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0

2017.03.22

특집 | 사드 한중일 삼국지

“중국만 잘못? 한국도 잘못!”

국내 거주 중국인, 사드 논란에 냉가슴…빨리 해결되길 기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3-17 17: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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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은 북한이 개발하는데 왜 그 피해를 한국과 중국이 봐야 하나요?”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의 얘기다. 중국에서 나고 자란 중국 국적자로, 중국 옌볜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지낸 안 교수는 한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뒤 한중관계가 급랭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중국 금융 전문가인 그는 “사드 문제에 관한 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 중국도 한국만큼이나 북핵 개발을 싫어한다. 그러니 이제라도 서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 교수는 국내에 장기 거주하는 중국인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고 이 문제에 관한 의견을 밝힌, 매우 드문 인물 중 한 명이다. 사드 문제에 대한 생각을 듣기 위해 많은 국내 거주 중국인과 접촉했지만 대부분 이 주제를 언급하기조차 꺼렸다. 조심스레 입을 열어도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한 중국인에게 ‘사드’가 얼마나 예민한 단어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왕서방’의 눈물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국내 체류 중국인은 102만2637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절반 이상(50.8%)을 차지한다. 이 중 63만여 명이 ‘조선족’이라고 불리던 한국계 중국인이고, ‘순수’ 중국인은 40만 명가량이다. 이들은 대부분 한중을 오가며 경제활동에 종사해 양국 모두와 긴밀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서울에서 소규모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중국인 A씨는 “한국 화장품을 중국에 팔아왔는데 지난해 말부터 물류 운송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해관(중국 세관)에서 컨테이너 물량의 3% 정도만 검사했다면, 갑자기 10%를 볼 정도로 절차를 강화한 거다. 관행상 봐주던 부분까지 빡빡하게 잡고 있다. 서류 미비를 이유로 아예 통관 자체를 막아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러다 부도가 나는 건 아닌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A씨에 따르면 한국에는 화장품, 전자제품, 식료품 등을 구매해 중국에 판매하는 소규모 무역업자가 매우 많다. 대부분 중국 국적자인 이들은 한국에 정식 사업체를 세우고 한번에 컨테이너 1~2개 분량의 물건을 중국에 보낸다는 점에서 기존 ‘보따리상’과 구별된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한중관계 개선 움직임을 타고 국내에 정착한 이들은 생계의 근거를 서울에 둔 채 ‘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만큼 최근 양국관계의 급랭 분위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A씨는 “언론에는 관광업 얘기가 주로 나오는데 물류가 중단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겠나”라며 “지금 여기서 무역 하던 사람이 대부분 일이 없어 쉬고 있는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동안 한국 상품을 애용하던 중국 현지인의 반한감정이 높아지는 것도 재한 중국인 상인들이 직면한 위기 가운데 하나다. 중국인이 많이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통해 중국 현지에 화장품을 팔아온 한국 거주 중국인 B씨는 “언제부턴가 모멘트(카카오스토리와 유사한 위챗 소셜네크워크서비스)에 한국 제품 소개를 올리면 욕설 댓글이 달린다. 정상적으로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위챗을 통한 온라인 ‘보따리 무역’은 ‘한국 내 중국 유학생 대부분이 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광범위하게 이뤄져왔다. 위챗의 중국 이름인 ‘웨이신(微信)’의 첫 글자에 상인을 뜻하는 ‘상(商)’자를 붙여 만든 ‘웨이상’(微商 · 위챗에서 활동하는 소매업자)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될 정도다. 그러나 사드 배치 논란으로 한중관계가 경색되면서 지금은 거의 모든 웨이상이 숨을 죽이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중국 국적의 대학교수 C씨는 이에 대해 “예전에 한국 언론기사에서 중국 내 화장품 유통의 40% 정도를 웨이상이 담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정부끼리 싸움을 하더라도 민간 교류는 계속돼야 관계 개선의 여지가 있을 텐데, 양국 국민까지 감정싸움을 벌여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국적자로 한국에서 한중문화교류 사업 등을 해온 허을진 GK희망공동체 대표 역시 “그동안 한중 양쪽의 지원을 받아 여러 행사를 진행했는데, 최근 들어 모두 중단됐다. 그동안은 한국 방문 기회를 주는 행사를 기획하면 중국인 신청이 줄을 이었지만 최근 참가 지원 자체가 뚝 끊겼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에 가겠다고 하면 주위에서 욕을 한다는 것이다.



    “사드 배치 전혀 상의 안 한 건 모욕”

    중국인 밀집지역에서 양꼬치 식당 등을 운영하는 중국인들 역시 위기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D씨는 “요즘 한국 뉴스에 연일 중국의 ‘반한시위’ 보도가 나오지 않나. 그런 걸 보고 한국인이 자극받아 우리에게 반중감정을 드러내지 않을까 걱정된다. 중국인끼리 모이면 사드 관련 기사 아래 줄줄이 달리는 중국 성토 댓글에 대해 얘기하며 ‘이 일을 어쩌나’ 걱정하곤 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한국인들이 중국의 관광 중단 조치 등을 언급하며 중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불만”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사람들이 그동안 한국을 많이 좋아했잖아요.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고, 한국 기업 상품을 쓰고, 한국 관광도 왔죠. 그런데 사드 배치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겁니다. 자신들은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중국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요. ‘한국이 아무 잘못 없는데 중국만 저런다?’ 그건 아니라는 거예요.”

    D씨의 얘기다. C씨도 같은 논리를 폈다. 그는 지난해 6월 말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의 중국 방문을 언급했다.

    “당시 황 총리를 융숭하게 대접하며 중국 조야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사드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황 총리가 별말 없이 귀국했고, 일주일 만에 한국이 전격적으로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지 않았나. 중국 쪽에서 보면 그런 모욕이 없는 거다. 그때 최소한 귀띔이라도 했다면 이렇게 상황이 나쁘게 흘러갔을 리 없다.”

    이처럼 ‘중국만 잘못했나, 한국도 잘못했다’는 정서는 재한 중국인 사이에 넓게 퍼져 있었다. 한 중국인은 “잘한 게 있으면 양국이 다 잘한 거고, 잘못한 게 있으면 양쪽이 다 잘못한 것”이라며 “한국 사람이 일방적으로 중국에 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한국 체류 기간이 짧은 중국인 유학생 중에는 ‘양국 가운데 좀 더 잘못한 쪽을 꼽으라면 한국’이라는 의견을 밝히는 이도 있었다. ‘한류팬’으로 서울 한 대학에 유학을 온 E씨는 “학교에서는 한국인 학생들 눈치가 보여 이 주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먼저 중국에 적대행위를 했다고 생각한다. 자국 영토를 훤히 들여다보는 레이더를 코앞에 설치하겠다는 걸 내버려두는 나라가 어디 있겠나”라며 “결국은 중국이 대국답게 문제를 풀고 한중관계를 개선해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이 왜 이럴까’ 생각한다”고 했다.



    “5월 대선이 분수령 될 것”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1월 말 현재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인 유학생 수는 6만5386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 10명 중 6명(57.6%)에 해당한다. 2004년 말 8677명에 불과했으나 각 대학이 적극적으로 유치 노력을 펴고 한류 열풍까지 불면서 짧은 기간 급증했다.

    재한 중국인 유학생 사회는 2008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국내 시민단체가 ‘티베트 인권 탄압 반대 시위’ 등을 하려고 하자 대규모 ‘친중시위’를 벌여 주목받은 일이 있다. 당시 일부 시위대가 충돌하며 폭력사태가 발생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러나 한중관계의 위기 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임에도 이번엔 유학생 등의 집단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E씨 역시 “친구들과 ‘이제 롯데백화점은 가지 말자’ 정도만 얘기했을 뿐, 뭔가 행동을 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2007년 한국에 입국한 뒤 계속 체류 중인 중국인 어학강사 F씨는 이에 대해 “내가 만나는 중국 젊은이는 현 상황에 분노하고 집단행동을 하겠다고 나서기보다 공개된 장소에서 중국어로 크게 말하지 않는 등 조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중국인 전부가 한국 차를 부수고 마트에서 한국 물건을 짓밟는 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눈에서 우리에 대한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2008년 시위 당시 상황을 알고 있는 한 재한 중국인은 “그때 중국은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세계 각지에서 티베트 관련 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중정서가 확산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학생을 막후 지원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도록 한 걸로 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위를 한 건 아니라는 것”이라며 “지금도 중국 정부가 마음을 먹으면 재한 중국인의 조직적 움직임을 유도할 수 있겠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귀띔했다.

    안유화 성균관대 교수는 3월 15일 중국 ‘소비자의 날’ 이후 분위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가 방영하는 고발 프로그램 ‘완후이(晩會)’는 전통적으로 ‘소비자의 날’에 맞춰 중국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기업들의 불법행위를 다뤄왔다. 그런데 이날 ‘완후이’는 일본 나이키 신발의 내구성 문제, 일본 식품의 원산지 허위 표시 문제 등만 다뤘다. 롯데를 비롯한 한국 브랜드는 언급조차 안 했다. 안 교수는 “중국이 만약 사드 갈등을 끝까지 끌고 갈 생각이었다면 CCTV가 한국 제품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하도록 해 불매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중국이 아직 한국과 대화하고, 현 갈등을 풀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한국과 중국이 갈등을 딛고 다시 화해와 협력을 모색할 수 있을까. 중국 교포 출신으로 지금은 한국 국적자인 김용선 한중무역협회장은 “5월 대선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양국관계 개선의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 회장은 “한국 내 중국인이 힘든 것만큼 중국 내 한국인도 심리적·경제적으로 고통받고 있지 않겠나”라며 “한국 정부가 곧 교체되니, 그간의 과정에서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 따지지 말고 양국 모두 잘되는 방향으로 외교적 해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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