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9

2009.06.09

“자살세 걷자”에서 “정치적 타살”로

진보매체와 지식인들 자살에 ‘이중 잣대’ … 누리꾼들 “이들이야말로 금붕어”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6-05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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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세 걷자”에서 “정치적 타살”로
    노무현 정권 때 여러 인사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대북송금과 비자금 150억원 조성 의혹 등으로 수사를 받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투신자살했다. 2004년 2월에는 안상영 부산시장이 뇌물을 추가로 받은 혐의가 불거지자 부산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을 맸고, 한 달 뒤인 3월11일엔 인사 청탁과 함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를 받은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한남대교에서 뛰어내렸다. 4월29일에는 박태영 전남지사가 검찰 조사를 받던 중 반포대교에서 투신했다.

    당시 ‘한겨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진보언론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죽음으로 범죄를 미화할 수 없다” “철저한 수사가 자살을 예방한다”며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이들 매체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한겨레’는 5월24, 25일자 사설에서 “무엇보다 정치검찰의 책임이 크다”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처음부터 정치보복 냄새가 진동했던 노무현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현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노무현 제압하기’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권력기관이 일제히 나서 십자포화를 날리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된 것이다. 시중에 현 정권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평가가 파다한 것도 국세청과 검찰 등 권력기관이 박(연차)씨 사건과 관련해 벌인 ‘이상한’ 행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중략) 이명박 정권 들어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는 권력기관의 사유화 현상으로 볼 때, 이들 기관의 움직임이 이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부의 뜻과 무관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죄보다 사람을 미워한’ 현 정권이 만들어낸 최대의 비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기관을 앞세운 정치보복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할 과제이다.”

    박태영 지사 자살 땐 “죽을 용기가 있다면…”



    그런데 ‘한겨레’는 박태영 지사의 죽음에 대해 2004년 4월30일자 사설에서 “자살만이 유일한 해결책인가”라며 “스스로 죽을 용기가 있다면 왜 꿋꿋이 살아 견뎌내지 못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사회 저명인사들이 너무나 쉽게 목숨을 끊고 있다.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등에 이어 또다시 박태영 전남지사가 한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저명인사들의 이런 자살행렬을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일어날 수 있는 돌출사건 정도로 받아들이기에는 그 양상이 너무나 심각하다. 자살에는 강한 전염성이 있는데, 저명인사들의 자살이 일종의 유행병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까지 들 정도다. 저명인사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주로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물거품 되는 데 대한 절망감이나 억울함 때문으로 분석된다.

    박 지사의 죽음 역시 검찰 수사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 방식만이 유일한 해법인가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죄가 없다면 살아서 끝까지 결백을 밝혀내야 하고, 만약 죄가 있다면 떳떳이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면 될 게 아니냐는 것이 누구나 갖는 소박한 생각이다.”

    ‘한겨레’ 2007년 3월13일자 칼럼 ‘누가 죽음을 미화하는가’는 “언론에서는 사회적 명사든 연예인이든 죽은 자라고 해서 모든 책임을 면해주고 미화하는 일은 이제 삼갔으면 한다. 자살이 자신에 대한 비난과 억울함을 해결해주는 가장 손쉬운 길처럼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억울한 사연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럴수록 법정에서 진실을 가려야 마땅한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러면서 “이들은 유죄가 입증되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죽음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안 시장의 경우에도 유죄가 되었다면 수감되는 것은 물론이고, 연금 혜택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모든 것이 무죄에 입각해서 처리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장례식은 시장(市葬)으로 치러졌다. 죽음은 때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한나라당은 안 시장의 죽음을 ‘권력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했고 ‘현 정권이 안 시장을 회유해 이를 거부하다 자살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 (중략) 곧이어 치러진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여유 있게 승리했음은 물론이다.”

    ‘한겨레’의 자매지인 ‘한겨레 21’ 제508호에 실린 기사에서는 “투명 사회의 길은 고통스럽다”며 “고위층의 자살은 비리 척결의 진통인 만큼 철저한 수사가 오히려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도 높은 수사를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또 고위층들의 잇단 자살이 투명 사회로 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하며, 무죄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억울하다면 억울함을 밝힐 다른 통로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중략) ‘우리도 잘잘못과 상관없이 죽음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정혜신 전문의는 ‘앞으로도 숨어 있던 비리가 드러나는 와중에 자살하는 고위층이 계속 나올 것이다. 이런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가 치러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닫게 되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살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죽음 앞에선 180도 변신

    “자살세 걷자”에서 “정치적 타살”로

    진보매체들은 2008 광우병 파동 때 보수언론들이 보도 태도를 바꿨다고 맹비난했다.

    최근 진보 지식인 진중권 씨는 소설가 황석영 씨의 중도실용 발언을 두고 “기억력 없는 금붕어”라고 독설을 퍼부은 바 있다. 황씨를 옹호하는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도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라 하고 더 나아가 “기억력이 나쁜 작가일수록 좋은 작가이면 최고의 작가는 금붕어겠다. 금붕어의 눈앞에는 2초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니까”라며 거침없이 힐난했다.

    진중권 씨는 정몽헌 의장과 안상영 시장 등에 대해서는 “자살할 짓을 왜 했느냐”며 “시체 치우는 게 짜증나니 자살세라도 걷으면 좋겠다”고 비난을 가했다. 다음은 진씨가 2004년 5월7일 정치 웹진 ‘서프라이즈’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제까지는 안 걸렸는데, 걸린 거잖아요. 딴 얘기는 다 필요 없거든요. 자살할 짓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웃음) 그걸 민주열사인 양 정권의 책임인 양 얘기를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거고. 앞으로 자살세를 걷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시체 치우는 것 짜증나잖아요.(웃음) (중략) 자살할 짓을 왜 해. 그러니까. 아니 그렇게 명예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짓을 왜 해요. 웃기는 거거든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명예 때문에 자살하는 거잖아요. 자살하는 경우 자기 명예가 부당하게 구겨졌거나 이럴 때 하는 건데, 그게 위선이죠. 한마디로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일을 안 해요.”

    남상국 사장에 대해서는 “비리 저질러 쪽팔려서 자살한 놈”이라고 몰아붙였다. 그의 죽음에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미친놈”이라고 했다.

    “(중략) 듣자 하니 검찰에서 와서 더 캐물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넘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 그런 넘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뒈지라고 하세요. 검찰에서는 청산가리를 준비해놓고, 원하는 넘은 얼마든지 갖다가 셀프서비스 하라고 하세요. 그 새끼들 없다고 우리가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려 비리나 저지르는 넘들 존재해봤자 우리만 손해거든요. 근데 그런 잡것들이 무슨 우리를 위해서 세상에 존재해주는 양 개지랄을 떠나요? 세상에 이런 변태들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비리 혐의를 받던 인물들의 자살에 이처럼 조롱과 독설로 일관한 진씨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는 태도를 바꿨다. 그는 5월23일 진보신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올린 ‘노무현 대통령의 추억’이라는 글에 이렇게 썼다.

    “그가 도덕적으로 흠집을 남긴 것은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고, 쿠데타로 헌정 파괴하고 수천억 검은돈 챙긴 이들을 기념공원까지 세워주며 기리는 이 뻔뻔한 나라에서, 목숨을 버리는 이들은 낯이 덜 두꺼운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가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은 내가 만나본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 참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르네요.”

    진보언론 말 바꾸기에 누리꾼 질타 쏟아져

    진보언론의 이중성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누리꾼들은 “결국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말 바꾸기를 한 것 아니냐”며 거세게 비판했다. 누리꾼들은 포털사이트 카페와 블로그에 이들의 글을 퍼 나르면서 “자신의 발언을 뒤집는 이들이야말로 금붕어 아니냐”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누리꾼 tjs6130는 “한겨레는 홈페이지에 있는 근조 장식 떼버려라. 위선을 떨면서 뒤로는 이런 칼럼이나 올리는구나”며 비판했다. 누리꾼 vober는 “설마 우리 민족정론지 한 입으로 두 말 하시진 않겠지? 이번엔 뭐라고 사설을 쓸지 대단히 기대된다”고 비꼬았다.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보여준 이러한 이중성은 결국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은 상관없다는 ‘목표지상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평가다. 미디어발전국민연합 강길모 공동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고 궁지에 몰렸을 때는 돌팔매를 던지던 소위 진보주의자들이, 그가 세상을 뜨고 마치 구국의 영웅처럼 떠받들어지니 안면을 바꾸고 있다”며 “자신의 이익 여부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꾼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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