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7

2007.10.23

알제리·리비아 오일머니로 한국 ‘손짓’

에너지 개발·경제협력 우리에겐 ‘기회의 땅’ … 기업에 맡기기엔 한계, 정책적 지원을

  • 알제·트리폴리=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입력2007-10-17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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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제리·리비아 오일머니로 한국 ‘손짓’

    프랑스 식민지 시절 수많은 유럽풍 건물이 들어선 알제 전경. 희색 건물이 쪽빛 지중해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리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의 해외 플랜트(아래 왼쪽). 사막은 리비아 오일머니의 보고다.

    알제리의 수도인 알제에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로 향하는 비행기는 출발 예정 시간보다 30분 넘게 꿈쩍도 안 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설명하거나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이가 없었다. 기내는 온통 흰색 옷을 입고 메카로 향하는 무슬림들로 가득했다. 낡은 비행기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 눈만 내놓고 헤자브로 온몸을 휘감은 여인네가 맨머리를 드러낸 동양 여자를 쳐다보는 시선은 매서웠다.

    조금 전까지 알제공항 대합실을 가득 채우던 프랑스어 낱말들은 어느새 영어로 바뀌었다. 프랑스어로 “물 좀 달라”고 한 내게 돌아오는 승무원의 대답. “영어 할 줄 아세요?” 이제 정말 리비아로 향하는구나. 알제리와 리비아는 그만치 달랐다. 그러나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에서 온 필자의 눈에는 두 나라 모두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 달러 시대를 넘어 3만 달러 시대를 앞당겨줄 한국의 전략적 시장으로만 보였다.

    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넘쳐나는 달러

    고유가 시대를 맞아 아프리카에도 넘쳐나는 외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있는데,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와 리비아가 그곳이다. 국제 유가가 고공 행진을 거듭하면서 오일달러는 이들 국가의 국고를 살찌우고 있다. 이들은 지구촌 에너지 고리의 중심에 서겠다는 야심도 감추지 않는다. 한국에 이들 나라는 ‘기회의 땅’이다. 그들도 한국과 한국기업의 적극적인 진출을 원하고 있다.

    리비아의 확인된 원유매장량은 415억 배럴(1월 현재)로 아프리카 최고다. 원유는 ‘지금’도 곳곳에서 확인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2007년 9월 OPEC가 유가 안정을 위해 50만 배럴 증산을 결정할 때 리비아는 알제리 이란 베네수엘라와 함께 반대 목소리를 냈다. 리비아 알제리와 반미(反美) 국가들의 반대가 없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친미(親美) 국가 그룹은 100만 배럴 증산을 결정했을 것이다.



    알제리·리비아 오일머니로 한국 ‘손짓’

    지난해 알제리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과 ‘전략적 동반자관계 협정’ 서약식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알제리 석유장관이 2008년 OPEC 의장에 오르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앞으로 OPEC과 미·서방 간 긴장이 잦아들지 않을 조짐이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두 국가는 기름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사회기간 인프라 구축에 여념이 없으며, 군 현대화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을 태세다.

    알제리는 2006년 초 러시아와 75억 달러 규모의 방산장비 구매 계약을 맺음으로써 미국과 서유럽 선진 방산국가들을 놀라게 했다. 5월과 7월 각기 경쟁하듯 리비아를 찾은 영국과 프랑스 정상은 군사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트리폴리에는 영국의 방산장비 수출업무기구인 DESO의 지사가 문을 열었다.

    알제리는 최근 한국산 방산 물자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3년 압델 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길에 국방과학연구소를 찾았는가 하면, 10월 초 삼성테크윈의 차륜형 장갑차와 기아자동차의 군용 차량에 대한 현지 시험평가도 했다. 우리가 만든 군용차량이 사상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은 것이다.

    리비아 공군 획득 담당자가 필자를 맞으면서 한 첫마디는 이랬다. “당신이 우리 부서를 찾은 첫 한국인이다.” 모두들 야단법석인데 왜 이제야 고개를 내미는 것이냐는 의미로 들렸다. 필자가 “한국의 초음속 고등훈련기를 들어보았느냐”고 묻자, 그는 “한국이 개발·수출하고 있는 장비가 뭐든 몇 쪽짜리 브로셔 말고 스펙(specification·상세 설명서)을 갖고 제대로 프레젠테이션하라”고 했다.

    최근 40여 년 동안 번영보다는 안정을 선호했던 리비아는 마그레브 지역(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모리타니아)의 맹주를 꿈꾼다. 트리폴리를 방문해서 고자세로 일관하는 리비아 사람들을 만나본 외국 투자가들은 리비아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최근 3년간 입찰에 부쳐진 광구만 100여 개에 이른다. 일본은 리비아에서만 2006년 한 해 동안 6개의 광구를 확보했다.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한(2003년 12월19일) 이듬해 미국은 리비아에 대한 여행금지 조치를 해제했고, 7개월 후 경제제재마저 걷어올렸다. 2006년 5월 미 국무부는 리비아와의 관계가 정상화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서방과의 화해 시대에 접어들자마자 리비아는 석유개발과 기간시설 투자에 전력을 쏟고 있다.

    고등훈련기 등 한국형 방산무기에도 높은 관심

    필자는 라마단(이슬람 신자에게 부여된 5가지 의무 중 하나로 해가 떠 있는 동안 음식뿐 아니라 담배, 성관계도 금지된다) 기간에 알제리와 리비아를 방문했는데, 두 나라의 엘리트들은 신앙의 절대적 소중함과 국가발전의 당위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무더위로 개점 휴업인 8월과 라마단 한 달로 1년의 6분의 1을 허비하는 것에 대한 자기비판이 쏟아졌다.

    두 나라는 한국의 1960~70년대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그즈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나올 때마다 들뜨곤 했다. 그러나 일제리는 오랜 정정 불안으로 개발의 밑그림도 그리기 어려웠다. 민수 자동차 생산라인의 설치 및 기술이전과 관련해 한국 기업이 요구한 중장기 시장 전망 등의 통계치조차도 내놓지 못한다. 리비아도 최고지도자(무하마드 카다피 국가원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나라답게 40여 년간 정보가 차단돼 그 나라 사람들과의 질의 응답은 힘겨웠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에만 리비아 알제리 관련 사업을 맡기는 건 한계가 있어 보인다. 기업들로서는 군침은 흐르지만 맛있기만 한 먹이가 아니다. 20년 전 첫발을 내디딘 대우인터내셔널부터 최근 시장 개척에 나선 LG상사, 그리고 다수의 건설업체를 위해 국가가 기여할 부분이 적지 않다. 정부 차원에서 포괄적인 빅딜을 이뤄내거나 세금감면 등을 통해 지원에 나서야 북아프리카 진출 사업은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2007년 8월 말 한국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21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유가 특수를 타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3배로 껑충 뛴 중동지역에서 145억 달러나 수주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전역에서 거둔 실적은 11억 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할 기미를 보이는 마그레브 국가들이 한국에게는 아직 제대로 된 탐사도 못해본 처녀지인 셈이다.

    알제리 리비아 나이지리아 앙골라 수단 등 아프리카의 산유국에선 석유화학 플랜트와 해양시추시설 등 설비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만성적 전력 부족을 겪어온 만큼 발전 플랜트 시장도 전망이 밝다. 더욱이 유선전화의 황금기 없이 이동통신시대로 곧바로 진입한 이들 국가의 이동통신 단말기, 인터넷 접속장비, 무선통신망, 통합정보 시스템 시장도 한국을 기다리고 있다.

    ‘기회’를 ‘현실’로 만드는 작업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 1990년대 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경험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안 될 일이다.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원조자금을 쏟아부을 역량은 없으나 한국형 압축성장 모델로 그들을 유혹할 수 있다. 덧붙여 북한과 대치하면서 세계 최대 군사강국(미국)을 동맹으로 둔 한국군의 선진 노하우는 아프리카 군인들이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일 수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 이동통신시장 진출 기대

    현지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적극적인 진출을 권했다. 중국은 집요한 데다 팽창주의적이어서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미국과는 대놓고 협력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한국은 전자제품과 차량으로 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한 바 있으며 20여 년에 걸친 대수로 공사의 기적을 이룬 동아건설(현 대한통운)은 여전히 경탄의 대상이다. 리비아와 알제리가 ‘한국의 절친한 친구’가 될 조건은 일부 갖춰진 셈이다.

    카뮈와 지드의 나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옛 식민지 알제리, 그리고 카다피 대령의 나라로만 알려져온 리비아는 고유가의 바람을 타고 연 5~6%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질주를 시작한 그들을 친구로 만드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도 부합된다. 끝으로 알제리 대통령궁 정책특보를 지낸 레다 메주이 박사의 말을 소개한다.

    “알제리는 450억 달러를 미국 국채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나라가 아직 자체적으로 중장기 발전계획을 기획하고 이행해나갈 역량이 모자라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국도 인내력을 갖고 알제리 진출을 도모해야 합니다. 알제리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 즉 서방 자본이 모두 빠져나갈 때 한국의 대우는 우리와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을 믿고 있어요.”

    리비아는



    알제리·리비아 오일머니로 한국 ‘손짓’

    해안가에 그림처럼 펼쳐진 고대 로마 유적지를 보유한 리비아.

    북한 이란 이라크 등과 함께 ‘불량국가’로 불리던 리비아는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뒤 국가 이미지 변신에 전력하는 모습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리비아의 친환경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대규모 사업 계획이 최근 발표됐다. 리비아 북동부 지중해 연안의 고대 그리스 유적지인 키레네에 5000km2 규모의 관광단지를 세우겠다는 것.

    리비아엔 고대 로마 유적도 많다. 트리폴리에서 차로 한 시간만 달리면 로마 유적지가 해변을 따라 펼쳐진다. 그만큼 관광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키레네 관광단지는 무하마드 카다피 국가원수의 ‘그린혁명’ 40주년(2009년 9월)을 기리는 프로젝트로, 고대 문명국으로서의 지위를 계승하겠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도다.


    알제리는



    알제리·리비아 오일머니로 한국 ‘손짓’

    알제리 수도 알제의 이슬람 사원.

    알제리는 군부의 힘이 막강한 나라다. 이 나라의 기자, 학자들은 논리와 비전을 갖고 사회를 이끌 조직은 “군부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러 온 외국 관료를 ‘모시는’ 군용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며 시가지를 휘저으면 사람들은 순수한 표정으로 순순히 자리를 비켜준다.

    알제리는 ‘포스트 석유’ 시대도 대비하고 있다. 사막에 수십 개의 원전력발전소를 지어 유럽으로 전력을 수출할 거란다. 수년 전부터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몰도바 등 옛 소련 국가들과 가스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의 손끝에서 놀아나는 유럽연합(EU) 국가들에겐 매력적인 대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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