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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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모든 납세자 소득 공개로 ‘발칵’

범죄 악용·사생활 침해 우려 강력 반발 … 시민단체, 국세청 고소

  • 로마 = 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08-05-19 18: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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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伊 모든 납세자 소득 공개로 ‘발칵’

    밀라노의 쇼핑가. 이탈리아 전역의 상인들 소득이 모두 밝혀지는 바람에 이런 자료가 마피아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4월29일 이탈리아 납세자들의 2005년도 종합소득과 납세 현황이 국세청 홈페이지에 전격 공개되면서 이탈리아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유명 연예인이나 프로 축구선수뿐 아니라 직장 동료나 이웃이 1년에 얼마나 벌었고 얼마나 세금을 냈는지 국세청 사이트만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었다. 몇 번 클릭으로 도시별 일반 납세자, 사업자 등 알파벳순으로 성명, 주소, 소득액, 납세액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천성적으로 호기심 많은 이탈리아인들, 거기다 최근의 물가 폭등으로 가뜩이나 살기 힘든 판국인 만큼 남의 주머니를 엿보려는 관심이 폭증했다. 이 소득세 신고 자료는 24시간 동안 아무 경고 없이 국세청 웹사이트에 떠 있었다. 국민들의 거센 항의와 사생활 침해 파문으로 전국이 시끄러워졌다. 마시모 로마노 국세청장은 공익의 관점에서 투명성을 지니고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허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서둘러 해명했다. 또 프로디 전 정부의 비스코 재경부 차관은 탈세 방지를 위한 강경책의 하나이며 국세청의 결정은 민주적이라고 옹호했지만 여론은 정반대였다.

    4월30일 개인정보 감독기구는 국세청의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고 현행법에 저촉되는 사생활 침해라며 관련 자료를 웹사이트에서 내릴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미 국세청 사이트는 방문자가 폭증해 접속이 마비된 상태였다.

    마피아, 보호비 협박 근거로 납세자료 이용하면 어쩌나

    전국 소비자보호 단체에는 납세자 온라인 공개 조치에 우려하는 시민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소비자 보호단체는 납세 정보 공개는 단순한 호기심거리가 아니라 조직범죄에 악용되거나 폭력사태를 낳을 수 있다며 국세청의 결정을 비난했다. 마피아가 기업체와 상인들에게서 매달 뜯어내는 보호비 협박의 근거로 납세 목록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 남부의 크고 작은 상점 주인들은 마피아에게 매출 수준에 따라 수백에서 수천 유로씩 상납하라는 협박을 당하고 있다. 마피아가 소득세 신고 명세를 손에 쥐게 되면 상인들은 마피아의 올가미에서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 또 기업인이나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을 유괴할 수도 있고 경제력 있는 집들이 절도나 강도 등 각종 범죄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디 이뿐인가. 이혼한 부부는 전남편의 소득을 엿보고 양육비 인상을 청구할 근거를 잡을 수도 있다. 한 대기업 인사과 담당자는 동료들과 연봉을 비교해본 직원들이 대거 월급 인상을 요구할까봐 긴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있는 척 뻐기는 친구, 항상 없다고 징징거리는 친척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려는 호기심까지 더해져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정보를 보여주면 몇백 유로를 제공하겠다는 누리꾼부터 급히 어느 도시의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그 대가로 로맨틱한 저녁식사를 내겠다는 여성까지, 이탈리아인 특유의 유별난 호기심은 도무지 사그라질 줄 모른다.

    이탈리아 정부는 관련 데이터를 사고파는 행위가 불법이라고 서둘러 경고했지만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린 셈. 다운로드된 리스트는 더는 제어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가 됐고 앞으로 십수 년간은 유령처럼 인터넷을 떠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누리꾼은 이 자료들을 내려받은 CD를 eBay 경매에 올리기도 했다. 또 특정인의 소득신고 정보를 판매하려는 5개 사이트가 적발되기도 했다.

    언론도 이에 가세했다. 일부 언론은 한 지면에는 납세자 온라인 공개에 대한 사회 파문을 기사화하면서 다른 지면에는 유명 인사들의 납세 소득명세를 시시콜콜 보도해 질책을 받았다. 이런 파동 속에 프랑스의 ‘르 몽드’, 스페인의 ‘엘 파이스’, 미국 ‘뉴욕타임스’까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별난 사건을 앞다퉈 보도했다.

    건축가 소득 1위 푸스카스 “신변의 위험 느껴”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상하원 의원부터 지방자치단체 의원까지 모든 공직자들의 재산과 납세 명세 공개가 의무화돼 있다. 또 재판 등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소득 명세 검열이 가능하지만 신청자는 우선 자신의 신상정보를 등록해야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정보가 이 같은 절차 없이 온라인상에 공개됐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최대 소비자 보호연합인 코다콘스는 사생활 침해법 위반으로 비스코 전 재무차관과 국세청을 전국 104개 검찰에 고소했다. 또 이탈리아 납세자들이 개인정보 누출과 사생활 침해 등 피해를 보았다며 납세자 3800만명의 이름으로 200억 유로의 보상금을 정부에 청구했다. 납세자 1인당 520유로씩 상징적인 보상금이 돌아가는데, 이미 7만5000명이 보상금 청구서를 제출했고 참여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 와중에 몇몇 사람들은 실제 생활수준보다 소득을 적게 신고한 ‘꾀돌이’ 탈세족을 찾기 시작했다. 사장이 말단직원과 비슷하게 소득을 신고한다면 얼마나 분통이 터질까? 2005년 납세 명세를 분석한 결과, 이탈리아 납세자들의 평균소득은 17.297유로로 2004년 대비 3.1%가 증가했는데 이중 54.07%의 연간소득이 15.000유로 선이었다. 한편 자영업자의 평균소득은 32.809유로, 직장인 평균소득은 18.531유로로 나타났다.

    국제적 명성의 건축가 푸스카스는 일간지 ‘코리에라 델라 세라’와의 인터뷰에서 건축가 중 소득 1위에 랭크됐다는 소식이 나간 뒤 신변의 위험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다른 동료 건축가들은 외국으로 거주지를 옮겨 이탈리아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라며 반박했다.

    사회 지도층도 이번 조치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프란체스코 피체티 개인정보 감독위원회장은 유럽을 포함한 세계 어느 국가도 이런 식으로 납세자료를 온라인 공개한 전례가 없고 이런 방식으로 탈세를 근절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루카 몬테제몰로 전 전경련 회장도 국민의 위화감만 조성하는 위험한 조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5월 초 물러난 프로디 전 총리는 이 같은 국세청 결정을 알고 있었지만 4월 총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선거 이후로 발표를 연기했다는 뒷얘기가 밝혀지기도 했다.

    온라인 공개로 일어난 파문이 한 차례 수그러든 지금은 과연 이탈리아 납세자들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지, 정부는 어떤 식으로 뒷마무리를 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코다콘스의 카를로 리엔치 회장은 재경부의 트레몬티 신임 장관에게 “정부도 실수하면 그 책임을 지불해야 한다”는 선례를 보이라고 촉구했다. 즉 올해 모든 납세자가 소득세 납세 신고 시 50유로를 공제하는 보너스를 주고, 보상금 소송 경비를 무료로 해달라는 것이다. 리엔치 회장은 이 같은 해결책이 수만명의 납세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느라 국세청 금고가 텅 비는 수모를 막고, 또 추락한 정부 행정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논란과 스캔들 속에 어김없이 올해도 2007년 종합소득세 신고 마감일이 5월 말로 다가왔다. 과연 2007년도 소득 신고는 이탈리아 정부와 국민 개개인 간의 은밀한 비밀로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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