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4

2008.09.30

英 프리미어리그 오일머니 사냥감?

중동 갑부 알 파힘, 맨체스터시티 인수 후폭풍 … 타 구단 잇단 거론 괴담 확산

  • 코벤트리 = 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8-09-24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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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아부다비유나이티드그룹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시티(이하 맨시티)를 인수하고 난 뒤 영국 축구계에 ‘중동 괴담’이 번지고 있다. 아부다비 측이 불과 1년여 전 태국의 탁신 전 총리에게 매각됐던 맨시티를 당시 거래가격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주고 사들일 때부터 이런 분위기가 예상된 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프리미어리그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명문 구단들의 이름이 매각 대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자금난에 성적 부진 리버풀 1순위

    프리미어리그에 부는 중동발(發) 후폭풍의 강도는 2003년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를 인수해 프리미어리그의 판도를 바꿔놓았던 것 이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중동 지역에 프리미어리그를 중계하는 프로그램 ‘쇼타임 아라비아’의 진행자이자 프리미어리그 출신인 드렉 와이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아부다비유나이티드그룹 알 파힘 회장과 대담한 뒤 “알 파힘 회장이 프리미어리그 전체를 완전히 바꾸려 한다”고 단언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공습경보를 발령한 중동 오일머니의 영향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저 맨시티를 사들인 알 파힘이란 인물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중동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릴 만큼 부동산 거물로 꼽힌다.

    올해 31세에 불과한 알 파힘 회장의 재산은 무려 7000억 달러(약 771조원)다. 이는 세계 15번째 부자로 알려진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재산 187억 달러보다 40배 가까이 많은 액수다. 그는 연예 및 영화 산업에서도 마당발로 알려졌다. 알 파힘은 종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데미 무어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찍은 사진으로 자신의 유명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투자전문회사 대표라서이기보다 그가 아랍에미리트 왕실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알 파힘 회장이 아부다비유나이티드그룹을 통해 움직이는 투자금액의 상당액은 왕실 측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그는 왕실의 얼굴마담에 그친다는 것이 금융가의 정설이다.

    만수르 알 나얀 아부다비 왕실 일가의 재산은 어림잡아 수천조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천문학적 재산을 가진 왕실 일가가 프리미어리그에 눈독을 들일 경우 영국축구의 판 자체가 흔들리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벌써부터 리버풀, 아스널, 에버턴, 뉴캐슬 같은 명문 구단들이 다음번 매각 1순위로 축구 관계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팀 모두 자금난이나 기대 이하의 성적 부진으로 최근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는 구단들이다. 특히 뉴캐슬은 맨시티 매각 이후 구단주가 공개적으로 매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또 미국 신용위기의 영향으로 구단주가 자금 경색을 겪고 있는 리버풀은 두바이 왕실 측에서 이미 점찍어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왕실 측에서 두바이인터내셔널캐피털(DIC)이라는 투자회사를 통해 2년간이나 리버풀 인수를 위한 물밑작업을 벌여왔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맨시티를 인수한 아부다비유나이티드그룹 역시 인수 이전 아스널, 뉴캐슬, 리버풀 같은 팀들에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리버풀의 경우 구단 내부의 의견 조율이 안 돼 매각 결정을 내리지 못했고, 아스널과 뉴캐슬은 과도한 채무가 부담으로 작용해 인수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후문이다. 상황 변화 여부에 따라서는 이들 구단이 다시 한 번 중동 오일머니의 사냥감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요 구단들의 매각설 보도가 잇따르자 유력한 인수 후보 중 하나인 두바이국제그룹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뉴캐슬, 리버풀 등 언론에 오르내렸던 구단들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공식 부인이 괴담을 쉽게 진정시킬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이들 구단의 매각 소문보다 큰 충격을 몰고 올 사건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운명이다. 한동안 프리미어리그 주변에서는 맨유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인수할 것이라는 괴담이 끊이지 않았다. 이 소문은 맨유의 대변인이 공개적으로 부인하면서 일단 잠잠해졌다.

    그러나 맨유가 두바이에서 축구교실을 열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사우디 측의 초청으로 팀을 이끌고 수도 리야드를 방문하는 등의 이벤트가 열리자 맨유에 대한 중동 자본의 입질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맨유는 여전히 중동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팀으로 꼽힌다.

    한편 이번에 맨시티를 두바이 자본에 팔아넘기는 데 중개 구실을 한 투자회사 대표가 두바이 측과 리버풀 사이의 물밑협상에도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나 흥미를 모은다. 이 투자회사 대표는 30대 중반의 미녀 아만다 스타빌리. 그는 한때 영국 왕실의 앤드루 왕자와 연인관계였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어쨌든 이런 정황들이 리버풀이 중동 오일머니에 먹히는 두 번째 프리미어리그 팀이 될지 모른다는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물론 리버풀 구단 측은 매각설을 부인하지만, 두바이 측은 여전히 ‘물밑 대화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

    “축구 종가 자존심 구겨” 팬들 실망

    한편 영국의 축구팬들은 중동 오일머니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부다비유나이티드그룹이 맨시티 인수 사실을 발표하던 날 영국 신문들이 즐겨 다룬 헤드라인의 하나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시대는 갔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러시아 권력층과 결탁한 신흥 재벌의 첼시 인수에 대해 영국 축구팬들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영국 축구의 전통을 사랑하는 팬들은 첼시에 대해서도 스타급 선수들을 싹쓸이하기에 앞서 명성부터 쌓으라고 경고했다.

    또 맨유의 라이언 긱스는 중동 오일머니가 맨시티를 삼키고 나서도 ‘맨시티가 돈 말고 가진 것이 뭐 있느냐’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축구 종가의 자존심만으로 프리미어리그의 오일머니 열풍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괴담의 끝이 어디일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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