획에 대한 예산 발표도 마찬가지다. 일반 국민은 대운하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지, 아니면 재정 낭비와 환경문제를 야기할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런데 정부는 일방적으로 거대한 국가사업을 결정하고 기정사실화했다. 언론은 연일 진행 과정이 졸속이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왜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과정에 좀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인지, 국민은 홀대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례를 이번 대운하 계획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사업의 타당성 검토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대운하 반대론자는 반정부 세력이 아니다. 학자를 비롯한 전문가가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대운하 건설을 찬성 또는 반대하겠는가. 대다수의 학자는 자신의 지식을 담보로 태도를 결정했을 터. 그렇다면 대운하 사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예단하지 말고 학문적 객관성을 바탕으로 평가한 뒤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약간은 고통스러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론을 맺자. 학계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30% 이하면 새로운 국가사업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의 리더십으로 간주한다.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여론이 뒷받침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업 추진을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재 이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도는 국제환경이나 정치조건보다 여론과 유리된 국정운영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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