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9

2008.01.15

파격·저돌적 그리고 현장·원칙 중시

이명박 실용주의의 특징…치밀한 분석 후 결론 내리면 일사천리로 ‘빨리빨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01-09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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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격·저돌적 그리고 현장·원칙 중시

    2005년 10월 청계천 복원 직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직접 청계천에 뛰어들어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가봤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부하직원들에게 끊임없이 “해봤어?”를 외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그와 비슷하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그가 습관처럼 내뱉은 “가봤어?”다.

    그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예순 살이 다 된 1급 공무원이든 말단 9급 공무원이든 상관없이 “현장에 가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민원인을 만나봤느냐”고 끊임없이 다그쳤다. 물론 이는 현장에 대한 정확한 ‘감’ 없이는 불가능한 질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공적 역시 두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당선인에게 언론이 ‘실용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여준 시기는 그의 서울시장 임기가 끝나가던 2006년 무렵이다. 그 전까지 대중은 ‘불도저’ 또는 ‘현대건설 최고경영자(CEO) 출신’ 등의 수식어를 통해 그에게서 ‘건설인’ 이미지를 강하게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이후 대중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보여준 그의 ‘CEO형 행정가’의 모습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을 예감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실용주의’의 정체는 무엇일까.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일화와 당시 그를 보좌한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명박 실용주의의 참모습을 문장(文章)으로 정리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실용주의!

    실용주의(實用主義). 딱히 정의 내리기 쉽지 않은 철학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막연하게나마 ‘관념’이나 ‘이념’과 반대되는 실천철학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행보를 되짚어보면 ‘이명박식(式)’ 실용주의와 관련한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잡아챌 수 있다.

    시곗바늘을 조금 되돌려 2003년 청계천 복원 준비가 한창이던 시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한 인터뷰에서 “왜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에게 높게 평가되는가?”라고 자문(自問)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박 전 대통령은 고속도로 건설, 새마을운동, 중화학공업 건설 등 눈에 보이는 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그의 공적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국민이 척 보면 알 수 있는 프로젝트가 중요한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그는 청계천 복원사업에서 그 같은 효과를 기대했으며, 그의 노림수는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2005년 청계천 복원이 완료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 이명박’을 높게 평가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말이 필요 없는, 보면 알 수 있는 ‘가시적 성과’였다. 이러한 업적은 자연스레 ‘건설인 이명박’과 연결됐고, 이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현장중심 경영으로 확대 발전해나갔다.

    현장이 우선, 현장으로 나가라!

    파격·저돌적 그리고 현장·원칙 중시

    이 당선인의 고집스러운 ‘현장주의’는 곧잘 ‘박정희’를 떠올리게 한다. 부산 북항 재개발 예정지(위)와 서울 한강 원효대교 안전을 점검 중인 모습.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이 당선인의 모습은 집무실에서 양복을 입고 차분하게 결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론은 끊임없이 작업복이나 점퍼 차림으로 청계천 또는 대중교통체계 개편 현장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내비쳤다. 일부는 그런 그에게서 ‘일하는 박 전 대통령’을 떠올리기도 했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청계천복원사업단 상인팀이 14개월 동안 하루 평균 4회씩 총 4200번 현장을 찾아, 상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피해보상을 논의했다는 일화는 그의 신화에 날개를 달아줬다. 청계천 복원이 완료되자 그는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일부 과장된 모습도 있겠지만, 이는 이 당선인의 ‘현장 중심주의’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주도한 음성직(60) 전 서울시 교통관리실장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와 현장 확인주의에 이 당선인의 리더십이 있다”고 평가했다.

    대중교통체계 개편 실무를 맡았던 서울시의 모 과장은 “작업복 차림으로 회의실에 들어가 부시장과 국장들이 있는 자리에서 직접 이 시장에게 보고한 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에 따르면, 이 당선인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의사결정을 했기 때문에 밤낮 없이 일하는 가운데서도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누구를 불러서 묻기보다 현장부서에 가서 묻고, 또 바로 거기서 결재하는 편입니다. 결재는 생산의 과정이요 수단에 불과한데, 그것이 권위와 격식에 치우치면 안 되겠죠. 요즘 같은 컴퓨터시대에 차트를 만드는 일이 있는데, 그게 군사문화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빨리 없애야죠.”(1992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현장주의로 관료보다는 전문가나 현장 실무자들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지하철노조 정연수 위원장은 이 당선인의 현장 중심주의를 높이 평가한다. 2006년 서울메트로의 중점투자사업에 85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이 당선인은 “회사가 노조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면서 사업의 우선순위를 매겨라”고 지시했다. 정 위원장은 “이 당선인은 현장에 가장 가까운 근로자들의 의견에서 얻을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잘 아는 듯했다”고 말했다.

    결론은 내려졌다, 따르거나 그만두거나!

    저돌적인 추진력. 이 당선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이 특성은 그가 건설회사 경영자로 오래 일하면서 터득한 후천적 자질인 듯하다. 실제 그의 추진력은 여러 사업을 통해 일종의 ‘신화적 카리스마’까지 획득했다.

    그의 저돌적인 추진력을 빗댄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서울시청 신청사 건립과 관련된 내용이다. 이 당선인의 서울시장 임기 중반부터 추진된 신청사 건립은 이 당선인의 관심 사항이라기보다 여러 건물에 흩어져 이산가족 생활을 하고 있던 서울시 공무원들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프로젝트를 통해 “이명박이 한다고 하면 된다”는 공감대가 서울시 공무원들 사이에 형성됐다. 이에 서울시 공무원들이 이 당선인에게 서울시를 떠나기 전 신청사 건립을 추진해달라고 간청했다는 후문이다.

    추진력과 관련한 그의 일화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줄곧 이 당선자의 오른팔 구실을 한 백용호, 강만수 원장 시절의 서울시정개발연구원(SDI) 연구원들에게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보상하겠다”면서 “나만 따라오면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식의 말을 직접 건넨 일은 유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추진력의 밑바탕에 결론을 뒤집지 않는 이 당선인의 뚝심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울시 공무원들은 오래전부터 필요성은 제기됐지만, 여느 서울시장들이 실천하지 못했던 대중교통체계 개편은 이 당선자 특유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취임 20일 만에 음성직 당시 중앙일보 전문기자에게 대중교통 혁명의 사령탑을 맡겼고, 취임 두 달이 갓 지난 2002년 9월11일 ‘서울 교통시스템 개편 검토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 안에는 버스전용중앙차로제 실시, 버스노선체계를 간선·지선으로 바꾸는 것 등 현재 시행 중인 정책 대부분이 포함됐다.

    그러나 서울시 안팎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버스회사들이 “경영권을 서울시에 뺏기게 된다”며 준공영제에 극렬히 반대했고, 서울시 공무원들조차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이 당선인은 이러한 난관을 정면돌파했다. 반대 입장을 보이는 교통국 소속 공무원들을 다른 부서로 발령낸 뒤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을 앉혔다. 그리고 버스회사들을 대표하는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의 김종원 이사장을 수시로 만나 설득을 거듭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의 회고.

    “2003년 내내 이 당선인을 수시로 만났다. 거의 독대였다. 관계부처 공무원도 배석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자는 것이었다. 서울시장 집무실에 커다란 원탁이 있는데, 마주 보고 앉는 게 아니라 바로 옆자리에 앉으라고 하고는 직접 그림, 도표, 수치 등을 적어가며 열정적으로 대중교통체계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열정과 뚝심에 결국 설득당했다.”

    속도가 미덕이요, 최선!

    “2002년 7월 서울시장 취임식이 있었고, 1년을 준비해서 다음 해 9월 청계천 시공업체 입찰공모가 시작됐어요. 업체들이 근사하게 준비했기에 ‘도대체 얼마나 준비했냐’고 물어봤죠. 놀랍게도 대답은 ‘1년 전부터’였어요. 서울시보다 오히려 민간업체가 더 빨리 청계천 복원을 준비했던 거예요.”(서울시정개발연구원 박사급 연구원)

    이 당선인은 건설업체를 경영한 방식으로 정치와 행정까지 처리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 당선인은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누군가가 사업 추진력으로는 정주영 다음 이명박이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건설업을 했기 때문에 얻게 된 평가일 겁니다.”

    건설업에서 이익을 내기 위한 핵심은 다름 아닌 공기(工期) 단축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정이다. 그는 한마디로 시간과의 처절한 싸움을 해온 셈이다. 결정이 빨라야 하는 것은 물론, 한번 내린 결정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담당자들을 ‘닦달’해야 한다.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 완수한 주요 프로젝트는 대부분 마감시한을 정해놓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결과들이다. 청계천 복원공사는 3년 조금 넘게 걸렸지만, 애당초 전문가들은 완벽한 복원에 10년 이상을 예상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한반도 대운하 공사를 2009년 2월에 착공하겠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는 것도 ‘속도를 미덕’으로 여기는 이 당선인의 철학을 대변하는 대표적 사례다. 실제 관련 업계에선 “이미 대운하 공사 준비에 들어간 업체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귀띔할 정도다.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참여했던 서울시 모 직원도 “2004년 7월1일로 디데이를 정해놓고 매일 오전 7시와 밤 11시에 회의를 거듭했다. 업무량이 많아 과로로 입원하는 직원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한이 촉박해 새로 도입되는 교통카드 시스템을 충분히 테스트하지 못했지만, 이미 정해진 일정이라 그대로 강행했다”고 전했다. 이 당선인 앞에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일을 그만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치밀함으로 속도를 뒷받침하라!

    ‘컴도저(컴퓨터+불도저)’라는 수식어는 이 당선인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그와 함께 일해본 사람들은 이 표현에 고개를 끄덕인다. 일견 어수룩해 보여도 꼼꼼하고 치밀하게 계산하는 능력은 전문가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앞선 판단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청계천 복원을 한다면 노점상이나 상인, 심지어 공무원의 딴죽까지 머릿속 로드맵에 넣어놓고, 상대방이 공격하기 전에 선수를 쳤다.”(전 청계천복원사업단 소속 공무원)

    청계천 복원사업이 논란을 예고하자 ‘청계천 시민위원회’를 만든 것도 이 시장의 치밀한 면모를 보여준다. 수많은 반대론자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심의와 정책제안은 물론, 자문까지 맡는 막강한 권한을 쥐어주면서 자기 품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초기에 “자연형 하천 복원”을 외치던 지식 권력들이 한순간에 이 당선인에게 고개를 숙인 것도 시민위원회 구성 이후부터다.

    ‘돈 쓰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것도 서울시 공무원들을 장악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한 공무원은 “한마디로 돈 쓰는 방법을 아는 CEO였다”고 회고한다. 실제 그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서울시의 돈을 허투루 쓴 대목이 별로 없다. 심지어 뉴타운의 경우 사업은 민간 돈으로 하면서도 과실은 서울시가 다 챙길 수 있었다. 그는 서울시 회계를 면밀하게 파악해 쓸 돈과 아낄 돈을 정확히 구분했다. 청계천 복원 와중에도 복지예산이나 문화예산을 대폭 늘리고 지하철 건설부채를 수천억원씩 갚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파격·저돌적 그리고 현장·원칙 중시

    이 당선자는 도심 재개발 과정에서 노점상들의 무리한 요구에 꿋꿋이 원칙을 고수했다.

    비타협 집단에 굴복은 없다!

    이 당선자의 속도 경영, 불도저 경영이 가능했던 배경엔 ‘비타협 집단’의 효율적 관리가 있었다. 그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노사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대표적인 강성 노조로 꼽히는 서울지하철노조에 대해서도 이 당선인은 ‘원칙’을 고수했다. 과거 서울시장들과 으레 그랬듯, 서울지하철노조는 이 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사측, 즉 서울메트로와 협상해야지 시장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2004년 7월 서울지하철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냈을 때도 그들이 주장하는 3000여 명 인력 증원 같은 무리한 요구를 ‘파업을 감수하면서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법파업 관련 해고자 복직 문제에서도 이 시장은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나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고 협력 의지를 보이는 노조와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서울시의 6개 산하기관 노조위원장들과 수시로 조찬 모임을 갖고 시정 방향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번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민주노총 간부 가운데 한 명인 정연수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은 “노조가 비타협적 파업을 고집하지 않고 회사의 경영합리화,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이 당선자와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비슷하게도 세종문화회관 파업 때는 단호하게 대처했고, 청계천 재개발 과정에서 노점상과의 대립 등에서도 그는 꿋꿋이 원칙을 고수했다.

    일을 위해 최고 전문가를 발굴, 영입하라!

    이 당선인은 선택과 집중에 능한 사람이다. 서울시 개혁을 위해 다양한 유형의 인물군을 활용해 조직을 흔들기도 개혁하기도 했다.

    ‘전문가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는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과 현 도시철도공사 음 사장의 영입이다.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 취임 직후 두 사람을 각각 부시장과 대중교통정책 보좌관 겸 교통관리실장(1급)에 임명했다. 이 당선인은 이 두 사람과 개인적 친분은 없었지만,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추진력을 높이 사 영입했다고 한다. 이 두 사람 없이는 청계천 복원과 서울시 교통개혁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게 중론이다.

    또한 이 당선인은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세종문화회관에 코오롱그룹 부회장 출신의 김주성(60) 씨를 CEO로 영입했고, 서울메트로의 경영 혁신을 도모할 적임자로 민간 CEO 출신 강경호(62) 전 서울메트로 사장을 선택했다. 한라그룹에 오래 몸담으며 한라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지내 경영 및 건설 현장에 정통할 뿐 아니라, 노조문제도 여러 차례 다뤄본 경험이 있는 강 전 사장을 서울메트로 조직 쇄신의 적임자로 본 것이다. 또한 자신의 최측근이자 금융전문가인 김백준 씨를 서울메트로와 세종문화회관 감사로 보내기도 했다.

    한번 전문가에게 맡기면 그에게 모든 권한과 책임을 넘기는 것이 이 당선자의 스타일이다. 강 전 서울메트로 사장은 “세부적인 지시는 하지 않고 ‘당신이 알아서 회사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하시오’라고만 했다”면서 “권한을 주는 만큼 책임까지 지라는 뜻이니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에 정명훈 씨를 영입한 일이나, 청계천광장 조형물에 현대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스웨덴 출신 팝아티스트 클라에스 올덴버그의 작품을 내세운 일도 ‘이명박식 실용주의’의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즉, 많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최고 수준의 지도자나 작품을 영입해 최단 시간에 가시적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명박식 실용주의’는 제2의 박정희 신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이제 이명박과 함께 조금은 위험한 실험에 돌입했다.

    [인터뷰] 김문수 경기지사

    “반대 무서워 않는 MB 실용주의 칭찬받을 만”


    파격·저돌적 그리고 현장·원칙 중시
    김문수(56·사진) 경기도지사는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의 실용주의와 경쟁하는 최고경영자(CEO)형 지방자치단체장 가운데 한 명이다. 김 지사는 취임 초기부터 “전임 손학규 지사가 아닌 이 시장과 경쟁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뉴타운과 교통 분야 개혁에서 이 당선인의 정책을 벤치마킹해 좋은 평가를 얻기도 했다.

    -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MB의 실용주의에 대해 느끼는 게 많을 듯하다.

    “그렇다. 국회의원을 해보면 정치인을 잘 알 수 있듯, 아무래도 그의 진면목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조직 수장직에 상한선과 하한선이 있다면 그는 그 상한선을 깬 존재이자 지도자라고 평가한다.”

    - 한때는 청계천 복원을 비판하지 않았나.

    “그렇다. 나 역시 청계천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으로서, 과연 그게 시급한 사업인지 의문스러웠다. 더러운 물이 흐르고 교통체증이 뻔할 텐데, 어째서 그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원을 서두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땅값이 상승하고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변모한 것이다. 크게 깨우친 바가 있다.”

    - 그와 같은 실용주의는 일종의 과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어느 자치단체장이 과시적 행정을 안 하고 싶겠나. 시민들이 좋아한다면 허공에 불꽃까지 쏘는 시대 아닌가. 누구나 보여주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안 될 뿐이다. 하지만 정말로 시민들이 좋아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불가능을 극복한 MB의 실용주의는 칭찬받을 일이다.”

    - MB의 다양한 공공 분야 개혁 가운데 특별히 벤치마킹한 영역은?

    “역시 뉴타운 사업과 버스 개혁이다. 경기도에서 국회의원을 10년 이상 하면서 느낀 점은 민원의 절반은 재개발과 관련되고, 나머지는 교통 불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MB가 뉴타운이라는 방식으로 구도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낸 점에서 일종의 영감을 얻었다. 구도심에 대해 재해행정은 수수방관하고, 이해당사자는 엉켜 싸웠으며, 시민은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 지방의 교통 갈등 역시 복마전이었다. 그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이 진정한 CEO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 그럼에도 실용주의로 가는 길에 뒤따르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요란하게 떠들지 않고 실리를 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으니까 ‘제3의 길’이니 어쩌니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다. 먼저, 관료들이 현장을 장악하기 어려운 데다, 집중된 서울과 달리 분산된 여러 지역의 다양한 이해를 고려하기가 곤란하다. 특히 지방엔 모셔올 전문가도 많지 않다. 과도한 중앙집권으로 자율성이 부족한 점도 지방자치단체의 실용주의 추구에 걸림돌이다.”


    MB 실용주의 약점은

    눈에 보이는 성과 집착·지나친 속도전에 준비 소홀


    파격·저돌적 그리고 현장·원칙 중시

    건설업을 경영하는 방식의 이명박 스타일은 민주주의와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1991년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함께 석유화학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당시 모습.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대운하 건설을 순순히 포기하리라고 보는 ‘순진한’ 사람이 있나요?”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소속 한 연구원은 청계천 복원 과정을 되짚어볼 때 이미 대운하 건설은 상당 부분 진척됐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청계천 복원에 관여한 몇몇 전문가가 대운하 기획팀에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대운하 공약을 포기할 줄 알았다면 ‘정치인 이명박’을 오판하고 있다는 코멘트도 덧붙였다.

    자신이 참여했던 청계천 복원에 대해선 “청계천에 죄를 지은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제대로 된 문화재 지표조사도 없이 딱딱한 콘크리트와 번뜩이는 타일로 청계천을 뒤덮은 게 아쉽단다. 앞으로 ‘예쁘장한’ 청계천을 유지하기 위해 몇 번의 인테리어 공사가 계속될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 같은 아쉬움은 급조된 녹색의 서울광장으로, 나아가 허술한 대중교통체계 개편과 개발독재식 문화정책으로 확장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앞서 언급한 이 당선인의 장점은 고스란히 단점으로도 연결된다. 굳이 임기 내에 청계천을 완공해야 했는지도 의문스럽고, 고층건물 중심으로 짜인 서울시 재개발론도 미심쩍긴 마찬가지다.

    ‘서울시장 이명박’의 아킬레스건으로 거론되는 사건은 역시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문화재를 ‘무시’했다는 것과, 2004년 여름 ‘패닉’으로까지 묘사된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따른 대혼란 사태다. 이것 모두 ‘이 시장의 대권 의지만으로 강행돼 준비가 미흡했다’ ‘시민 홍보가 부족했다’ ‘업적주의에 매몰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명박(MB)식’ 실용주의의 직접적 피해자는 먼 미래의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 시절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를 끈질길 정도로 설득하는 끈기를 보였지만,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당사자들(국민)은 설득 과정에서 홀대한다는 느낌을 줬다. 아예 직접적으로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도 나중에 다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자만(?)까지 내비칠 정도였다.

    또 다른 한 예는 푸른 잔디가 깔린 시청 앞 서울광장이다. 2003년 1월 서울시는 광장 조성에 대한 현상공모전을 열어 당선작을 선정해놓고도 당선작과 전혀 다른 일명 ‘잔디광장’을 갑작스레 밀어붙였다. 더 큰 문제는 잔디 보호를 이유로 광장 출입을 제한했다는 점인데, 실제 광장 이용을 허락받은 대규모 집회는 이 당선자 입맛에 맞는 보수우익 단체들이 대다수였다.

    현재는 도심에 잔디가 깔려 있어 보기 좋다는 시민도 있고, 광장을 눈요깃감으로 전락시킨 ‘전시행정’의 전형이라 여기는 시민도 있다. 시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반쪽’의 지지만 받고 있는 셈이다.

    이 당선인의 ‘고객만족 우선주의’는 조직의 고통을 강요한다는 어두운 측면도 갖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환승할인, 심야운행 등으로 생기는 서울메트로의 적자 문제다.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의 무임승차 비용은 중앙정부의 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인 만큼 중앙정부가 보전해줘야 한다며 서울메트로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그러나 환승할인, 심야운행 등 서울시의 교통정책으로 생기는 연간 1000억원의 적자는 전혀 보전해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지하철노조 관계자는 “서울시 교통정책으로 발생하는 적자가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면서 “이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서울메트로에 흑자경영을 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MB식 실용주의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할 것이라는 우려도 취임 전부터 강하게 제기된다. ‘대운하 개발’이 대표적 사례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을 염원하는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가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건설경기 활성화에 목을 맬 가능성이 커졌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이 같은 단기적 성과주의에 대해 “실제 실적을 내더라도 ‘성공의 역설’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커진 파이가 골고루 나눠지지 않을 경우, 즉 경제성장에도 일자리가 늘지 않고 비정규직 차별이 여전하다면 사회적 긴장이 더 강화될 개연성이 높다는 우려다.

    또 다른 교수는 정치인 이명박의 장점과 단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남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자기가 미리 결정한 답에 상대방을 끼워맞춘다.” 쉽게 말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서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간 서울시 내부에서도 “충성하는 사람에겐 보답이 주어지고 나머지는 언제나 찬밥이었다”는 불평이 있어왔다. 한때 그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던 한 연구원은 이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이 당선인은 국민들이 CEO형 대통령을 원했다고 해서 그 회사의 종업원이 되길 원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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