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4

2009.05.05

얼굴 고쳤다, 운명아 길 비켜라!

사업 시작 중장년층 관상성형 붐 … 호감 가는 인상, 자신감 회복엔 긍정적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4-29 18: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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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고쳤다, 운명아 길 비켜라!
    [사례 1] “미간이 낮고 콧등까지 낮아 재물운이 없다 보니 지금까지 이 모양인가 봅니다.”

    자기 처지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던 A씨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복도 지지리 없죠. 시골 계시는 부모님 땅 다 팔아서 사업했는데 친구놈한테 사기당해 말아먹고…. 다시 시작하자며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는데, 환율 때문에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하루아침에 넘기게 생겼으니 울화통이 터집니다.”

    ‘무슨 마(魔)가 끼었기에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는 것일까’.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며 고심하던 A씨는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명하다는 점집을 찾아갔다.

    “관상이 좋지 않아. 재물을 모을 수 있는 얼굴이 아니거든. 지금까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지? 당신 운명은 거기까지야.”

    점쟁이가 딱 꼬집어내자 처음 점집에 들어섰을 때의 떨떠름한 표정이 180도 바뀐 A씨. 황급히 점쟁이 소매를 붙잡으며 무슨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그에게 점쟁이가 말했다.



    “코가 낮아서 문제야. 재물운이 들어오게 코를 올려봐.”

    성형외과라고 하면 ‘딸이 쌍꺼풀 수술한 곳’으로 인식했던 A씨가 용감(?)하게 성형외과를 찾은 이유다.

    [사례 2] B씨는 K성형외과 단골손님이다. 이마, 쌍꺼풀, 코 등을 수술하느라 자주 찾았다. 특이한 것은 B씨가 점집을 먼저 찾아가 관상 얘기를 듣고난 뒤 성형외과를 찾는다는 점이다. 오늘 B씨는 5번째 성형수술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어느 점집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점집을 갔더니, 글쎄 얇은 입술이 문제라는 거예요. 제가 예전에 난산한 것도 입술 때문이래요. 입술을 두툼하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얼굴 비율로 볼 때 결코 입술이 얇지 않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B씨는 막무가내. 결국 성형수술 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서야 입술을 도톰하게 하는 주사를 맞았다.

    의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얼굴 비율로 볼 때는 이전 얼굴이 이상적인데…”라며 혼잣말을 했지만, B씨는 두툼해진 입술이 만족스러운 듯 거울에 이리저리 비춰봤다.

    좋은 관상은 운명을 바꾼다?

    관상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성형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을 합친 ‘관상성형’이라는 말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관상성형은 말 그대로 성형수술을 통해 재물, 인복, 운 등을 불러들이는 인상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잘생기고 예쁜 얼굴로 성형하기보다는 관상학적으로 ‘운’이 따르는 인상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관상성형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 한창 유행하고 있는 요즘도 관상성형이 성형수술의 주류는 아니다. 미용성형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 취업 시즌이나 연말, 연초에 반짝 유행할 뿐 평상시에는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 전에도 관상성형과 비슷한 의미의 성형수술은 있었다. 다만 관상성형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뿐. ‘김형준 성형외과’ 김형준 원장은 “관상성형이라는 것은 기존의 성형외과 개념에 포함돼 있다. 도드라진 광대뼈나 들창코 등 인상이 안 좋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은 것이 관상성형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관상성형의 주된 고객은 40, 50대다. 특히 사업을 시작하는 중년층 남자가 많다. 장년층의 경우 자녀와 함께 와서 그들이 성형수술할 때 관상학적 고려를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일부 취업을 앞둔 20대도 관상성형 하러 병원을 찾지만 많은 수는 아니다.

    얼굴 고쳤다, 운명아 길 비켜라!
    관상성형을 하는 이유는 좋은 관상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주나 손금을 바꾸기는 힘들지만, 관상은 겉으로 드러나다 보니 바꾸는 게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 올 초 관상성형을 했다는 김모(44) 씨는 “일이 안 풀려 점을 봤는데, 쌍꺼풀 수술을 해야 앞길이 트인다는 말을 듣고 성형외과를 찾았다”며 “나이 든 남자가 성형수술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동안 일이 잘 안 된 게 관상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주저 없이 수술하게 됐다”고 말했다. 성형외과 의사들에 따르면 본인이 관상 공부를 해서 ‘이렇게 수술해달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의 권유(점을 봤거나 집안 어른들의 추천)로 관상성형을 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고 한다. 관상성형이라고 해서 비용이 많이 들거나 따로 추가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미용성형과 성형 목적이 다를 뿐이다.

    “상술에 불과 … 의사가 운명 바꿀 수는 없다”

    과연 성형으로 관상을 바꿀 수 있을까. 관상학자들은 관상성형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심상(心相)을 얼마나 쌓느냐에 따라 얼굴이 변하는 것인데, 단순한 외과적 수술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의학적 자만이라는 것. 관상 전문 사이트 ‘페이스인포’ 최필진 대표는 “성형외과 의사들이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최 대표는 “코에 실리콘을 넣는 등의 보강형 수술은 보기에는 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운명적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얼굴은 순환하고 자연적으로 변하는 것인데, 실리콘처럼 변하지 않는 물질을 넣어두면 오히려 얼굴의 자연스러움을 망가뜨린다”고 꼬집었다.

    관상 자체를 비과학적이라 보는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 역시 ‘관상’을 전면에 내세운 관상성형에 비판적이다. 한 성형외과 의사는 “관상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부터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는데, 나아가 성형으로 운명을 바꾸겠다는 관상성형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며 혀를 찼다.

    그래서 관상성형은 일부 성형외과 의사의 상술일 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 관상학자는 “처음에는 관상학적으로 보기 좋은 성형수술을 하겠다는 의도로 시작했겠지만, 그것이 결국 성형수술의 한 분야인 것처럼 과대포장된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얼굴 고쳤다, 운명아 길 비켜라!

    좋은 관상이 운명을 바꾼다는 믿음은 ‘관상성형’이라는 또 다른 성형수술 풍속도를 낳았다.

    성형외과 의사들도 이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인정한다. 김형준 원장은 “관상성형이란 것도 호감 가는 얼굴, 잘생기고 예쁜 얼굴을 만드는 미용성형과 크게 다를 바 없다”며 “굳이 관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수술 전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 인상을 좋게 해 취직, 결혼, 사업 등에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성형수술이 관상성형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관상학 지식이 부족한 의사들이 관상성형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술하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관상에 대해 깊이 들어가려면 전문 지식과 의학 외적인 공부가 필요하지만, 실제로 관상성형을 위해 관상 공부를 따로 하는 의사는 매우 드물다는 것. 성형외과 의사들은 “관상학 지식이 없어도 제대로 배운 성형외과 전문의라면 기본적으로 성형수술로 인상을 좋게 하고, 나아가 좋은 관상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관상학자들은 이런 논리야말로 관상에 대한 성형외과 의사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좋은 관상’보다 ‘이상적인 얼굴’

    관상성형을 둘러싼 이런 비판에 대해 성형외과 의사들은 관상학에서 말하는 좋은 인상과 성형외과에서 규정하는 이상적인 얼굴이 비슷하다는 점을 주목한다. 둘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둘의 관계에서 관상과 성형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일반적으로 관상학자는 눈빛이 살아 있으면 생김새가 좀 떨어져도 좋은 얼굴로 치지만, 성형외과 의사들은 좌우 균형이 잡히고 턱선이 원만하면 아름다운 얼굴로 꼽는다.

    관상학에서는 부위별로 이상적인 형태가 정해져 있다. 예컨대 쌍꺼풀 없이 가늘고 긴 눈, 적당히 솟은 광대뼈와 풍성한 턱, 곱게 뻗어내린 윤기 있는 코 등을 좋은 관상으로 친다. 물론 한 가지만 좋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고 각 부위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반면 성형외과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얼굴형이란 다소 작은 얼굴에 광대뼈나 턱이 두드러지지 않고 상안면부와 중안면부, 하안면부의 길이가 같은 얼굴을 뜻한다. 상안면부는 이마 끝부터 눈썹까지, 중앙면부는 눈썹부터 코끝까지, 하안면부는 코끝부터 턱 끝까지를 말한다. 이상적인 얼굴은 좌우 방향으로 볼 때도 관자놀이 사이의 거리가 광대뼈 사이 거리, 그리고 턱선 사이의 거리와 각각 같아야 한다. 또한 눈 사이 거리는 코의 너비와 같아야 하는데, 이 길이는 각각 좌우 눈의 길이와 같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균형 잡힌 비율의 얼굴이 성형외과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얼굴형이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흔히 한다는 관상성형은 ‘이상적인 얼굴’을 만드는 성형수술에 더 가깝다. 따라서 성형수술을 통해 이상적인 얼굴로 변했다고 해서 관상이 바뀌어 운명이 달라진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좋은 관상과 이상적인 얼굴은 일부 차이점에도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상성형을 받은 환자들의 만족도는 일반 미용성형보다 높다. 수술 전 원하는 것이 확실한 데다 자신이 수술 방향까지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술 후의 변화에 대해서도 환자가 잘 적응한다는 평가다. 비교적 주관이 뚜렷한 환자들이 수술을 원하므로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수술되면 강력하게 시정을 요구한다.

    얼굴 고쳤다, 운명아 길 비켜라!

    김형준 성형외과 김형준 원장은 “관상성형도 호감 가는 얼굴을 만든다는 점에서 미용성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관상성형을 내세우는 병원이 아니어도 이왕이면 수술 후 관상이 좋아진다고 강조하는 병원이 많다. 김형준 원장은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인상은 관상학적으로도 좋다. 관상을 따지지 않더라도 성형수술은 황금비율의 이상적 얼굴을 갖추려 하기에 환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관상학적으로 좋은 얼굴과 현대 성형학적으로 좋은 얼굴 사이에서 충돌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관상을 중시하는 중장년층과 달리 젊은 세대는 관상보다 미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들은 좋은 관상과 미적인 얼굴이 충돌하면 관상을 따르지 않고 코를 높이고, 턱을 깎고, 눈을 크게 한다. 미의 기준이 달라졌기에 과거에 좋은 관상으로 본 얼굴 형태가 반드시 현대 미의 기준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서구화한 미적 기준을 중시하는 20, 30대에게 관상은 고리타분한 것일 뿐 성형할 때 크게 신경 쓰는 부분이 아니다. 때문에 한의원을 찾지 않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면서 상당수 한의원이 불황을 겪는 것처럼, 관상성형도 의외로 빠른 시일 안에 도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그랜드 성형외과’ 유상욱 원장은 “50대 어머니와 20대 초반 딸이 성형외과에 오면 어머니가 관상학적으로 아무리 얘기해도 딸이 전혀 듣지를 않는다. 딸에게 중요한 것은 성형수술을 통해 얼마나 예쁘고 매력적으로 보이느냐일 뿐”이라며 “관상성형도 한때 유행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얼굴 고쳤다, 운명아 길 비켜라!

    성형외과 의사들은 관상성형이 운명을 바꾼다는 주장에는 회의적이지만, 성형으로 자신감을 회복하는 ‘긍정의 힘’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 주인공 김아중.

    자신감 회복하는 ‘긍정의 힘’으로 작용

    관상성형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바로 자신감이다. 대부분의 성형외과 의사는 ‘성형으로 관상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로미안 성형외과’ 강민범 원장은 “관상학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얼굴은 마음의 창이며, 얼굴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믿는다”고 했다. 즉 성형수술로 외모에 자신감을 갖게 되면 그로 인해 성격이 변하고, 그 결과 취업이나 결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얼굴이 바뀐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은 아닐 터. 하지만 얼굴에 대한 자신감이 결국 인생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관상성형은 의미가 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요, 눈은 마음의 밀고자다”라고 했다. 얼굴로 그 사람의 성격과 길흉화복을 볼 수 있다고 하는 만큼 관상을 바꾸려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때 드러나는 겉모습도 결국 자신의 심상(心相)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겉모습에 대한 성형보다는 마음의 성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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