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4

2017.02.08

특집 | 전후 질서 뒤흔드는 트럼프 월드

‘거번먼트 삭스’ 美도 정경유착?

백악관과 내각에 골드만삭스 출신 6명 기용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truth21c@empas.com

    입력2017-02-03 16: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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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를 대거 기용하면서 ‘거번먼트 삭스’(Government Sachs·골드만삭스 정부)가 구축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 내각과 백악관의 주요 포스트에 포진한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는 지금까지 6명이나 된다. ‘거번먼트 삭스’라는 용어가 처음 만들어졌던 조지 W 부시 정부에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 5명이 발탁된 이후 가장 많은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선거(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월가의 앞잡이’라고 비판하며 월가를 대표하는 골드만삭스를 개혁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보다 더 많은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를 등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용한 인사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게리 콘(56)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다. 골드만삭스를 대표해온 콘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하며 앞으로 트럼프노믹스를 이끌어갈 설계자다. NEC 위원장에 골드만삭스 최고위급 경영자가 임명되기는 빌 클린턴 정부 때 로버트 루빈(회장 역임), 부시 정부 때 스티븐 프리드먼(회장 역임)에 이어 세 번째다. 콘은 미국 철강회사 US스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뉴욕 선물거래소에서 은(銀) 거래인으로 일했다. 1990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채권과 상품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06년부터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왔다. 그는 1월 20일 골드만삭스에서 퇴직하며 2억8500만 달러(약 3326억 원) 상당의 주식과 현금 보너스를 받았다. 콘은 트럼프 정부에서 법인세 인하 등 핵심 경제공약의 정책화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이른바 ‘노-홀드-바드(no-holds-barred) 스타일’로 유명하다. 아메리칸대를 졸업한 콘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이자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친분이 두텁다. 콘은 쿠슈너처럼 유대인이다.



    트럼프노믹스의 설계자, 게리 콘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스티브 배넌(63)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도 골드만삭스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일했다. 극우성향인 배넌은 “세계화를 지지하는 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간을 빼먹고 아시아에 중산층을 만들어줬다”면서 “다시는 미국이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버지니아공대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국가안보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한 후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1990년 퇴사해 소형 투자자문사를 창업한 배넌은 영화 사업에도 뛰어들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극우 인터넷 매체 브레이트바트(Breitbart)의 대표에 취임한 후 적극적으로 미디어 활동을 해왔다. 인종·성·종교 등 차별적인 보도에 앞장섰던 브레이트바트는 대선 당시 트럼프를 강력히 지지하면서 클린턴을 무차별적으로 비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 ‘싸움꾼’으로 불린 배넌은 지난해 8월 트럼프 선거운동 캠프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되며 대선을 진두지휘해 공을 세웠다. 백인 우월주의자라는 비판을 들어온 배넌은 스스로를 ‘대안 우파(alt right)’라고 말해왔다. 대안 우파는 주류 보수 또는 주류 우파와 달리 유럽 혈통 백인과 문화의 우월주의를 주장한다.   

    재무장관으로 내정된 스티븐 므누신(53)은 골드만삭스의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 출신이다. 예일대를 졸업한 뒤 1985년부터 17년 동안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므누신은 조지소로스펀드를 거쳐 듄캐피털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를 직접 세웠다. 영화 ‘엑스맨’ ‘아바타’ 제작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파산 위기에 몰렸던 미국 최대 주택대출은행 인디맥을 16억 달러(약 1조8400억 원)에 인수했다 2배가 넘는 34억 달러에 파는 등 뛰어난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므누신은 2008년 트럼프가 시카고에서 벌인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인연을 맺었다. 대선캠프에서 선거자금을 총괄하는 재무위원장으로 일했던 므누신이 상원 인준을 받으면 헨리 폴슨(부시 정부)과 루빈(클린턴 정부)에 이어 골드만삭스 출신으로는 세 번째 재무장관이 된다. 그의 아버지도 골드만삭스에서 30년간 근무하며 주식거래를 담당한 파트너이자 경영위원이었다. 그는 앞으로 대규모 감세정책을 추진하고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 므누신은 금융규제 완화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콘과 므누신은 골드만삭스에서 12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므누신도 유대인이다.





    골드만삭스-워싱턴 셔틀

    또 다른 골드만삭스 출신을 보면 제이 클레이턴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 디나 하비브 파월 백악관 경제담당 선임고문, 앤서니 스카라무치 백악관 대외연락담당 총괄책임자 등이 있다. 클레이턴은 골드만삭스를 대리한 로펌 설리반 앤드 크롬웰의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그는 트럼프가 공약한 대로 오바마 정부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 등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2010년 시행)을 전면 개정할 것으로 보인다. 파월은 골드만삭스 사회공헌재단 대표와 임팩트투자 부문 글로벌 대표 출신이다. 스카라무치는 골드만삭스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스카이브리지캐피털 회장으로 일해왔다. 스카이브리지는 7500억 달러(약 866조2500억 원)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사모펀드(PE)다. 2005년 3억 달러(약 3460억 원) 자금을 시작으로 9개 헤지펀드에 재투자하는 방식을 도입, 2년 만에 250배가 넘는 운용자금을 끌어모았다. 스카라무치는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가장 큰 규모의 헤지펀드 콘퍼런스를 개최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스카라무치는 트럼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집행위원을 지냈고,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 트럼프 대통령 특사로 참석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워싱턴 입성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33년 시드니 와인버그 회장을 중용한 것을 시작으로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정부 요직을 차지해왔다. 이를 두고 ‘골드만삭스-워싱턴 셔틀(The Goldman Sachs to Washington Shuttle)’이라 부른다. 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 기업 가운데 하나인 골드만삭스는 1869년 독일계 유대인인 마커스 골드만과 사위 새뮤얼 삭스가 설립한 약속어음거래 회사에서 출발했다. 2015년 기준 매출 338억 달러(약 39조390억 원)를 기록한 골드만삭스의 본사는 뉴욕에 있고, 35개국에 70여 개 사무소를 두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금융위기 때 미국 재무부로부터 100억 달러(약 11조5500억 원)의 혈세를 지원받아 간신히 살아났다. 이 때문에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그만큼 정경유착의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가 120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2만 선을 돌파한 것도 금융규제 완화와 금리인상에 대한 기대로 대장주인 골드만삭스의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트럼프 정부에서 골드만삭스는 승승장구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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