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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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이 청와대에 걸린 까닭은

신정아 파문 계기‘청와대 컬렉션’에 관심 집중… 미술품 구입·보유 현황 폐쇄성 여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10-04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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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미술’이 청와대에 걸린 까닭은

    소나무가 굽은 듯하면서도 힘차게 뻗어오른 박영율의 ‘일자곡선’.

    “청와대 그림을 한번 체크해보라. 내 취향이 아니다.”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에 소장된 미술작품의 면면을 잘 아는 듯 말했다. 거짓말투성이인 그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청와대의 설명대로라면 그는 청와대를 딱 두 차례 방문했다. 그는 실제로 ‘청와대 컬렉션’을 살펴봤을까.

    청와대 컬렉션은 대중에게 폐쇄적이다. 방송, 신문, 잡지를 통해 청와대 소식이 전해질 때 배경으로 어렴풋이 등장할 뿐이다. 미국 백악관은 홈페이지를 통해 소장한 미술작품을 사진과 함께 공개하고 설명도 붙여놨다.

    청와대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술작품과 관련한 입방정이 시중에 나도는 것도 청와대의 이런 폐쇄성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조달청의 ‘예술품 대장’에 따르면 청와대는 232점의 미술작품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청와대 컬렉션’은 이보다 2배 넘게 많은 것으로 보인다(2003년 5월 현재 551점+새로 구입한 16점 등).

    ‘노무현 청와대’는 새로 구입한 16점의 미술작품을 조달청에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9월13일 현재). 정부미술품보관관리규정을 보면, 각 중앙관서의 장은 매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미술작품 보유 현황을 점검하고 그 증감사항을 익년 2월 말까지 조달청장에게 통보하게 돼 있는데,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자, 이제부터 ‘청와대 컬렉션’ 속으로 들어가보자.

    노무현 정부 들어 청와대가 구입한 가장 비싼 그림은 전혁림(90)의 ‘통영항’(가로 7m, 세로 2.8m)이다. 청와대는 이 그림을 1억5000만원에 샀다. 노 대통령 부부가 2005년 말 전 화백의 개인전을 관람한 뒤 ‘통영항’을 주문했다고 한다. 청와대 본관에 걸린 이 그림은 방송 화면에 이따금 비친다.

    국무회의 때 노 대통령 뒤로 보이는 소나무 그림은 ‘일자곡선’(박영율 작)이다. 이 그림은 ‘예술품 대장’에 등록돼 있지 않아 언제부터 국무회의장에 걸렸는지 명확지 않다. 2001년 7월까지는 같은 자리에 ‘일월도’(송규태 작)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일자곡선’은 ‘김대중(DJ) 청와대’ 때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월도’는 현재 창고에 보관되거나 청와대의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삼라만상을 통치하는 국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어좌(御座)나 어진(御眞) 뒤에 뒀으며, 경복궁 근정전과 창덕궁 인정전의 용상 뒤에 병풍 형태로 놓였다. 제왕적 통치의 상징물이 ‘공화국의 대통령궁(청와대)’에 걸린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도 있다.

    본관 그림은 ‘통영항’ 국무회의장은 ‘일자곡선’

    ‘청와대 컬렉션’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역대 대통령 초상화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청와대에 처음 걸린 때는 1973년 1월1일. 김인승이 3점을 모두 그렸다. 그의 인물화는 비현실적 아름다움을 사실처럼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인승은 각각 1000만원씩 받고 초상화 3점을 청와대에 판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1000만원이 실제 구입가인지는 명확지 않다. 구입 시기가 불명확하거나 ‘전두환 청와대’ 이전에 컬렉션에 포함된 그림의 상당수가 1000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일괄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민중미술’이 청와대에 걸린 까닭은

    농부의 동작에 강세를 두고 대상과 공간을 입체파적으로 분할한 운보 김기창의 ‘농악’.

    1987년 1월 청와대가 구입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초상화(1000만원)는 정형모가 그렸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상화(1500만원)는 이원희의 작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초상화(7500만원)는 김형근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청와대 그림’ 중에서도 구입가가 꽤 높은 편이다.

    ‘청와대 컬렉션’은 1970년대 후반까지 올바르게 관리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에게 창고를 공개하고 훼손된 작품을 손보기 시작한 것이 그즈음이다. 미술작품 목록은 ‘김영삼(YS) 청와대’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전 전 대통령은 서예에 관심을 보였을 뿐 특별한 ‘미술 취미’는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재임 시절 청와대가 구입한 작품으로는 작자미상의 서예병풍(114만원), 장우성의 ‘학’(1000만원), 민경갑의 ‘산수’(1000만원) 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장우성은 ‘청와대 컬렉션’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화가다(매화 기러기 송학 가을 운봉 국화 기러기 대련 화조도 등 다수). 하지만 그의 작품 상당수도 청와대에서의 구입 시기가 명확지 않으며, 대부분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청와대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장우성은 2005년 타계했는데, 노무현 정부를 풍자한 그림을 한 폭 남겼다. ‘아슬아슬’(2003년작)이 그 작품. 승객을 태운 버스가 뒤뚱뒤뚱 달리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옆에 그는 이런 한시를 남겼다.

    ‘무심코 집어탄 버스가 갈지(之)자로 가는구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한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운전사가 초보라고 한다. 나는 이대로 버스를 타고 가다 낭떠러지로 떨어질까봐 간이 콩알만 해졌다.’

    청전 이상범의 ‘산수’는 청와대 컬렉션의 백미로 꼽힌다. 수억원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이 그림은 청전의 필력이 가장 좋았을 때인 후기 작품(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으로, 풍부한 농담을 뽐낸다. 김기창의 ‘농악’, 노수현의 ‘설경’, 허백련의 ‘벽추’도 주목받는 작품이다. ‘농악’은 풍속적 소재를 현대적 어법으로 형상화한 1950년대 작. 신명나게 장구, 징, 꽹과리를 치는 농부들의 동작에서 음악의 리듬과 강약이 살아 숨쉰다. ‘설경’은 현실이 아닌 이상향으로서의 산수를 담고 있으며, ‘벽추’는 자연에 은거해 의도인(毅道人)으로 살아간 허백련의 만년 작으로 담백한 색채, 골기가 전해지는 선묘가 압권이다.

    YS는 동양화, DJ는 추상화, 이희호 여사는 꽃 선호

    청와대가 미술작품 구입에 본격적으로 나선 시기는 ‘노태우 청와대’ 때다. 대통령 관저(1990)와 청와대 신관(1991)을 새로 지어 ‘그림 수요’가 많았다. ‘주간동아’ 389호(2003년 6월19일)에 실린 청와대 미술작품 관련 기사에서의 ‘노태우 청와대’ 모습을 잠시 살펴보자.

    “본관 1층 왼쪽엔 조선시대 어가행렬도를 재현한 유양옥의 대작 ‘행차도’가, 오른쪽에는 김식이 고구려 무용총을 모사한 ‘수렵도’가 걸려 있으며, 대회의실 입구에는 회의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뜻을 크게 품으라고 경계하는 의미를 담았다는 월전 장우성의 ‘군학도’가 걸려 있다. 대식당인 ‘충무실’ 동쪽에는 연회 장면을 그린 ‘진연도’(이병숙 작) 병풍이 놓여 있고, 운보 김기창의 ‘산수’와 산정 서세옥의 ‘백두산 천지도’가 마주 보고 있으며, 접견실에는 민화작가 나정태의 ‘십장생도’가, 대기실에는 유산 민경갑의 ‘설경’이 디스플레이됐다. 당시 작품을 낸 작가들은 예외 없이 각 분야에서 최고 명성을 누리던 대가들이다.”

    ‘노태우 청와대’의 그림들이 ‘그때 그 자리’에 아직도 걸려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들 그림 중 ‘수렵도’ ‘십장생도’ ‘행차도’ 등은 ‘예술품 대장’에 실려 있지 않다. ‘설경’은 ‘예술품 대장’에 등재돼 있는데 ‘훼손, 수복 시급’이라고 적혀 있다. ‘노태우 청와대’가 새로 산 미술작품은 박대성의 ‘천지’, 배만실의 ‘타피스트리’, 이병숙의 ‘농악’ 등이다. 박대성의 작품은 ‘천지’ 외에도 ‘오동잎’ ‘동경’ ‘장백폭포’가 청와대 컬렉션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노태우 청와대’가 ‘청와대 컬렉션’의 르네상스라면, ‘YS 청와대’는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구입하기 시작한 때다. YS 재임 시절인 1994년 3월23일 하루 동안 청와대는 2100만원을 주고 37점의 그림을 구입하기도 했다. ‘노무현 청와대’가 4년여 동안 16점의 미술작품을 늘린 것과 비교하면 YS 청와대는 ‘질’보다 ‘양’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민중미술’이 청와대에 걸린 까닭은

    남종산수의 유연한 고전미가 담긴 허백련의 ‘벽추’. 농묵으로 표현한 나뭇잎이 눈길을 끄는 이상범의 ‘산수’(아래).

    YS 시절 청와대는 서예작품을 비롯해 ‘난초’‘노송’ ‘진달래꽃’ 등의 제목이 붙은 동양화를 주로 샀으며, 추상화는 거의 구입하지 않았다. YS 시절 화제가 된 그림으로는 송규태의 ‘연화도’가 있다. 개신교 신자인 YS의 뜻에 따라 불교 상징물이 묘사된 미술작품들이 창고로 들어가게 됐는데, 그중 하나가 이 그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그림도 ‘예술품 대장’에 등재돼 있지 않다.

    ‘김대중(DJ) 청와대’는 청와대 컬렉션이 비로소 다양해진 시기다. DJ는 추상화를, 이희호 여사는 꽃그림을 좋아했다고 한다. DJ 청와대는 송필용의 그림을 3점 구입했는데, ‘장전항에서 바라본 비로봉’(420만원) ‘옥류동 I’(245만원) ‘온정리 닭알바위’(105만원)로 모두 금강산 풍경화다. 박동규의 ‘충성을 행동으로’(297만원), 최범진의 ‘잠재의식’(200만원) 등도 DJ 시절 청와대 컬렉션에 추가됐다.

    DJ 시절 수집된 미술작품 중에는 청자도 많다. 1998년 7월엔 2110만원을 주고 ‘청자양각모란당초문화형대반’ ‘청자퇴화국화문수주승반’ 등 유광열의 청자 14점과 김세룡의 청자 2점(청자투각학문과형병, 청자투각국화문호)을 구입했다. 유광열은 지난해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올해의 명장’ 도자기 부문을 수상한 대가다.

    ‘민중미술’이 청와대에 걸린 까닭은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고른 것으로 알려진 전혁림의 ‘통영항’(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청와대가 구입한 유광열의 ‘청자퇴화국화문수주승반’.

    민정기·강요배·임옥상 씨 작품은 최근 구입

    ‘노무현 청와대’는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데 2004년 1200만원, 2005년 9700만원, 2006년 1억5000만원(통영항 1점), 2007년 1400만원을 썼으며 ‘통영항’을 제외하면 ‘팔봉산’(민정기 작, 1600만원)이 가장 비싸다.

    이 밖에도 ‘문주란 섬’(강요배 작, 1200만원), ‘오리 두 마리’(김점선 작, 153만원), ‘페스티벌’(김선자 작, 300만원), ‘달항아리’(석철주 작, 500만원), ‘꽃’(임옥상 작, 800만원), ‘목애당’(김선희 작 400만원), 백자항아리’(작자미상, 950만원), ‘바람 불어 좋은 날’(정상섭 작, 400만원 ) 등이 ‘노무현 청와대’에서 컬렉션에 추가됐다.

    노무현 청와대에 그림이 팔린 민정기 강요배 임옥상 등은 1980년대 이후 근현대사의 명암, 민중의 삶의 모습,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 등을 화폭에 담아온 민중미술계의 주도자다. 노 대통령의 미술 취향이 민중미술에도 닿아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했듯, 청와대가 실제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술작품 수(최소 567점)와 ‘예술품 대장’에 등재된 청와대 미술작품 수(232점)는 크게 차이가 난다. 국가의 조달업무를 맡은 국가기관의 통계가 엉터리라는 것은 난센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술계에선 “어느 대통령이 퇴임 때 그림을 빼돌렸더라”는 소문도 나돈다.

    “‘청와대 컬렉션’과 관련해 정확한 기사를 쓰고 싶다”며 청와대 큐레이터 A씨에게 9월19일과 27일 수차례 전화를 걸고 메모를 남겼지만, 그는 끝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씁쓸했다. 청와대가 보유한 미술작품과 작품의 작가 및 소장 경위를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국가 재산이라는 점에서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옳으며, 또 그래야 한다.

    투명하게 밝혀놓지 않았기 때문에, 또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저런 의혹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한 야당 의원이 신정아 씨의 출입 기록을 요구하자 청와대 측은 사생활 비밀 및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건네줄 수 없다고 했단다. 청와대는 ‘일월오봉도’ ‘일월곤륜도’가 걸려 있던, 문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던 제왕시대의 깊은 궁궐이 돼서는 안 된다.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진 전수(全數)의 ‘청와대 컬렉션’을 웹에서, 또 실물로 감상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이 기사에 명시된 작품값은 청와대가 구입한 가격일 뿐 작품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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