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3

2008.09.16

“에라, 몹쓸 인간아” 미움과 연민의 줄다리기

‘조강지처클럽’ 뻔한 이야기 시청률 1위 …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의 삶에 묘한 공감

  •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gofl1024@donga.com

    입력2008-09-08 17: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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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라, 몹쓸 인간아” 미움과 연민의 줄다리기
    사람들이 ‘욕하면서 본다’고 하는 드라마가 적지 않다.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전개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데도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이에 해당한다. 지금 방영 중인 SBS 주말드라마 ‘조강지처클럽’(극본 문영남, 연출 손정현)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우리라.

    지난해 9월29일 방송을 시작한 ‘조강지처클럽’이 방영 1년 만인 9월23일 막을 내린다. 매주 60분 분량으로 2편씩을 만들어야 하는 주말극인데도 장장 1년간 이어진 ‘조강지처클럽’은 시청률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올해에도 전체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선두권을 줄곧 지켰고 최근에는 1위를 놓치지 않는 부동의 드라마가 됐다.

    하지만 시청자 처지에선 이 드라마의 성공이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극 중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연기자들의 과잉된 감정 연기가 거부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런 점이 ‘조강지처클럽’ 인기의 원동력이다. 보면 볼수록 칭찬하긴 어렵지만, TV 전원을 끄거나 채널을 돌리기 어렵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보면 볼수록 채널 돌리기 어려운 매력

    ‘조강지처클럽’ 애청자들은 드라마 안에 담긴 인간 군상의 삶이 “어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편 불륜 상대의 전남편과 사랑에 빠지는 한복수(김혜선 분), 아내를 내쫓고 내연녀와 동거를 시작했지만 본처에게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난 한원수(안내상 분), 아내가 보는 앞에서 두 번이나 외도를 한 이기적(오대규 분)의 상식 밖 행동이 오히려 ‘규칙 없는 현실과 비슷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인 듯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뻔뻔한 남편들’은 주부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드라마 제목처럼 조강지처를 그리워하는 기적은 주부 시청자에게 ‘그럼 그렇지’라는 일종의 만족감을 선물한다. 불륜을 일삼지만 뒤늦게 철이 들어 ‘죄’를 뉘우치므로 주부들에겐 카타르시스가 전해지는 것이다.

    주인공 오현경은 “내가 겪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극화해 재미를 준다”며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오현경은 또 “바람이나 불륜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설명하면서 드라마가 전하려는 진짜 의도를 알렸다.

    한 인물에 대해 미움과 동정이란 양가감정을 동시에 발동하게 만드는 힘도 ‘조강지처클럽’의 인기 요인이다. 젊은 시절 정부(情婦)와 살림을 차려 좋은 시절을 보내고 병든 몸이 돼서야 본처에게 돌아온 한심한(한진희 분)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남편과 아버지로서 차지하는 존재감 때문이다. 또 아이들까지 버리고 가출해 불륜남과 동거하는 모지란(김희정 분)에게 닥친 불행을 오히려 위로하고 싶은 이유는 남성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여성에게 연민이 발동해서가 아닐까 싶다.

    ‘조강지처클럽’의 인기 요인으로 ‘언제 봐도 이해되는 뻔한 스토리’를 꼽는 의견도 많다. 같은 등장인물들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데다 생활극인 까닭에 복잡한 이야기나 구도를 택하지 않아 깊게 분석할 필요 없이 보기 편하다는 의미다.

    반면 출연진은 ‘연기자들 사이의 친목과 소통’을 흥행비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내 불륜 상대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길억 역을 맡은 손현주는 “배우와 제작진이 함께 모여 드라마 속 상황과 연기력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권선징악 “그러면 그렇지” 만족감

    “에라, 몹쓸 인간아” 미움과 연민의 줄다리기

    많은 사람들은 ‘조강지처클럽’의 인기 요인으로 ‘언제 봐도 이해되는 뻔한 스토리’를 꼽는다.

    주인공 오현경, 김혜선, 안내상 등과 문영남 작가가 모인 대규모 회식이 주 단위로 열릴 정도로 ‘조강지처클럽’의 촬영장 분위기는 유쾌하다. 방송가에서는 ‘조강지처클럽’ 팀이 자주 벌이는 회식이 화제가 될 정도다.

    여러 요인이 드라마의 인기를 높였지만 무엇보다 시청률 1위의 일등공신은 집필을 맡은 문 작가라 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불륜의 종류를 단 한 편의 드라마에서 모두 풀어놓은 문영남 작가는 불륜을 단순히 남녀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족과 가정에게 어떤 상황을 초래하는지 과할 정도로 자세히 그리고 있다.

    김수현 작가처럼 대사에서 감칠맛이 나거나 김정수 작가 같은 가족애의 힘이 느껴지진 않지만 문영남 작가는 인간들이 지닌 본능적 감정을 가감 없이 들춰내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한다. ‘조강지처클럽’ 속 인물들이 지극히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는 이유도 문 작가의 드라마 스타일에서 기인한다. 말을 돌리거나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문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이 지닌 공통된 특징이다.

    문 작가가 추구하는 철저한 권선징악의 교훈도 지나칠 수 없다. 104부까지 방송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놨지만 문 작가는 제목에서 드라마의 결론을 알려주고 있다. 연출을 맡은 손정현 PD는 “문영남 작가는 방향성이 없는 인간의 다양한 삶을 담는다”며 “휴머니티는 ‘조강지처클럽’이 가진 진짜 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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