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2

2007.09.11

목숨 건 중동 선교 브레이크 걸릴까

실크로드 주변국 위주로 은밀한 ‘복음의 서진(西進)’ … 1년 이상 장기체류 봉사활동이 주임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09-05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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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 건 중동 선교 브레이크 걸릴까

    2004년 김선일 씨 피랍 당시 화면(사진 아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단체에 강제 피랍됐던 19명의 인질이 40여 일 만에 풀려난다. 탈레반 무장단체 측은 이들을 풀어주면서 연내 한국군 철수와 함께 선교활동 중단을 요구했다.

    피 말리던 지난 40여 일을 생각하면 그들의 조건은 생각보다 평범한 듯하다. 철군이야 명분과 실리 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구조건일 수 있지만, 선교 금지는 예상외의 조건이다. 한국 개신교 관계자들이 이슬람권 국가에서 어떻게 선교활동을 하고 있기에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삼고 나선 것일까.

    정보원 능가할 정도로 신분 철저히 숨겨

    서울 ○○교회 관계자 A씨는 한국 개신교의 대(對)이슬람권 선교활동 과정과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도 과거 100명 이상의 선교사를 이f슬람권 국가에 파견한 적이 있다.

    피랍 사건이 나기 전 A씨가 소속된 이 교회도 아프가니스탄에 단기 선교원 20여 명을 파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반응이 부정적인 데다, 현지로부터 그곳 상황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중동에 파견된 선교사는 정보기관원을 능가할 정도로 비밀리에 움직인다.”

    A씨의 귀띔이다. 신분 노출은 곧 신변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봉사활동을 주임무로 한다. 일단 선교에 나선 사람들은 1년 이상 장기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외지에서 선교활동을 한 사람은 국내로 돌아와 안식년을 보낸 뒤 다시 같은 지역에 파견되는 경우도 있다.

    A씨가 몸담은 교회에서 파견한 선교사와 봉사자들은 주로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공교롭게도 실크로드 주변국들은 모두 이슬람 문화권이다. 몇몇 교회는 이미 실크로드를 따라 터키까지 선교사 배치를 끝냈다는 말도 나온다.

    개신교에서 실크로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계 선교의 전략적 지역’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복음의 서진(西進)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백 투 예루살렘(Back to Jerusalem·중국 이슬람권 힌두권을 넘어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운동)의 일환’이기도 하려니와, 일부 교회의 경우 ‘누가 얼마나 많은 선교사를 오지에 파견했는지를 신앙심의 척도로 여기는 풍토’도 있는 게 사실이다.

    현지 봉사에 나선 사람들은 주로 질병을 치료하거나 우물을 파는 등 실생활과 밀접한 일을 한다. 이런 달란트(재능)를 가진 사람을 우선적으로 봉사단원으로 선발한다. 그래서 간호사 의사 기술자 등이 우선순위가 되고, 정보기술(IT) 종사자들은 현지 인프라가 빈약해 그림의 떡이다.

    “이번 인질 피랍사건이 터진 후 정부기관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현지 사정을 물어온다. 아마 아프간 현지에 라인이 있는 조직은 몇몇 단체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노하우’가 있다. 사고는 나지 않는다. 그들(샘물교회)은 아마추어다.”

    A씨에 따르면, 그가 소속된 ○○교회는 선교사 파견 규모가 한국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한다. 이번 여름만 해도 100개국에 1500여 명의 단기 선교사를 파견했다. 장기체류 선교사도 55개국에 600명가량 된다.

    전 세계 160여 개국서 민간외교관 구실 톡톡

    A씨는 자신이 속한 교회에 대해 “단일교회의 파견 규모로는 세계 최고”라고 평가한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1년간 선교에 쓰는 예산이 수백억원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이 교회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은 세계적인 선교대국이다. 한국선교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05년 기준 한국 선교사 수는 1만300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약 1만5000명에 이른다(개별 교회에서 직접 파견되는 경우 제외). 미국(약 6만명)에 이어 두 번째다. 대학생과 직장인의 비전 트립(단기 선교여행의 일종)까지 포함하면 ‘세계 1위의 선교대국’으로 불릴 만하다.

    수적 측면 외에도 한국 선교사들은 서구 선교사들과 비교해 평균학력이 월등히 높다는 특징을 지닌다(대졸 이상 학력자 95%, 이 중 석·박사가 30% 이상). 영사나 대사가 체재하지 않는 지역에도 선교사가 있을 정도인 데다 그 수준도 높다 보니, 선교사들은 민간 외교관 구실을 톡톡히 해내기도 한다.

    현재 이슬람권에 3000명 이상 파견 추정

    A씨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이 현지에 부임하면 가장 먼저 선교사를 찾는 일이 허다하다”고 설명한다.

    “출발할 때부터 우리 교회에 연락해 현지 연락처를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 정보기관도 마찬가지다. 현지 사정을 알지 못하는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선교사를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이 좋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1900년대 초기 영국 미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선교사들을 파견해 현지 국가의 각종 정보를 접했던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 선교사들은 최고의 민간외교관이다.”

    현재 165개 단체를 통해 16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선교지는 일반적으로 이슬람권과 기타 지역으로 나뉜다. 이슬람권보다 종교 활동이 자유로운 아프리카, 남미에서는 성경과 찬송가 등을 가르치며 ‘까놓고’ 선교활동을 하는 편이다. 중국은 칭다오(靑島) 같은 외국기업 밀집지역에서만 종교활동이 가능하며, 다른 곳에서 활동하면 공안에게 저지당한다.

    한국 선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선교사들은 제자 훈련(38.8%), 교회 개척(35.3%), 교육사업(7.2%), 신학교육(4.6%), 순회전도(4.4%), 성경번역(2.7%), 의료사역(2.5%), 사회사업(2.1%), 지역개발(1.7%) 순으로 자신의 선교 목적을 밝혔다. 하지만 모든 선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처음엔 선교 목적을 밝히지 않은 채 철저히 봉사활동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또 많은 선교 관계자들은 아프간 같은 이슬람 국가의 경우 현지인의 개종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순수한 봉사활동을 통해 관계를 넓혀간다”고 설명한다.

    A씨의 얘기다.

    “선교사들은 철저하게 현지에서 봉사만 한다. 집 지어주고 우물 파주고, 병 치료해주고…. 종교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아무런 요구 없이 묵묵히 오랫동안 주기만 한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왜 이렇게 베풀기만 하느냐, 어떻게 세상을 그렇게 살 수 있느냐고 물으면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종)’이라고 신분을 밝힌다. 그때 관심을 보이면 종교 모드로 돌아서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또 1년이고 2년이고 퍼주기만 한다. 그렇게 거점 하나 확보하는 데 3~5년 걸릴 때도 있다. 종교적 신념이 없으면 하기 힘들다.”

    해외파견 선교는 2004년 고(故) 김선일 씨 피살사건 이후 잠깐 위축됐지만, 계속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선교사 수 역시 2000년 이후 해마다 전년 대비 25%인 약 2000명씩 증가하고 있다. 그중 이슬람 국가에 파견된 선교사 수는 2003년 약 14%에서 2005년 약 23%로 뚜렷이 높아졌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왜 위험지역을 택하냐고? 성경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이 나온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린 명령이다.”(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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