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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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담가 ‘신불출’을 아시나요?

일제강점기 최고의 스타, 뉴욕서 1956년 판 ‘만담집’ 발견 … 北서 숙청 전후 재조명

  • 송광호 강원도민일보 북미특파원 k814song@hotmail.com

    입력2009-05-15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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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담가 ‘신불출’을 아시나요?

    일제강점기를 풍미한 최고의 만담가 신불출(사진). 그가 작사한 ‘노들강변’은 음반으로 제작됐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만담가인 신불출(申不出)의 ‘만담집’(복사본)이 뉴욕에서 발견됐다. 신불출은 만담가, 연극인(극작가), 배우, 시인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정상의 연예인.

    이번에 발견된 ‘만담집’은 소책자 크기(가로 10.5cm, 세로 14.5cm)로 북한에서 1956년 발행(국립출판사)된 119쪽짜리다. 한 미주 동포가 10여 년 전 북한에서 입수해 간직하다가 최근 필자에게 제공했다. 책 겉표지 왼쪽에는 ‘만담집’이라는 제목이, 오른쪽엔 ‘신불출 저’라는 글자가 세로로 쓰여 있다.

    목차는 ‘서문’을 비롯해 ‘정전바람에 미친개들’ ‘멸망행진곡’ ‘판 타령’ ‘한글을 뜯어먹는 리승만’ ‘등(燈) 타령’ ‘철겨운 부채질’ ‘호소문에 놀란 대통령’ ‘거꾸로 가는 길’ ‘입담풀이’ 등 주로 2인(갑, 을) 대화체 순서로 모두 9개 제목이 들어 있다. 내용은 6·25전쟁 후인 1950년대 중·후반 남한의 이승만 정권과 미국 정치인들을 야유, 비방하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풍자와 해학으로 식민지 울분 달래

    1930년 그가 작사한 ‘노들강변’은 문호월 작곡, 박부용 노래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 우리 음악사에 불멸의 민요곡으로 자리잡았다. ‘노들강변’은 무용곡으로도 선을 보였고, 오케(OK)레코드사에서 음반으로도 제작됐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 에헤야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강변 제1절

    1930년대의 작곡가 이면상과 음악 전문가들은 협의를 거쳐 ‘노들강변’을 ‘신민요’의 첫 작품으로 결정했으며, 오케레코드사도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을 신민요의 시조라고 광고했다.

    신불출이 쓴 ‘노들강변’뿐 아니라 그의 만담 음반 또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레코드는 시중에 나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의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나라 잃은 백성의 울분을 달래주면서 그를 최고봉 이야기꾼의 위치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자 좌익성향이던 그는 평양에서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 중앙위원을 지내며 직속기관인 ‘신불출 만담연구소’ 소장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 한설야, 최승희 등과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만담가 ‘신불출’을 아시나요?

    2009년도 판 신불출 ‘만담집’(왼쪽)과 뉴욕서 발견된 1956년도 판.

    남한에서 신불출이라는 존재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아울러 1960년대 중반 이후엔 북에서도 더 거론되지 않고 잊힌 인물이 됐다. 그의 가족에 대한 기록도 분명치 않다. 태어난 해도 1905년(남한 자료)과 1907년(북한 자료)으로 다르게 나타나 있다.

    본명 또한 남한 기록엔 신영일 또는 신흥식, 북한 자료엔 신상학이라고 돼 있다. 북한 책자에 나타난 그의 필명은 ‘불면귀’로 연극에서만 이 이름을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출생지도 불분명하다. 그의 고향은 개성이라 알려졌으나, 한 북한 서적(2003년 평양출판사)은 그가 서울에서 태어나 개성으로 이주한 뒤 보통학교에 입학한 것으로 기술했다.

    신불출은 특유한 화술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지만, 일제에 노골적으로 저항하면서 거듭 수난을 겪었다. 툭하면 경찰에게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인기 높던 그의 음반은 자주 불온작품 판정에 걸려 판매금지를 당했다. 한 예로 만담작품 ‘말씀 아닌 말씀’의 한 대목을 보자.

    여기엔 “사람이 왜 사느냐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지가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자(字)라는 것을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글이 있다. 일본을 뜻하는 ‘왜(倭)’자와 혼동시켜 ‘왜놈을 없애야 한다’는 의미를 전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시찰이 필요한 인물로 찍혀 감시받으면서 창씨개명(創氏改名) 강요를 피할 수 없게 되자 이름을 ‘강원야원(江原野原)’이라 지었다. 일본어 발음은 ‘에하라 노하라’. 이 이름은 ‘맘대로 될 대로 되라’는 뜻으로 당시 장안에 화제가 됐다. ‘불출(不出)’로 개명한 속뜻도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일본 세상인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세상에 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에서 지었다는 것이다.

    광복 후인 1955년 8월13일 그는 북에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이때 작곡가 이면상은 공훈예술가로, 이미 공훈배우 칭호(52년 12월)를 받은 무용가 최승희는 한 단계 위인 인민배우로 승격했다.

    다른 북한 책자에선 그가 67년 뇌출혈로 안면마비가 와서 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무대에서 사라진 것으로 적고 있다. 건강 문제로 사회보장(연금을 뜻함)을 받으며 ‘조선희극사’를 연구하고 집필하다가 69년 7월12일 사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2년경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서 신불출을 직접 만났다는 탈북자 김영순(김정일의 전처 성혜림과 예술대학 동기생이며, 최승희의 제자로 8년간 요덕수용소에 있었다) 씨의 얘기는 사뭇 다르다.

    김씨는 신불출을 1972~73년 15관리소 요덕수용소 1작업반에서 만났다고 전한다. 신불출은 키가 작은 편이고 선하게 생겼으며, 함께 수용돼 있던 부인 이양초 씨와는 나이 차가 15년 정도 났는데 부인의 체격이 더 컸다고 회상한다. 김씨에 따르면 신불출은 노인이 다 돼 요덕수용소에 들어왔으나, 주변 사람을 많이 웃기고 즐겁게 해줬다고 한다.

    김씨가 1972년이라는 연도를 기억하는 것은 그해에 그의 이름이 ‘김영자’에서 ‘김영순’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해 북한에서는 ‘자(子)’로 끝나는 여자 이름이 일본식이라 해서 정부 방침에 따라 대대적으로 이런 이름을 다른 글자로 대체시켰다고 한다. 수용소 수용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를 ‘순’으로 바꿨는데 그즈음 신불출 부부를 만났다는 것. 김씨는 신불출이 1975~76년 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정일 회고 거론으로 작품에 관심 고조

    그런데 1995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신불출의 만담을 회고하고 거론하면서 북에선 새삼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그래서 올해 1월 발간된 것이 ‘신불출 만담집’이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 책 저자인 송영훈(70) 평양연극영화대학 교수가 40여 년간 신불출의 생애와 예술 창조활동 자료를 발굴, 고증하는 데 정열을 기울여 책을 펴냈다고 보도했다. 반세기가 지나 빛을 보게 된 56년판 ‘만담집’에서 신불출이 쓴 ‘서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원래 만담은 ‘말’(화술)로 된 것이기 때문에 ‘글’(문장)로 옮긴다는 것은 례사로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음악적이며 무용적인 억양 동작을 자기 속성으로 가진 만담 형상의 표시는 글짜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를테면 구어체 문장인 ‘허구’가 문어체 문장인 ‘하고’로 고쳐지는 정도까진 아쉬운 대로 넘나들 수 있지만 ‘웃음’을 아울려야 할 미묘한 형상에 이르러 입으로 하는 말(음성어)만이 아니라 눈짓, 손짓, 몸짓으로 하는 말(동작어)들을 섞바꿔가면서 한바탕 끌고 나가는 대목들은 필경 책을 떠난 딴 분야의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만담들은 눈으로도 볼 수 있게 된 시각적인 ‘무대용’ 만담이 아니고 귀로만 듣게 된 청각적인 ‘방송용’ 만담이기 때문에 무대 상연을 통해서도 볼 맛이 적고 출판 책자를 통해서도 읽을 맛이 적게 된 것들이다. 또한 남반부에서 그때그때 들려오는 반인민적 매국정책을 폭로하는 방송을 하기 위해서 만든 작품들이기 때문에 이미 시기적으로 늦은 것들도 있다.

    만담 내용에서 ‘놈’짜 붙은 말들이 말로 할 때는 대수롭지 않더니 막상 글로 써놓으니까 비속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리고 형식에서는 한 사람이 하는 것이 만담인데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재담 형식으로 고쳐놓은 것도 몇 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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