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5

2007.12.18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다빈치처럼 논술하라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입력2007-12-12 17: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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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다빈치처럼 논술하라

    아인슈타인의 특기는 바이올린 연주.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한 솜씨여서 1934년 망명 독일과학자들을 돕기 위한 연주회를 가졌을 정도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문학비평가이자 철학자, 영국 인명사전의 초대 편집장이었다. 그런 그가 왜 딸보다 비창조적인 문학가에 머물렀을까. 울프는 당시의 케임브리지 교육이 아버지를 망쳤다고 회고했다. 암기 위주의 주입식 매뉴얼 교육을 일방적으로 받으면서 여행·예술과 같은 감성적 활동의 결핍을 앓는 반쪽짜리 지식인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울프는 달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녀는 아버지가 대학 진학을 못하게 하는 바람에 독학을 했다. 스스로 폭넓은 문학작품을 읽고 박물관 전시실을 다니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논리와 감성’을 통합한 작가로 대성했다.

    차이와 소통이 존중받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암기주입식 교육 그리고 지식을 파편화하고 자신의 분야 밖에서는 소통할 수 없는 전문가만 양성하는 20세기의 분과학문 몰입으로는 성찰적이면서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일명 ‘통합’논술이 화두다. 일찍이 칸트가 ‘순수이성비판’(홍신문화사)에서 “지성은 아무것도 직관하지 못하고, 감각은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하고, 양자의 통합을 통해서만 지식이 태어난다”고 한 말처럼 교과 간의 벽을 허무는 학제적 능력을 측정하려는 의도다. 한마디로 울프의 아버지보다는 ‘울프처럼 공부하자’는 말이다.

    21세기형 인재는 여러 분야 도통한 다빈치 스타일

    예컨대 논제가 ‘인간과 자연’이면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엘니뇨 등의 자연과학적 사실뿐 아니라 환경윤리, 동물권,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 Yard) 현상, 부의 양극화 등 인문사회과학적 인식이 균형을 이뤄야 좋은 글을 쓸 수가 있다.



    일본의 최고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21세기 지(知)의 도전’(청어람미디어)에서 강조한 바대로 오늘날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 분과학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미래는 지(知)의 통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학자들은 오로지 숫자, 작가들은 단어, 음악가들은 음표, 생물학자는 현미경, 의사는 메스 등에만 매몰돼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식만 많이 ‘아는(Knowing)’ 것을 최우선으로 삼을 뿐, 그것이 ‘어떻게 잘 쓰이는지’에 대한 ‘생각하기(Thinking)’가 부족하면 21세기가 요구하는 전인(르네상스)적 인재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통섭’이라는 말은 전 사회적인 화두가 됐다. 통섭은 영국의 교육심리학자 토니 부잔이 창안한 방사형 나뭇가지 사고법, 즉 마인드맵과 엇비슷한 영역 전이 사고활동이다. 부잔은 마인드맵 아이디어를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사용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 빌려왔다.

    다빈치는 통합의 천재였다. 이탈리아 궁정에서 열리는 여흥이나 즉흥연주회에 참여할 만큼 뛰어난 음악가이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발명기제를 시각적으로뿐 아니라 청각적으로도 사용했다. “벽의 복잡한 문양 속에서 형상을 발견하는 것은 시끄러운 종소리 속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름이나 단어를 찾아내는 일과 같다”고 한 그의 노트는 유추의 본질을 보여준다. 스케치를 보면 물의 소용돌이와 피의 소용돌이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물의 소용돌이를 바람에, 빛·열·냄새가 퍼지는 과정을 거리에, 눈을 마음의 구조와 양파의 구조와 비교하기도 했다.

    다빈치처럼 통합적인 상상력이 부재했다면 백남준도 커뮤니케이션을 몰라 디지털아트를 선구적으로 이끌 수 없었을 것이고,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생물학에 일천해 동물권과 세계화의 윤리를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며, 움베르트 에코는 기호학을 몰라 추리소설의 대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과 그의 제자 최재천은 인문학을 몰라 ‘통섭’(사이언스북스)이라는 화두를 꺼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조선의 18세기를 이끈 박지원 홍대용 정약용은 모든 과목에 능통했고 곤충학자 앙리 파브르는 기하학, 추상화가 칸딘스키는 사회과학, 수학자 소피아 코발레프스카야는 시에 정통했다. 청각장애자인 이블린 글레니는 소리의 진동과 뺨의 떨림으로 소리를 감지해 타악기의 한계를 넓혔고 시각·청각 장애인인 헬렌 켈러는 촉각과 냄새를 통해 시를 썼다. 수학자 파인먼은 진정한 과학자는 세계를 느낀다고 했고,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은 음악가라면 라파엘로의 그림을 연구하고 화가라면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통합학문을 한 천재들의 삶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공부하기가 영원한 지의 진리라는 걸 가르쳐준다.

    미시건 주립대학 생화학과 교수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는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에서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의 생각도구 13가지로 통합학문의 가치를 역설한다.

    변형은 영역 전이 극치, 놀이도 통합학문

    먼저 관찰은 오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눈, 코, 혀, 귀, 손, 온몸, 마음 등이 서로 애무라도 하듯 영역을 넘나든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머릿속으로 음악을 그렸다. 다빈치는 패턴 인식으로 산, 강, 바위를 보며 전투 장면이나 기이한 얼굴을 연상해 사물과 현상을 융합했다. 화가 모리츠는 구름이나 나뭇결처럼 겉보기에 무질서한 패턴 속에서 동물 모양을 즐겨 찾아내곤 했다.

    변형은 영역 전이의 극치다. 마르셀 뒤샹은 오브제인 변기로 명작 ‘샘’을 탄생시켰고, 파울 클레는 바흐의 다성 음악을 이미지로 변형시켰다. 유추는 통합적 상상력의 꽃이다. 에셔는 음악적 유추를 통해 쪽매붙임 작품을 만들었고, 뉴턴은 사과를 땅으로 잡아당기는 힘이 있다면 이 힘이 하늘 위로 계속 뻗쳐나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달까지 끌어당길 것이라고 유추해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다윈은 맬서스의 인구론을 자연계에 유추해 진화론을 세웠다.

    놀이 또한 통합학문이다. 장난감 서커스 모형들을 만들고 놀던 알렉산더 콜더는 ‘모빌’이라는 조각미술의 혁명을 이뤘다. 울프의 아버지에게 부족했던 감정이입도 마찬가지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침팬지와 교감했다. 역사학자 마이클 코헨은 자유를 찾아 비밀철도를 이용해 도주한 19세기 흑인 노예들의 공포와 결핍감을 떠올리기 위해 작은 나무상자 속에 몸을 웅크린 채 7시간 동안 열차를 탔다. 우주여행에 매료됐던 톰 행크스는 어린 시절 무중력 훈련을 흉내내고자 호스로 숨을 쉬며 수영장 밑바닥을 걸어다녔다고 한다.

    수학에 능하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은 직관만이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상상하지 못하는 자,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 그는 현대의 과학자들이 사고실험이라고 부르는 것을 연마했다. 사고실험이란 어떤 물리학적인 상황을 구체적인 형체가 있는 것처럼 보고 느끼고 조작하고 변화를 관찰하되, 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광자(빛 알갱이)’라고 상상했다. 복잡한 수식과 논리는 일차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상상력이 그의 실험실이었고, 직관으로 통찰한 뒤 수식을 통해 설명만 한 게 양자론이자 상대성이론이다. 그래서 그는 양자론을 사고의 영역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음악성의 최고 형태라고 칭송했다.

    루트번스타인 교수는 통합교육의 기본 목표 8가지를 제시한다. ① 창조의 과정 ② 직관적인 상상 ③ 다학문 교육 ④ 공통의 언어로 교과목 통합하기 ⑤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하기 ⑥ 통합학문 전례 따르기 ⑦ 다양하게 발표하기 ⑧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 양성이다. 말인즉슨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고 다빈치처럼 논술하기’가 21세기형 인재를 길러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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